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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 [FOCUS] 1.「세월호」는 일단락돼 가는 사건인가?

2014.07.15 18:23

진보교육 조회 수:1239

「세월호」는 일단락돼 가는 사건인가?
        - 우리의 임무와 다짐

                                            정은교 / 서울 강신중

≪쏟아져 들어오는 깜깜한 물을 밀어냈을
  가녀린 손가락들
  나는 괜찮다고 바깥 세상을 안심시켜주던
  가족들 목소리가 여운으로 남은
  핸드폰을 다급히 품고
  물 속에서 마지막으로 불러보았을
  공기방울 글씨
  엄마
  아빠
  사랑해!

  아, 이 공기,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

  함민복의 시(詩)의 한 구절이다. 그로부터 두 달이 넘게 세월이 훌쩍 흘렀다. 덧없는 세월과 더불어 세월호 사건(사태)도 차츰 잊혀져 가고 있다. 수많은 자원봉사자와 기자와 경찰들로 들끓던 진도 팽목항은 (이 글을 쓰는 6월 24일 지금) 고즈넉하기 짝이 없고, 몇 남지 않은 실종자 가족만이 한 귀퉁이에서 (아직도!!) 외로이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누구 가슴에 피멍이 들건 말건) 세월호는 이제 차츰 일단락돼 가는 사건인가? 세월호 사건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며 여러 대학의 문헌기록학과 학생들이 팽목항을 답사했다고 한다. 그들은 무엇을 건져냈을까? 안산시에는 기록 보관소를 세울 작정이란다. 더 채우고 찾아야할 자료들은 없을까?

  인터넷 사전(위키백과)을 들어가 보면 「세월호」가 한 항목으로 올라 있다.  
  ≪세월호(世越號, MV Sewol)는 청해진해운에서 2013년 1월 15일부터 인천과 제주를 잇는 항로에 투입돼 주 4회 왕복 운항하다가 2014년 4월 16일 진도군 해상에서 침몰한 여객선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世越號 沈沒 事故)는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48분경 대한민국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 황해상에서 인천발 제주행 국내선 여객선에서 발생한 침몰 사고이다. 세월호에는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 325명과 선원 30명 등 총 476명이 탑승하였다고 알려졌다.≫
  분량이 제법 길다. 사고 발생 원인으로, 암초 충돌설, 구조결함설, 구조변경설, 변침설, 내부폭발설, 복합원인(단계)설, 과적 및 선체 결함설, 느슨한 결박설이 열거돼 있고, 각국의 반응, 다양한 주체의 책임 논란, 세월호의 의인(義人)들 소개까지 방대한 내용이 망라돼 있다. 세월호는 이미 역사의 평가를 받아, 과거의 한 페이지로 넘어간 듯하다.    
              
누가 주범인가?

  처음에 TV 화면으로 사건 현장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제일 먼저 세월호를 빠져나간 선장과 여러 (기관실) 선원들에게 마치 그들이 이 사고의 주범인양 걷잡을 수 없는 분노의 화살을 퍼부었다. 이 반응은 숱한 죽음을 낳은 주범이 누구인지, 이치를 따져서 내린 결론이 아니었다. 우리의 안위(安危)를 돌봐주리라 믿었던 사람들이 그 당연한 기대를 저버렸을 때의 끔찍한 심리적 충격을 표현한 것이다. “승객들은 빨리 배 밖으로 나오라”고 안내방송이라도 나갔던들, 아니 선장이 방송마이크를 아예 꺼놓고 달아나기만 했더라도 그 충격은 덜했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려라!”하던 안내방송은 ‘무책임’이 조직화되고 아예 체질이 돼버린 현대 국가관료체제를 시퍼렇게 은유하는 섬뜩한 상징으로 시민들에게 다가갔다. 카프카의 소설이 현실로 둔갑해서 나타났다. 박근혜는 이같은 시민들의 공황 상태에 편승해서 (자기에게 돌아올) 화살을 피해 보고자 막된 선동을 일삼았다. “선장은 살인자다!”하고.    
  하지만 그가 아무리 낙인을 찍는다 해도 선장은 피라미다. 언론은 침몰의 구조적 원인을 찾는다며 청해진해운의 운영 실태를 샅샅이 파헤쳤고, 이를 밑바탕으로 삼아 검찰이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 유병언의 죄를 물었다. 검찰과 경찰의 대대적인 검거 작전에도 불구하고, 그가 체포되지 못하자 국가관료와 자본가의 은밀한 유착관계가 불거졌다. 그를 체포하지 못하는 까닭은 수사 정보가 뒷구멍으로 줄줄이 새기 때문 아니냐고 수구 언론(조선, 중앙)이 오히려 성화를 부렸다. 유병언을 잡아들여야 그가 주범이라고 몰아세우고 사건을 일단락지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민중의 원성은 침몰하는 배에서 단 한 사람의 생명도 구하지 못한 해경에게 더 쏠렸다. 단원고 학생들이 “정부가 (승객들을) 구하지 못한 게 아니라 구하지 않은 것”이라고까지 단언했으니 정권은 어떻게든 이 분노를 가라앉혀야 했다. 박근혜가 악어의 눈물을 흘리며 포퓰리즘적 기교를 부렸다. 아예 ‘해경’의 간판을 걷어치워서 민중에게 한(恨)풀이를 시켜주자는 잔꾀였다. “나 대신 너희가 매를 맞아 다오!” 해경이 떠맡아온 나름의 임무(바다의 영토를 둘러싸고 중국, 일본과 힘겨루기하기)가 있는데 대책없이 간판을 내리면 어떡하느냐고 언론이 볼멘 소리를 했지만 국가 안보보다 더 소중한 것이 정권 안보요, ‘지배층 지키기’라는 것을 눈길 좁은 언론들은 몰랐다.

무엇을 과녁으로 삼을까

  개혁 언론은 이 사고를 돈독이 오른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것으로 짚었다. 세월호 선원 대부분이 비정규직이요, 선장도 계약직이었으니 저희들의 책무에 그렇게 소홀했던 것 아니냐. 이명박정권이 고물 배의 선박 사용연한을 늘려줘서 비롯된 일 아니냐. 자본가가 돈벌이에 급급해서 무리하게 객실을 증설하고, 화물을 때려 실은 것이 결정적 원인이 아니냐 등등. 모두가 돈벌이와 자기 “생존(生存)”에만 눈이 어두웠던 탓에 우리 모두가 ‘위험’ 사회에 노출됐다는 문명사적(文明史的) 진단이 쏟아졌다. 이태 전에 이탈리아 배가 침몰했을 때도 선장이 ‘나 몰라라’ 도망갔다. 이런 일은 한국이 ‘후진국’이라서 꼭 벌어진 일이라기보다 미국과 유럽 국가에서도 얼마든지 벌어질 일(=‘사회 해체’의 징후들)이라 보는 것이 온당한 진단일 게다.
  사회운동 세력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철회하라”는 요구와 더불어, “박근혜정권 물러나라”는
구호도 곁들였다. 각계각층이 목소리를 냈는데, 전교조도 ‘정권 퇴진’을 분명히 외치지는 않았어도 정권을 호되게 비판하는 교사 성명을 조직해냈다. 짧은 기간 안에 만 6천 명의 서명이 조직된 것은 가라앉아 있는 조합 분위기로 봐서 의미 있는 실천이다. 낮은 수준에서나마 일반 조합원들이 정치적 행동에 나선 것은 소중한 일이다. 일부 조합원들은 청와대 게시판에 “박근혜 퇴진운동을 벌이겠다”고 선포한 글을 올려서 세월호 진상규명을 다그치는 시민행동의 기개를 북돋았다.      
   하지만 6월 4일 지방선거 결과는 어정쩡했다. 서울시장에 박원순이 압도적으로 당선되고, 진보교육감이 대거 진출한 데에는 세월호 사태로 각성한 40대 앵그리맘의 표심이 얼마라도 반영된 것이 분명하나, 인천시장에 유정복(박근혜의 오른팔)이 당선된 데에는 박근혜의 눈물 덕이 컸기 때문이다. 언론은 세월호로 악화된 민심 속에서 새누리당이 그런 대로 방어를 해냈다고 촌평했다.
  그래서 사물의 ‘기본’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신자유주의(민영화, 규제 완화)를 철회하는 일이든, 박근혜를 쫓아내는 일이든 그 사고가 왜 벌어졌는지, 진상을 철저히 파헤치는 것이 먼저다. 이것이 선행돼야 책임자 처벌과 재발방지 대책을 세울 수 있고, 이것이 변변히 돼 있지 못하고서는 사회운동세력이 무슨 얘기를 꺼낸들 그 논거가 무게를 얻지 못한다.
  우리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자본가들에게 줄곧 ‘퍼주기’를 해온 것과 사회 양극화가 더 깊어진 현실에 대해 분노한다. 일찍이 자유주의 사상가 존 로크는 정부가 국민의 안전도 지켜주지 못할 경우, 그 정권은 쫓아내야 마땅하다며 ‘국민의 저항권’을 부여하기까지 했다. 정부의 구실을 최소한으로 제한하고자 했던 그들조차도, 아니 그런 그들이었기에 ‘국민의 안전’ 문제를 더 서슬 퍼렇게 살폈다. 이처럼 국민적 공감대가 드넓은 사안이었기 때문에 ‘박근혜 퇴진’ 이야기가 쉽게 나온 면이 있다.
  하지만 다른 면도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밑에서였다면 이런 안전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까? 그때도 신자유주의적 국가운영에 따른 안전사고가 심심찮게 일어났다면 ‘왜 꼭 (이명박, 박근혜에 대해서만) 퇴진을 부르짖느냐?’는 힐난도 나올 만하다. 어느 정부라도 안전사고를 피할 수 없다면 일반 대중은 (퇴진이 아니라)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를 선거로 심판하자!”는 쪽으로 당연히 마음이 기울게 돼 있다. 그런데 사회운동 세력은 “심판으로 모자란다. 당장 쫓아내자! 그래서 내로라 행세하던 놈들, 자본과 언론과 종교까지 다 메스를 대고 국가기구를 ‘모조리’ 뜯어고칠 기회를 만들어내자!”는 쪽으로 대중의 기류를 바꿔낼 만큼 세월호 사태를 당차게 들이파지 못했다.

  세월호 사고를 다시 들여다 보자. 사고의 배경이 될만한 요인들(천민자본주의, 무책임한 관료체제)에 대해서는 언론이 짚을 것을 다 짚었다.  하지만 막상 사고의 직접적 원인, 곧 언제, 어디서, 왜 벌어졌는지, 또 구조 과정이 어땠는지는 소상히 파헤쳤는가?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는 이미 해경이 세월호에서 가장 먼저 구조한 정체불명의 인물(오렌지 맨)의 존재를 폭로했다. 이것은 세월호 참사가 단순한 사고가 아닐 가능성을 보여준다. 의혹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정체불명의 잠수함의 존재와 그 역할은 무엇이며, 세월호 선미(船尾)의 파손 흔적과 배 밑바닥의 도색(塗色)이 벗겨진 흔적은 무엇인가? 사고는 오전 8시 58분에 일어났는가, 아니면 7시 20분 훨씬 이전에 일어났는가? 가장 먼저 보고를 받았다는 국가정보원의 역할은 무엇이었고, 의문투성이의 인물인 유병언의 역할은 무엇이었으며, 미국은 이 참사와 어떤 관련이 있었는가. 그리고 끝으로 재난 콘트롤타워인 청와대의 역할은 무엇이었는가, 등등등.... 이런 ‘결정적’ 의혹들을 밝히는 철저한 진상규명이 돼야만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라 하겠다.
  우리는 진상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몇 가지 의혹의 단서만 있지 사태를 훤히 비추는 투명렌즈를 갖고 있지 못하므로 단언해 말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조작과 은폐에 대한 물증(物證)과 심증(心證)은 차고도 넘친다. 이를테면 사건이 벌어진 초기, 우익 논객 지만원이 뇌까린 말도 ‘도둑이 제 발 저려서’가 아니라면 이해되지 않을 발언이다. 그는 “시체 장사에 한두 번 당해봤는가?” “머지않아 빨갱이들이 5.18 광주폭동을 방불케 하는 대규모 폭동을 획책할 모양이다. ... 박근혜 대통령은 이같은 폭동에 단단히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보통 막말이 아니다. 어찌해서 민간 선박에서 일어난 평범한 해난 사망사고가 (합법화된 폭력기구인) 군대가 저지른 끔찍스런 민중학살사건에 견주어졌을까? 무언가 수상쩍다. 지배층이 이 사고의 후폭풍이 얼마나 뻗어갈지, 대단히 두렵고 초조한(!) 마음으로 바라봤다는 얘긴데 왜? SBS ‘그것이 알고싶다’ PD에 따르면 사건이 나고 하루이틀 뒤부터 정보기관이 을러대는 통에 해난 전문가들이 점점 TV 인터뷰를 꺼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네티즌들이 많이 거론한 의혹이 사실일 경우, 이 사건의 성격은 기왕에 언론이 파헤쳤던 얘기들과 전혀 딴판의 것이 되고(그럴 경우, 우리는 어이 없이 헛다리를 짚은 셈이다), 우리가 바로잡아야할 과녁도 전혀 딴 것이 된다(이 얘기는 글 맨 끝에 보충한다). 게다가 진실이 드러날 경우, 사태의 파장이 현 정권의 퇴진으로도 수습되지 못할 더 심각한 것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올 5월에 국방부는 ‘4세대 전쟁’이라는 수상쩍은 구호를 내세워 북한의 급변사태를 끌어내기 위해 분란전(특수부대 투입)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선포했더랬는데, 남북 긴장이 에스컬레이트될 경우 ‘군대’가 남한의 정치를 말아먹을 신흥(?) 세력으로 나서지 말라는 법도 없는데, 어쩌면 세월호 참사는 이 정세가 짙어가는 와중에 뜻하지 않게 벌어진 (이 정세와 연관된) 사태는 혹시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이 사태를 둘러싼 지배세력과의 대결에서 우리에게 부족했던 것은 ‘박근혜 퇴진’을 더 단호하게 외칠 용기가 아니라 숱한 네티즌들이 ‘의혹을 밝혀내자’고 거론한 것들을 과감하게 받아 안아 ‘진상 규명!’의 여론을 조직해낼 용기가 아니었을까. 세월호 유가족들은 그것을 절절히 바랐고, 그것이 뒷받침돼야 ‘정권 퇴진’ 구호도 힘을 받는다.        

무엇이 반성할 과제인가
  
  개혁언론과 사회운동세력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 나름으로 대응해온 노력은 소중하다. 그러나 그 노력이 왜 ‘퇴진’은커녕 현 정권에 대한 ‘심판’조차도 충분히 끌어내지 못했느냐는 자문(自問)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왜 힘을 발휘하지 못했을까? 그 답은 세상일의 기본에 속하는 것, 곧 ‘진상 규명’을 당차게(끝까지) 밀고가지 못한 데 있다. (야당이 제 구실을 했는지는 구태여 묻지 말자. 6월 24일 현재, 세월호관련 국정조사에서 기관보고 일정을 언제로 잡을지를 놓고 여야가 실랑이를 벌이며 국회특위가 표류중이다. 7.30 보궐선거에 미치는 영향을 서로 따지고 있다. 야당이 진상규명에 당찬 의지가 있었더라면 사건 초기에 네티즌들이 제기한 숱한 의혹을 받아 안아서 집요하게 문제제기를 했을 것이다. 개혁언론이나 야당이나 어떤 국가적 정권적 1급 비밀에 해당하는 것은 감히 언급하기를 꺼린다....)  
  이것, 예전에 어디선가 겪었던 일이다. 데자뷔(=기시감(旣視感))!! 언제였더라? 천안함 사건 때였다. 그때도 개혁언론과 사회운동세력은 원인과 진상을 변변히 밝혀내지 못했다. 오늘 그것과 비슷한, 아니 그보다 더 참혹한 세월호 참사를 변변히 캐내지 못하는 것도 그때의 무능력의 결과가 아닐까.
  천안함 사건 당시에도 사회운동세력은 이른바 ‘좌초설’이 입맛에 맞았고(이는 “북한의 잘못도, 남한이나 미국의 잘못도 아닌 평범한 사고였으면 좋겠다.”하고, 골치 아픈 진상을 덮어버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심리에 영합한다), 사건의 책임을 오직 이명박 정권에게만 물으려 했다. 미군 지휘 아래 키-리졸브, 독수리 훈련이 진행되던 도중에 벌어진 사건인데도 그랬다. 좌초가 아니라 외부 충격에 의한 절단과 침몰의 흔적이 분명하고, 스크루에 폭발 흔적이 분명했는데도 그 증거들은 모두 묵살됐다. 개혁 언론은 ‘좌초설 말고 다른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아예 금기(禁忌)처럼 머릿속에서 지워버렸고, 사회운동세력도 가슴이 ‘참새 가슴’으로 오그라붙기는 마찬가지였다.  
  개혁언론은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처지에서 정권과 사생결단하며 따질 배포가 없었고, 개혁언론이 이렇게 다른 가능성을 애시당초 배제해 버린 마당에 사회운동세력은 혼자서 의제를 제기할 용기를 발휘하지 못했다. 그때 ‘좌초설’을 앞장서 제기한 서프라이즈(노빠 사이트)의 신상철이 이번에도 인터넷 상의 토론에서 ‘세월호 선미(船尾)가 짜그러든 까닭, 무엇인가와 추돌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고집스럽게 주장한 것을 보면, 정권과의 대결을 피하려는(아니, 그들에게 영합하려는) 그의 은밀한 정치적 입장이 다시 확인된다.
  이렇게 정치적으로 비뚤어진 주체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런 대로 민중적 입장을 견지해온 사회운동 세력들의 경우도 “자기가 할 수 있는(또는 해오던) 일만 하겠다.”고 하는 실천적 타성에 빠져서 나라 안팎의 정세와 정면 대결할 용기를 발휘한 곳이 없다. 물론 ‘진상 규명’이 그렇게 만만한 일은 아니다. 이를테면 1960년대 미국이 베트남전쟁에 개입할 구실을 만들려고 ‘통킹만 사건’을 지어냈을 때, 그 허구성이 저절로 세상에 밝혀진 것이 아니다. 1960년대 미국에는 전투적 사회운동의 흐름이 솟아나고 있었고, 그 흐름 속에서 통킹만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 투사도 배출됐다. ‘진상 규명’도 투사가 있어야 한다.  
  개혁언론과 사회운동세력이 이처럼 진상을 끝까지 파헤칠 엄두를 내지 못한 결과, 천안함 때에는 정권이 만들어낸 ‘북한 어뢰설’이 정설(定說)로 관철됐다. 이번도 마찬가지로 해경과 유병언이 주범으로 처벌받는 선에서 이 사고(사태)가 적당히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 침묵과 패배의 역사가 또다시, 더 엄중하게 반복되는가?  

세월호를 잊지 않겠다

  세월호 사건이 터지자, 대구지하철 참사를 겪은 유족도, 1980년 광주학살을 겪은 유족들도 애써 누르고 살아온 심리적 외상(外傷)들이 (마치 비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허리와 무릎이 쑤셔 오는 늙은이들처럼) 다시 도져버렸다. 팽목항에 내려가 일손을 거든 자원봉사자들도 유족들의 울음소리가 꿈 속을 뒤덮어 악몽에 시달렸다. 심지어 쌍용차 노동자가족들의 치유를 도맡아온 정신과 의사 정혜신도 팽목항과 안산을 오간 뒤로 덜컥 우울증에 걸렸다. 악몽으로 팔다리를 떨고, 가만히 있다가 느닷없이 흐느낀다. 멍하니 앉았거나 맥없이 잤다.
  그러니 유족들이야 그 고통이 오죽하랴. 그들에게는 피붙이의 죽음만이 외상(外傷)이 아니다. 사고의 주범(곧 해경)에게 정부의 수습대책을 듣는 것도, 정권의 우두머리들이 ‘폭탄 돌리기’ 하는 꼴을 보는 것도, 해경과 정보기관의 감시꾼들이 그들을 늘 따라다니는 것도 또다른 외상(外傷)이다. 그들이 더 이상 악몽을 꾸지 않으려면 적어도 10년의 세월(치유 기간)을 겪어내야 한다는데 자본과 권력이 내로라 뻐기는 이 세상에서 과연 치유가 이뤄지기는 할까?    
  유가족들은 자기 피붙이의 죽음이 잊혀지는 것을 무엇보다 두려워한다. “우리 애는 이 국가(사회)로부터 버림받아 죽지 않았어. 우리 애의 죽음을 통해 우리 사회는 인간다운 사회로 거듭나겠다고 크게 반성했어. 이 세상은 우리 애의 존재를 잊지 않을 거야!”하는 실감을 얻을 때라야 그들은 가까스로 슬픔과 절망에서 벗어난다. 그런데 선장을 ‘살인자!’로, 유병언을 ‘주범’으로 처벌하고, (조선시대에 반역자가 배출된 고을을 폐지하거나 강등했듯이) 해경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는 것으로, 우리 사회가 과연 거듭날 것인가? 그러리라고 유가족들이 흔쾌히 믿을 수 있을까? 이 사회의 지배층이 유가족의 가슴을 후벼 파는 숱한 막말들을 마구 퍼부은 데 대해 그들이 ‘개과 천선’한 증거가 전혀 없는데도?
  세월호 사건이 온통 대중의 눈과 귀를 앗아가는 동안, 정권이 저지른 커다란 불법행위와 비리들이 세상에서 잊혀졌다. 국정원이라는 국가 폭력기구가 지난 대통령 선거에 불법 개입한 것도, 간첩을 조작해내는 파렴치한 짓을 저지른 것도 대중의 심판을 받지 못하고 슬며시 넘어갔다. 삼성과 현대 공장에 안전사고가 난 것도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심지어 일본의 아베 수상은 한국의 대중이 모두 세월호에 정신이 팔려 있는 때를 틈타서 ‘집단적 자위권(아니 침략권!)’을 늠름하게 선포했다. 남문(南門)에 난 불을 끄러 온 백성이 와르르 몰려가니까 그 틈을 타서 오랑캐가 북문(北門)으로 쳐들어온 꼴이다.
  이런 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세월호 사태가 한국 사회에서 토론됐다. 이 대중적 관심과 토론이 어떤 뜻깊은 결과(변화)를 낳지 못한다면, 한국의 민중들(정몽준의 피붙이는 이들이 ‘정서가 미개한’ 족속이라 비웃었는데) 속에 이런 값비싼 자기 각성의 기회를 흘려보낸 안타까움과 절망의 감정이 안개가 퍼지듯이 곳곳으로 스멀스멀 퍼져나갈 것이다. 예나제나 그렇듯이 패배의 역사가 또 반복되리라.  
  하지만 섣부른 비관은 삼가자. 우울한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월호 사태가 터지자 팽목항으로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찾아갔다. 자본주의의 비인간적 몰골에 항의하고, 이웃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받아 안는 공동체적 심성이 아직 우리 사회에 살아 있다는 이야기인데 어쩌면 ‘집단적 삶’의 새로운 모델은 “재난(을 함께 극복하는) 공동체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일본에서도 후쿠시마 원전 폭발의 재난 이후로 오랫동안 잊혀졌던 ‘데모 문화의 기풍’이 조금씩 살아났다고 하는데, 어느 나라나 사회변혁의 초보적 계기는 이런 민중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에서 마련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도 세월호 유가족들의 싸움은 (사회운동 세력의 도움을 얻어) 멈추지 않았지만, 그것 자체는 차츰 사그라드는 흐름으로 갈 공산이 짙다. 하지만 세월호 사태로 하여 전체 민중 사이에 보이지 않게 싹튼 사회적 각성은 지배세력의 폭압에 맞설 귀중한 정신적 자산으로 남을 것이다. (이 각성은 2013년말 청년들 사이에 움텄던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을 이어받았다.)  

  우리의 싸움은 <기억하는 싸움>이다. 독일의 사상가 벤야민의 널리 알려진 비유에 따르면, 인류 역사를 돌보는 천사angel는 늘 과거를 바라본다. 파편이 산더미처럼 불어나 쌓여 간다. 천사는 죽은 자들을 거기서 일으켜 세우고 싶지만 폭풍이 천국에서 거세게 불어와 그를 그가 등지고 서 있는 미래(자본주의의 유토피아) 쪽으로 자꾸 떠밀어 간다. 그는 차마 제 날개의 방향을 돌릴 수가 없다. 대다수 인간은 제 앞가림에만 눈을 가두고 있지만, 영혼 깊은 (그러나 연약하기 짝이 없는) 천사에게 이 세상은 파국(또는 비상사태)이다. “아, 저 사람들을 구해내야 할텐데...” 그는 유럽 화가 뭉크의 그림 ‘비명’처럼 충격 받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잊지 않겠다. 정신대 할머니들의 처절한 역사도, 해방 정국에서 스러져간 숱한 꽃다운 넋들도, 광주에서 제 목숨을 떨군 영령(英靈)들도. 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이 사회에 되살리는 싸움을 당차게 해내지 못했다.
  우리는 잊지 않겠다. 대구 지하철에서, 삼풍 백화점에서, 또 성수대교에서 제 생명을 접은 넋들도, 생존의 불안에 또는 입시 지옥에 허덕이는 수많은 살아 있는 목숨들도. 살아 있으되, 살아가는 것 같지 않은 숱한 외로운 넋들도. 우리는 그들을 너그러이 받아 안고, 돌보는 따뜻한 세상을 변변히 건설해내지 못했다.
  우리는 또 잊지 않겠다. 이번 사태는 특히 학생을 돌보는 교사들에게 마치 자기 일처럼 끔찍하게 다가갔다. “혹시 나라면 그런 비상사태가 났을 때, 아이들을 과연 제대로 돌볼까?”하고 자기를 단원고 교사들과 동일시하여 돌아봤기 때문이다. 이태 전에 일본 어느 마을에서 산사태가 났을 때, 유치원 교사들이 ‘가만히 앉아서 기다려라!’하고 타성적으로 대응하다가 사고를 키운 적 있다. 학생들에게 상황을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자유의지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교육인지, 우리는 새삼 두렵게 깨달았다. 또 참혹한 재난과 맞닥뜨렸을 때는 죽을 줄 알면서도 행동하는(=사태의 현장에서 도망치지 않는) 용기 없이는 참스승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세월호 사태가 교사들을 천둥벼락처럼 일깨웠다. 그러니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우리는 어떤 진실이든 끝까지 캐내겠다. 숨겨지고 은폐되는 사실을 들춰내지 않고서는 ‘지배(층)를 자랑하는 역사’의 귀 따가운 방송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 그들의 이데올로기는 드디어 무지몽매한 중세(中世) 수준으로 돌아갔다. 중앙일보 전(前) 주필 문창극이 예수쟁이 동네를 싸돌아 다니며 떠들었듯이 ‘모든 것은 하느님의 뜻’이라는 지경으로! 누항(陋巷)의 필부(匹夫)들이 어찌 감히 ‘하느님’ 앞에서 끽 소리를 할 수 있겠는가. ‘막 가자!’는 세상이다. 그러니 진실을 캐내는 그 싸움 없이는 죽은 자들을 일으켜 세울 수 없고, 그들이 구원받지 못하는 한 우리의 삶도 구원받지 못한다.
  나희덕 시인이 우리의 기억에서 자칫 사라져갈 것들을 안타까워하는 시를 썼다. ‘여, 라는 말’이라는 제목의 시를.
  
잊혀진 것들은 모두 ‘여’가 되었다
망각의 물결 속으로 잠겼다 스르르 다시 드러나는 바위, 사람들은
그것을 섬이라고도 할 수 없어 여, 라 불렀다
울여, 새여, 대천어멈여, 시린여, 검은여...
이 이름들에는 ‘여’를 오래 휘돌며 지나간, 파도의 울음 같은 게 스며 있다
물에 영영 잠겨버렸을지도 모를 기억을 햇빛에 널어 말리는 동안
사람들은 그 얼굴에 이름을 붙여주려 하지만
어느새 사라져버리는 바위, 썰물 때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그 바위를 향해서도 여, 라 불렀을 것이다
그러니 여가 드러난 것은 썰물 때가 되어서만은 아니다
며칠 전부터 물에 잠긴 여 주변을 낮게 맴돌며 날개를 퍼덕이던 새들 때문이다
그 젖은 날개에서 여, 라는 소리가 들렸다
여 (있어), 여기 (있어)...

  우리도 숱한 이름을 나직히 불러 보리라. 세월여, 천안함여, 쌍용차여, 대구지하철여, 삼풍여, 성수여, 망월동여... 옛날 옛적에 함석헌이 이런 말을 했던가? “눈에 눈물이 어리면 그 눈물렌즈를 통해 하늘나라가 보인다.”고. 우리는 그들이 이 땅에 살았던(그리고 죽어간!) 덕분에 비로소 하늘나라를 보았다. 그들은 우리 곁에 늘 한울님으로 남으리라.    

  덧대는 말 : 이 글을 쓰고난 한참 뒤, ‘어업 지도선이 뒷갑판에서 구조한 두 명의 <옐로우 맨>의 실체와 역할을 공개하라’고 정부에 요구하는, 전태일노동연구소가 작성한 글을 접했다. 그 글은 암초든 잠수함이든 무엇과 충돌해서 침몰했다기보다 무엇인가가 폭발하지 않았을까, 하는 쪽으로 추리했다. 또 정권이 무엇인가 국가적 비밀을 감추려 했다고 가정하지 않고서는 ‘구조 과정’을 설명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누군가 강력한 권력자의 명령 없이 청해진해운이나 선박직 선원이나 해경이나 하나같이 뻔뻔스럽게 승객들의 구조를 ‘나 몰라라’ 할 수 있었겠냐는 것이다. 어업지도선 ‘전남201호’가 뒷갑판쪽에서 촬영한 영상에 따르면, 당국은 뒷갑판쪽에 있던 옐로우맨들의 존재를 은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문화일보m’에서 유튜브에 올린 영상 참조http://www.youtube.com/watch?v=AHb1Vffk7io). 구조된 옐로우맨들은 허리 부분에 피를 흘릴 정도로 심하게 다쳤다고 했다. 왜 다쳤을까? 아직 세월호 침몰과 구조과정의 진상은 속 시원히 밝혀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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