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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의 육아일기]

때로는 두려움이 정치적으로 옳다


                                                                                                           김윤주 / 진보교육연구소 회원

#7. 망각의 강가를 거닐며

  "우리 **이가 지금을 기억할 수 있으면 평생 얘가 얼마나 행복할까?" 남편이 말했다. 맞다. 아기는 진정,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해쌌던 복음성가의 주인공! 똥만 싸도 칭찬받는 아기.

   글로 배운 아기 발달단계는 초고속 엘리베이터였다는 것을 내 새끼 기르면서야 알았다.  하나씩 하나씩 느리게 아기는 발달했다. 주먹만 쥐고 있던 아기가 간지나게 다섯 손가락을 펴던 순간, 으어어어 뿐이던 옹알이에 자음이 추가되던 순간, 흐물거리던 손아귀가 야무지게 내 머리카락을 잡아채 쥐뜯던 순간.... 제 몸을 자기 의지로 하나씩 사용할 수 있게 되던 매 순간마다 신체효능감에 겨운 아기는 참으로 신명나 보였다.  그 작은 성취마다 경사난 양 환호했던 부모의 모습을 이 아이가 기억할 수 있다면, 한 평생 그 마음이 얼마나 따뜻하고 두둑할까.

   인간의 성격과 정서는 생후 36개월 안에 거의 완성된다고 한다. 변화 발전이야 한평생 하는 거지만 기본 뼈대는 변하지 않는다지. 기억하지 못하는 시기의 삶이 평생을 결정한다는 이 놀라운 사실 앞에 마음이 숙연해지고는 하는데, 지금의 나는 오로지 이런 격려와 돌봄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사실에 겸허해지면서, 세상 모든 부모들이 어찌 그토록 자식의 신비에 빠져드는지 알겠기 때문이다.
   전혀 기억할 수 없기에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아기와 함께 열었다. 핏덩이에 불과하던 아기가 손발을 움직이고 자립능력을 획득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참으로 경이로웠다. 애 둘 키운 어느 후배 말이 "첫 아이는 우주, 둘째는 강아지" 라는데, 아아 나는 지금 ‘across the universe~’. 걸음마 한 발짝에 한 세계가 진보한다.
  사람이 영아기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신의 축복일지도 모른다. 그 덕에 자신의 주체적 형성을 굳게 믿고서 부모세계를 극복해내고,  제 자식을 낳고는 와따야 새로워라, 그 맛에 온갖 개고생도 마다않고 자식을 키워낸다.  이 내리사랑의 선순환은 인류의 축복이다.
  
   뭐....아무리 미화해 봐도 빨리 이 고단한 영아기가 지나고 말귀 좀 알아듣는 유아기가 도래했으면 하는 게 솔직한 심정. 충분히 즐겼어. 이제 이 고단한 신비보다는 익숙한 구태를 염원하나니, 오소서 세월이여 2배속으로!


#8. "내가..... 일베충을 키웠어..." 는 면해야지.

  "얘는 이렇게 애지중지 해주는 부모 밑에서 풍족하고 민주적으로 자라갖고, 우리랑 완전히 다른 종류의 인간으로 클텐데, 과연 우리를 이해할 수 있으까?" 아기를 함께 목욕시키며 내가 신랑에게 했던 말이다.
  
   젊어서 시아버지는 무소불위의 가부장이자 근검절약의 화신이셨다. 과학적 호기심이 많았던 남편은 시계처럼  메카닉한 집안 물건들을 분해하여 못쓰게 만들어놓곤 했는데 그 때마다 뒤지게 맞았단다. 요즘 부모 같으면 과학영재가 아닐까 반기고 고무했을 일이다. 꼬장꼬장 잔소리도 엄청 많으셨다는데, 치아건강이 안 좋은 신랑에게 이 닦으란 잔소린 안들었냐 물으니 "응, 치약이 아까워서인 듯" 이러고있다ㅋㅋㅋ.
  
  신랑과 나의 유소년기는 근검절약과 입신양명, 충효와 반공의 세계를 관통했고, 그 속에서 창궐한 차별과 부정부패 등에 문제의식을 느끼며 자랐다.  
  "이 빨갱이 새끼들!".
  이 한마디면 모든 문제의식을 진압 당했던 우리세대에게 있어 '빨갱이'의 사전적 의미는 사라진 지 오래였으며, 부패한 자들이 정당한 요구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사용하는 전가의 보도로서 희화화된 지 오래다.
  근데! 일베 아이들이 '민주화'를 그런 맥락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먹었다. 나는 민주화 직후 세대로서, 민주화란 거룩한 헌신의 성역이었다. 고통을 마다않고 차별과 착취가 있는 곳으로 기꺼이 자신을 던진 한 세대의 집단적 청춘스토리는 감동과 경외의 대상이었고, 입신양명을 여전히 강요당하고 있는 우리를 구원하기에 아직 유효한 가치였다. 반면에, 먹고 살만해진 지금껏 빨갱이 타령을 하는 이들 속에 도사린 탐욕과 편견은 경멸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아뿔싸...얘네한텐 그 반대야?!
  나의 일베탐방기에 의하면, 그들에게 '민주화'란 말하자면 이런 것이었다. 고릿적에나 통했던 “씹선비 훈장질"로 개개인을 묵살, 억압하고 정글사회의 현실을 부정하는 멍청한 정신승리. 하아....    민주화는 체감할 수 없는 먼 과거의 허세로서 멸시되고, 독재개발은 체감하는 현재의 신빈곤으로부터 자신들을 구원할 <오래된 미래>로서 채택되고 있었다. 지하의 박정희가 386을 보고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어~ㅠㅠ"라고 통곡했다 치면, 지하의 김대중 노무현이 "내가 일베충을 키웠어~ㅠㅠ"라 땅을 칠 것이다. 부디 내 아이는 호랑이가 되거라. 일베충과는 불화하지 않을 도리가 없으므로.  
  
  일단 남편과 나는, 아기가 우리와 다른 시대를 사는 백지상태 새인간임을 명심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기로 했다. 유머 하나에도 (동시대가 공유하는)억압에 대한 전복의 코드가 있는 법인데, 이 코드를 공유하지 못한 다른 시대의 새인간은 그것을 눈치챌 수 없고, 외려 전복된 것을 도그마로 받아들여 또 다른 억압이 되는 법이다. 이러한 도치는 셀 수 없이 많다. 내 시대의 '쉽게 말하기' 와 희화화는 현학과 근엄의 억압으로부터의 전복이었으나, 현대에 소외되는 것은 오히려 진지함이며, 아이들은 웃기고 재밌어야한다는 강박으로부터 억압당한다. 내 세대의 여성주의는 가부장사회로부터의 전복이었으나 그 맥락을 충분히 다음 세대와 공유하지 못하면, 일베처럼 여성혐오를 억압당한 수컷성에 대한 전복적 정서인 양 채택해버린다. 윤리적 정답의 강요로부터 자기욕망을 긍정하려 했던 시도도, 정신에 억압되어온 몸에 천착하던 시선도 한 시대가 지나간 지금에 와서는, 빗나간 과녁을 돌아 거꾸로 쏜 화살이 되어있다. 개개인은 뻔뻔할 정도로 욕망에 충실하며, 윤리적 정답에 가닿기 위해 자신을 담금질하는 이가 없고, 몸이 정신을 가두는 시대가 왔다.
  스스로 반동적인 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본인이 당대에 타파하고 싶었던 것에 대한 반대급부를 서둘러 아이에게 주입시키는 부모 역시 일베충을 낳는다는 경계심이 퍼뜩 든다. 가장 경계할 것은 스스로 이율배반적인 부모! 486세대의 위선이 일베충을 낳았다 말할 생각은 없다. 전후의 산업화 세대에게 근대적 지성이 없음을 비난하거나, 민주화세대가 일상정치에서 자신의 사상을 배반했음을 비난하는 것은 "왜 완전체가 아니냐고요!" 라고 응석부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당대의 민중으로서 사력을 바쳐 시대소명을 수행했고, 적어도 당대의 고통(빈곤과 독재)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자, 이제 우리는 아래위로 포진한 일베류, 박근혜류 반동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하자규! 내 당대의 고통은 이거니까. imf이래로 우리 정말 힘들었어ㅠ. (나를 정립한 모든 가치들은 imf와 함께 전도되었다)
  이 길에서 유리한 점 하나는 우리는 이전 세대들처럼 자식 앞에 비장하게 자아도취할 만한 꺼리가 없다는 것. 아이를 억압할만한 가치권력이 없다! 그러니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함께 바른 길을 가면된다. 개인의 욕망과 공공의 열망을 조화시키고 일치시켜나가는 삶. 쉬운 건 아니지만 이전 세대의 것에 비하면 웰빙과제지. 우린 좋은 몫을 택했다.


#9. 무덤가에서 아기를 안고 운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고 했다.      
  분노와 기도가 뒤엉킨 심정을 누르고 "아이고 우리 아기 잘하네."를 연발하는, 삐에로같은 아기엄마의 하루하루. 그렇게 대엿새가 지나던 어느 밤, 대성통곡이 입 밖으로 흘러나오더니 멈춰지지가 않았다. 품에 안긴 아기가 놀라 자지러지게 우는데도 내 입의 오열이 아기의 울음소리를 삼킨다. 이 죽음들을 가만 지켜보는 것, 아니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토록 켜켜이 한을 쌓았던가.
  근래 몇 년간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만큼 수많은 노동자의 죽음을 목도해왔다. 임신기간 에만도 몇이었던가. 그때마다 나는 분노와 슬픔의 한켠에 앉은 채로, 꾸준히 사랑을 하고 저축을 하고 농담을 하고 기도를 했다. 그리하여 죽어간 이들을 빠르게 망각하고, 죽음이 남긴 마음의 그늘에 서둘러 볕을 쬐어주었다. 그렇게 기어코 영혼을 양지바른 곳에 세워야만 다시 이 보잘것없는 분노와 연대라도 지속할 에너지가 생겼다.

  하지만 이 판국에 그게 다 뭐람. 대체 이게 사는 건가 말이다. 생떼 같은 목숨들이, 몇 백 명씩, 전 국민의 눈앞에서, 살 수 있는데도 죽어가는 것을 봐야하는 이런 나라.... 내 영혼이 양지바르면 그게 뭐? 뭐할건데, 뭐했는데? 와르르르르... 마음이 무너졌다.

  우리는 이제 더는 어거지로 행복할 수 없게 되었다. 죄없는 이들의 죽음은 힘이 세다. 이 속에서 온전히 행복한 것은 죄악이다. 의도적 무지는 역겹고 정신승리도 한심한 짓이다. 직전세대에게 광주가 이러했을까.  이제 우리는 제 행복의 알리바이를 위해서라도 뭐라도 해야하는 입장이 되었다. 살기 위해 죽음을 망각하는 것이 한계에 다다른 느낌..나처럼 아직 죽지 않았고, 본능적으로 행복을 향하는 산 목숨들 이 죽음들에 유폐되지 않고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끝없이 이 죽음들을 복기해야할 시점이 도래했다.


#10. 인생은 복불복. 때로는 두려움이 정치적으로 옳다.

  포레스트검프의 엄마는 남들과 다른 아들에게 "인생은 초콜릿을 뽑는 것과 같다"고 말해주었다. 스무 살에 이 영화를 보았는데, 이 대사는 깊이 내 마음에 남았다. (검프는 장애인이라는 초컬릿과 지혜로운 엄마에게 양육되는 초컬릿을 뽑아들고 세상에 태어났다. )

   나는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게 복불복이다. 내 의지나 노력과 무관한,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사이코패스에게 잔인하게 희생될 수 있는 우연의 세계. 인과관계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 이 공포의 세계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영토 못지않게 우리 생을 수놓는 거대한 영토이다.  나는 포레스트검프가 될 수도 있었고, 검프의 엄마가 될 수도 있었다. 세월호 탑승객일 수도 있었고, 퀴어축제의 당사자가 될 수도 있었다.
   임신기간 내내 나는 어떤 공포에 몸부림을 쳤고, 출산 직후도 그러했는데, 임신과 출산이야말로 무시무시한 쵸컬릿 뽑기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아기가 어딘가 장애를 가진 채 태어나진 않을까, 자라면서 무서운 사고를 당하지 않을까 밑도 끝도 없는 불안으로 파랗게 질리곤 했다.
  나는 이 복불복의 공포를 최소화하는 세계에 살고 싶기 때문에 운동을 한다. 아이가 설령 어떤 일반적 범주에 속하지 않는 초컬릿을 뽑더라도 능멸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간절히 바란다. 이런 마음은 내가 아이엄마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두 누구라도 될 수 있었던 존재로 이 세상에 왔고, 단지 그 초컬릿을 뽑았다는 이유만으로 수난을 당하는 이를 본다는 것은, 어느 날 밤 사랑스런 아기를 품에 안고 대성통곡을 하게 만드는 참담함을 우리에게 준다.

   오래 전, 어느 교장이 장애인의 날 훈화를 '차조심 등으로 장애를 입지 않도록' 당부하며 끝맺길래 분통을 터뜨린 기억이 있다. 어린이들에게 장애에 대한 공포나 야기하고, ‘장애는 다 자기책임’이라는 생각이나 심어주는 게 장애인의 날이라니! 그들에게 역지사지나 공감능력까지 운운할 건 없겠고, 다만 심어주고 싶은 건 최소한의 두려움이다. 그게 바로 너일 수도, 네 가족이 될 수도 있다고! 도대체 뭘 믿고 그렇게 경거망동이냐고!  
  또 간절히 바라는 것은 비록 복불복의 지뢰가 곳곳에서 터지는 생이라 해도, 제대로 된 인과관계가 작동하는 세상! 그런 세상이라면 지뢰를 밟았다손 쳐도 위안을 얻고, 초컬릿 뽑기의 용기도 낼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이 좋아지는 데에 투자하는 것, 그것이 우연히 불가피한 생에 대한 보험장치다. 모두 운동권하세여, 보험드세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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