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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갑판으로(All Hands on Deck)!” - 어린이에게 ‘반란’ 가르치기 : 세월호 참사에 부쳐


비고츠키 연구회


레어티즈 : 아아, 그렇다면 누이는 익사했나요?
거트루드 : 익사했어. 익사했어!
레어티즈 : 가련한 오필리아, 넌 물이 너무 많아. 그러니 내 눈물은 삼가겠다.
(햄릿 4막 7장)

  우리는 오필리아의 오빠 레어티즈가 제 누이가 익사했음을 알고난 뒤에 취하는 관점에서 시작하고자 한다. 레어티즈에 의하면 누군가가 익사했을 때 그를 위해 눈물을 보태거나 심지어 진심 어린 추도와 생환에 대한 궁극적 믿음을 나타내는 상징인 노란 리본도 달 필요가 없다. 바다에서 사망한 이들에 대한 가장 알맞은 추모는 다시는 이러한 재난이 일어나지 않도록 모두 힘을 모으는 것?모든 승객과 선원들이 대비 태세를 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러한 주장은 비극을 ‘정치적으로 쟁점화’하는 것으로 치부할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비극적 결과에 대해 감상(感傷)에만 젖다가 또다시 비극을 되풀이하기 보다는 비극을 정치적으로 쟁점화하여 제 2의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두 가지 과업에 관해 말하겠다. 그 어느 것도 애도는 아니다.
  첫 번째 과업은 정치성을 배제하고 감상적으로 그 재난을 다루려는 시도에 의해 복잡해졌지만 상당히 단순하다. 참사 초기의 며칠 동안 정부가 발표한 몇 안 되는 진실의 하나는 그 죽음들이 살인의 결과였다는 것이다. 사람이 살해됐을 때 진정한 추모는 정의가 실현되기 전에는 불가능하고, 정의의 실현은 직간접적인 살인자들을 찾아내어 처벌하기 전까지는 불가능하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그가 고백한 바와 같이, 이 참사에 대해 ‘모든 책임’이 있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새 총리 후보자에 관한 최근 논의는 앞으로 일어날 참사를 예방하기 위해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에 맞춰지지 않았다.  그 대신에 논의의 초점은 한 후보자의 전관예우와 다른 후보자의 친일 역사관에 집중됐고 결국은 전 총리가 유임되었다. 이는 정부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고 한 것이 허튼 사탕발림의 약속에 불과하고, 그로부터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했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이 글의 첫 번째 과업은 대통령에게 정확히 어떤 책임이 있는지를 기억하도록 돕는 것이다. 규제 철폐의 문화가 어떻게 그 사고를 불가피하게 만들었는지, 고용의 비정규직화가 희생자들에게 정확한 탈출 안내가 전달되는 것을 어떻게 불가능하게 만들었는지, 무엇보다도 지적 해결이나 자유 의지가 아니라 조건적 복종에 기초한 교육 시스템이 어떻게?선실에서 나와 갑판으로 올라갔다면 그들 하나하나의 생명을 살렸을 구명 조끼를 입은 채?학생들이 선실에 남아 죽게 만들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의 두 번째 과업은 첫 번째 과업처럼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그것은 처벌, 정의, 책임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교육을 통해 또 다른 아이들에게 이러한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죽은 자들을 추모하는 유일하게 옳은 길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우리는 한참 어린 아이들조차 비상시에 언어적 지시에 따르는 법을 배우고, 그보다 더 나이든 아이들이 언어적 지시 없이도 스스로에게 지시하도록 만들며, 세월호 희생자와 동년배의 학생들이 그들을 죽음으로 이끌 지시에 대해?개인이나 작은 무리가 아닌 하나의 전체로서 집단적으로? 능동적으로 반란을 일으키고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 이론의 개요를 그리고자 한다.
  이 두 번째 과업은, 마치 선상(船上) 반란처럼 한 편의 글로 나타내기에는 너무 야심차고 복잡하다. 따라서 우리는 비고츠키의 위대한 책 “어린이 자기행동숙달의 역사와 발달II”의 한국어 번역본의 도움을 받아 이 두 번째 과업을 수행하고자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자유 의지의 발달이 어떤 개인적이고 영웅적인 성취도 아니고 오로지 비고츠키와 같은 천재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이것은 교육의 다양한 전통의 일부이다. 이 전통이 무시되거나 심지어 억압된 것은 사실이다. 교육은 일종의 운 좋게 타고난 능력 혹은 운 좋게 주어진 좋은 환경으로 개념화되어 왔다. 그러나 보편적 기능으로서 자유의지 발달의 전통은 비고츠키의 새로운 한국어 번역본에 여전히 살아 있다.

                                 1부 규제 철폐, 비정규직화, 군국주의 교육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세 부분 곧, ‘규제 철폐를 통한 배의 직접적, 물리적 조건 악화’, ‘노동자의 비정규직화로 인한 승무원의 지위 저하’, ‘군국주의 교육으로 인한 학생들의 자율성과 자유 의지 약화’로 나누어 살펴 보자.
  첫째, 배의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조건을 살펴 보자. 일본에서 1994년 건조된 세월호는 2012년 10월 한국에 다시 팔렸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명박 정권에서 선령 제한을 20년에서 30년으로 완화했기 때문이다. 세월호는 2012년 12월부터 약?4개월에 걸쳐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한다. 여객수송 수입증대를 위해 4층과?5층의?선미 갑판 부분을 객실로 수직 증축했고, 이로 인해 정원은 늘어났지만 세월호의 복원력은 크게 약화됐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세월호의 수직 증축이 합법적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은 한 술 더 떠 ‘규제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둘째, 잘 훈련되고 헌신적인 승무원들이 있었다면, 배가 가라앉더라도 승객들은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IMF 이후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한국 경제 절반을 떠받치는 이들의 삶은 매우 열악하다.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인건비가 적게 드는데다, 기업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정리’가 가능한 고용형태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 ‘노동력의 유연성’을 확보했지만, 노동자들은 ‘삶의 안정성’을 잃어버렸다. 가라앉고 있는 배에서 승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남긴 채, 자기들만 탈출한 세월호 선박직 선원 15명 중 무려 9명이 비정규직인 계약직 선원이었다. 우리 사회가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그들을 최저 생활 환경으로 몰수록 도덕과 책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셋째, 교육에 의해 학생의 자유 의지가 약화되지 않고 오히려 강화되었더라면, 배나 승무원들의 문제만으로 학생들이 죽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1949년 대한민국 국방부와 문교부는 중학생부터 대학생까지 학도 층의 사상 통일과 유사시 향토방위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학도 호국단’을 조직하였다. 학도 호국단은 1960년 폐지되었다가 박정희 정권 때 부활되었고,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따라 1980년대 중반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1969년에는 ‘교련’이 고등학교 필수과목으로 지정되었다. 학교에서 군사훈련(제식훈련, 총검술 등)을 실시한다는 발상 자체가 전체주의적이며 군국주의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군국주의적 잔재는 학생을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대상으로 바라보며, 학생인권조례 등을 강력히 반대하는 행동주의 지지자들에게서 여전히 발견된다.
  이러한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겹치면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세월호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주는 커다란 경고이다.
  2부에서 우리는 이러한 세 가지 문제가 문화적 행동의 상이한 세 가지 단계(환경에 대한 본능적 적응, 언어적 지시에 대한 조건적 반응, 고등심리과정)에 어떻게 대응되는지 논의한다.

        2부 본능, 조건화된 습관, 새로운 문제에 대한 지적 해결, 그리고 자유 의지

  이제 이 글의 두 번째 목표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다음 명령을 잠자코 기다리라는 지시를 거부하고, 고등학생들로 하여금 서로서로에게 ‘전원 갑판으로!’라고 외침으로써 모두를 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교육 이론은 어떤 것인지 그 윤곽을 그려보자. 초반부에 이야기했듯이 이 두 번째 목표는 지나치게 야심차고 거의 불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1931년 L. S. 비고츠키는 이 목표를 이미 이루었으며, 오늘 우리는 비고츠키의 생각을 잘 알려주는 그의 저서, “어린이 자기행동숙달의 역사와 발달”을 소개하고자 한다(이 책의 일부는 2013년 1월에 출판되었다. 비고츠키, L. S. (2013). 어린이 자기행동숙달의 역사와 발달 I. 서울: 살림터). 비고츠키는 이 책의 뒷부분을 먼저 썼다. 적어도 그의 생각 순서는 그랬을 것이다. 왜냐하면 2권에는 실제 연구들이 실려 있고, 1권에는 그 연구들의 일반화와 추상화에 해당하는 이론적 내용들이 실려있기 때문이다. 1권의 핵심 생각 중의 하나는 ‘자유로운 결정’을 내리기 위해 ‘보조 수단’을 사용한다는 것이다(진보교육연구소 회보 47호 “어린이는 타인에게 규제됨으로써 자기행동의 통제력을 가지게 되는가?” 참조). 2권에서 비고츠키는 이 생각이 부분적으로는 오스트리아의 혁명적인 정치학자이자 철학자인 오토 노이라트로부터 연유한다고 말한다(2014: 12-23참조).

(오토 노이라트, 1882-1945)

  노이라트는 러시아 혁명 이후에 뮌헨의 소비에트 임시 정부에서 여러 개의 요직을 맡았다는 이유로 감옥에 보내졌다. 감옥에서 석방되자, 그는 비엔나로 돌아와서 그곳에서 좌익 사회민주주의 정부에 합류했다. 그러나 아마도 노이라트는 정치인이라기 보다는 언어 철학자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는 비엔나의 박물관 관람을 위한 단순한 안내 아이콘을 창조하는데 자신의 시간을 보냈던 것으로 보이며, 그의 세 번째 아내인 마리는 그것을 ‘아이소타입 Isotype’(International System Of Typographical Picture Education)이라고 불렀다. 아이소타입은 문맹자를 위해 사용될 수 있었고 후에 그의 딸은 이 시스템을 이용하여 아동 도서를 저술했다. 아래에서 볼 수 있듯이, ‘아이소타입’은 오늘날에도 언어 없이 안전 지침을 표시할 필요가 있는 곳, 예를 들어 도로 표지나 선상에서 여전히 쓰인다.


오토 노이라트와 마리 노이라트에 의해 디자인된 책과 아이소타입 그림 문자

  히틀러가 집권하자, 노이라트 부부는 조각배를 타고 영국으로 망명했다. 이 여정 동안 작은 배의 한 쪽은 계속 가라앉고 있었고, 항해를 하면서 물이 새는 부분을 수리해야 했다. 노이라트는 이 어려운 여정이 어린이의 언어 학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어린이도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낱말의 의미를 사용하는 것과 동시에 그 의미를 좀 더 고등하고 간접적인 언어 형태로 끊임없이 교체하면서 침몰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소타입’은 낱말의 의미를 대체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아니며, 낱말 의미가 교체되는 동안 어린이가 길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다.
  흘수선 아래로 물이 들어오면, 배는 한 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질 것이다. 그러나 만일 물이 일종의 방수 격실에 의해 작은 지역에 갇혀 있으면 그 배는 침몰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물이 가두어지지 않고 배의 화물실을 통해 자유롭게 움직이면, 그 배는 가라 앉지만 그래도 물이 선체의 양 쪽으로 평행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그 배는 매우 천천히 똑바로 가라 앉을 것이므로, 승객들이 갑판으로 탈출하여 대피할 시간이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배가 뒤집히는 경우에는 배의 측면을 통해 물이 들어 오기 때문에 배가 다시 균형을 잡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더욱이 배의 온갖 파편이 머리 위로 떨어질 수 있어서 배가 가라앉는 측면으로 대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최상의 행동 경로는 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배의 측면으로 가서 구조를 기다리거나, 배 측면의 기울어진 면을 따라 미끄러져 내려가 바다 속으로 뛰어들어 배로부터 멀리 헤엄쳐 나가는 것이다. 최악의 행동 경로는 선실에 그대로 머무르는 것이다. 이러한 부정["...하지 마시오"]과 조건을 포함하는 복잡한 지침들이 낱말을 사용하지 않고 전달될 수 있을까?
  전달될 수 없다. ‘부정’이나 ‘조건’은 둘 다 그림으로 전달될 수 없는 것들이다(예를 들어 노이라트의 책에서 빨간색 삼각형이 경고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그 교통신호는 오히려 사고를 유발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X’ 또는 사선이 그어진 빨간색 삼각형으로 부정(否定)을 표현하려고 한다면, 이것은 일종의 글말을 확립하는 것이다(‘X’는 ‘금지’를 의미하는데 그것은 X가 금지 대상을 가리고 있기 때문인 듯 하며, 빨간색이 ‘금지’나 ‘위험’을 뜻하게 된 것은 아마도 빨간색이 피와 관련이 있고, 따라서 형벌과 관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을 가지고 ‘조건’을 표현하려고 하면, 그림이 단지 현재 상태를 보여줄 수 밖에 없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 그림이 표현하려는 뜻인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것을 전달하려면 반드시 어떤 말 기호(생각 주머니나 말 풍선 따위)가 사용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부정과 복잡한 가설(예를 들면 ‘만일 옆에서부터 물에 잠길 경우 그 배는 똑바로 설 수 없으므로, 지시가 있든 없든 반드시 그 배를 탈출해야 한다)을 포함하려면 언어적 지시가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언어적 지시는 언어적이기 때문에 단순 자극이 아니다. “전원 갑판 위로”라는 언어적 지시는 고함이나 세월호의 전복 직전에 들린 굉음과 같은 토대 위에 성립될 수 있지만, 그것은 반드시 ‘해석 가능함’이라는 중요한 특징을 포함한다. 결국, 무엇보다도 이 특성이 부정과 조건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한 이 ‘해석 가능함’이라는 특성이 바로 청소년들로 하여금 지시를 무시할 수 있도록 해주고, 더 나아가 그 지시를 거부할 수 있게 해주며, 결국에는 생각하는 청소년들로 하여금 스스로 지시를 내리게 하는 것이다.  

                               3부 어린이 자기행동숙달의 역사와 발달II

  “어린이 자기행동숙달의 역사와 발달” 제2권 6장에서, 비고츠키는 우리가 동물들과 공유하는 본능적인 ‘음성 자극’이 어떻게 뚜렷한 인간적 특성을 획득하는지 설명한다. 이는 낱말은 의미라고 불리는 어떤 정신적 내용을 담는 용기가 아니라 타인에게 자신이 의도하는 의미를 구성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지시의 집합체 즉, 기호라는 이해를 수반한다. 한편으로 그는 스턴과 같은 심리학자들이나 촘스키 같은 언어학자들이 주장한 것과는 반대로, 낱말들이 이러한 특성을 단번에 획득하지 못함을 보여준다. 그와는 반대로 수 년 동안 어린이의 언어는 다소 아이소타입의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그것은 어린이의 환경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나타내거나, 그곳에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것들을 구성하는 방식이 아니라, 어린이의 환경에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지칭하는 방식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인간 고유의 특성인 낱말 의미가 행동주의자들의 신념과는 반대로, 단순한 자극 기능에서부터 점점 성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보여준다. 물론 부모는 어린이가 자연스런 수단인 울기와 소리 지르기 등을 완전히 버리고 어휘와 문법이라는 훨씬 더 효과적인 수단으로 옮겨가는 것이 점진적이지 않다는 것을 그들의 눈과 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비고츠키는 이 혁명이 인간 문화에서의 혁명들과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낱말의 역사에서 이러한 변형들의 흔적을 찾는다. 예컨대 ‘땅’ 처럼 말 그대로 흙을 의미하는 표현의 완전하게 실제적인 기원, ‘견고한 토대’와 같은 것을 의미하는 회화적이고 비유적인 확장, 그리고 최종적으로 ‘사실적 근거’를 의미하는 자유롭고 은유적인 사용에서 이러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이처럼 해석 가능성, 부정 가능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낱말 사용을 숙달하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어린이의 능력은 수많은 혁명적 변형들의 결과다.  

  비고츠키가 ‘글말의 선(先)역사’를 추적하는 7장에서 우리는 이러한 혁명적 변형의 도해적 기록을 얻는다. 이 장은 ‘마인드 인 소사이어티(사회 속의 정신)’라는 책에서 ‘문자언어 이전(以前)의 과정’이라는 제목으로 오역되어 부분적으로 소개된 바 있다. 물론, 여기서 비고츠키가 생각하는 것은 발달 과정에서 출현하기로 운명 지워진 어떤 종류의 미리 형성된 형태가 아니라, 비-선형적이고 격동적이며 갑작스런 변화로 가득한 진정한 선(先)역사이다. 글말 교수에 있어서, 비고츠키는 쓰기 자체가 아니라 쓰기의 토대를 창조하는 활동들 곧 어린이들에게서 뿐만 아니라 동굴 벽화, 이야기 그리기, 이야기를 위한 인공물의 창조와 조작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것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 다시 말해서, 글말의 기원은 일종의 아이소타입, 즉 어린이가 입말에서 형성한 자신의 고유한 인간적 의미를 담아내는 지각 가능한 대상들이며, 그림 그리기이다.
  비고츠키는 마리아 몬테소리의 이른바 ‘아동 중심적’ 쓰기 교수 기법이 포함된 쓰기 지도의 대다수가 조건화된 반응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지적했다. 조건화된 반응은 오직 과도기적인 역할만을 해낸다는 것이 밝혀졌다. 글말은 입말처럼 몸짓에 본능적인 토대를 갖고 있지만 그 자체가 몸짓은 아니다. 글말은 입말처럼 어린이의 긴급한 생활 문제에 대한 지적인 해결책으로 가르쳐야 하며(여기서 세월호로부터 학생들에 의해 문자 메시지로 전송된 첫 번째 조난 신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궁극적으로는 자유롭고, 의지적인 문학적 창조의 무한한 원천으로 가르쳐야 한다.

  우리는 말에 대한 장 모두(6,7장)에서 어린이들이 자신만의 고유한 말하기 쓰기 방법을 발견한다는 ‘자연주의적’, 생득주의적 관점(프뢰벨)과 어린이들이 자신이 고안한 방법을 버리고 완전한 문화적 형태를 채택해야 한다는 ‘환경주의적’, 사회적-행동주의적 관점(몬테소리) 사이에 내재적 갈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주의적 관점에 따르면 언어는 어린이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 소리와 낱말은 어린이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자연주의적 관점은 낱말 의미가 어린이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진다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비고츠키는 다르다. 비고츠키에 의하면 어린이의 낱말 의미는 처음에는 어린이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그 때문에 어린이가 성인의 낱말을 배운 뒤에도 오랫동안 전前개념적 느낌과 의사疑似개념적 생각이 지속된다.
  환경주의적 관점에 따르면 언어는 어린이에게 환경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다. 곧, 소리와 낱말은 어린이의 사회적, 문화적 환경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환경주의적 관점은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는 어린이의 능력도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비고츠키는 다르다. 비고츠키에 의하면 어린이의 창조, 상상, 도덕적 판단 그리고 심지어 응급상황에서 자신의 행동을 조직하고 조절하는 능력까지도 사회적 환경 속에서 타인의 명령어를 어린이가 파악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비고츠키가 두 관점을 절충하는 것이 아니라, 두 관점을 동시에 넘어선다고 말해야 한다. 그것은 비고츠키 방법론(변증법적 지양)의 전형적 특성이며, 비고츠키가 사용하는 분석 단위 속에 사실상 내재되어 있다. 비고츠키는 자연주의나 환경주의에 의해 주어진 요소들보다 더 큰 단위(낱말 의미)를 사용한다.

  산술에 대한 장인 8장에서 이 명백한 모순이 매우 분명하게 드러난다. 8장에서 비고츠키는 어린이들이 블록(작은 모형 만들기)이나 연필(연필을 더해 긴 막대 만들기)을 세는 자신 만의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산술을 배우기 위해 이것들을 포기한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어린이가 고안한 산술 체계가 학교 산술을 배우는 토대가 되는지 아닌지를 묻는다. 8장은 매우 짧고, 비고츠키는 이 질문에 아직 답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자연적 본능을 탈출을 위한 복잡한 절차로 발달시킬 시간도 없고 성인에 의해 주입된 조건 반사에 의존할 능력도 없이 가라앉고 있는 배 안에 있던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비고츠키의 대답이 무엇일지 추측해 볼 수는 있다.
  본능이 조건적 습관을 대신할 수 없는 것처럼, 조건적 습관은 지적 해결과 균형 잡힌 지식에 근거한 자유로운 선택 활동을 대신할 수 없다. 어린이는 자신의 의지로 문화적 실천(수영해서 탈출하기, 구명정 띄우기 등)을 파악하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그것을 사용해야 한다. 우리가 아는 바로는 어린이들이 이런 행위를 하는 방식은 매우 능동적이다. 이야기를 그리는 것을 포기하고 쓰는 것을 시작하듯이, 어린이는 ‘유치한’ 산술 형태를 포기하고 능동적으로 성인의 수학을 숙달하는 것이다. 이것이 비고츠키가 13장에서 제공하는 명확하고 최종적인 대답이다(어린이의 상상과 창조 참고).

  말, 읽기, 산술에 관한 장들은 본질적으로 세 가지 문화적 행동의 역사이며, 우리가 보았듯이 많은 측면에서 비슷하다. 옹알이, 끄적임, 수 모형 만들기 같은 본능적, 자연적 행동 형태는 조건화와 습관을 위한 토대를 제공한다. 무조건적 행동으로부터 조건적 행동으로의 이행은 언제나 통제권 전달의 형태로 일어난다. 곧 자연의 힘으로부터 인간의 힘으로, 어린이의 개별적 생물학적 자질에서 공유된 사회적 자질로 통제권이 이행하는 형태로 일어나는 것이다. 이 습관적, 조건적 행동 형태는 지성과 자유 의지를 위한 토대를 제공할 수 있다. 기묘하게도 우리는 완전히 언어화된 이러한 고등기능에서, 사회적 환경으로부터 개별적 어린이의 손으로 통제권이 되돌아가는 것을 보게 된다. 곧 어린이의 말, 쓰기, 숫자 세기는 어린이 자신의 것이다.
  그러나 각각의 경우에서 이 통제권의 전달이 일어날 때, 우리는 어린이에게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된다. 즉 말은 이해가 가능할 뿐 아니라 지적(知的)이 되며, 사회적 말뿐 아니라 내적 말이 된다. 쓰기는 의사 소통뿐 아니라 성찰을 위한 수단이 되며, 편지 쓰기뿐 아니라 메모 수단이 되기도 한다. 심지어 산술조차도 이제는 손 대신에 머리 속에서 해낼 수 있게 된다. 완전히 숙달된 심리적 기능과 같은 이러한 문화적 실천의 내면화는 실제로 어린이를 자신의 사회적 환경에 맞서게 만들 수 있으며, 그것은 분명히 무비판적인 문화의 주입과 같은 모든 교육 관념과 비고츠키를 대립시킨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생명을 구하는 반란의 토대, 즉 언어적 지시가 없이는 물론이고 언어적 지시가 있을 때라도 그것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행동을 숙달(통제)하는 어린이의 능력이다.

  이어지는 세 개의 장(章)은 사회-문화적 실천이 아니라, 그것들의 개인적, 심리적 상관물인 주의, 기억, 생각에 초점을 맞춘다. 비고츠키는 말, 쓰기, 산술이 외적 발달 노선인 것처럼 이것들은 내적 발달 노선임을 지적한다. 그러나 비고츠키는 문화적 실천과 심리적 기능들의 본질적 통합을 보여주기 위해 두 가지 방식, 곧 역사와 실험을 사용한다.
  9장의 역사적 부분에서 비고츠키는 리보의 관점을 비판적으로 논의한다. 리보는 인간이 수렵과 채집(사냥감을 추적하거나 야생 과일을 찾는 데는 자연주의적, 반응적 주의만으로도 충분하다)으로부터 농업과 축산업(일은 반복적이고 지루했으며 인위적으로 지속된 주의가 필요했다)으로 이행하면서 자발적 주의가 생겨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관점은 실제로 어린이들이 조건적 습관, 곧 지시, 복종, 인간에 의해 질서가 잡힌 환경에 직접 순응하는 주의의 사용보다 더 나아가도록 하지 못한다. 흥미롭게도 비고츠키는 르보 달론느와 같은 관념론적 심리학자의 연구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 르보 달론느에게 있어 자연적 주의를 자발적 주의로 변화시키는 핵심 매개는 단순한 정신 스키마이다. 예를 들어 어린이들은 구명 조끼가 ‘배를 포기함’을 의미하고, 특정한 각도의 기울어짐이 배가 가라앉고 있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고츠키에 의하면 르보 달론느는 어떻게 이러한 정신 스키마가 생겨나는지, 또는 그것이 형성되지 않았을 때 교사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앞에서 우리는 몸짓이나 그림 심지어 아이소타입과 같은 체계를 포함하는 지각에 토대한 더 자연적인 저차적[차원 낮은] 기능들이 부정이나 조건성을 잘 전달하지 못하며, 이를 잘 전달하려면 대개 언어적 형태의 ‘힌트’가 요구됨을 지적했다.
  9장의 실험적 부분에서 비고츠키는 자발적 주의의 경우에 그런 힌트가 어떻게 생겨나는지 보여준다. 비고츠키가 인용한 실험들은 원래 쾰러와 형태주의자들에 의해 고안되었으며, 이 실험들은 심지어 닭조차도 곡식의 자극이나 어두운 회색 종이 위에 있는 곡식의 주어진 ‘형태(Gestalt)’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더 밝고 더 어두운 회색 종이를 구분함으로써 사실상 그들 자신의 형태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자극의 크기를 줄이면, 그 자극과 결과의 관계는 매우 간접적이 되었다. 어린이는 힌트를 필요로 했고, 그 힌트는 바로 말이었다. 어린이가 말을 통해 보상을 찾는 법을 배웠을 때, 그 어린이는 그것을 거의 곧장 파악할 수 있었으며, 심지어 그것을 더 어린 동생에게 전달할 수도 있었다(9-95 참조).
  10장은 반사적이고 수동적인 기억으로부터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기억의 예를 사용하여, 어린이가 본능으로부터 습관으로, 습관에서 지성으로, 지성에서 자유 의지로 발달해 나가는, 이제는 익숙해진 자연적 발달에서 문화적 발달로의 과정을 따라간다. 이 장의 역사적 이론적 부분에서 비고츠키는 심리학자들에 의한 상이한 두 기억 형태에 대한 혼동을 비판하면서, 이와 달리 일반화된 지각과 같은 것을 만들어내는 기계적 기억과, 하나의 사건이 의도적으로 선택되어 어떤 식으로 본보기가 만들어지는 자발적 기억을 구별한 관념주의자 베르그송에 동조한다.
  이 장의 실험적 부분에서 비고츠키는 어린이들의 어휘 시험을 준비해 본 교사라면 누구나 알만한 한 가지 실험을 소개한다. 곧 어린이에게 암기가 불가능한 긴 낱말 목록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기억 장치(숫자를 나타내는 표시가 되어있는 그림 카드 따위)를 제공해준다. 카드 놀이를 숙달하면서 어린이에게는 두 가지 선택 즉 ‘자유 선택’과 ‘강요된 선택’이 주어진다. 자유 선택을 하는 경우, 어린이는 기억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카드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 강요된 선택을 하는 경우, 어린이에게 무작위로 카드가 주어진다. 어린이의 기억은 강요된 선택의 경우 능동적, 창의적이 되고 더욱 상상력이 풍부해진다. 이 실험 결과는 어린이의 말이 어린이의 생각의 발달을 이끌고 결국 생각의 발달로 이행함을 보여주는 11장을 고대하게 한다.

  12장은 비고츠키가 맨 첫 문단에서 말하듯이 말하기, 쓰기, 숫자 세기와 같은 사회-문화적 실천들에 대한 장들과 주의, 기억, 생각과 같은 인지적 기능들에 관한 장들을 한데 묶고 있다. 그러나 비고츠키가 끝에서 말하듯이, 이 장은 심리학자가 정신과 신체를 다시 통합시킬 수 있는 철학적 전망을 열어 준다.  이 장의 역사적이고 비판적인 부분에서, 비고츠키는 어린이의 자기행동숙달은 걷기와 같은 신체적 기술의 숙달을 설명하는 방식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고 말한다. 곧 그것은 연습을 통한 점진적 완성이나 어린이의 의지를 그 자신의 운동 기능들에 부과하는 과정으로 설명될 수 없다. 이러한 시도로는 의지의 기원에 대한 명확하고 관찰 가능한 자료를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의지의 기원은 반드시 설명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비고츠키는 어린이의 자기행동숙달을 안에서 밖으로 설명하는 대신 그가 관찰한대로 밖에서 안으로 설명한다. 즉 외적 환경에서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선택들로부터 어린이의 통제 아래에 있는 대상들에 의해 만들어진 선택들로의 이행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선택이 타인으로부터 분리되어 대상에 전이될 수 있는 것처럼, 선택은 대상으로부터 분리되어 어린이의 성장하는 인격으로 전이될 수 있다.
  비고츠키는 실험 대신에 정도에 차이가 있는 자유로운 선택의 네 가지 사례를 제공한다. 뷔리당의 당나귀, 편지를 부치러 나가는 사람, 마취 없이 수술대에 팔을 내미는 환자, 치료를 거부하는 히스테리 환자의 사례들은 네 가지 논점을 시사한다. 뷔리당의 당나귀에는 오직 외적 동기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자극의 충돌과 균형이 존재한다. 편지의 사례에서는 자극이 동기로부터 분리되고, 심지어 반응에 대한 선택의 계기 자체가 자극 이전으로 옮겨져, 반응의 선택은 계획의 기능이 되고 실제 반응 자체는 비자발적이 된다. 수술대 위의 환자의 경우에는, 더 약하고 멀리 있는 동기로 더 강하고 즉각적인 자극을 극복하는, 자발적 결정에 의한 비자발적 상황의 창조가 존재한다.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의 경우에, 비고츠키는 다른 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유는 필연에 대한 인식’이라는 그의 철학적 주장에 대한 부정적이고 병리학적 증거를 이용하여 결론을 내린다.

                                   4부 인격과 세계관 : 자유 의지라는 최상위 갑판

  부모와 교사는 이 책의 마지막 세 개의 장에서, 앞선 논의에 대한 추상화와 일반화보다는 오히려 ‘구체로의 상승’을 발견할 것이다. 예를 들면 어린이의 문화화에 대한 13장에서 비고츠키는 학교 산술이 전학령기 어린이에게서 발견되는 자연적 숫자 세기 형태를 대체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로 돌아가, 학교 교수에 관한 문제를 거론한다. ‘문화적 연령’에 관한 14장에서 비고츠키는 시험(IQ 검사 등)에 대해 논의하며, ‘영재아’는 장애아에게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불균형적이고 결합된 발달의 특수한 하나의 사례임을 보여준다. 마지막 장인 15장에서 비고츠키는 어린이 양육에 관한 연구를 제시하며 ‘인격’과 ‘세계관’이라는 친숙하지만 현혹적 이름을 가진 완전히 새로운 두 개념을 도입한다. 이 두 개념을 이용하여 비고츠키는 청소년기에 내적 심리 기능과 외적 문화 기능의 두 노선이 도달하는 정점을 표현한다.
  일상의 실제적인 양육과 교수-학습 문제에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이 마지막 세 장들은 어린이에게 반란을 가르치는 문제와는 동떨어진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차분히 검토한다면 이 장들 역시 우리의 발표 주제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격과 세계관도, 다른 모든 문화적 행동들(말하기, 쓰기, 숫자 세기)이나 심리적 기능들(주의, 기억, 생각)과 마찬가지로, 역사와 발달 1권에서 제시된 문화적 행동의 피라미드의 네 가지 수준에 해당하는 네 단계를 가지고 있다.
  첫째, 본능이 지배하는 자연적, 원시적 단계가 있다. 본능이 어린이를 위험으로부터 구출하는데 충분하지 않다면 교사는 어린이의 모방 능력을 활용해야 한다. 2008년 쓰촨성 대지진 때 현장에 있던 교사들이 어린이들이 보는 앞에서 교실을 뛰쳐나갔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교사 중 일부는 저학년 학생에게는 지시를 내릴 뿐 아니라, 그 내용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필요했다고 항변했다. 탈출 방법을 제시한 교사의 행동은 일종의 ‘아이소타입’으로 기능한 것이다. 물론 일부 어린이들이 교사의 행동을 보지 못했거나 그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면, 교사는 단순한 시범 이상의 행동을 했어야 할 것이다. 물론 그 경우 필요한 것은 더 매개된, 더욱 언어적인 지시가 아니라 반대로 덜 매개된, 더욱 신체적인 수단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탈출 방법을 제공하기는 하지만, 동기와 자극을 분리하지 못하며 선제적 위치로 이동하여 재난이 일어나기 이전에 미리 준비하게 하지는 못한다. ‘아이소타입’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방식은 부정과 조건성을 포함하지 못하며, 실제로 시범으로 보여질 수 있는 것 외에는 어린이에게 어떤 것도 제시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 방법은 어린이가 능동적이고 선수적 행위를 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린이의 행동을 결과로부터 원인으로, 자극으로부터 동기로 이동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둘째 단계는 비고츠키가 문화적 행동 발달에서 ‘소박한(민속적)’ 단계라고 부르는 것으로 맹목적인 모방으로 특징지어진다. 여기서 매개적 수단은 마법적인 힘을 부여 받는다. 따라서 어린이들은 이전에 신체적 시범에 의지했던 것과 똑같이 이번에는 언어적 지시에 의존하게 된다. 여기서 어린이들은 위험에 반응하는 동시에 복잡한 지시에 복종하며, 심지어 지시의 이유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지만, 언어적 지시가 없을 경우 새로운 해결 방법을 생각해 내지는 못할 것이다. 구명 조끼를 입고 기다리라는 명령을 받은 어린이들은 마냥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인간 고유의 고등한 문화적 기능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셋째 단계에서다. 이 단계에서만 자연적 자극이나 인공적 자극에 대한 직접적 반응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행동의 가능성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이 단계의 어린이는 스스로 생각하여 119에 전화를 걸 수도 있고, 배가 가라앉는 것을 보고 그 어떤 지시 없이 갑판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은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언어적 지시를 내리는 이유와 방법을 숙달함으로써 어린이는 스스로 언어적 지시를 내려서 자신의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러야 하는 것이다.
  이 세 번째 단계로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비고츠키는 이보다 더 높은, 문화적 행동의 네 번째 단계가 있다고 믿는다. 여기서 지시 수단은 완전히 내면화되어 어린이 마음 구조의 일부가 된다. 진정으로 필연을 인식한 어린이만이 자신을 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타인도 스스로 구할 수 있도록 조직할 수 있다. 선장의 지시에 저항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지시에 저항하도록 조직하며, 필요하다면 갑판 아래로 다시 내려가는 어린이의 행동은 본능이나 습관 심지어는 지성적인 행동이라고 (최소한 자기 보존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불릴 수 없다. 이러한 행동은 반란이라고까지 불릴 수 있다. 그러나 비고츠키는 이를 단순히 자유 의지라고 칭한다.
  구명 조끼를 입은 채 선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어린이들을 상상해 본다면 비고츠키가 의미한 바를 알 수 있다. 여기에는 자극들 간의 충돌이 존재한다. 한편으로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 지시와 점점 움직이기 힘들어지는 배 안의 상황과, 다른 한편으로 구명 조끼의 분배와 배의 침몰에 대한 감지(感知)가 서로 충돌한다. 이 충돌을 해결하려면 선택의 계기가 (방송 지시를 포함한) 당면한 상황으로부터 분리될 필요가 있다. 어린이들이 승선하기 이전에, 배가 뒤집히기 시작해 바닷물이 뱃전을 넘어 들어오면 예외 없이 모두가 갑판으로 나와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어야 하는 것이다(선장이 뭐라 하든 상관없이). 물론 지시에 대한 개인적 불복종만으로는 우리가 TV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상황, 곧 헬기가 승객들을 한 명씩 구조하는 동안 배 안의 수 백 명의 승객들은 그대로 수장되는 상황을 연출할 뿐이다. 반란은 조직화되어야 한다. 누군가는 ‘전원 갑판으로’라는 대원칙을 깨고, 객실 안 승객들의 탈출을 조직하기 위해 갑판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일부 선원과 교사들이 이러한 일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는데도 해경을 비롯한 관료들은 비굴하게 그러한 선택에서 등을 돌렸음이 조사를 통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우리는 어린이들 스스로가 필연을 인식하고 각자가 서로를 돕도록 준비시키는 것 이외의 다른 방법은 없다는 것을 정부의 행태에서 극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세월호 참사는 자연 재해가 아니라 고도로 비자연적인 살인 행위이다. 그러나 어린이들의 비극은 단순히 그들이 생존을 위해 이 상황에서 본능에 의존할 수 없었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능에 의존하게 되면 오히려 서로 깔고 깔리는 참사를 유발할 수 있다. 어린이들은 조건화된 반응에도 의지할 수 없었다. 안전을 위한 언어적 지시는 진정으로 안전을 염려하는 정부 밑에서만 기대할 수 있는 것으로, 박정희 시대의 최대 이윤 추구라는 가치를 계승 확대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에게는 기대할 수 없다.
  지적(知的) 해결책조차도 숙련된 정규직 노동자들이 고객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상황에서만 기대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뿐만 아니라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도 동참한 노동 유연화 정책은 그러한 가치를 가차없이 짓밟아 버렸다. 어린이들의 비극은 배 밑에서 몰살된 모든 이들의 최종적인 구명 조끼가 되었어야 할 자유 의지조차도 굴종적 교육 시스템으로 인해 짓밟혀 버렸다는 데 있다. 교육은 학생들에게 반란을 일으키도록 강력히 고무했어야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본질이 불가항력과 불가피성에 있다고 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에게 오필리아의 비극은 그것을 언제라도 피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비통에 빠진 오빠는 아직 눈물을 흘릴 수 없는 것이다. 미리 방지하지 않는다면 또다시 되풀이될 너무도 많은 비극들이 지금도 여전히 산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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