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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 [열공] 1. 내 맘대로 고전 읽기 - 홍길동전

2014.07.15 17:39

진보교육 조회 수:661

[내 맘대로 고전 읽기]

홍길동전

별빛 / 진보교육연구소 연구원

                         율도국은 꿈인가?

  내가 초등학교시절 처음으로 돈을 주고 산 책이 「홍길동전」이다. 당시 수중에 있던 내 재산 500원을 탈탈 털어서 그 책과 바꿨다. 그때는 동네나 학교나 도서관이 없던  시절이라 책이라고는 고작해야 교과서밖에 없던 내게 「홍길동전」은 무척 소중했다. 좀 사는 집 애들이 갖고 있던 계몽사 세계명작전집을 한두 권 빌려본 적은 있으나 내 책을 가져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눈 깜짝할 사이에  읽어치웠던 기억이 난다. 홍길동 다음으로 재미있었던 책이 「괴도 루팡」이었는데 이것도 뚝딱 읽어치웠다. 아무튼 어린 시절에는 도둑놈 이야기만큼 재미있는 게 없다. 지금도 홈즈보다는 루팡을 더 좋아하는 것이 어린 시절의 기억 탓인가 보다.  
  누구나 읽었을 것 같으면서도 실상은 제대로 읽은 이가 많지 않은 게 한국 고전 소설이고, 그 하나가 「홍길동전」이다. 70년대에 만화나 만화영화로 가장 많이 만들어진 것이 「홍길동전」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대부분 그 내용을 아는 것 같지만 막상 살펴 보면 자세히 알고 있지는 못하다. 특히 40대 중반 이후의 세대는 [부잣집은 빼고] 교과서 밖에 없었던 사람이 많아, 커서라도 ‘무식’을 벗어난 이들이 [모르긴 몰라도]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자식보다도 읽은 책이 적다. 어른이 된 뒤로 책이 흔해졌지만 읽게 되지 않았다.

  아무튼 우리 고전 소설 중 최고는 「홍길동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홍길동은 엄격한 신분 사회에서 서자로 태어난다. 그것도 한참 조선의 기틀을 잡아가던 세종조에 이조판서를 지낸 홍공의 둘째 아들이다. 입신양명을 최고로 여기던 시절에 그는 그 출세를 할 수 없는 천재요, 수재요, 영재였다. 그러니 얼마나 열 받는 상황이었겠는가? 뭐 이딴 게 다 있어 하는데 목숨까지 위협하니 집을 떠나게 된다. 청소년 가출의 시초다. 부모와 가족의 사랑을 못 받으면 아이들은 가출할 수밖에 없다.
  가출 청소년이 그것도 조선시대에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는 도둑이 된다. 자기가 가진 재주로 첫 임무를 성공리에 끝내 그는 도둑들의 두목이 되고 잡범들을 의적으로 만든다. 활빈당의 출범이다. 홍길동의 능력으로 도둑떼가 이제 민중의 희망이 된다. 이제 활빈당은 백성의 고혈을 짜내는 탐관오리들을 혼내줘서 백성들의 희망으로 떠오른다. 관리라는 게 말로는 공복(公僕)이니 뭐니 하지만 실상 백성들의 피눈물을 짜내 자기 배를 불리는 경우가 많다. 예나 지금이나 공복(公僕)은 보기 드문 존재다. 오죽하면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잘 한다고 청백리상을 주겠는가? 모두들 부패하니 청백리는 상 받을 일이 된 것이다.  
  이제 길동은 국가의 공적(公敵)이 되었다. 반국가단체의 수괴요, 국가보안법 사범으로 유병언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현상금이 붙는다. 그럴수록 백성들의 지지가 높아지고 길동은 이제 국민적 영웅이 된다. 아무리 가난해도 현상금을 바라고 길동을 밀고하는 백성은 없다. 그게 민심이다. 임금이 하지 못하는 것을 길동이 하니 임금은 좌불안석, 제 자리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에 길동은 임금을 만나 조선을 떠나겠다고 말하며 홀연히 조선을 떠나게 된다.  
  길동은 미련 없이 조선을 떠난다.  길동은 수하들을 데리고 풍요로운 땅 율도국을 정복하여 율도국 왕이 되고, 자신이 꿈꾸던 나라를 건설한다. 율도국은 태평성대를 누리며 요순시절에 견줄 만큼 평화로운 국가가 된다. 길동은 70 고희(古稀)에 세상을 뜬다. 이것이 홍길동의 전반적 내용이다.
  홍길동전은 조선의 신분질서를 인정하고 유교사상을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혁명소설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러나 홍길동이 임금의 목을 치고 조선사회를 뒤 엎어 혁명을 일으켜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내용이었다면 활자화된 기록이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그랬다면 그저 구전으로만 전해 올 것이다. 그것도 아주 희미하게. 지금도 대통령을 죽이고 부르주아들을 처단하여 혁명을 해야 하다는 소설을 쓴다면 작가는 형법 및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될 것이며 그 작품은 금서나 불온서적으로 시중에 유통될 수 없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경제학자가 쓴 평범한 책조차 불온서적으로 지정하는 것이 한국의 실정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선택지는 분명해진다. 민중들에게 지금의 조선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리면서 금서가 되지 않는 방법. 그것은 현실과의 타협이다. 그래서 소설은 불교를 건드리고, 탐관오리들을 혼내준다. 그런데 탐관오리가 누구인가? 임금이 임명한 자들이다. 따라서 탐관오리들이 발호하는 것의 책임은 임금에게 있다. 그런데 자신은 책임이 없다는 태도. 현재의 모습과 유사하다.
  탐관오리들은 지배계급이다. 홍길동은 팔도에 나타난다. 즉 일부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전국이 부패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임금의 책임이요 지배계급 전체의 문제다. 이 실정(失政)을 얼버무리느라 길동을 병조판서에 봉했고 그래서 길동이 임금을 만나게 된다. 도적 길동이 임금을 만날 길은 없다. 세월호 희생자 부모들이 대통령을 만나러 청와대로 향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겹겹이 에워싸는 경찰들뿐이었듯이. 그만큼 임금은 머나먼 임이다.
  백성은 임금을 만나 하소연할 길이 없다. 만나 주지도 않는다. 그러니 길동은 임금을 만나기 위해 병조판서가 된다. 장관쯤 돼야 대통령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길동은 임금을 만나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고 소란을 떨었고 제 이름이 알려지자 조선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벼 일천 석을 내어 달라고 한다. 수천 명 백성의 목숨을 보전할 것이라면서. 가난은 나라님이 구제해야 하는 것이라고 길동이가 임금에게 가르쳐 준다. 백성의 마음을 담아 임금에게 직언을 하는 장면이다.
  이제 길동이 할 일은 조선을 떠나는 길 밖에 없다. 지배계급의 심기를 심하게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가 조선에 계속 남아 있었다면 줄곧 암살 위협과 역적죄로 시달려야 했을 것이다. 결국 그가 선택할 길은 망명밖에 없다. 박정희 시절 고 윤이상님이나 송두율 교수처럼 말이다. 그러나 길동에게는 그를 따르는 무리들과 군사력이 있었기에 율도국을 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
  소설이니까 가능한 이야기이다. 다른 나라를 쳐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것은 침략을 정당화하는 것이기에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실제로는 조선을 쳐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할 것이나 이렇게 되면 소설은 살아남지 못한다. 그렇기에 이웃나라를 침략하는 것으로 줄거리를 전개하지만 실제로 소설이 겨냥한 것은 조선이다. 따져 보면 길동의 무리와 율도국 백성들과는 문화적·언어적 장벽이 없다. 그러니 율도국이 어디겠는가?
  「홍길동전」이 그저 초등학생 아이들이나 읽는 책이라고 치부한다면 이는 지배계급들의 전술이 먹혀 들어간 셈이다. 이는 마치「걸리버 여행기」를 거인국, 소인국 이야기나 들려주는 애들 동화로 전락시킨 이치와 동일하다. 홍길동은 분명히 혁명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백성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막강한 군사력을 길러서 기존의 국가를 뒤엎고 새로운 국가를 꿈꾸는 이상향을 건설한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하루하루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조선의 백성에게 홍길동은 혁명가요 그들의 희망이었던 것이다. 그가 언젠가는 율도국을 건설해 줄 것이라고들 믿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힘겹게 살아간다. 채플린이 그린 톱니바퀴 인생처럼 하루하루를 그저 살아낸다. 국가는 우리에게 충성만을 강요하고 기본적인 삶조차 보장해 주지 못하고 있다. 조선의 백성과 우리가 다른 점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제 질문을 던져 보자.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홍길동인가? 아니면 율도국 건설의 희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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