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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호 [열공] 내 맘대로 고전 읽기_사라진 유토피아

2014.04.16 14:24

진보교육 조회 수:375

[열공] 내 맘대로 고전 읽기

사라진 유토피아

별빛 / 진보교육연구소 회원

  유토피아. 아무데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 이상향을 뜻한다.
  1516년에 토마스 모어가 쓴 [유토피아]에서 유래한 이 말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세계이다. 그는 고통 속에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상적인 세계는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하려는 목적으로  유토피아를 썼으며 유토피아는 현실과 이상에 대한 성찰의 산물이라 하겠다.  따라서 모어는 우리에게도 자신의 그런 성찰에 참여하도록 촉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유토피아’는 2부로 되어 있다. 1부는 모어, 페터 힐레스, 히슬로다에우스 간의 철학적 대화로 되어있다. 이들은 대화에서 지금의 현실사회가 썩어빠졌으며 국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데 동의를 하고 있다. 페터 힐레스는 풍부한 경험과 지혜를 갖춘 히슬로 다에우스에게 군주를 도와 정치개혁을 한다면 국민들에게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입궐할 것을 제안하지만 히슬라에우스는 헛된 노력이라고 사양한다.  

  그 이유 중 하나로 범죄의 근본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강한 처벌만 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자신의 말에 반대하던 사람들이 권력자가 관심을 보이니 권력자의 말에 찬성하는 것을 들고 있다.  또한 군주들과 보좌관들은 국민들보다는 자신의 명예와 안전만을 추구한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런 이유 등으로 자신이 입궐해서 군주를 도와봤자 할 수 있는 것은 없으며 헛된 노력이라고 치부한다.      

  1부에서는 결국 개인의 의지로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보여준다. 모순된 현실을 혁파하고자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심정으로 정치에 뛰어들어 봐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신도 기득권 정치세력이 될 뿐이라고 말한다. 2부에서는 중요한 것은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시스템이며 사회체제라고 말한다.

  2부에서 모어는 정치공동체의 최선의 상태[유토피아의 지리, 관습, 제도, 법 등 전반적인 모습]에 대해서 서술했다. 1500년대라는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모어는 사유재산이 존재하지 않고 하루 6시간만 노동하는 유토피아 사회를 그리고 있다. 유토피아인들의 최종적인 목표는 쾌락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인데 쾌락은 자연의 인도에 따라 사람이 그 안에 있으면 기쁨을 누리는 심신의 상태와 운동을 가리키며, 자연에 반하는 쾌락은 사이비 쾌락이라고 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좋은 옷을 입었기 때문에 자신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유토피아의 자리에서 보면 현대의 우리는 사이비쾌락을 위해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 셈이다.      

  500년 전에 쓴 유토피아는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1부에서 3인이 시국에 대해 논하는 상황은 500년이 지난 지금도 같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영국이 아닌 한국이라 할지라도 영국이나, 우리나 상황이 크게 틀리지는 않다. 2부에서 상상한 유토피아는 노예제가 존재한다는 한계점을 차치하고 보면 상당히 획기적인 내용이다.  사유재산제를 폐지하고 물질주의를 배척하면서 정신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이라 해도 될 것이다.

  500년 전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꼭 현실에서 실현시켜야 할 이상사회라고는 볼 수는 없을 것이나 모어는 현실의 고통 받는 민중들이 없는 이상세계를 건설하는데 모두들 숙고하자는 의미에서 나름대로의 이상사회상을 펼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유토피아’는 그대로 우리가 건설해야 할 사회상이라기보다는 저마다 이상사회를 다양하게 생각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지금도 읽을 가치가 충분한 고전이다.

  한 때 우리도 이상사회를 향해 치열한 투쟁을 한 적이 있다. 실질적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사회, 만인이 평등한 사회주의 사회 등 각자가 생각하는 이상사회를 위해 열심히 토론하고 투쟁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그 치열함과 이상사회에 대한 열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때 사회주의를 이상사회로 여겼던 사람들은 현실사회주의 붕괴와 함께 열정도 사라져 갔으며, 민주주의 사회를 이상사회로 여겼던 사람들은 형식적 민주주의가 이루어지자 마치 완전한 민주주의가 이루어 진 것처럼 선거에나 몰두하는 부류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사라진 유토피아를 복원해야 한다. 각자 치열하게 유토피아에 대해 토론하고 논쟁하여야 한다. 막연히 민주주의, 사회주의가 아니라 그 제도와 체제에 대해서 논해야 한다. 현실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유토피아의 건설이다. 500년 전 모어가 상상했던 유토피아를 더욱 다듬고 보완하여 상상의 유토피아가 아니라 현실의 유토피아를 건설해야 한다. 유토피아는 멀리 있지 않고 바로 우리 가까이에 있다.  그 시작은 사라진 유토피아를 찾는 일이다.  
  유토피아의 건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인간해방의 길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