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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호 [권두언] 뚜벅뚜벅 걸어가야 할 때

2014.04.16 16:07

진보교육 조회 수:411

[권두언]                    

뚜벅뚜벅 걸어가야 할 때                
                          
  한동안 ‘한겨레신문’ 따위를 쳐다보기 싫었던 때가 있었다. “박쥐 같은 친구들!” 그런데 요즘은 그나마 ‘한겨레’가 고맙다. ‘한겨레’는 진보교육감이 나오기를 열망하는 신문이다. 한편으로, 진보교육감들이 해낸 일이 과연 얼마나 실속이 있었는지, 마땅찮은 감정이 아니 일지 않지만, 그래도 꽉 막힌 작자들이 거기 도사리고 앉았는 것보다야 낫지 않으냐. 지금 민중의 해방을 바라는 사람들이 머물러 있는 정치지형이 이 수준이다. 박원순이든, 김승환이든 누군가 잘 해주기를 바라는 ‘00바라기’의 수준!
  요즘 한겨레를 열심히 읽기는 읽는데, 주로 눈길이 머무는 곳은 정권과 사회를 비판하는 기사들이다. “현 정권, 민주주의를 너무 묵살한다.”라는 주제만으로 신문을 너무 도배질하는 것이 눈에 거슬리긴 하지만, 그래도 현 집권자의 지지율이 60%를 줄곧 웃돈다는 시절에 그런 얘기라도 떠들어 주니까 고맙다. 예전에 그 신문이 한참 밑으로 내려다 보이던 때에 견주자면 상전벽해[桑田碧海]라 해야 할까.  
  그런데 신문에서 정말 눈길을 주고 싶지 않은 데가 “민주당이 뭐했냐? 통진당이나 정의당이 뭐했냐?”를 일러주는 기사들이다. 한참 전에야 “민중운동이 민주당을 어떻게든 끌어내야 할텐데...”하고, 그들과의 제휴를 모색해야 할 때가 이따금 있었으니, 그들의 동향도 좀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걔네가 이쪽과 완전히 선을 그은 뒤부터는 관심이 차갑게 식었다. “걔네가 우리와 어울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걔네가 집권해서 뭐 세상을 주름잡을 것도 아니고... 너희끼리 (2등 정당으로) 놀아라!” 그러니 그쪽 동네에서 무슨 난리굿을 벌이든 소 닭 보듯 했다.

  3월 중순, 김한길과 안철수가 갑자기 만나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을 때도 처음에는 ‘그러거나 말거나!’ 했다. 너희, 원래 그렇게 찧고 까부는 거 좋아하는 치들 아니었니? 이미 김한길이 글러먹은 쪽으로 계속 치달았는데, 안철수가 가세한다고 뭐가 더 나빠질 게 있겠냐는 느낌이었다. 제목만 보고 얼른 눈길을 돌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고 나서 그 느낌, 그 생각이 ‘짧았다’는 뉘우침이 찾아왔다. 더 나빠질 게 없다고 봤던 것은 단견[短見]이었다. 양당 통합을 하면서 걔들이 뭘 (허튼) 명분으로 내세웠는지는 따질 것도 없다. 자잘한 것까지 눈 부릅떠 봐야 뭐하나. 조선일보에서 이것을 어떻게 바라봤느냐만 살펴도 요점(要點)이 나온다.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께서 가라사대, “이 게임은 김한길을 위한 것도, 안철수가 좌지우지 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크게 봐서 바둑판의 돌에 불과하다. 새로운 야당의 출현을 두고 너무 디테일을 따지고 손익 관점으로만 계산하지 말고 큰 그림을 보자. 새 야당이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안보를 주축으로 삼는 집권대안 세력이 된다면 그것이 바로 ‘새 정치’가 아니겠는가.”
  우리는 조선일보의 수구 이데올로그들한테서 한 수(首) 배워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궁색한 살림에 당장 도움되느냐, 어쩌냐 하는 관점에서 일희일비(一喜一悲)한다. 박원순이 아무리 삼성 앞에서 꼬리 내리는 겁쟁이라도, 그가 서울시장으로 있는 것이 당장 우리한테 쬐그만 보탬은 되므로 우리는 그를 응원하는 팬(!)이 된다. 그런데 김대중씨는 ‘큰 그림을 보라!’고 우리를 가르친다.  
  지배세력 주류의 큰 그림이 뭣인지는 작년과 올해, 이미 나왔다. ‘통일, 대박날 겨!’하고 대중을 부르꾀어서 흡수통일 시나리오를 가동하는 것이다. 부르주아민주주의자 백낙청교수는 ‘그것, 경계해야 돼!’하고 곧바로 외쳤는데(그런 그도 결정적 순간이 오면 주류의 들러리가 될 개연성이 큰데), 민중을 돕는다는 우리는 정작 그들의 큰 그림에 대해 관심이나 품었을까?

  그 얘긴 그쯤 접고, 김씨와 안씨가 통합을 밝힌 절차를 잠깐 보자. 다들 집에 드러누워 있는 일요일, 김씨와 안씨, 단 둘이서 번개팅을 하고 두 당의 운명을 즈그덜끼리 결정지었다. 이거, 깡패가 각목 들고 설치던 1970년대 민주당의 수준보다도 한참 후퇴한 것 아닌가? 그때는 깡패가 설치긴 했어도 어쨌든 당활동가들이 주인이 되어 대회를 열었는데, 지금 두 당의 주인은 김씨와 안씨 뿐이지 않은가? 중진국에 강소국[强小國]에 한류의 본고장에... 자만심이 많이 드높아진 한국 사회에 제2 정당이 이 수준이라면 이것, 민주주의 정치에 빨간 불 들어온 것 아닌가?
  일요일날 런닝샤쓰 바람으로 두 사람이 설친 것을 보니, 참 닮았던 광경이 1990년에 있었다. 노태우와 김영삼과 김종필이 (남들 몰래) 웃통 벗고 만나 ‘3당 합당해서 민자당을 만들자’고 선포했던 때! 왜 지배세력은 부랴부랴 민자당을 만들었을까? 한때 노동운동이 남한 지배세력에게 두려움을 안겨준 때가 있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다. 87민중항쟁이 터져나와 전투적 노동운동의 기세가 뻗어나던 때에 그랬다. 그들은 ‘전노협’이 강고한 흐름으로 자리잡는 것을 완강히 가로막고 싶었고, 그들의 희망은 대부분 실현됐다. 그때 노동운동의 진출에 맞닥뜨린 지배세력이 번개처럼 단결해서 ‘민자당’을 지어냈고, 노동운동의 기세는 그 덕분에 차츰 가라앉았다. 그때는 지배세력 주류가 날뛰었다면 지금은 지배세력 비주류가 권력의 일부 몫을 지켜내기 위해 날뛴 것이 달라진 점이다.
  비운(悲運)의 사상가 벤야민은 갈파했다. “진정한 역사유물론자는 언제나 자기의 현실을 ‘비상사태’로 받아들인다.”고! 역사의 기관차가 한 바퀴 굴러갔는데, 지배세력의 ‘통큰 그림’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바둑판의 돌이 한 칸 움직였는데, 우리는 한가로이 바닷가에서 모래성만 쌓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우리가 힘이 없는데, 걔네들 비판하면 뭐하나’ 싶었던 때가 있었다. “우리가 떠든다고 걔네가 우리 말 듣겠냐?” 그래서 자꾸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벤야민 선배의 가르침에 따라 세상을 보니까 달리 보인다. 힘 안 들이고, 슬쩍 비웃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힘을 들여 정색하여 화를 내자! 지금 걔네들한테 우리 말이 ‘쇠 귀에 경 읽기’로밖에 안 들리겠지만, 우리는 날마다 연습해야 한다. 언젠가 그 눈먼 소의 뿔을 빼버릴 것을. 우리가 화를 내는 것은 우리 자신을 담금질하기 위해서다. 도둑처럼 다가올 미래에 무릎 꿇지 않으려면 늘 깨어 있기 위해서다.
  우리 사정을 둘러서 말했다. 전교조가 그나마 법외노조 싸움을 힘차게 전개하며 실력을 보여준 게 다행스럽다. 힘이 없다고 자꾸 주저앉아서는 무엇 하나, 될 일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어떤 불의(不義)에 대해서건 힘을 들여 화를 내는 것, 이것이 기나긴 나날을 살아갈 우리의 (뾰족하지 않은) 방책이 아닐까 싶다. 눈앞의 일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자. 저들(지배세력 주류)이 ‘큰 그림’을 그리고 있듯이, 우리도 큰 그림으로 무장(武裝)하지 않는 한, 지금의 흐름을 뒤집을 수 없다는 두려운 사실을 새삼 되새기게 하는 시절이다.  
이번 호는 연구소 창립 15주년을 맞이하여 풍부한 구성을 하다보니 두께가 제법 두툼하다. 진보교육운동의 역량을 두툼히 하는 일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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