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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과문화] 은하수의 음악이야기

생명력을 일깨우는 것들

은하수 / 하와이거주, 연구교수



  하와이하면 떠오르는 것들. 선명하게 내리꽂히는 강렬한 햇빛, 커다란 우산 모양의 나무들과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쾌적한 바람, 끝없이 펼쳐진 여러 빛깔의 바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음악과 춤으로 표현하는 훌라(Hula).

  하와이에 간다고 할 때, 사람들은 장난삼아 허리를 흔들고 손으로 훌라춤 흉내를 내며 “하와이?”라고 되묻곤 했고, 그럼 나도 따라 허리와 손을 흔들며 “응, 하와이”라고 대답하곤 했다. 이처럼 하와이를 대표하는 상징의 하나로 여겨져온 훌라. 그러나 어느 정도 희화화(戱畵化)된 이미지로 받아들여져왔음을 나타내는 대화.

  하와이에 와서 새롭게 알게 된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훌라에 대한 것이다. 훌라가 단순히 머리에 꽃을 꽂고 가슴에 레이(lei)를 장식한 젊고 예쁜 여성이 음악에 맞춰 허리를 흔들며 추는 춤으로 가볍게 환원시킬 수 없는 무엇인가가 더 있다는 것. 인류의 모든 음악이나 춤이 그러하듯, 훌라도 하와이인들의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 왔고, 신들에 대한 경외심, 그 신들을 향한 기도, 하와이의 역사와 전설, 자연과의 교감, 말로는 다 나타낼 수 없는 인간의 내밀한 감정 등을 표현하는 주요한 수단이자 통로였다는 것. 어쩌면 당연한 깨달음.

  oli(챈트)와 mele(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훌라는 전통적인 훌라의 수호신인 ‘라카(Laka)’가 가르쳤다고 전해지기도 하고, 불과 빛과 화산의 여신인 ‘펠레(Pele)’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그 언니인 ‘히아카((Hi'aka)’신이 춤을 춘 것에서 비롯된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어쨌든 방점은 훌라의 기원이 신과 연관되어 있었다는 것에 있다, 문자가 없던 고대 하와이 사람들은 훌라를 추는 것으로 신화와 전통을 자손들에게 전해왔다는 것, 다채롭게 변화되는 훌라의 손동작(hand motion)이 그저 우아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나, 너, 산, 파도, 꽃, 새, 대지, 바람, 향기, 사랑 등 여러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는 것에 있다.

  훌라는 크게 훌라 카이코(Hula Kahiko)와 훌라 아우아나(Hula Auana)로 나뉘어진다. 훌라 카이코는 서양문물이 들어오기 전의 것으로, 타악기의 리듬에 맞춰 기도문의 낭송이나 노래와 함께 연희되는 종교적이고 경건한 분위기의 춤을 뜻한다. 한편 훌라 아우나는 하와이의 전통과 서양문물이 섞인 것으로, 기타나 우쿠렐레, 더블베이스 등에 의해 반주되는 경쾌하고 흥겨운 춤을 뜻한다. 훌라는 서양문화의 유입에 따라 일련의 변화를 겪게 되었으며, 근대의 훌라는 고대의 훌라에 비해 종교적 의미는 차츰 엷어지고 여흥적인 면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 대한 이해가 없이 여흥적인 측면만 부각된 훌라를 피상적으로 접했기 때문에, 훌라에 대한 가벼운 희화화가 가능했던 것이리라.


  고대 이후 계속 전승되어온 훌라는 19세기 초에 심각한 소멸의 위기를 겪게 된다. 무엇보다 바다 한 가운데 떠있던 하와이 제도를 1778년 Cook 선장이 처음 발견하고, 카메하메하(Kamehameha I)왕이 쿡선장에 의해 도입된 서양의 신식무기를 이용하여 최초의 하와이 통일왕국을 세웠는데, 바로 이 왕조에 의해 훌라가 핍박을 받게 것이다. 구체적으로 1825년에 기독교에 귀의한 섭정여왕 카아후마누(Kaahumanu)는 1830년에 훌라의 공식적 공연을 금지하는 칙령을 발표하였으며, 1851년 카메하메하 3세는 정부의 허가를 받은 훌라 공연만이 유효하다는 법령을 제정하여 훌라의 임의적인 공연을 규제하였다. 이 왕조가 이토록 훌라를 핍박한 이유는 1820년 선교사들이 하와이에 들어옴에 따라 카메하메하 왕가가 기독교로 개종하였기 때문이며, 그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왕권의 강화를 위해서였다. 하와이 전통 음악이 전통 종교 및 기존의 사제를 겸하는 추장들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왕권 강화를 위해 하와이의 전통음악을 핍박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훌라의 전통을 뿌리째 뽑을 수는 없는 법. 훌라는 선교사들이 파급되지 않은 지방에서 쿠무(Kumu)를 중심으로 면면히 연행·전승되었으며, 1874년 새로운 왕으로 추대된 칼라카우아(Kalakaua) 왕에 의해 강력하게 재건되었다. 유쾌한 군주(The Merre Monarch)라고도 불리운 칼라카우아왕은 매우 똑똑하고 매력적이며 재능이 많은 왕으로, 미국과의 상호조약을 체결, 사탕수수를 비롯한 하와이 제품에 대한 미국의 관세를 철폐하게 하여 하와이 사탕수수산업이 호황을 누리게 했을 뿐 아니라 근근히 이어온 훌라를 부활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와이키키해변 가까이에는 이 왕의 이름을 딴 칼라카우아 거리가 있고, 그 길 복판에는 칼라카우아 동상이 오가는 사람들을 굽어보고 있다.

  하와이대에서 음악교육관련 강의나 토요방과후 학교와 같은 수업 참관을 통해 훌라에 대한 노래와 춤을 배울 기회가 종종 있다. 어설프게나마 하나씩 동작을 따라하노라면 그 동작의 흐름을 따라 내 안에 갇혀있던 것들이 어디론가 풀려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왜 하와이에 가려느냐”고 물어볼 때, “정령들이 아직 숨을 쉬고 있는 곳이어서”라고 농담처럼 말하곤 했지만, 1년 전에 하와이를 방문했을 때 정령들이 숨을 쉬고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건 사실이다. 몇 번이나 산과 강을 지나 결국 오게 된 하와이. 이 곳 하와이에서, 쏟아지는 햇빛 아래를 걸으며, 느긋하게 반복되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커다란 나무의 위엄에 압도당하며, 살갗을 스치는 바람의 시원함을 느끼며, 공들여서 섬세하게 연행[演行]되는 훌라의 음악과 춤에 매혹되며, 난 내 안의 생명력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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