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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교사로서 몸부림치기
-교단일기 두 번째 이야기

                                                  권용해 /  안산00고

아직 입학한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한 학생한테서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은 왜 밑줄을 안 쳐 주세요?” 뭔가 불만이라는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도통 제가 하는 이야기 중에 뭐가 시험 문제로 나올지 모르겠다는 불만. ‘우리에게 더 이상 그런 공부는 필요하지 않다’는 얘기로 설득을 해보려 했지만 썩 납득하는 표정은 아니었지요. 잠깐 제 머릿속에 제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저도 그 아이처럼 교과서에 자를 대고 형광펜으로 반듯이 줄을 긋던 아이였더랬습니다. 아이에게 좀 미안한 마음이 살짝 제 뇌리를 스쳤습니다. 하지만 저는 곧 뻔뻔해졌습니다. “그깢 시험문제나 짚어주는 그저 그런 선생이 되고 싶지는 않다.”는 감정이 더 굴뚝같았으니까요. 이 글에서 드릴 말씀도 이런 뻔뻔한 얘기가 될 것 같습니다.

교사라면 누구나 ‘수업을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합니다.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야 누군들 다르겠습니까만, 교사는 특히 ‘아이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저도 그런 칭찬을 듣고 싶지만, 이어폰을 끼고 노트북으로 (잘 나간다는 학원 강사의) 인터넷 강의를 듣는 교사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런 마음이 사라집니다. 대학시절 임용고사를 준비하러 노량진 학원을 다니던 학생들의 모습보다 더 처절해 보이고, 그 강의를 통해 얻으려는 것도 공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들과 학부모의 입소문을 탄 덕분에 억대 연봉을 올리는 스타급 강사를 본따서 뭘 어쩌자는 것일까요? 학원 강사와의 싱크로율을 높여서 아이들에게 인정을 받으면 기쁠까요? 수업 잘한다는 인정을 받으면 보충수업을 많이 개설할 수 있고 그러면 부수입도 많이 생기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정말 그런 교육이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걸까요? 설마 그들에게서 새로운 교과 지식을 얻으려는 건 아니겠죠? 언제부터 교실이 수업 기술을 현란하게 선보이는 무대가 되어버린 건지, 그리고 ‘그것이 아이들을 위하는 길’이라고 칭찬을 받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 바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게 ‘아이들을 위하는 일’은 아닐 텐데요. 아이들은 수요자가 아니고, 저 역시 공급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에게 친절하게(?) 수업하는 교사가 되겠다는 마음을 버렸습니다. 문제 풀이를 해달라는 아이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습니다. 시의 주제를 적어달라는, 최소한 불러주기라도 해달라는 요구도 들어주지 않습니다(그렇다고 주제를 알려주지 않는 건 아닙니다. 고정된 문장의 형태로 제시해주지 않을 뿐입니다). 별도의 판서 계획을 세워서 적어주질 않으니, 칠판에 있는 내용을 옮겨 적기에 급급한 아이들은 시험 때가 되면 교과서가 깨끗하다고 투정을 늘어놓습니다. 옆반 선생님은 판서를 잔뜩 해주는데 자기네는 필기한 게 없다면서 옆반 친구에게 교과서를 빌려와 옮겨 적는 아이들도 꽤 있습니다.
‘공부 습관이 잘못 들어 있구나’ 하고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해버릴 수는 없더군요. 생각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길러주지 않는 한국의 교육 현실과 이를 위해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바꿔내야 할지를 고민하지 않는 교사 집단에 대한 원망이 가슴을 짓누릅니다. 모든 아이들이 눈을 반짝거리며 제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상상하면 기분이 좋아지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약장수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그래서 아무리 목이 아파도 마이크를 쓰지 않습니다. 아, 마이크 사용하시는 분들이 전부 약장수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이 말하는 ‘아이들을 위한 수업’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앞으로도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라는 얘기는 듣기 어려울 것 같군요.

그래도 작년에는 문학 수업을 하면서 가슴 뿌듯한 순간이 많았습니다. 이 수업 때문에 교장한테 불려가서 수업자료도 검토 받아야 했고, 주변 선생님과도 큰 갈등을 빚었습니다만, 아이들과의 수업만 놓고 보면 가장 보람있는 한 해였습니다. 2학년 인문계 모든 반을 맡아 근현대소설만으로 교재를 꾸려 토론․발표 수업을 진행했는데 아이들과 개별적으로 이야기할 기회도 많았고 다양한 생각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썩 잘 쓴 발표문들은 조금 다듬어 별도의 책으로 낸다면 어지간한 참고서보다 낫겠다는 생각도 했으니까요.

소설을 고르면서 나름의 몇 가지 선정 기준이 있었습니다. 근엄하신 교과서에는 쉽게 실리기 어려운 작품일 것. 그리고 시대적 의미가 뚜렷한 작품일 것. 이에 따라 고른 작품 목록은 대략 이렇습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공지영), 새벽출정(방현석),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윤흥길), 붉은방(임철우), 영자의 전성시대(조선작), 순이삼촌(현기영), 이웃사람/객지/야근(황석영), 달밤(이태준), 서울사람들(최일남). 써놓고 보니 관리자들이 좋아할 작품은 아니군요. 이태준의 ‘달밤’과 최일남의 ‘서울사람들’은 그나마 무난한 편이었지만 ‘달밤’에서 정작 가르친 내용은 근대의 제국주의에서 시작해서 영화 ‘modern times’를 거쳐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노동착취였으며, ‘서울사람들’에서는 타자화 개념과 속물성, 그리고 오리엔탈리즘이었습니다. 오리엔탈리즘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영화 ‘300’을 예로 들어 함께 보여주니 식민 지배자들의 타자화 전략이 어떤 의도에서 나온 것인지 학생들이 파악하는 것 같았습니다.

토론 주제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내걸었습니다(물론 여기서 시험문제를 내겠다는 협박이 있었다는 사실은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 자본주의의 모순과 사회주의, 노동조합과 노동운동, 국가의 폭력, 도시빈민 문제, 도시 재개발의 문제점 등, 문학인지 사회인지, 역사인지 하나의 과목으로 특정할 수 없을 것 같군요. 물론 아이들은 제시된 주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모둠별로 자유롭게 이야기했고, 작품마다 적게는 A4 1장, 많게는 A4 6장까지(거의 대학 레포트 분량) 제출했습니다. 조별 발표문을 매번 이메일로 받고 반 인원수만큼 출력해서 나눠주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만(8개 반이었기에) 새벽 3, 4시에 발표문 작성을 마쳤다며 메일을 보내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기특하기도 하고 잘 따라주는 것에 고맙기도 했습니다(엄마한테 이르거나 편향수업 신고센터에 신고하지 않은 것만도 고마워해야 하겠지만).

그러다보니 시험문제에서도 용기를 좀 내볼 수 있었습니다. 문제를 만들면서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할지는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마땅히 물어봐야 하는 것들을 물어보는 것이 맞다고 보았으므로 아이들에게도 ‘주관식 문항이므로 주관적으로 평가하겠다. 점수에 대한 이의신청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을 해버렸고요. 어찌 보면 독단적이고 막무가내인 선생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이게 옳다는 확신은 있었습니다.

확신을 갖고 이러한 내용으로 1년의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2008년부터 배움을 이어나가고 있는(최근에는 진도를 따라가기가 좀 벅찹니다) 전태일 노동대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교조 교사로서 교과서를 뛰어넘어 세상을 똑바로 헤아릴 지식을 알려주는 것은 저에게 의무사항이었고 수업은 그래야만 하는데 역사와 사회에 대한 짧은 지식만으로 수업을 하기에는 제 내공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힘찬 글씨체로 ‘세계를 변혁하자’고 외치는 전태일 노동대학의 신문 광고(한겨레 신문 생활광고)였습니다. 무작정 전화를 걸어 신입생으로 등록을 하고 싶다고 하니 오히려 학습관 쪽에서 당황했다고 하더군요. 보통은 공단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지인(知人)의 권유를 받아 조직되는 형태인데, 이례적이었다고요.

전태일 노동대학 공부를 하면서 감히 다룰 수 없었던 주제로 수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수업 준비가 즐거웠고 스스로 내용이 풍성해지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나름의 확고한 논리도 생겼고요. 노동대학에서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영화 ‘300’에서 오리엔탈리즘을 읽어 내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게다가 사회주의는 실패한 체제라고 믿었을지도 모릅니다. 근대를 문명화된 시기로, 또는 역사 구분을 위한 편의상의 숫자로만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고요. 노동착취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도 없었겠고요, 지금도 진행 중에 있는 여러 나라들의 사회주의적 도전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을 겁니다. 노동조합원으로서 정체성도 불투명했을 테고.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에 정의로운 사람이 이렇게 많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해 염세적인 생각에 빠져 살았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공부를 아이들과 꼭 나누고 싶다는 생각은 제 수업의 내용을 질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당연히 교장실에 불려가는 횟수는 늘어났지만 괜찮습니다. 1년에 두어 번 노동대학에서 운영하는 충북 영동의 수련원에서 전국의 활동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한결같이 드는 생각은 ‘언제나 배움이 있는 곳에 적(籍)을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교사만큼 배움을 게을리하는 집단도 드물 것 같습니다. 승진시험에 매달릴 이유도 없고, 그 밥에 그 나물인 교과서 내용은 사람을 나태하기 만들기에 딱 좋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출판사에서 교사용 교과서를 따로 만들어 주더라고요. 마치 교사용 문제집처럼 모든 설명이 적혀 있고, 멀티미디어 자료 CD-ROM을 제공해주니 앞으로는 수업 자료를 제작할 일도 사라질 것 같습니다. 큰 고민 없이 출판자본이 제시해주는 길만 충실히 따라가면 ‘기본은 하는’ 선생으로 정년을 맞을 수 있다는 건 자본에게 축복이요, 인간에겐 불행이 아닐까요?

2010년에 노동대학을 졸업하고 그 다음 해에 다시 1학년으로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겨울에 졸업을 하면 내년에는 세 번째 입학을 할 것 같습니다. 혁명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했으니 아직 부족한 자기 혁명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저 자신을 배움의 과정 속에 놓아야겠지요. 그렇지 못하면 언제 제가 흔하디 흔한 꼰대가 될 지도 모르니까요. 그만큼 저에게 전태일노동대학은 고마운 곳이고, 배운 만큼 살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마음의 빚이기도 합니다.

올해 또 담임에서 밀려 났습니다. 학생부 유배 생활이 길어집니다. 그런데 어쩌면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담임을 못하는 바람에 담당 동아리 아이들이 좀 피곤해지겠지요. ‘올해는 빡시게! 공부하는 동아리로 만들겠다’고 엄포를 놓는 바람에 두 명이 다른 동아리로 도망갔지만 나머지 9명의 아이들만큼은 세상을 바로 볼 눈을 틔울 겁니다. 동아리 첫 시간의 주제는 쌍용자동차 파업투쟁입니다. 그리고 노동권이야말로 인간다움의 시작이라는 점을 강조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번에는 반올림 활동가 한 분을 모실 생각입니다. 탐욕의 제국을 보여줄까 하다가 제가 2초 정도 출연한(45분 지날 즈음에 출연합니다) ‘또 하나의 약속’으로 생각을 바꿨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수업도, 동아리 활동도 제 가치관과 신념을 위한 자기만족일 수 있지만, 그 자족 덕분에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있습니다. 스스로 배우지 않으면서 배우라는 얘기를 할 수는 없으니까요. 사실 나쁜 자족은 열심히 밤늦도록 보충수업을 하며 자기 용돈 벌이를 위해 입시체제의 부역자가 되는 일이 아닐까요?
유연해야 하지만 조금의 타협도 없이! 철없고 고집세고 뻔뻔스러운, 그리고 부양가족 없는 총각 선생은 일단 갈 데까지 가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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