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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호 [초점] 2013 한국의 역사교육과 역사교육운동

2013.12.18 16:08

진보교육 조회 수:582

[초점]  
  
2013년 한국의 역사교육과 역사교육운동
- 역사교과서, 한 판 싸움이 벌어지다


김육훈/서울 신현고


1.
  지난 대선은 현대사 인식을 둘러싼 대충돌이란 양상을 포함했다. 그래서 대선 이후 역사인식이나 역사교육이 중요한 정치사회적 쟁점이 되리라 예상한 사람은 많았다. 역사교육 주체들도 이를 예상했고, 어느 정도는 대비했다.
  2013년이 시작된 뒤, 예상대로 역사인식과 역사교육을 둘러싼 다양한 논점이 나라 안팎에서 제기됐다. 먼저 제기된 문제는 극우파가 주도하는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 문제였다. 아베 정권은 한국과 중국의 반발을 아랑곳하지 않고, 영토분쟁 도발, 야스쿠니 신사 참배, 교과서 검정제도 수정 등을 밀어붙이려 했다. 일본 우파의 역사인식,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는 한국인의 민족감정을 건드리는 그저 정서적 차원이 아니다. 침략을 정당화하는 역사인식이 동아시아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현재-미래 인식과 직결된다.
  언론도 일본 우파 정권의 행보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였고, 수많은 국민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보탰다. 역사교육의 주체들은 근현대사 교육이 강화될 필요성을 지적하고, 동아시아 평화와 공동 발전을 꾀할 새로운 역사인식의 수립과 역사교육의 개편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근혜 정권도 일본 우파의 역사인식을 분명하게 반대했다.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강력한 반일 메시지를 내놓았고 지금까지 비슷한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를 비롯하여 일본의 역사인식을 질타하고, 독도 문제와 역사인식 문제를 대일 외교와 연계했다. 그래서 일본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일 정상회담을 응락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박정권의 ‘반일’이 갖는 의미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반일’ 기조가 침략적인 일본 우파의 역사인식을 비판하는데 그칠 뿐 더 나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위안부와 독도 문제를 제외하면, 한국의 우파 정권은 일본 우파와 생각하는 바나 행동하는 바가 매우 흡사하다. 심지어 최근에는 일본 우파의 역사인식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그 속에는 많다.
  그래서 이 정권의 ‘반일’은 이승만의 반일민족주의를 연상시킨다. 수십년 전, 거의 친일파 정권이라고 불러도 좋을 이승만 정권은 집권 기간 내내 강경한 반일 민족주의를 고수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친일 정권이란 자신의 정통성 문제를 은폐하는 데에 효과적이란 생각에서였다. 현 정권의 ‘반일’이 이같은 성격을 갖는다면, “과거사 청산이 부족하긴 하지만, 한미일 동맹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 등과 같은 주장을 내걸고 느닷없이 친한 척 하고 나설지도 모른다. 박정희의 한일 회담 추진 때처럼.
  어쨌거나 아베 정권의 역사인식은 앞으로도 여러 차례 이슈화될 것이다. 그러나 현집권 세력은 문제시하면서도 실상은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것이다. 서로가 상대를 적절한 수준에서 비난하는 것이 자국 정치에 유용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적대적 상호의존이라 할까.

2.
  지난 6월 17일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역사교육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얼마 전 언론에서 실시한 청소년 역사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고교생 응답자의 69%가 6.25 전쟁을 북침이라고 응답한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며. 사실 대통령의 말은 완전히 엉터리 정보를 토대로 한 잘못된 이야기였다. 북침이라 응답한 학생 69% 대다수가 실은 북침의 뜻을 북한의 침략으로 오해한 데서 빚어진 것으로, 역사인식이 아니라 국어능력의 문제였던 것이다. 이 사실은 대통령의 말이 있던 바로 그날 밝혀졌다. 그러나 대통령도, 대통령의 말을 받아 쓴 수많은 보수 언론도 그 잘못을 바로잡지 않은 채, 역사교육을 바로잡아야 한다고만 주장하였다. 그들로서는 아베가 만들어놓은 역사교육강화 여론에 편승하여, 역사교육을 그들 방식으로 개조하려는 속내를 드러낸 행위였기에 애초 그 통계 자체는 관심 밖이었다.
  상반기 내내 여러 갈래에서 ‘역사교육을 강화하자’는 주장이 들려 왔다. 어떤 이들은 일본의 우경화에 맞서 동북아 평화를 위한 역사인식의 수립이 필요하다고 했다. 어떤 이들은 일베나 일부 극우파 인사들, 그들을 끌어들인 일부 종편의 민주화 운동 폄훼를 우려했다.  2008년 이래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한국사 교육을 통한 국가정체성 확립을 내걸었다. 집권세력은 역사교육강화 여론을 적절히 관리하면서 그 열매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행보를 선보였다. 한국사 수능 필수화 제안이 바로 그것이었다.
  한국교총은 앞장 서서 이 주장을 확산시켰고, 한국현대사학회를 비롯한 뉴라이트 계열 단체들, 동아일보를 제외한 대다수 보수 언론도 한국사 수능 필수화를 찬성했다. 수능 필수화야말로 한국사 교육 강화를 가져올 수 있고, 한국사가 국가정체성 교육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역사교육강화 여론 위에 서 있어서인지, 반대 진영은 한참 있다가 등장하였다. 전교조가 수능 필수화를 반대했고, 경향과 한겨레 같은 진보 언론도 이에 동참했다. 한국사 교육이 유신 시대 국사교육과 같이 독재정권을 뒷받침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 매우 중요한 배경으로 작동했다.
  전국역사교사모임이나 역사교육 학회들은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는 것, 그래서 내부적으로 찬성과 반대 의견이 엇갈린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역사교육이 학교 교육의 일부로 존재하며, 역사교육 정책은 교육과정과 평가, 수업 등 종합적 고려가 필요하다. 수능 한국사 필수화를 주장한 집권 세력이든, 그에 찬성 혹은 반대한 진영이든 전체적으로 제도 교육 안에서 역사교육의 위치를 전반적으로 돌아보지 않은 상태에서 논의를 한 것이다. 그 속에서 역사교육강화 프레임은 수능필수화 찬반 프레임으로 좁혀졌다.
  그런데 돌아보면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를 토론할 여지는 있었다. 특히 전교조나 진보진영의 경우 다른 상상력으로 문제를 접근해야 마땅했다. 한국사 교육의 파행은 MB 정부가 2007 교육과정을 개정하고 수능체제를 개편함으로써 고등학교의 시민교육이 사실상 붕괴해버린 결과의 한 표현이었다. 아이들은 한국사도 모르지만, 경제나 법과 정치를 배울 기회도 이제 거의 사라지고 있다. 세계지리나 세계사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한국사 파행 극복 혹은 역사교육강화 등과 같은 여론의 흐름을 타면서, 문제의 교육과정을 전면적으로 재구성하자는 주장을 내걸 수 있었다. 교육법을 앞세워 민주시민 교육이 형해화된 현상을 지적하고, 역사교육과 시민교육을 함께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한국사 교육이 곧바로 독재 정당화인 것도, 일반사회 영역이 곧 민주주의 교육인 것도 아니다. 둘의 내용성을 민주주의 교육으로 재설정하고, 제도적으로 허물어지는 역사-시민교육의 기초를 회복하기 위한 새로운 담론을 선제적으로 내걸 수 있는 국면이었는데, 아쉽게도 전교조나 진보언론은 독재를 뒷받침할지 모를 한국사 수능필수화 반대를 천명하는데 머물고 말았다.


3.
  8월 30일 교학사에서 펴낸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가 검정을 최종 통과했다. 교학사 교과서는 다른 모든 교과서를 친북적, 좌파적이라 비난하는 한국 현대사학회 1, 2대 회장이 대표 저자가 되어 펴낸 교과서였다. 2008년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이 펴낸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 이래, 뉴라이트 계열 교과서가 제도권 진입에 성공한 역사적 사건이다.
  교학사 교과서는 교과서라 하기에는 차마 부끄러운 수준이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실 오류, 전거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사료와 시각 자료를 마구마구 인용한 일, 명백한 표절, 저자의 허위 약력 기재 등 학생들이 사용할 책 자격을 전혀 갖추지 못하였다. 친일 독재 미화, 헌법적 가치 훼손 등 이 책이 지향하는 가치도 심각하지만, 사실 그런 표현조차도 부끄러울 정도의 몰상식하고 수준 이하인 내용이 매우 많았다. 책을 본 이들은 좌우의 차이를 논하기 이전에, 이 책이 검정과정에서 부당한 특혜를 받지 않고서는 합격할 수 없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발행 정지나 수정보완, 불채택이 아니라, 검정을 취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검정 취소운동이 곧바로 불붙었다.
  교학사 저자들이 검정 교과서를 출원한 일이 정권적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아무리 그래도 수준이 있지, 국가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했다면 적어도 이 정도 수준은 아닐 것이라 본다. 물론 희망 사항인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의 교과서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하자, 집권 세력은 터무니 없는 진영 논리에 사로잡혀 그 엉터리 위험한 역사교과서 살리기에 나섰다. 그들의 작전은 ‘다른 7종 교과서도 오류가 많다’, ‘내용에서 대한민국 정체성을 훼손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는 주장을 녹음기 틀듯 반복하기였다.
  검정 취소 요구가 들끓자 교육부는 황당한 반응을 보였다. 교육부는 부실 특혜 검정에 대한 진솔한 사과를 끝내 하지 않았다. 심각한 논란 대상이 된 교학사 책의 발행정지나 검정 취소를 고려조차 않는 대신, 교과서 전체를 사실상 재검정하겠다고 나섰다. 이후 진행된 수정 심의 과정에서, 교육부는 노골적으로 교학사 교과서를 감싸고 다른 교과서의 약점을 잡으려 하였다. 교학사의 편향적인 현대사 서술에 대해서는 수정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다른 7종 교과서의 사소한 내용을 시비 걸어 오류 숫자를 늘리고 통설과 배치되는 교학사 필자들의 주장에 따라 현대사 서술을 바꾸라고 요구하였다.
  8월 30일부터 이 글을 쓰는 12월까지 교학사 교과서를 둘러싼 공방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당초 이 사건은 역사교과서의 교육내용을 둘러싼 좌우의 이념논쟁이라기보다는, 교과서를 쓴 경험도 없고 쓸 능력도 안 되고 잘 쓰려고 노력도 하지 않은 이들이 권력의 힘에 기대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학문의 자주성을 정면으로 짓밟은 일이고, 교육부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보다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 부당하게 개입한 사건이다. 그러나 상황이 여기서만 그치지는 않았다. 어느 순간 이 문제의 성격이 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4.
  2013년 교과서 논란은 처음부터 심각한 정치적 논쟁을 동반했다. 처음부터 야당이 전면적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시민 사회가 광범위하게 조직화되어 검정 취소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한국 민족주의가 폭넓은 지반을 지녔음을 감안하면, 나아가 2013년에 비등하였던 역사교육 강화 여론을 생각하면, 많은 국민들이 교학사 교과서에 분노하고 검정 취소 운동에 동참할 만한 이유는 충분했다. 이 교과서는 독립정신 계승, 민족의 화해협력, 민주주의, 균등사회 실현 등 헌법적 가치와 정면에서 충돌하는 내용을 담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책의 역사인식은 집권 보수세력과 상통하는 점이 많았다. 야권과 민주-진보 시민사회의 입장에서는,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국정원 문제, 이석기-진보당 사태 이후 어려워진 국면를 공세적으로 돌파하는데 교학사 교과서 논란이 적지 않게 유용했다.
  집권 보수 세력은 처음에는 적극 나서지 않았다. 여론을 관망했고, 비판 여론이 비등했을 때는 교학사 교과서 출판 포기를 검토한 흔적도 보인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이들은 대대적인 공세로 돌아섰다. “역사전쟁을 승리로 이끌자”거나, “국가정체성 교육”을 내세우는 사람들의 활동이 활발해졌다. 교학사 저자들이 앞장 서고, 여당 국회의원을 비롯한 보수단체가 바로 그들과 함께 행동에 나섰다. 다른 교과서들이 종북적 서술을 담았다고 매도했고, 교학사 교과서 비판 세력을 공공연하게 종북 세력으로 비방했다.
  교육부가 주도한 수정 권고와 수정 심의는 교과서 문제가 종북 몰이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양상을 분명히 보여준다. 교육부는 교학사 교과서의 친일 미화와 관련된 부분을 일부 손보도록 한 뒤,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 북한의 분단 책임을 비롯한 북한 관련 서술 일체를 교학사 식으로 개편하겠다고 나섰다. 고엽제 전우회를 비롯하여 우파 단체들의 위력 시위와 불법적인 홍보 활동, 교학사 저자들을 앞세운 보수 단체의 여론 몰이도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교과서를 국정으로 전환할 것을 주장하는 흐름도 본격화됐다.
  집권 보수세력의 종북 몰이는 국가권력을 동원한 불법적 대선 개입이란 마각[馬脚]이 갈수록 분명히 드러난 데 따른 정통성 위기를 상당 부분 반영한다. 그래서 단순히 교학사 살리기를 넘어서서, 교과서 문제를 매개로 한 종복 논란의 확산을 꾀하려는 양상을 띤다. 야당의 ‘역사정치’ 그 이상으로 집권세력도 노골적인 ‘역사정치’를 시도한 것이다. 그래서 수동적으로 교학사를 방어하는데 그치지 않고, 공세적으로 역사교육내용을 장악하려고 시도할지도 모른다. 국정 교과서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4.
  처음에는 일부 보수 언론이, 그 다음에는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 전환을 주장하고 나섰다. 10월 중순 이후 국정 전환 주장은 갈수록 세를 형성하여, 급기야 교육부장관과 총리 입에서 “국정제 환원 검토”란 말이 나오는 중이니, 어디서 누군가가 국정 환원을 향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역사 과목에서 국정 제도가 도입된 때는 유신 때다. 3차 교육과정 도입과 동시에 한국사와 세계사 교과서 발행제도를 국정으로 바꾼 것이다. 그러나 유신의 종말과 동시에 세계사에서 국정이 폐지됐고, 이후 꾸준히 국정 폐지 논의가 이어져 YS 정권 당시 한국근현대사가, 노무현 정부 당시 국사 과목의 국정 제도가 완전히 폐지됐다. 일제강점기 동안 조선총독부조차 검정 제도를 운영하였음을 감안하면, 국정을 검토한다는 사실 자체도 역사의 퇴행이 아닐 수 없다.
  과연 집권세력이 국정을 들고 나올지 예상하기는 어렵다. 교학사 지키기를 종북 공세의 일환으로 삼은 일처럼, 국정 교과서 제도 전환을 그같은 정치적 프로그램 속에서 고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 교육부가 2015년 고시를 목표로 교육과정 개편에 나서서, 박근혜 정권이 끝나기 전에 새 교육과정을 현장에 적용하려 한다는 믿을 만한 정보도 있다. 새 교육과정 시행에 맞추어 국정교과서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나설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원래 그래” 라는 식으로 지레 짐작하거나, 불분명한 정보를 바탕으로 예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결국 다가올 상황은 그들이 의도하는 바와 반대 세력의 저항이 충돌하는 양상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국정제에 반대하는 운동과 함께, 현재의 검정 제도를 형해화시키는 교과서 수정 절차를 정당하게 비판하고, 이를 바탕으로 교과서 발행제도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누가 확보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물론 이는 이미 확인한 바와 같이 역사 교과서 전선, 혹은 교육을 둘러싼 전선 그 밖에서 이루어지는 ‘역사정치’의 한 산물일 수도 있겠다.

5.
  대선이 끝난 뒤, 역사인식과 역사교육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질 것이라고 예견되기는 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도 이 문제가 아닌 다른 문제로 국민을 만나는 것이 유리하고, 비판 세력도 역사인식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 갖는 제한적 효과를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역사인식이나 역사교육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는 것은 정권의 정통성이 흔들리거나, 비판 세력이 마땅한 돌파구를 찾지 못할 때 빚어지는 일이다.
  현 정권이 다른 영역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하면 끝없이 공안 몰이에 집착하려 들 테고, 그럴 경우에 역사 영역은 중요한 전장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그렇게 나올 때 역사 진영이 이를 방어하는 싸움에서 패퇴할지 모른다. 검정 교과서가 강제로 수정당하고, 국정 교과서제도도 도입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가기까지 부당한 수정 지시와 맞서 싸우고, 국정 교과서 제도 도입에 맞서 싸우는 과정은 그 하나하나가 그것을 강제로 도입하려는 세력들에게 상당한 타격을 줄 것이다. 그래서 역사교육을 매개로 싸우는 이들은 자신의 전선에서 패함으로써 다른 전선의 패배를 지연시키거나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는데 기여할 수도 있다.
  역사교육 전선은 어려운 국면에서 많은 사람을 결집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의제를 설정하고 싸워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두 가지 방향이 될 것이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행위에 대한 합법적 저항, 그것은 민주공화국의 헌법적 가치를 분명히 하고 민주공화국의 시민을 기르는 (역사)교육 실현을 위한 노력이다. 교학사 문제는 두 지점 모두에서 비롯된 전선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역사 전선은 교육 전선의 중요한 한 축이고, 곧바로 민주주의 전선이 된다.
  “수능 한국사 필수화 반대”, “친일 독재 미화 반대”, “국정교과서 반대”와 같이 반대를 위한 투쟁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 퇴행을 막는 것은 진보를 위한 운동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 전선을 넘어 새로운 전선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지향하는 가치를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주체 세력을 결집하려는 노력도 필요하겠다. 나는 역사 교육 전선에서 ‘민주공화국의 시민을 기르는 교육’이란 깃발을 세우고 가능한 실천을 탐색 중이다. 교육 전선에서도 우리의 이러한 실천을 싸안으면서도, 더 넓은 전선과 연결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주기 바란다. 작은 전투들이 결국은 큰 전선의 향배와 직결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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