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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호 [현장에서] "철들고 싶지 않습니다"

2013.12.18 15:54

진보교육 조회 수:861

[현장에서]                    
                       철들고 싶지 않습니다

                                                 권용해/ 안산00고

‘못 쓸 것도 없지’하는 생각으로 숙제를 받아 안았는데, 결국 마감에 쫓겨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주변에서 ‘애송이’라거나 ‘계륵’이라는 별명을 듣고 사는, 교직 8년째의 젊다면 젊은 남교사입니다. 아직 투박하고 철이 없는 애송이 교사의 넋두리를 어여삐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학교는 경기도 안산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입니다. 김상곤 교육감이 모처럼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어 줬는데도 생활지도가 별로 달라진 게 없습니다. 사립학교인데다가 부장교사의 성향도 그렇고. 바지 밑단과 치마 길이를 cm단위까지 정해서 닦달하고, 매니큐어칠도 끄집어내는가 하면, 물티슈를 들고 다니며 비비크림 바른 아이를 적발하는 분도 있지요. “너무 심하지 않으냐”고 슬쩍 문제제기하면 “니가 할 일부터 똑바로 하고나서 문제제기하라”는 핀잔이 돌아옵니다.
저는 교문 지도를 게을리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이런 저를 의아하게 여기는군요. 착한 건지, 바보스러운 건지 저한테 스스로 다가와 “뱃지를 안 달고 왔다”고 자수(!)하는 아이들도 꽤 많습니다.
더 딱한 아이들은 바른생활 부원들이겠지요. 고생스럽게 남들보다 매일 한 시간이나 일찍 등교하는데다가 학우들에게 못할 짓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애들은 동급생을 적발하는 것이 못할 짓이라는 자의식이 없어 보이니 좀 서글픕니다. “오늘은 적발을 많이 하지 못했다”며 송구스러워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그 학생들에게 “다음엔 제로에 도전해 보자”고 격려해 주는데 옆자리에 학생부장이라도 있으면 그런 얘기가 쑥 들어갑니다. 한나 아렌트는 “생각하지 않는 것도 죄”라고 말했는데, 학교가 아이들에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못하는군요.

동료 선생들은 우리 아이들이 착하다고, 말 잘 듣고 말썽 안 부린다고 좋아합니다. 다른 학교 선생들도 이런 점을 부러워합니다. 얼마 전까지 안산은 비평준화였고 우리 학교가 성적 상위서열에 속해 있기에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착하다’는 말은 좀 수상쩍습니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 교칙을 지키고 안 지키고하는 것으로 선악을 구분하다니요. 아이들은 모두 착하지요. 다만 성적이 좋은 아이들은 더 계산적이고, 복종에 대한 거부감이 덜한 편이고요, 교칙을 자주 어기는 아이들은 제 거부감을 드러내는 데에 두려움이 적은 것이겠고요. 두려워서 순종하는 아이를 놓고 교사들은 ‘착하다’고 칭찬합니다. 심지어 생활기록부 기록을 갖고 아이들을 을러대는 교사도 있는데, 이것은 어른이 할 짓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말썽을 부려서 학생부에 불려온 아이가 더 정이 갑니다. “차라리 너희가 솔직한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구나.” 선생들 중에는 모든 아이를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면서 한편으로 말썽꾸러기들의 입학을 되도록 막았으면 좋겠다고 모순된 말을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전교조 교사들도 제 자식, 좋은 대학 보내는 데에 열 올리는 일이 흔합니다. 우리는 거짓과 기만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러저런 이유로 제게 붙여진 ‘애송이’, ‘계륵’이라는 별명이 저는 그리 싫지 않습니다. (제가 현실에 도전해서 무엇을 바꿔내는 실천가는 되지 못했다 해도 적어도 이 체제의 부역자가 아니라는 것만은 입증해주기 때문입니다. 전교조가 제게 ‘기댈 언덕’이 돼주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무슨 제도가 불합리한지 생각하게 만들어주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준거를 마련해 준다는 점, 또 어디서든 함께 싸우고 있기에 외롭지 않다는 것! 비록 제가 세상을 바꾸는 일에 변변히 나서지는 못하고 있으나, 적어도 세상이 나를 바꾸지 못하도록 막아내는 싸움은 벌일 수 있도록 말입니다.  

제가 새내기 대학생이 된 1998년은 학생운동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리던 때였습니다. IMF환란이 터지고, 다들 안정된 일자리를 찾느라 눈이 벌개지고, ‘교직’이 최고 인기 직업이 되었던 시절입니다. 그런 심리는 99, 00, 01학번으로 내려가면서 부쩍 심해졌지요. 학우들은 임용고사에만 고개를 파묻고 살았고, 학생회 간부 대여섯 명만이 허둥대며 사업을 만들어냈습니다. 정치 현안에 대한 대자보를 읽는 학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청주(제가 다닌 대학)에서 서울 노량진까지 뻔질나게 유명 학원강사를 찾아다니는 학생들에게 전교조가 관심거리로 다가갈 리 없었지요. 저는 그때 공교육을 떠맡을 예비교사로서, 과외로 용돈을 벌 수는 없다는 고집을 품었더랬는데 제 고집이 학우들에겐 뜬금없는 망상쯤으로 비쳤겠습니다. 요즘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과외자리를 찾아다닌다고 합니다. 사범대학 학생은 대우가 더 좋다면서요. “이것도 모두 가르치는 경험이 되는 일이니 좋은 거 아니냐”는 해괴한 명분도 늘어놓습니다.

요즘 학교가 갈수록 장사판이 돼갑니다. 학교 당국은 아이들을 보충수업에 끌어들일 유인책을 찾느라 자못 심각하게 사색(思索)에 잠깁니다. 선생들은 정규 수업은 어떻게든 시수(時數)를 줄이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보충수업은 (방학도 반납한 채) ‘한 시간이라도 더’ 하려고 애를 씁니다. 교사의 자존감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선배 교사들은 제게 “젊은 사람이 쉬면 뭐하냐”, “열심히 보충수업 해서 하나라도 더 가르쳐야지”하고 충고합니다. 저는 졸지에 ‘열심히 하지 않는 교사’가 돼버렸고요, 자존감을 다급히 회복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저인 것 같습니다.  
한때 저는 ‘씨줄날줄반’이라는 강좌를 열어서 30여 명의 아이들과 통일, 노동 등을 주제로 10시간 수업을 진행한 적 있습니다. 수위 높은 이야기도 하고, 지역에서 노동운동하시는 분을 모시기도 했었고요. 물론 “엄마한테 이르면 안 된다”고 당부도 했고요. 그런데 그것이 보충수업의 하나였기 때문에 보충수업비를 받았는데 돈 몇 푼이 반가우면서도 어딘지 속이 켕겼습니다. 보충수업으로 논술을 지도하는 분들 중에 수업료와 첨삭비용으로 수천 만 원을 받는 선생도 있다고는 하지만. 그야말로 억대 연봉자!
“학생들이 학교에서 보충수업을 하면, 학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정부에서 떠드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교사들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학원에 가는 까닭은 학교 공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나만 더 특별히 배울 수 있는 곳’을 찾기 때문이 아닐까요? 무한경쟁이 낳은 풍속인데도 이를 당연시합니다.
생각해보면 교사야말로 가장 정치적이고 사회적 의식이 높아야 할 것 같습니다. 프랑스 영화를 본 기억이 나는데, 1차 세계대전 무렵입니다. 영화 속 초등학교 선생이 공화파를 지지한다고 열을 올리더라구요. “전교조가 너무 정치적이어서 싫다”거나, “초심으로 돌아가서 참교육만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들한테 들이댔으면 싶은 장면이었습니다. 제 생각은 전교조가 대중조직이긴 하지만 더 정치적이고 투쟁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법외노조 문제는 전교조가 취해야 할 전망이 무엇인지 보여준 것 같습니다. 한 때 수용과 거부 중 무엇이 옳은지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지회 집행부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고요. 정권이 “너희들끼리 일단 한번 싸워봐라”하고 꾀는 것도 같아서 서로를 비판하기도 조심스러웠습니다. ‘더 많이 활동하신 분들이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시겠지’하면서도 자꾸 생각났던 건, 작년 김진숙 지도위원이 강연에서 전교조는 존재감이 없다고 했던 말이었습니다. 전교조가 정신 좀 차리라는 꾸짖음이지요. 전태일 노동대학의 김승호 대표도 “전교조는 교육운동을 한다고 얘기하면 안된다”고 말한 적 있습니다. 전교조가 여지껏 누리던 것을 지키는 데만 급급하다가 존재감이 없어져 버린 거라면 지금 절실한 건 굴종의 삶을 떨쳐 반교육의 벽을 부수는 참교육 전교조가 아닐까요?

세 번이나 담임에서 밀려나 올해도 학생부로 유배당했습니다. ‘담임 배정’을 큰 권력으로 여기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문제 사이트인 ‘일베’에 우리 학교와 제 실명이 뜨자 영락없더군요(네이버에 제 이름을 치니까 연관 검색어로 ‘일베’가 뜨더군요). 작년 연말 수업 시간에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이른바 일베를 하는 아이 한 명이 제 수업을 녹음하고 제 페이스북을 캡쳐한 사진과 함께 일베에 게시한 일이 있었습니다. 일이 좀 크게 번져 학교에서도 알게 되고 결국 법인으로부터 경징계를 받았습니다.
“학교에 누를 끼쳤으니 올해도 담임은 없다!” 47학급에 담임교사를 희망하는 교사는 20명 남짓인 상황에서 이런 벌칙은 저로 하여금 ‘삐뚤어질테다’하는 마음을 먹게 만듭니다.
담임 배정을 받지 못할 때마다 상처를 받습니다. 담임을 하지 않으면 도통 선생 노릇을 하는 것 같지가 않고, 더욱이 게을러집니다. 아이들과 농촌활동을 갈 수도 없습니다. 대학 때 겪은 농활 경험을 밑천으로 2007년 첫 담임을 하던 때부터 여름방학 때면 스무 명 정도의 아이들과 함께 농활을 다녀왔습니다. 보충수업 때를 피해야 하니까 닷새가 고작이었지만 한 여름 땡볕에서 땀도 흘리고 마을회관에 머물며 밥도 함께 지어 먹고(밥은 하늘입니다~로 시작하는 ‘밥가’도 꼭꼭 챙겨 불렀답니다) 마지막날 밤에는 마을 이장님과 낮에 일을 도와드렸던 어르신들을 모시고 음식을 준비해 조촐한 마을 잔치도 하면서 대학 농활 흉내를 꽤 그럴듯하게 내기도 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막걸리를 한 말이나 마셨으니 그야말로 말술이었지요. 조금만 더워도 에어컨 틀어달라고 떼를 쓰는 아이들이 정작 시골에 내려가서는 선풍기 두어 대에 의지해서 별 다른 불평도 없이 잘도 버틴 걸 보면 무척 대견한 일이지요. 3년째 되던 해에는 우리 농활대의 활동이 충청일보에 기사로도 났고요. 포토샵을 잘하는 아이에게 부탁해서 농활대원들의 단체티셔츠 도안을 그려 맞춰 입기도 했습니다. 대학 가서도 꼭 농활을 가겠다는 아이들도 많았는데 요즘은 학생회가 무너지면서 농활도 함께 사라져버린 듯합니다. 있어봤자 대학 측에서 추진하는 농촌봉사활동 정도가 고작이고요. 그건 농활이 아니죠.
제 대학시절이 떠오르는군요. 여름 농활도 열 명 정도 겨우 조직할 수 있었던 학생운동의 끝자락에서 농활을 경험할 수 있었다는 건 지금 생각해보니 참 다행스러웠습니다. 한 두 해만 늦게 대학에 입학했더라도 경험도 못했을 겁니다.
강의는 F학점을 받기 직전까지 빠져주는 게 대학생다운 모습인 줄 알았습니다. 자체 휴강을 하고 어디선가 낮술을 마시고 있는 선배들은 없는지 찾아다니고, 술자리가 일찍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술자리도 점점 키웠고요. 2학년 때는 학사경고도 받았는데 그리 후회되는 시간을 보낸 건 아니었습니다. 수업을 열심히 듣고 레포트도 열심히 쓰던 동기들보다 더 많은 것들을 선배들과의 술자리에 배웠거든요. 게다가 마음맞는 선배들과 반항적인 펑크락 밴드를 결성해서 지금 생각해도 너무 신났던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살짝 빼돌린 학교 음향 장비를 월 7만 원짜리 구석진 자취방에 옮겨 연습실로 꾸며놓고(시끄럽다고 근처 주민들이 경찰에 신고도 했지만) 공연도 했습니다. 학부제를 추진하던 총장에게 욕설을 하고 학교 잔디밭에 불도 지르면서 저희 밴드는 교원대에서 반항의 아이콘이 되어 버렸는데요, 이런 경험 때문에 지금도 같은 학교 선생님들과 락밴드를 만들어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별로 실력은 없지만 아이들이 환호해 줄 때면 연예인이 된 기분이기도 하고요. 올해 축제에서는 아이들과 프로젝트 밴드를 만들어 합동공연도 했었습니다. 방송도 몇 번 탔고요(9시 뉴스에도 나왔습니다!). 만약 학사경고를 받아가면서까지 음악을 하겠다는 외도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 하나를 잃었을 것입니다. 비록 요즘 아이들의 음악을 잘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축제 때 아이들의 공연을 팔짱끼고 지켜보는 교사가 아니라 그 무대에서 아이들과 함께 노래하는 교사일 수 있다는 게 참 다행스럽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범적인 코스를 밟아 온 사람보다 삶의 굴곡이 많은 사람이 교사를 하는 것이 더 좋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저는 애들 복이 있다고 믿고 삽니다. 언제나 그 해에 가장 착한 아이들만 우리 반으로 모여 들었기에 갖게 된 믿음입니다. 크게 사고 치는 아이도 없었고, 저와 사이가 틀어져 스트레스를 받은 아이도 없습니다. 다른 반 학생들은 제게 담임에 대한 불평을 마구 털어놓는 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우리반 아이들은 ‘담임은 우리 편’이라고 믿어주었고, 덕분에 저 역시 든든한 지원군을 얻었지요. 그래서 바쁘고 피곤해도 아침 저녁 조종례 시간만큼은 즐거웠습니다. 매일 아침 사설과 칼럼을 나눠주고 한 달에 한 번씩 퀴즈 대회를 해서 상품도 주고요, 생일에는 책 한 권씩을 선물하면서 가슴에 새겼으면 하는 이야기를 적어 주기도 했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받은 만큼 돌려준 것 뿐이지요.
하지만 제가 훌륭한(?) 교사가 됐던 비결은 짐작컨대 보충과 야자를 강제로 시키지 않은 것과 외출증을 잘 끊어준 점일 겁니다(학부모들은 저를 싫어하거나, 뜻은 좋지만 자식을 맡기기에 불안하다는 분들이 많았답니다). 다른 반 아이들은 당연히 부러워했고요.
그렇다고 보충과 야자를 강제하는 교사들이 꼭 몰상식한 건 아닙니다. 그 분들도 나름대로 아이들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어디서부터든 입시경쟁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최소한의 인간적 연민을 실천해야 합니다. “위대한 휴머니스트가 되자”는 말은 쉽게 떠올릴 말이 아니지만, 세상에 너무 순종하고 살도록 다그쳐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아이들 성적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누가 공부를 잘하는지, 자연스레 알게 되는데도 학년초 교무실에서는 누가 성적이 좋고 누가 문제아인지, 부모는 뭘하는 사람인지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어느 반은 공부를 잘해서 좋겠다’하는 부러움도 퍼져나갑니다. 저는 그런 이야기판에는 잘 끼지 않는데 그러다 보니 “담임을 맡기를 싫어하는구나”하고 저를 비평하는 얘기도 귓전에 들립니다.

요즘 아이들이 워낙 시험과 점수에 민감하다 보니 문제풀이 수업만 공부라고 여깁니다. 시험에 나오는 것만이 중요한 공부가 됐습니다. 시험이 끝나면 그 공부 내용은 허공 속으로 휘발되어 버립니다. 무릇 공부란 사람의 삶을 바꿔내는 것이어야 하는데 그런 개념이 들어설 자리가 어디에도 없습니다. 전교조 ‘수업혁신 모임’이 오랫동안 있어왔는데 거기서도 ‘무엇을 가르칠까’보다 ‘어떻게 가르칠까’만 토론합니다.
저는 처음 교단에 섰을 때 문제집과 참고서, 학원에서 배우는 것 아닌 내용으로 수업을 짜 보자고 다짐했더랬습니다. 국어 교과서에 실린 ‘황소개구리와 우리말’ 단원을 가르칠 때는 다음과 같은 문항을 시험에 냈습니다.

<보기>의 자료를 참고하여 위 글에 대해 비판적으로 반응할 때,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지구촌’은 미국에 의해 주도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며 전세계를 다국적 기업의 상품 시장으로 만들겠다는 초국적 자본의 욕망이 관철된 어휘이다. 이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양극화를 부추기고 후진국 국민들의 가난을 심화할 뿐이다.
․사회구조는 토대를 이루는 하부구조(생산관계, 경제․물질적 측면)와 상부구조(법률, 문화, 교육, 정치권력 등의 의식적 측면)로 이루어져 있으며, 하부구조는 상부구조를 규정한다.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 - 故노무현 전대통령
․남미 등 전세계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많은 국가들은 세계화를 지향하는 ‘다보스포럼’에 맞서 ‘세계사회포럼’을 결성하여 국제 투기자본에 대한 규제, 인종주의 청산, 여성운동 활성화 등을 주제로 다양한 토론회와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한국에서 영어를 강조하는 진짜 이유는 사회 지배 세력의 입장에서 볼 때, 영어가 사회적 차별을 정당화할 수 있는 효과적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국인 모두가 영어를 잘 할 필요가 없으며, 그렇게 만들 수도 없다는 근원적 문제는 쉬 가려지고 국가 경쟁력을 키우려면 모든 국민이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헛소리’가 나온다. 전국민이 영어에 대한 중압감을 겪는 광경을 상상해보라. 이를 국제경쟁력이라는 허울로 가릴 수 있겠는가?


① 세계화를 언어 문화적인 측면에서만 파악하는 것은 신자유주의를 내세워 전세계를 상품 시장화 하겠다는 자본주의의 근본 성격을 간과한 것이다.
② 외래 문물의 유입으로 세계화를 단순화하는 글쓴이의 시각은 사회 구조의 경제적 토대에 대한 부족한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③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사회 지배세력의 입장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는 영어를 빌미로 기득권을 유지하게 해주는 수단이 될 것이다.
④ 세계화에 따른 언어적 종속현상에 대해 우리말을 아껴야 한다는 식의 의식 전환을 요구하는 대안은 현실적이지 않으며 적절하지도 않다.
⑤ 자국의 문화적 토양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남미의 여러 국가들처럼 외래 문물의 유입을 막는 반(反)자본주의적 국제 연대를 결성할 필요가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1학년들한테 말도 안 되는 문제를 낸 셈이지만, 더 황당했던 것은 시험이 끝난 뒤 같은 지역 학원에 있던 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기였습니다. 자기 학원의 국어 선생님들이 시험 문제를 칭찬했다나요? 국어 문제가 어려워서 앞으로 애들이 학원에 많이 오겠다면서! 아차 싶었습니다. 학원 강사에게 칭찬을 받았다는 묘한 자괴감도 들었습니다. 그 뒤로는 애들에게 괜한 스트레스를 주지 말자고 되도록 쉽게 문제를 냅니다.
이 학교에 들어온 뒤로, 해마다 몇 번씩 교장실로 불려갑니다. 제가 좌편향 교육을 한다며 교사의 정치적 중립을 말하시는군요. 최근에도 수업 자료와 과제물을 보여드린 적도 있습니다. 소설가 황석영을 좌파라고 부른다면 대한민국은 얼마나 우경화된 사회인가요?

요즘 아이들은 타인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이 몹시 낮은 것 같습니다. 되도록 아이들을 긍정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좋아 보이지 않는 구석이 분명히 있습니다. 모든 학생이 다 그런 것은 아니라 해도 이기적 심성이 전반적으로 뚜렷해진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남의 말에 대한 반응도 즉흥적이고 고민 없이 내뱉는 말도 많습니다. 글을 읽는 것도 싫어하고 쓰는 것은 더더욱 질색합니다. 필체도 날림이고. 엄지족 엄지손가락을 써서 민첩하게 통화하고 정보를 검색하고 게임을 즐기는 세대.
이라 말을 줄여 쓰는 것 맥도날드를 ‘맥날’로, 롯데리아를 ‘론리’라고 부릅니다.
을 당연시합니다. 공감대도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소설 ‘순이 삼촌’을 배울 때 ‘잠들지 않는 남도’라는 노래를 불러주면 공감하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키득키득 웃는 아이들이 더 많습니다. 어찌 해야 이 아이들의 감성이 회복될지! 제가 힙합이라도 해야 할까요?
학교 폭력을 예방하자는 목소리가 시끄럽습니다. 제가 학생부에 있으니 그 법석떠는 모습을 늘 보는데, 하릴없는 짓이지요. 언젠가는 폭력 예방을 위해 평화인권교육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넌지시 건의했다가 ‘좌편향’ 소리만 들었습니다.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사들이 설 자리가 없다”고 얼굴을 붉히는 분들에게는 몹시 발칙한 건의였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학생 장악력을 자랑하는 어떤 분이 제게 노하우를 가르쳐 주시더군요. “첫 대면 때 무섭게 하고, 서서히 풀어 주라!” 그런 군사문화의 찌꺼기 때문에 공주사대부고 학생들이 억울하게 죽어간 것 아닐까요? 저는 제가 부디 ‘꼰대’로 변신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제가 주변 사람들과 늘 불편하게 살다 보니까 근래 사귄 여자친구와도 좀 껄끄러워졌습니다. 제가 전교조 활동하는 것을 여자친구가 그리 반가워하지 않는군요. 결혼 얘기도 한때 나눴지만 이 충돌이 분명해진 뒤로 서로 피하고 있습니다. 작년 한 해는 이 문제로 운동과 좀 멀어졌다가 마음의 빚을 외면할 수 없어서 올해는 지회 집행부에도 다시 나갔습니다. 주변의 선배 조합원들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이해를 하고 얘기를 많이 나누라”고 하시는데 명쾌한 조언 같지는 않습니다.
한 달만 지나면 서른 다섯입니다. 친구들은 다들 결혼해서 아이를 둘씩이나 낳았습니다. 집도 사고(은행빚은 좀 있겠죠) 차도 사고. 그들과 견주자면 가진 게 없군요. 결혼은 할 수 있을까 싶고, 집을 꼭 사야 하나 싶고. 친구들이 저녁때 술 한 잔 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낫다 싶기도 하고. 대학 때 불렀던 ‘새 세대 청춘 송가’에 “내가 철들어 간다는 것이 내 한 몸의 평안을 위해 세상에 적당히 길드는 거라면 난 결코 철들지 않겠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저도 철들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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