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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보고] 혁신학교 일기

“괜히 왔다 그러나 쫌 행복하다”
- 혁신학교에서 전교조 교사로 산다는 것

정용윤 / 서울상현초


  혁신학교라는 말이 학교 현장에 나돌 때 나는 귀를 기웃거리지 않았다. 내부형 교장 공모제를 준비하고 혁신학교에 대해 ‘공부’하는 모임을 만들 때 한 번도 그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 어떻게 학교장이 대장인 교육현장에서 그러한 실험이 가능하겠는가, 입시 위주의 교육시스템을 그대로 두고 어떻게 교육혁신이 가능하겠는가! 어쩌면 대한민국에서 교사로서 살면서 나름으로는 불합리와 비인권적인 것들, 성장과 발달을 가로막는 여러 ‘평가방식’들과 싸워왔다고 여겼지만 나도 얼마쯤 패배의식을 품고 있었는지 모른다. 싸워봤자 안 되는 것에 대해 나름대로 한계선을 그어놓고 살아왔다. 이것은 나중에 혁신학교에 오고 나서 알았다. 이렇게 경계와 의심을 눈초리를 갖고 2년을 보냈다. 오랜만에 집회장에서 친구와 마주 앉을라 치면 왜 내가 혁신학교에 지원하지 않는지, 왜 혁신학교를 믿지 않는지 열을 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예전 지회 선생님들과 만난 자리에서 3년차 지정 혁신학교를 준비하는 모임 이야기를 들었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뭔가 제대로 된 학교를 만들 수도 있겠구나!’  
  모임의 이름도 마음에 들었다. 선제연! 선생 노릇 제대로 하기 위한 연구모임. 잘 하려고 하거나 칭찬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평범하게 원래 교사에게 주어진, 가르치고 배우고 나누는 삶을 제대로 한번 살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일어났다. “아, 내가 제대로 교사 생활을 해 본 적이 있었던가!” 숱한 실패의 경험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패배의식을 떨치고
  뒷산에 어린이들을 데리고 가서 눈밭에 뒹굴게 하고 싶었지만 학교 눈치를 봤다. 벤포스타 어린이 공화국을 본따 아이들에게 ‘자기 결정’의 시간을 오래 줬는데도 왜 우리 애들은 벤포스타처럼 안 될까 스트레스를 받아 교실을 뛰쳐나갔던 일도 떠올랐다. 학급임원은 뽑으라는 대로 뽑고 우리 반 벤포스타 시장은 따로 뽑는 식이었다.
  재량활동 시간에 내 맘대로 학년 교육과정을 묵살하고 인권교육을 해봤다. 하지만 교사로서의 나는 너무 폭력적이고 학교라는 공간이 어린이들에게 최소한의 친절도 베풀지 못 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어린이들에게 ‘평화’를 강요하기까지 했지만 나조차도 비폭력 대화를 어려워했다. 어린이들에게 시[詩]의 참 맛을 알게 해주고 싶었지만 국어과 교육과정에서 가르쳐야 할 것은 너무나 많았다. 지회 학년교육과정 연구모임에서는 내가 연구한 것을 공유했지만 정작 동학년 선생님들과 나누지 못했다. 어린이들은 ‘이거 우리 반만 하는 거죠?’하고 자꾸 내게 물었다.
  좀 더 나은 교육의 방향을 꿈꿨지만 ‘우리 반만 잘 되면 장땡이지’ 하며 살아오거나 적당히 타협했다. 되도록 내 스트레스 지수를 낮추는 방향으로 나는 살아왔다. 그런데 선제연은 이러한 패배의식에서 나를 구원해줬다. 그래서 지금은 어찌어찌하여 아름다운 삶을 함께 가꾸는 건강한 배움터인 상현초에서 선생 노릇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혁신학교의 원칙과 철학을 세우는 일 자체가 몹시 힘들었다. 인권적이고 평화적이고 생태적이고 계절 흐름에 맞게, 또 어린이들의 발달에 맞게 민주적이고 협력적인 방식으로 학교를 짓고 운영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튼 현재 진행형이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을 수도 있다. 의심의 눈초리로 혁신학교를 보고 있든 한국 교육의 공교육의 대안적인 모델로 보고 있든 이 글을 통해서 혁신학교에서 1년 반을 선생노릇하고 있는 교사의 상태를 보며 함께 성찰해보는 기회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개교 전 학교 공사할 때부터 먼지를 뒤집어 쓰면서 출근했다. 양치하러, 볼 일 보러, 전철역까지 걸어나가면서 과학실 바닥에 올라와 있는 배선을 묻으라고 싸우고, [운동장에서라도 아이들 흙 한번 밟아보게 하려고] ‘인조잔디 걷어내라’고 싸웠다. 어린이들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배움터를 세우라고 아이디어를 내고 관료적인 교육청과 싸웠다. 어린이들이 편안하고 앉아 지낼 책걸상을 고르고, 장을 고르고, 학교 공간을 배치했다.
  교실 팻말은 개교하고서 주문했다. 반 이름을 어린이들이 직접 지어보는 기회를 주고 싶어서였다. 반이름 짓기는 학기초 어린이 다모임 시간을 활용하여 실시했는데 다들 진지하게 회의에 참여하였고 다양한 결정 방식에 대한 안목도 기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자기 반 이름을 스스로 정하는 사건을 경험한 것이 가장 소중하다.
기존 학교 게시판과 같지 않은 교실 뒷면을 고민했고 방음이 되는 음악실을 요구했다. 화장실에 들어갈 휴지통까지 골랐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들이다. 그런데 신혼부부가 신혼집을 꾸밀 때보다 더욱 신경을 썼다. 대한민국의 학교가 갖추어야 할 교실, 형태, 물건 등을 정리해보자고 했다. 학교를 설계할 때는 교사들이 꼭 함께 참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중에 학교 건축에 대한 책을 쓰자’는 농담까지 나왔다.

                        ‘혁신’의 핵심은 교사 다모임을 꾸리는 것
  혁신학교가 뭐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바로 이렇게 대답한다.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모두 교사 다모임이오!”
  교사 다모임은 학교혁신의 출발이자 원동력이다. 교사들끼리(교장, 교감 포함) 학교의 모든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결정한다. 결정된 사항은 PDF파일로 변환하여 누구도 수정하거나 왜곡하지 않도록 한다. 이것은 일반학교의 관리자들의 일방적인 지시, 전달방식의 종례(또는 직원회의)를 넘어서는 것이다. 자기가 무언가를 결정한다는 것은 그 일에 대한 적극적 자발성, 책임감을 이끌어 낸다. 교사들끼리 자유로이 의견을 나누니 일반학교에서 미처 생각지 못했던 창의적인 발상들이 집단지성을 통해 발휘됐다. 교사들에게 자발성을 주는 순간, 학교는 일중독자들로 넘쳐난다.

  혁신학교에서의 교사의 삶을 낭만적으로만 보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혁신학교는 전교조가 꿈꾸는 이상적 학교모델의 선두에 있는 곳이므로 원칙을 훼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아야 한다. 그 첫 번째가 협력하는 교사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작년 [상현초에서의] 다면평가 거부투쟁은 이 협력하는 교사문화에 대한 철학을 공유하자는 투쟁이었다. 교사들끼리 서로를 평가하거나 줄 세우는 것은 교사의 협력적인 문화를 해치는 것이고, 이러한 발상은 ‘어린이들도 줄 세워야 한다’는 통념으로 금세 옮아간다. 그 순간 혁신학교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진정한 배움은 말뿐인 것이 된다. 그래서 교사 다모임에서는 ‘다면평가 거부'를 공식 입장으로 결정하였다. 투쟁 과정의 허물로 말미암아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도 있었지만 ’올해 다면평가에 어떠한 교사도 참여하지 않는다‘고 하는 기본 원칙과 철학만큼은 확보했다.

                              싸움 없이 혁신 없다
  다모임은 학교 구성원의 권리도 주목했다. 학교는 교육을 지원하고 어린이들을 돌보는 ‘사람’들 없이 굴러가지 못한다. 그 사람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파업을 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학교 비정규직 파업을 지지한다고, 노동조합에 가입했다고, 그들의 근로계약을 지켜 줄 것을 주장했다고 하여 관리자가 비정규직 10명 모두를 해고했다. 그들의 해고에 침묵하는 것은 비교육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서 우리는 그들과 연대했다. 비정규직 선생님들 중 몇몇은 고용 승계가 됐고 몇몇은 학교를 떠났다. 이러한 경험들 덕분일까. 혁신학교에 오고 나서 나는 집회에 더 많이 참석하게 됐다. 어떻게 보면 혁신학교에서의 생활을 통해 ‘전교조 정신’에 더 충실해진 것 같다. 투쟁하는 삶. 가르치는 일과 투쟁하는 일은 둘이 아니구나. 뭐 이런 것 말이다.

  OECD가 2010년인가에 발표한 ‘미래를 이끌어갈 몇 가지 능력’ 가운데, 이질적인 집단과 의사소통하는 능력이 윗길로 꼽힌다고 들은 적 있다. OECD가 정의한 생애 핵심역량은, 화면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자립해서 행동하는 능력, 이질적인 집단에서 상호 작용하는 능력, 도구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능력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1세기 역량 평가 및 교육 (ATC21s)”에서는 미래 사회에 필요한 역량을 4가지 분야로 나누어 소개한 바 있는데, 창의력, 협업능력, 정보 문해력, 시민 의식 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013.11.3 경향신문 김상곤 교육감>

혁신학교에서 교사 노릇을 하면서 나는 참으로 이질적인 집단과 의사소통하고 협업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협력적인 동학년 문화는 쉽게 만들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이질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교사와는 변변히 의사소통을 해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힘들었더랬다. 수업을 공동 설계하고 수업한 내용을 편하게 나누는 일이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다.

  학부모들 중에는 혁신학교를 마치 공교육식 사립학교로 오해하거나 입시가 걱정된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었다. 어린이 발달 단계에는 감각적인 뇌발달이 중요하니 숲체험을 하고 흙놀이를 하고 중간놀이 시간을 두어 마음껏 뛰어놀게 해야 한다고 아무리 열을 올려 말해도 설득이 쉽지 않아서 나는 이러한 학부모들과 마주하기를 꺼려했다. 그냥 믿어달라고 했지 터놓고 뭐가 불안한 것인지 이러한 입시체제의 문제점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머리를 맞대지 못했다. 혁신학교의 철학을 공유하는 연수에 학부모들이 참여하지 않자 불안해졌다. 배움과 돌봄을 지원할 수 있는 학부모들의 학교 참여를 독려하지 못했다. 지금은 조금씩 숲 체험 모임, 방과후 놀아주기모임, 책 읽어주는 엄마모임 등이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본다면 교사로서 내 허물을 깨닫고 성찰하는 경험을 얻었기 때문에 앞으로는 나아질 것이다.  

                              교육과정 고민은 끝이 없어
  교과서와 진도라는 개미지옥에서 벗어나려면 아직도 교육과정을 더 고민하고 더 치밀하게 재구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Too Much. 지금의 상현초 교육과정은 아무 것도 덜어내지 않아서 너무 방대하다. 아직 2013년 학교교육과정을 평가하지 않은 상태라 조심스런 의견이지만 내 생각은 그렇다. 교사의 노동집약적 수업이 너무 많다. 국가가 교육과정을 통해 요구하는 것을 모두 담아내되 불필요한 진도를 과감히 버려야 한다. 내가 능력은 부족하지만 교과서를 버리고, 새로운 교과서를 쓰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배움에는 충실하되, 진도라고 느끼지 않는 수업! 그러한 교육과정을 구성하는 것이 혁신학교의 당면 과제가 아닐까 싶다.
  관성적인 교육 문제에 맞닥뜨릴 때면 항상 혁신학교 교사들이 모여 있는 SNS에 묻는다. 혁신학교에서는 영재교육 어떻게 하나요? 혁신학교에서는 다면평가 어떻게 하나요? 왜냐하면 혁신학교에서 싸워야 할 것은 어쩌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진행되고 있는 관성적인 교육 전부일 것이기 때문이다. 혁신학교는 영재교육을 통한 수월성 교육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교육청이 영재를 학교별 몇 명씩 뽑아서 보내라고 해도 우리는 영재교육의 비전문가이니, 어린이들이 최소한 선발의 과정에는 들어갈 수 있도록 ‘학교에서는 모두 추천하겠다’는 정도의 입장은 가져야 한다고 본다. 이는 일반 대학교 영재선발시스템과 최소한 같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다모임의 논의 결과였고 원칙이었다.
  사실 대충 교육청이 원하는 대로 넘어가도 된다. 영재처럼 보이는 아이를 뽑아서 교육청에 명수를 맞춰 명단을 보낼 수도 있다. 싸워야 할 일은 이것 이외에도 너무나 많고 에너지도 많이 든다. 그렇지만 혁신학교는 제일 먼저 여러 교육정책들에 질문하고 고민하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흔히 치부해 버리는 것들에 대해 정말 교육적으로 올바른지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함께 찾아보는 것. 영재 선발을 비영재전문가들이 추천하는 것은 교육적이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힘들어도 싸웠던 것이다.
  
  혁신학교에서 교사로 사는 것은 피곤하다. 괜히 왔다는 생각도 가끔 한다. 잘못된 교육정책이나 현실과 싸우랴, 수업 준비하랴, 회의하랴, 몸이 납덩이처럼 무겁다. 하지만 한편으로 행복하기도 하다. 다모임을 통해 동료 교사와 뜻을 모을 수도 있고, 내 노동으로부터 소외되지 않는 삶을 사니까 말이다. 무엇보다도, 행복해하는 아이들 모습을 보는 것이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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