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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호 [현장에서] "유치원 교사는 애들이랑 맨날 놀잖아!"

2013.12.18 15:41

진보교육 조회 수:795

[현장보고] 유아교육2

“유치원교사는 애들이랑 맨날 놀잖아!” ‘선생님, 이제 놀아도 돼요?’


양민주 / 전교조유치원위원회

  유치원, 참 좋은 단어입니다. ‘환경도 아름답고 아이들과 즐겁게 뛰어놀고 맛있는 밥과 간식을 먹고 집에 갈 때까지 놀기만 하는 곳.’ 사람들은 유치원이란 단어에서 이런 좋은 생각을 떠올립니다. “유치원 선생님들은 얼마나 좋아? 애들 일찍 끝나면 [자기도] 집에 가잖아?”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가끔 계십니다.
  자, 그럼 유치원의 진짜 생활을 알아보도록 합시다. 대한민국 유치원은 2012년 기준 8,348개인데 공립4,335개, 사립 4,013개로 공립의 수가 더 많지만, 학급 수나 원아수를 견주면 사립이 전체 유치원 원아의 80%를 차지합니다. 공립유치원의 65%가 1학급이며 혼합연령 학급입니다.
  매년 11월, 12월은 원아모집 기간이어서 유치원 선생님들은 원아 모집하느라 바쁘지요. 학부모들은 어디를 보내야 할지 고민인데다가 대도시나 광역시 학부모들은 가까운 공립유치원을 선택하고 싶어도 입학 경쟁률이 만만치 않습니다. 반면 농어촌 공립유치원은 원아가 없어 대부분 만3세~5세 복식학급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로 치면 1학년부터 3학년까지 3복식을 하는 경우지요. 유치원은 3복식을 하더라도 담임교사가 1명 뿐입니다.

  교육과정은 어떨까요? 유치원 교육과정은 1969년 유치원 교육과정이 1차로 제정된 뒤 2007년에 마지막으로 개정됐습니다. 2012년에는 ‘누리과정’이라는 국가 수준의 보통유아 교육과정이 도입되었는데 유치원 교육과정과 보육과정(어린이집)을 통합해 취학 전 1년 유아들에게 전면 무상교육을 실시하려는 것입니다. 2013년에는 만5세뿐 아니라 3,4세 유아까지도 누리과정을 적용해야 교육비를 지원받게 됐습니다.
  누리과정 도입은 무상교육 확대라는 명분으로 공사립 유치원, 어린이집을 가릴 것 없이 의무로 시행됐고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높습니다. 단기간에 급조해서 개정했고 유치원, 유아들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나타났습니다. 2007 교육과정은 유아의 수준별로 활동을 나누었는데, 누리과정은 3세, 4세, 5세 연령을 기준으로 나누다 보니 혼합연령을 운영하는 공립유치원은 담임 혼자서 3세, 4세, 5세 교육과정을 동시에 떠맡아야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입니다.

  운영 시간은요? 현재 유치원 일과 운영은 ‘기본교육과정(누리과정) + 방과후과정’으로 운영됩니다. 기본교육과정은 하루 3~5시간 범위 내에서 원아의 발달과 유치원,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자율로 운영하고 그 뒤에는 방과후과정으로 운영합니다. 문제는 방과후과정인데요, 이는 과거 종일제가 변경된 것입니다. 종일제가 담당했던 돌봄이나 휴식 등의 역할대신 특기적성 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해서 외부 강사가 들어오고 사교육업체 프로그램이 판을 치게 됐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뒤 벌어졌습니다. 대통령은 학부모들에게 양육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구실로 ‘유아 교육시간을 5시간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교육부는 부랴부랴 현행 3~5시간으로 운영되고 있는 교육과정을 5시간으로 운영하도록 강제하는 권고(?)지침을 만들어 전국 유치원에 시달했고, 내년부터 5시간을 강행하기 위해 교육부 고시를 개정하는 작업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단기간에 연구결과를 내는 ‘이슈 페이퍼’라는 사업을 육아정책연구소에 위탁했지요. 그리고 11월 19일 토론회를 열어서 유치원 운영시간이 5시간이 알맞다고 일방적으로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유치원 교사들은 아이들이 등원해서 귀가할 때까지 교육활동을 합니다. 별도의 쉬는 시간이 없습니다. 아이들과 그냥 노는 게 아니라 누리과정에 입각한 3~5시간 수업을 합니다. 게다가 사립유치원 교사 대부분은 아이들을 차에 태우면서부터 교육활동이 시작되지요. 누리과정 수업시간이 끝나도 유치원에 5시~6시까지 남아있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MB정부 당시 종일제를 없애고 방과후과정을 도입한 것은 종일제 전담교사 확보의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한 정부의 꼼수였습니다. 방과후과정은 3~4시간 시간강사체제로 운영할 수 있으니까요. 과연 정부가 홍보하는 대로 누리과정을 들여온 목적이 학부모 교육비를 덜어주고 질 높은 유아교육을 보편화하는 것이라면 유치원에 긴 시간 남아있는 아이들에게 전담교사를 붙여주고 여러 가지 물적, 경제적 지원을 보태야 합니다.

  박근혜 정부가 유치원 교육과정 운영시간을 3~5시간에서 5시간으로 늘리는 것은 오히려 유아교육의 질을 떨어뜨립니다. 사회적 요구가 ‘돌봄 확대’라면 기본교육과정 시간을 늘릴 게 아니라 방과후과정의 취지를 살려 제대로 돌봄이 이루어지도록 내실화해야 합니다.
  지금의 누리과정은 11개 주제의 교육과정, 600개 이상의 활동들(대부분 DVD 의존)로 돼 있습니다. 이에 따라 교사들에게 월안, 주안, 일안(분단위로 철저한 쪼개는)으로 사전계획을 짭니다. 아이들이 교사의 계획에 따라 수업하는, ‘놀이를 빙자한 수업’입니다. 아이들은 50~60분씩 활동하는 ‘자유선택활동’을 하고나서 “선생님! 이제 놀아도 돼요?”하고 묻습니다. 누리과정은 아이들에게는 수업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초등학교에 유치원 종일제가 의무화된 것처럼 돌봄과정, 방과후과정이 들어왔고 심지어 새벽돌봄, 밤돌봄까지 생겼습니다. 유치원 교육과정이 5시간으로 강제되면 3~5세 연령 구분 없이 모든 유아는 쉬는 시간 없이 60분을 기준으로 5시간씩 주 25시간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정부의 정책에 강력히 반대합니다. 유아 발달을 중심에 놓지 않고 선심성 생색내기로 밀어붙이는 정책이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서 80%를 차지하는 사립유치원에게 공공적 책임을 지우고, 교육 노동강도에 비해 턱없이 열악한 사립유치원 교사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 우선 할 일입니다. 또 공립유치원 교사들이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야 합니다. 학부모들에게 당장 눈에 띄는 변화를 가져다 주지는 않지만 이런 것들이 유아교육을 내실화하는 진짜 방안이 아닐까요?
  아이들이 행복한 유치원! 아이들이 원하는 놀이를 맘껏 할 수 있고 교육과정도 교사가 아이들과 그 지역에 맞게 구성하는 것입니다. 정부는 기본 틀만 제시하고 여건을 조성하고 지원하면 됩니다. 도시, 농어촌, 공립, 사립 등 일률적 교육과정을 적용케 하고, 연령별 구분 없이 동일하게 기나긴 시간을 기본과정으로 책정하는 것은 당장 멈추길 바랍니다. 유치원 교육부터 다양한 교육과정을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통합교육을 할 유치원에는 강사가 아닌 전담교사가 필요합니다. 초등에 확대되고 있는 온갖 강사들, 영어 강사, 스포츠 강사, 과학 강사.... 이미 유치원 방과후과정에 정착된 제도입니다. 유치원 교육이 무너지면 초등, 중고등까지 연이어 무너집니다. 많은 분들이 질 높은 유아교육을 확보하는 일에 관심 가져주시고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겨울~~, 춥지만 신나게 방학을 맞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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