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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 [기획] 1-1. 언어의 발달과 보편적 발달의 위기

2013.07.19 05:10

진보교육 조회 수:1247

* 글 안에 삽입된 표와 그림은 첨부된 원고파일에서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언어발달과 보편적 발달의 위기

천보선 / 진보교육연구소 교육이론분과


* 보편적 발달의 위기
비고츠키발달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현재의 한국교육은 위기 그 자체이다. ‘발달의 위기’는 일부 공부 못하는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경험적으로 느끼고 있듯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이다. 오래전부터 ‘마마보이 현상’, ‘청소년 어휘력 감소’, ‘ADHD 아동 증가와 집중력 감소’ 등 보편적 발달의 위기를 반영하는 징후들이 지적되어 왔다. 학업성취도가 높게 나온다고 해서 발달과정이 순조로운 것은 결코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발달의 가장 기초적 토대인 언어발달을 중심으로 발달상황을 살펴보고 교육적 극복방향을 논의해 보고자 한다.

1. 아동, 청소년의 언어발달 감퇴
언어발달은 보편적 인간발달의 핵심적 기제이자 지점이다. 따라서 언어발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언어발달 감퇴와 관련된 몇 가지 주요한 현상들을 살펴본다.

1) 글쓰기를 싫어하는 아이들
우선 학교학습에서 문장력 저하, 글쓰기 혐오현상이 확대되고 있다. 교육현장에서 이런 현상은 수년 전부터 확연히 느껴지기 시작했는데 이계삼은 “왜 아이들이 갈수록 글쓰기를 귀찮아할까”라고 물으면서 아이들에게 글을 쓰고 읽는 작업이 갈수록 재미없고 고통스러운 일이 되고 있음을 통탄한 바 있다. 그는 아이들이 내면적인 고립상태와 미성숙한 자아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뚜렷이 나타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계삼, ‘오늘날 학교현장의 교육불가능에 대한 사유’, 2011

이계삼의 지적처럼 글쓰기 혐오, 문장력 저하 경향은 발달과정에서 주요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분명한 현상이다. 비고츠키교육학에서 ‘글쓰기’는 자기표현의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생각훈련의 과정으로서 개념적 사고 발달의 기초가 된다. 글쓰기 혐오 경향은 생각훈련의 부재, 자기표현과 의사소통의 빈약함 나아가 개념적 사고 형성의 위기를 반영한다.

2) 언어문화와 어휘력 문제
언어발달의 감퇴 문제는 무엇보다 언어문화와 어휘력으로 가늠해 볼 수 있다. ‘헐’, ‘즐’ 등의 새로운 은어는 이전의 은어와 다른 성격을 지닌다. 단지 축약과 변형을 넘어서서 ‘다의적’ 성격을 지닌다. 이는 하나의 원시적 언어 현상이라 할 만한 것으로 의사소통에서 내용이 불명확하고 주로 감정을 교류하는 기능을 하게 된다. 즉 생각작용과 거리가 먼 의사소통 방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언어발달의 심각성은 가장 기초가 되는 어휘력 문제로 나타난다. 요즘 아이들이 이전에 비해 지식과 정보가 많고 어휘력 또한 많을 것이라는 항간의 이야기와 실제는 다르다. 수업장면에서 어휘와 용어 설명에 할애하는 비중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으며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증가하고 있다. 이로 인한 문제는 중학교 이후 본격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선행학습과 과잉학습의 단기 효과로 인해 대체로 초등학교 때까지는 현상적으로 일정한 발달 추이를 보이는 것처럼 나타나다 교육과정과 발달상황과의 괴리가 커지는 초4, 중학교 입학을 거치면서 언어발달 감퇴 문제가 표면화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청소년기는 본래 추상적 어휘와 사고가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전체 어휘도 크게 느는 시기여야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다.
        
        <표1> 학년별 학생이 사용한 단어의 총 수* (범위)
   * 중복 사용된 단어는 하나로 계산함.
(출처 : 이재분 외 ‘초중학생의 지적, 정의적 발달수준 분석연구Ⅲ’. 한국교육개발원, 2002) 이 연구보고서에서는 “학령이 증가함에 따라 어휘력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요약하고 있으나 필자의 견해로는 청소년기인 중2의 어휘력 향상이 기대 수준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고 해석되어야 한다고 본다.

      <표2> 학년별로 본 학생 1인당 제시한 평균단어의 수*                 (***p<.001)
*2차년도 연구에서는 합성어를 1인당 평균제시 단어의 수 분석에서 제외하였으나 올해 연구에서는 합성어를 모두 포함하였음. 따라서 초등학교 2,4,6학년의 평균과 표준편차 값이 전년도(2차년도) 보고서에 제시된 것보다 약간 상승하였음.
(출처 : 이재분 외, 같은 책)



어휘력 감소 문제는 비단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기도 하다.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어휘가 약 800단어 정도에 불과해 취업에 지장을 받을 정도라고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인터넷판이 12일 보도했다. 그나마 이 어휘들도 신조어이거나 문자 메시지, 네트워크 사이트와 같은 현대적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통해 생겨난 '10대들의 은어'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린이 언어 담당 정부 자문인 진 그로스는 어휘 부족으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긴급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주 어린이 발달에 대한 텔레비전의 영향에 대해 경고한 바 있는 그로스는 11일 "10대들은 전자 매체와 문자 메시지를 통해 짧고 간단하게 의사소통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지적하고 "청소년들이 문자언어와 그들이 사회생활에 필요한 공식적 언어 사이의 차이를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지난주 그로스가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남자 어린이들의 4분의1, 여자어린이들의 7분의1 정도가 언어 문제를 갖고 있는데 이는 아기였을 때 가족이 텔레비전을 항상 틀어놓아서 텔레비전 소음이 다른 어른들의 대화를 이해하는 것을 어렵게한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경향신문. 2010)

청소년 어휘력 감소에 대해 영국 청소년 어휘력 문제를 제기한 그로스는 전자매체, 문자 메시지를 통한 짧은 의사소통 방식과 TV 등으로 인한 어른과의 대화부족을 이유로 들고 있는데 이러한 문제들은 한국이 더 심하다는 점에서 한국청소년의 어휘력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고 유추할 수 있다. 인터넷 과다사용이 어휘력과 발달전반에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출 ‘인터넷 중독된 청소년, 어휘·이해·수리력 떨어져’(머니투데이. 2012.01.18.) “인터넷에 중독된 청소년은 어휘력, 이해력, 수리력 등 지능발달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인터넷 중독 청소년(59명)과 일반청소년(43명)을 대상으로 지능검사를 실시한 결과 인터넷중독 청소년의 이해력 점수는 9.92로, 일반청소년(11.65)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중생의 경우 이해력은 물론 어휘력 또한 떨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김대진 교수는 "초기 청소년기는 추상적 사고와 사회적 판단능력이 발달하는 중요한 시기"라며 "이 시기 이전부터 인터넷 중독이 시작된 경우 두뇌 발달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라고 말했다.”
되었으며 한국은 인터넷의 천국이다.  

3) 의사소통방식과 독서

어휘의 양도 문제이지만 질도 문제이다. ‘단문’과 ‘다의어’ 문제 외에도 ‘욕설’의 문제도 있다. ‘욕설’ 역시 주로 정서를 표현하거나 무의미한 어조사에 불과하다. 은어와 함께 청소년의 욕설 문제는 예전부터 있던 문제지만 양과 빈도가 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EBS가 지난해 말 청소년들의 욕설 사용 실태를 조사한 적이 있다. 중ㆍ고생 각각 2명의 윗옷 호주머니에 소형녹음기를 넣어두고 등교 후 점심시간까지 그들의 말을 모두 담았다. 그 몇 시간 사이 조사에 참여한 한 고교생이 내뱉은 욕은 자그마치 385회였다. 전체 학생 평균도 194차례나 됐다. 1분여마다 한 마디씩 욕설을 한 셈이지만 실제 대화 시간이 조사 시간의 일부라는 점을 감안하면 말 한 번 할 때마다 욕 한 두 가지가 섞여 있었다는 결과다. 욕이 없으면 대화가 안 될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욕으로 '하나'되는 아이들… 누가 그들을 욕되게 했나, 싸이월드 공감기사, 김범수기자. 2012. 5)
. 결국 그나만 짧은 의사소통 조차도 많은 부분 생각작용 없이 이루어짐을 의미한다.  

언어발달 감퇴에는 인터넷 등 의사소통방식 문제 외에도 독서의 양과 내용과도 연관이 있다. 2007년 한국청소년위원회의 ‘청소년독서실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1995-2006년 사이 독서율은 7.1% 감소, 독서시간은 1/5이 감소했으며 독서경향은 초등학생은 ‘학습만화’ 중심이고 청소년은 ‘오락물’에 치우치며 베스트셀러로 몰리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황진구 외, 「한국청소년 독서실태 조사보고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2007
이러한 추세는 더욱 심해지고 있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언어발달 감퇴의 가장 근저에는 언어환경으로서 ‘사회적 관계’의 축소가 핵심요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언어발달은 특히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및 의사소통을 통해 촉진되는데 핵가족화, 지역사회의 쇠퇴, 다양한 연령과 접촉할 수 있는 취미, 동아리활동의 부재 등으로 또래 중심의 언어 환경으로 제한되는 것이다. 이 경우 언어발달의 많은 부분이 학습활동에 의지하게 되는데 교육과정과 발달상황의 괴리가 벌어질 경우 언어발달도 같이 정체되기 시작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2. 보편적 발달과 연관된 몇 가지 고등정신기능과 관련하여

1) 흥미도 빈약
한국학생들의 학습 흥미도는 그야말로 세계 최하위이다. 흥미도 빈약은 학습에 대한 자발적 목표와 의지가 박약하며 오직 시험을 위해 사실상 강제 학습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강제학습은 ‘생각훈련’보다 기계적 암기와 반복학습, 기능적 문제풀이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진정한 사고발달로 연결되지 못한다. 거꾸로 학교와 학습에 대한 혐오감을 키우는 것을 결과한다. 흥미와 관심은 의식적 파악, 의지적 학습 등 ‘주체적 학습력’을 키우는 기본 동인이다. 흥미도의 빈약은 과도한 학습량에도 불구하고 왜 발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지, 그리고 대학 이후 지적, 문화적 성장이 왜 빈약한 지 설명해준다.

<표3> TIMSS 수학-과학 성취도 조사(2011)


<표4> TIMSS 수학-과학 흥미도 조사(2011)
     주1 중학교 2학년 대상
     주2 42개국 30여만 명의 학생 참가  

한국의 학생들은 수학-과학의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특정 과목의 학업성취와 흥미도는 정의 상관관계를 갖는다. 하지만 위의 표는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성취도는 매우 높으나 흥미도는 참여 국가의 1/3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한국의 학생들의 학습이 자발적-협력적이기보다는 강제적-경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강제 학습의 강도가 매우 높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 중학교 때부터 대부분의 학생이 학업에 대한 흥미를 상실하여 불과 열 명 중에 한 명만이 수학과 과학에 흥미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전교조, 「학교폭력실태조사 보고서」, 2013. 5)

2) 집중력 저하 현상
산만한 아이들의 증가, 수업에서의 주의집중 지속의 어려움 증가 등도 발달 문제와 직결된다. ‘주의 집중’은 학습의 가장 기초적 기능이며 ‘자기 규제’, ‘의식적 파악’ ‘논리적 기억’ 등의 발달기능과 연관된다. ADHD 증가 현상은 이를 반영하는 간접 지표로 볼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2003~09년 ADHD 건강보험 진료비 지급자료를 분석했더니 ADHD 진료를 받은 사람은 2003년 1만8967명에서 2009년 6만4066명으로 6년 만에 238%나 증가했다.....전반적으로 ADHD 진단을 받은 환자가 크게 증가한 가운데 5~14세 어린이가 전체 인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청소년과 성인의 ADHD 진단이 크게 증가했다. 5~9세 어린이는 2003년 1만368명에서 2009년 2만2068명으로 113%, 10~14세 어린이는 2003년 6239명에서 2009년 2만9679명으로 376% 증가했다. .... 특히 15~19세 청소년은 2003년 1179명에서 2009년 1만207명으로 766%나 증가했다. 20대 이상 성인이 ADHD 진단을 받는 경우도 2003년 167명에서 2009년 1447명으로 약 8배나 증가했다.”(kormedi.com. 2010)

ADHD의 대폭 증가는 교육적, 의학적 관심의 제고와 이에 따라 진단이 늘어난 이유도 있겠지만 실제 증가하고 있음은 교육현장에서 경험적으로 확인된다. 특히 청소년의 대폭 증가는 의미심장하다. 주의력 감소는 일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의력 감소 현상은 영유아기 발달환경의 악화, 놀이문화의 실종, 선행학습문화, 발달단계를 무시한 교육과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이는 발달정체가 대규모로 발생하는 주요 요인이 된다.

3) 협력기능 최하위

"한국 청소년 '더불어 사는' 능력 세계 꼴찌"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은 36개국 청소년의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 지표를 계산한 결과 한국이 1점 만점에 0.31점으로 35위에 그쳤다고 27일 밝혔다. 이 지표는 2009년 국제교육협의회(IEA)가 우리의 중학교 2학년에 해당하는 세계 학생 14만여명을 설문 조사한 '국제 시민의식 교육연구(ICCS)' 자료를 근거로 나온 것이다.
사회역량 지표는 '관계지향성' '사회적 협력' '갈등관리'의 3개 영역에서 그룹 내 우열을 0~1점으로 표기한 국가별 표준화 점수를 낸 뒤 이를 평균해 계산했다. 그 결과 한국 청소년은 지역 사회단체와 학내 자치단체에서 얼마나 자율적으로 활동했는지를 나타내는 '관계 지향성'과 '사회적 협력' 부문의 점수가 모두 0점이었다. 갈등의 민주적 해결 절차와 관련 지식을 따지는 '갈등관리' 영역에서만 0.94점으로 덴마크(1점)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연구원은 "한국 청소년들은 지필시험 성격이 강한 영역만 점수가 높고 대내외 활동 부문의 결과가 매우 저조하게 나왔다"고 밝혔다. 사회역량 지표가 가장 뛰어난 곳은 태국(0.7점)이었으며 인도네시아(0.64), 파라과이(0.62), 과테말라·도미니카(0.61), 콜롬비아·아일랜드(0.6), 러시아(0.54), 칠레·폴란드(0.52) 등이었다.(연합. 2011.3)

한국청소년의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은 그야말로 세계최하위이다. 경쟁교육의 굴레에서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으로 표현되는 협력 기능의 부재는 그 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협력 기능 역시 여타 발달 기능의 토대이며 무엇보다 청소년기 이후 발달의 잠재성을 좌우하는 발달기능이다. 따라서 중2 이후 더 심각한 발달의 제약을 가져 온다고 보아야 한다.(협력기능이 최하위임에도 지필시험에서 점수가 높게 나오는 것은 한국교육의 역설적 상황을 잘 보여준다.)  

4) 발달정체와 주체성 미약
비고츠키발달론에 따르면 학교교육의 기본목표는 개념적 사고발달에 이르는 총체적이고 주체적인 인간 형성에 두어진다. 주체적 인간 형성은 제반 발달기능의 총체적 형성, 개념적 사고체계라는 인지발달과정이 집약되는 과정이다. 따라서 교육의 발달기능을 가늠할 수 있는 핵심 요체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현실은 정반대로 귀결되고 있다. 스스로의 문제해결은 물론이고 주체적 학습력, 목표의식과 의지형성도 빈약하다. 그로인해 마마보이 현상이 확대되고 연장되고 있다. 발달의 핵심 요체인 만큼 여기에는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한다. 입시진도교육체제가 개념적 사고와 주체성 형성을 제약하는 구조가 되고 있으며 사교육 역시 학습과정에서 주체성 형성을 제한한다. 주체성 형성은 단지 의지의 훈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 활동을 의지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과 함께 여러 발달 기능에 기초한 개념적 사고의 토대위에서 형성된다. 따라서 주체성 형성의 미약은 앞서 제기한 제 기능들의 발달 위기의 귀결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기초기능 형성 문제, 발달의 중심 매개인 언어발달의 문제, 사회적 발달의 기초인 협력 기능의 문제 그리고 그 총체적 결과로서 주체성 형성의 문제를 봄으로써 한국의 아동, 청소년 전반이 보편적 발달의 위기에 처해있음을 보았다. 이 같은 상황들은 조기교육 풍토 및 과잉학습과는 반대로 발달정체가 전반적 현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인간발달이 생물학적 과정과 사회문화적 과정이 함께 엮이는 역동적 과정으로서 발달단계와 상황에 맞게 진행될 때 올바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기교육과 과잉학습은 약간의 지식보다 더 중요한 발달기능 형성을 방해함으로써 결국은 발달을 저해한다. 피사의 높은 학업성취도는 한국 아동, 청소년의 실제 발달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독일 등 유럽의 일부 나라에서는 피사가 발달상황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는 시험방식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한국교육현실에서는 매우 분명한 사실이다. 발달의 위기 임에도 학업성취도가 높은 이유는 두 가지이다. 우선 발달상황을 반영하기 보다는 과잉학습의 반영이며 또한 어쨌든 지필시험이기 때문에 기능적 문제풀이를 숙달해 온 한국학생에 유리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과도한 양과 난이도를 지닌 교육과정에 의한 것이다. 국제적 차원의 선행학습 효과인 셈이다. 그러나 결국 15세 때 피사 언어영역에서 최우수에 위치했던 한국의 청소년들은 10년 뒤 하위권으로 전락하고 만다.(2010년 IMD 조사 언어능력 58개국 중 39위. IMD의 언어능력 지표는 24-35세 성인을 대상으로 기업차원에서 직무활동과 관련된 의사소통 및 언어능력을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언어능력의 올바른 지표는 아니지만 ‘사회적 활동에서의 언어능력’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는 있다.)



3. 발달 위기의 요인과 극복방향
많은 정보와 지식 그리고 과잉학습과 반대로 언어발달 감퇴, 보편발달의 위기가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는 사회문화적 조건의 문제이고 또 하나는 잘못된 교육제도와 과정 때문이다.

1) 사회문화적 교육환경, 발달조건의 악화
발달의 위기와 관련해서 근저에는 사회문화적 조건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현대사회의  문화적 변화는 발달에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 사회적 관계의 축소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가 사회적 관계의 축소이다. 핵가족화와 지역사회 붕괴로 영유아 및 아동기에 접촉하게 되는 사회적 관계가 크게 축소되었고 이로 인해 가정과 지역에서의 교육기능이 많이 약화되었다. 인간발달은 탄생 시기부터 사회적 관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부모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정서적, 감각적, 인지적 발달과 언어와 활동의 폭을 키워간다. 그러나 사회적 관계가 축소됨으로써 발달 조건이 크게 악화되었다. 가정에서도 접촉하는 관계가 적어지고 지역에서도 또래 및 놀이공동체 관계가 사라지고 있다.
사회적 관계의 축소를 대체하는 것이 TV, 컴퓨터 등의 매체인데 발달기능에서 대면적 인간관계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발달의 ‘발생’적 관점에서 볼 때 영유아시기 발달조건의 악화는 더욱 중요한 문제이다. 이를 보완하는 것이 보육, 유아교육인데 발달 기능을 충분히 보완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우며 일부에서는 조기교육의 온상이 됨으로써 장기적으로 발달을 저해하고 있기도 하다. 그나마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을 경우 어려움은 더 커진다. 사회적 관계의 축소 문제는 영유아기 시기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동, 청소년기를 관통하는 핵심 문제 중의 하나이다.

* 언어와 문화 환경의 악화
사회적 관계, 어른과의 관계 축소는 언어발달 환경의 축소로 직결된다. 이를 메우는 것이 대중매체와 컴퓨터의 매체, 도구인데 이는 사회적 상호작용, 생각기능이 부재한 것으로 발달을 제약하는 요소가 된다. 아동기에 들어서면서 또래관계가 형성되나 많은 경우 더 이상 확장되지 못하고 또래 관계에 제한된다. 그런 점에서 다양한 연령이 함께하는 동아리 활동은 매우 중요하지만 입시교육의 현실에서 크게 제약받고 있다.
제한적인 사회적 관계에서 비롯되는 언어문화의 대표적 현상이 ‘헐’ ‘즐’로 표현되는 단문, 다의어 현상이다. 어휘력과 의사소통 방식의 향상도 제한된다. 언어 발달이 생각발달의 핵심적 기제라는 점에서 이 문제는 매우 중대한 지점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사회적 관계의 축소와 언어환경의 악화 속에서 이를 보완할 부분은 교육시스템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교육과정과 괴리가 형성되고 나면 학교를 통한 보완은 매우 어려워진다.

* 생태환경의 상실, 놀이부재
또 하나의 주요한 문제는 발달의 생태공간, 놀이공간의 상실이다. 인간은 생물학적 진화와 문화발달의 역사를 통해 생태적 공간과 놀이활동 속에서 기초적 발달기능이 용이하게 형성되도록 발달해왔다. 특히 영유아기 시기 정서적 감응과 주변환경과의 상호작용 그리고 놀이활동이 매우 중요한데 이를 통해 사회적 공감기능의 기초와 감각기능, 행동지능, 초보적 사고의 토대를 형성한다.
그러나 현대의 도시적 생활양식은 환경과의 자연스런 상호작용 공간이 부재할 뿐 아니라 주변 사물과의 접촉까지 제한한다. 놀이활동도 사라지고 있으며 이는 발달의 기초기능 형성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려움을 의미한다. 최근 ADHD 아동의 증가 등은 이러한 상황을 반영한다.
사회문화적 차원의 발달조건 악화는 비단 한국사회만의 문제는 아니며 인류차원의 역사적 문제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교육선진국들에서는 이를 보완하기 위한 다양한 교육시스템, 복지시스템을 구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교육현실은 그 반대이다. 영유아시기든 초등학교에서든 중학에서든 한번 멀어지면 발달정체와 전망상실로 귀결된다.

2) 잘못된 교육과정과 교육시장화정책/사회양극화
사회문화적 변화들이 교육에 발달의 새로운 과제를 부여하는 것과는 반대로 그간 한국교육은 새로운 시대적 과제를 받아 안기는 커녕 문제를 확대하고 강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 발달단계를 무시한 교육과정과 과잉학습
선행학습과 과잉학습은 역설적이지만 발달을 저해한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소화할 수 없는 지식과 정보를 마구 집어넣는 대신 발달단계에 맞는 정신기능을 충분히 개발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최근 뇌과학의 성과들은 선행학습과 과잉학습이 아이들이 망치고 있다고 엄중 경고하고 있다. 선행학습과 과잉학습을 불러오는 구조적 요인인 입시교육을 폐지하지 않는다면 발달의 위기는 더욱 가속화될 우려가 크다.

* 발달위기의 가속화 : 교육시장화
90년대 중반이후 진행된 각종의 교육시장화 정책들은 발달의 위기를 더욱 강화, 확대시키는 것으로 작용해 오고 있다. 7차교육과정이 도입되면서 교육과정의 난이도가 대폭 상승하고 수능이 도입되면서 선행학습과 사교육을 크게 확대시켰다.
교육과정 난이도 상승과 학벌경쟁의 강화는 한 쪽으로는 선행, 과잉학습을 유발하고 한 쪽으로는 대다수 아이들의 발달상황과 교육과정과의 괴리를 가져온다. 사회문화적 발달조건이 악화된 상황에서 학교교육은 아이들의 언어 및 보편적 발달의 가장 중요한 무대가 되어야 하지만 이러한 괴리는 그러한 과제 수행을 어렵게 만든다. 학습에 대한 혐오감과 비주체성을 키울 뿐이다.  
‘발달의 생태’라는 차원에서 볼 때 발달상황과 교육과정의 괴리는 교사-학생의 괴리, 학생-학생 간 관계의 괴리를 낳으며 발달을 위한 긍정적 상호작용을 저해한다. 언어 및 주요 발달기능의 감퇴 현상은 결국 발달상황과 교육의 괴리 그리고 상호작용의 축소로 설명될 수 있다.

3) 발달위기 극복의 방향
발달의 위기를 몇 가지의 부분적 처방으로 극복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여기에는 3가지 층위의 극복과정이 필요하다.
첫째, 발달위기의 심화를 가져 오고 있는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폐기이다. 학급당학생수 감축 등 교육환경개선과 경쟁완화는 좀 더 많은 교육적 배려와 대응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둘째, 한국교육에 본래부터 내재된 입시구조를 타파해야 한다. 그래야 발달에 입각한 교육과정수립이 가능하며 협력교육이 비로소 실현 될 수 있다.(유아, 초등의 경우에는 입시구조에 상대적으로 덜 규정받는 만큼 교육과정재구성이 일정하게 지금부터도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사회문화적 조건 변화에 대응하고 새로운 교육과제를 담아내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래야 발달 위기에 대한 총체적 대응과 극복이 가능하다.

이와 관련 그 동안 진보교육 진영에서 한국교육의 재구성 방향과 대안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제출해 왔으며 비고츠키 발달과 협력 관점과도 결합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다시 다룰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만 그 동안의 논의에서 부족했던 점을 일부 강조하고자 한다.
첫째, 분명한 발달적 관점의 수립이다. 교육불평등의 관점은 있었으나 발달관점 부재는 진보진영 역시 자유롭지 않다. 발달에 입각하여 기존의 분석들을 보완할 필요가 있으며 발달과 교육불평등 문제를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
둘째, 생애교육에 대한 관점의 강화이다. 그 동안 진보진영은 초중등교육을 중심으로 교육문제를 사고해 왔다. 최근에야 대학교육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발달의 관점에서 본다면 영유아기 시기가 가장 중요한 시기이며 또한 인간발달은 전 생애를 두고 이루어지는 지속적 과정이다. 영유아기에서 지속적 성인교육에 이르는 체계적인 생애교육의 상을 세우고 대응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련 인간적 삶의 기초로서 발달의 권리, 교육의 권리를 천부인권으로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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