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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왜 자기행동숙달인가 -『역사와 발달』을 읽고

이두표 / 진보교육연구소 연구원

비고츠키의 최대이자 최후의 저작은 『생각과 말』이다. 죽음을 앞 둔 병상에서 구술로 저술했다는 그 책 속에는 비고츠키의 놀라운 통찰과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무려 80년 정도가 지난 책의 내용을, 가뜩이나 전문적이고 많은 인용으로 가득찬 책을 배경 지식없이 한 번 읽고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38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러시아 혁명기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비고츠기는 과연 무엇을 하고자 했는가? 왜 심리학에 입문했으며, 입문한지 10년이라는 짧은 연구 기간 동안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를 거쳐 『생각과 말』에 까지 이르게 된 것인가? 이에 대해 올해 초 비고츠키 선집 3권으로 발간된 『어린이 자기행동숙달의 역사와 발달 1』을 읽고 세미나를 한 경험으로 비고츠키의 의도와 생각의 변화 과정 등을 나름대로 가늠해 보고자 한다.

비고츠키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즉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고자 했다. 신이 창조한 피조물이 아닌 인간으로써 인간의 본질을 비고츠키는 인간의 놀라운 정신 발달에서 찾은 것으로 보인다. 비고츠키는 이를 고등정신기능이라고 부른다. 고등정신기능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기에, 비고츠키는 이를 탐구하기 위해 자신의 주요 연구 방법인 발생적 방법을 이용하여 과거로, 역사로 돌아간다. 계통발생적으로 인간의 선역사인 호미노이드(사람과科의 동물)의 발달을 연구하고, 개체발생적으로 인간의 발달을 연구하기 위해 아동을 연구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비고츠키가 찾은 고등정신기능의 핵심은 자유 의지로 보인다. 인간의 지능이 아무리 놀랍게 발달했다고 하지만, 동물에서도 지능의 맹아는 발견된다. 지능을 뛰어 넘어 동물과 구별되는 핵심은 인간의 자유 의지이다. 이 자유 의지도 땅 속에서 솟아난 것이 아니기에 발생적으로 그 존재를 이끌어내는 것은 곧 자유 의지의 본질까지 밝혀내는 핵심 과제가 된다. 그리고 비고츠키는 그 발생의 핵심을 자연에서 이루어지는 생물의 진화를 넘어선 사회속에서의 인간의 문화적 발달에서 찾는다. 인간의 자유 의지를 신의 힘이나 다른 정신적 관념에서 찾는 관념론을 비판하면서, 기존의 다른 연구들을 발판으로 삼아 자신만의 설명을 만들어 나간다.

비고츠키는 ‘자극-반응’ 구조에서 시작한다. 동물 행동은 외부 자극과 그에 대한 반응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동물이 생존을 위해 특정 자극에 대한 정해진 반응의 짝을 몸 속에 유전적으로 각인시켜 놓은 것을 무조건 반사(본능)라고 부른다. 그러나 변화무쌍한 자연 환경 속에서 무조건 반사만으로 생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조건 반사를 토대로 특정 자극에 대해 생존에 유리한 새로운 반응의 짝을 형성하는 것이 가능한데, 이를 조건 반사(습관)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동물 행동 행동은 이 정도로 설명이 가능하다. 조건 반사를 이용하면 서커스에 나오는 동물의 훈련이 대부분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비고츠키는 이러한 단순한 ‘자극-반응’ 구조만으로 고등정신기능을 설명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역사와 발달 2장에서 비고츠키는 ‘흔적 기능’을 도입한다. 비고츠키는 흔적 기능이 “고등심리기능에 역사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발판이 되며, 원시인 심리학과 인간의 고등 심리학 사이의 다리가 된다.”고 말한다. 비고츠키는 주사위 던지기(자유 의지의 흔적 형태), 매듭 묶기(문화적 기억의 흔적 형태), 손가락으로 셈하기(문화적 산술의 흔적 형태)의 3가지 흔적 기능을 분석한다. 흔적 기능의 분석을 통해 비고츠키는 새로운 행동 형태의 구조는 ‘자기 자극’의 도입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어떤 결정을 하기 위해 주사위를 던지고, 기억을 돕기 위해 매듭을 묶고, 손가락을 이용하여 수를 센다. 여기서 주사위, 매듭, 손가락은 인간에 의해 상황에 도입된 자기 자극이다. 인간은 특정 자극에 바로 반응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보조 자극을 도입하고, 그 보조 자극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의 반응을 통제하게 된다. 비고츠키는 이를 ‘자기행동 숙달(통제, 필자주)’이라고 부르며, 거기서 인간의 ‘자유 의지’의 근원을 발견한다.

“고등 구조의 특징이 원시적 통합성의 분화이자 두 극단(자극-기호와 자극-대상)의 분명한 분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분화는 모든 조작 전체가 새로운 특성과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는 또 다른 측면을 갖는다. 새로운 전체 조작의 의미를 자기 행동 과정 숙달을 나타낸다고 말하는 것 이상으로 더 잘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선택 반응 도식의 경우 인간은 스스로 연결과 반응 경로를 만들고, 자연적 구조를 다시 만들며, 기호를 통하여 스스로의 행동 과정을 자신의 의지에 종속시킨다.” (역사와 발달1,[4-14~15])

우주의 모든 물질은 100여가지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생물의 몸도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원소에 대한 연구만으로 생물을 낱낱이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연결 고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생물의 모든 유전 정보를 가지고 있는 DNA는 원자 구조로 설명 되고 있다. DNA 연구와 조작에 화학적 지식은 필수적이다. 마찬가지로 자기 자극도 결국은 자극이다. 인간 행동 원리의 근원에도 ‘자극-반응’이 있다. 비고츠키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연 과정의 숙달(통제)과 마찬가지로, 자기행동숙달은 이러한 현상을 지배하는 기초 법칙들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기본적 행동 법칙이 곧 자극-반응 법칙임을 안다. 우리는 적절한 자극을 통하지 않고서는 자기 행동을 숙달할 수 없다. 행동 숙달의 핵심은 자극 숙달과 함께한다. 따라서 행동 숙달은 간접적 과정이며 항상 어떠한 보조 자극을 통해 완성된다.” (역사와 발달1,[4-24])

‘자기행동숙달’은 모든 고등정신기능의 바탕이 된다. 이때 자극과 반응 사이에 도입되어 스스로의 행동을 통제하게 만들어 주는 ‘자기 자극’ 수단을 비고츠키는 기호라고 부른다. 비고츠키는 “인간은 인공적으로 조건화된 자극 체계를 창조하였으며, 이를 통해 각각의 인공적 연결을 창조하고 스스로에게 필요한 반응을 유발한다. 결정론이라는 개념 자체가 인간화된다. 인간 행동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연이 아닌 사회이다.”고 말한다. 기호의 핵심은 언어이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자기행동을 숙달하며, 언어 속에서 인간 발달의 역사가 들어 있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서로를 변화시키며, 그 영향력은 언어를 매개로 후세에 전달되어 미래의 인간에게까지 미치게 된다. 인간은 이를 통해 동물 존재를 넘어서 질적으로 다른 존재가 되어 스스로를 의식하게 된다.

“도구 혹은 우회로는 외적 상황에 있는 무언가의 변화에도 초점을 둘 수 있지만 우리가 염두에 두고 있는 특징은 오직 사람의 반응이나 행동을 변화시키키 위해 사용된다. 기호는 대상 자체는 전혀 변화시키지 않고 정신 조작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거나 재구조화할 뿐이다.” (역사와 발달1,[4-34])

그런데 자유 의지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인간은 자유 의지를 갖고 있다고 말하고, 자유를 가진 인간만이 진정한 인간다운 인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인간의 역사 자체가 자유의 쟁취를 위한 투쟁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인간은 때로 타인을 위해 스스로의 목숨을 버리기도 하며, 순전히 재미를 위해 무의미한 일을 반복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인간은 자기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적당한 의미를 부여하여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물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는 것을 자유 의지라고 부르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인간의 욕망까지도 창조하고 조종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은 사회 속에서의 인간의 삶 속에서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 자기도 모르게 의식하지 못하면서 만들어진 욕망에 따르는 것은 자유 의지라기 보다는 조건 반사에 가까운 ‘자극-반응’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나의 생각이고 어디까지가 만들어진 생각인가? 그 경계선을 긋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어쩌면 자유 의지는 허상일 뿐인지도 모른다. 자기행동숙달만이 있을 뿐이다. 비고츠키는 교육에서 자기행동숙달이 갖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심리학과는 반대로 교육학적 질문 속에서 자기행동숙달은 오랫동안 중심 문제로 여겨져 왔다. 현재의 교육은 행위를 자발적 의지로 바꾸도록 제안한다. 외적 규율과 강제된 훈련 대신에 독립적 행동 숙달이 존재한다. 이것은 어린이의 자연적 경향을 억누르지 않으면서 그들의 자기행동숙달과 연관된다. 이런 식으로 복종과 선의는 배후로 물러서고 자기 숙달 문제가 전면으로 나오게 된다. (...) 어린이는 자기 숙달을 통해서 복종을 배워야 한다. 자기 숙달을 토대로 복종과 의지가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숙달 속에 복종과 의지가 포함된다.” (역사와 발달1,[4-17~18])

이는 교사로서 교실에서 맞부딪치는 아이들의 통제 문제에 대한 원론적인 해답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비고츠키의 가르침은 교사로서의 경험속에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인 경우가 많다. 그것을 뿌리부터 이해할 때 우리는 끊임없는 규율과 강제에 의한 교육이라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간다운 인간을 키우고자 하는 것이 교육이라면, 교육의 핵심 문제는 어린이의 자기행동숙달의 문제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행동숙달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규율과 강제가 아니라고 무조건 하고 싶은 데로 하도록 자유만 주는 것도 답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비고츠키는 역사와 발달 2권 역사와 발달 2권은 아직 국내에 번역되어 출판되지 않았다. 현재 번역중이며 2014년 초에 발간 예정이다.
에서 개별 연구로 나아간다. 말, 쓰기, 산술, 자발적 주의 집중, 논리적 기억, 생각, 자기 통제 등의 발달을 특유의 발생적 방법을 이용해 설명한다. 이 모든 고등정신기능 발달의 중심에 자기행동숙달이 있다. 물론 교사로서의 부딪히는 실천적 문제에 대한 요술 방망이같은 해답을 제시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거짓말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본질에 근접할수록 어린이의 발달을 자세히 이해할수록 그 답에 조금씩 다가가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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