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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 [담론과 문화] 뜻밖의 음악 기행

2013.07.19 04:19

진보교육 조회 수:15812

뜻밖의 음악 기행


송재혁
서울 미성중학교 / 전북교육정책연구소 파견  

  
  음악과 관련된 글을 쓰라는 명을 받고 궁리 끝에 ‘자랑질’을 선택합니다. 특정 작곡가나 작품을 소재로 예술의 사회적 함의를 그려보는 일은 다음에 기회 생기면 해보도록 하고요. 5월 말부터 6월 초까지 열흘 넘게 핀란드의 헬싱키, 스웨덴의 스톡홀름, 그리고 독일의 예나와 바이마르 및 베를린(주로 동독 지역)을 다녀온 기억을 읊어보려 합니다. 학교 다섯 곳과 지방자치단체연합을 포함, 모두 여섯 곳의 교육기관을 방문하여 그들의 교육 현장을 눈으로 확인하고 교사, 학생, 교육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오후나 주말에는 문화탐방과 관광도 할 수 있었습니다. 교육기관 방문에 대한 보고와 교육정책에의 시사점 등에 대한 것들은 나중으로 미루고요. 여기서는 음악 얘기만 나누어 보도록 하지요.

  헬싱키에 도착하자마자 가이드는 우리를 시벨리우스 공원으로 안내합니다. 핀란드의 국보적 작곡가인 얀 시벨리우스(1865~1957, Jean Sibelius)에 대한 그 나라의 예우는 생각보다 각별한 듯 했습니다. 교향시 ‘핀란디아(Finlandia)’로 유명한 시벨리우스는 교향악의 진수를 보여주는 일곱 개의 교향곡들과 바이올린 협주곡에 더하여, 핀란드의 전설에 바탕한 교향시 등 관현악과 극음악, 합창곡, 그리고 실내악을 남긴 20세기의 대 작곡가입니다. 그의 교향곡 4번 과 7번, 교향시 타피올라 같은 곡들은 주옥같은 작품들입니다. 특히 서양 고전음악의 소멸해가는 장르인 교향곡을 쇼스타코비치와 더불어 20세기 방식으로 새롭게 완성해 낸 그는 참으로 독특하고 신선한 음악을 우리에게 물려주고 갔습니다. 사진으로만 접했던 시벨리우스 공원은 예상과 달리 소박하고 아담한 규모였습니다. 시민들이 평화롭게 산책을 하는 해변가에, 그의 얼굴을 조각한 작품과 파이프오르간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전부입니다. 어디 묻어 놓은 스피커에서 그의 음악 한 자락이라도 흘러나오나 귀 기울였지만 새 소리와 시민들의 웃음소리만 한가로이 들려옵니다.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에서 금관과 팀파니에 의한 강렬한 도입부를 우리는 군사정권 시절 해마다 6‧25가 되면 방송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핀란디아’는 오늘날에도 뉴라이트 계열 음악회의 레파토리로 인기 있지만, 사실 이 곡은 러시아의 압제에서 벗어나려는 핀란드 민중의 염원을 담은 1899년작으로 당시 금지곡이었다고 합니다. 이 곡을 듣다 보면 내가 한국 사람인지 핀란드 사람인지 모호해지면서 주먹을 불끈 쥐고 뭔가에 대한 굳은 결의를 다지고 있는 듯한 느낌에 빠지곤 하는데, 바로 이러한 효과를 군사정권의 음악 프로파간다 담당자는 제대로 이용했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군사정권의 음악 프로파간다 담당자는 나치의 괴벨스만큼은 아니더라도 클래식 음악을 제대로 써먹은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박정희와 육영수의 죽음에는 노르웨이의 그리그(Grieg)가 작곡한 극음악 ‘페르 귄트’의 ‘오제의 죽음’이 하염없이 함께 하였으니, 지금도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독재자 부부의 죽음을 이유 없이 슬퍼하던 국민학교 시절의 제 자신이 떠오르곤 합니다. 학교에서는 모두 함께 엉엉 울고 돌아왔는데 이제 독재가 물러갔다며 미소 어린 걱정을 나누시는 큰아버지와 아버지를 보면서 ‘마이 당왕했던’ 시절 말입니다. 정말이지 ‘오제의 죽음’은 탁월한 선정이었습니다. 아웅산 폭발 사고 이후에는 베르디의 걸작인 레퀴엠을 카라얀과 라 스칼라가 공연한 영상이 텔레비전에 여러 차례 방송되어 때 아닌 심오한 음악감상을 할 수 있었더랬습니다. 흑백 텔레비전 시절 MBC 뉴스의 시그널은 리하르트 바그너의 악극 ‘파르지팔(Parsifal)’ 전주곡 중간부의 팡파르였는데요(솔도시라 솔~라~시~~~~). 악극의 스토리에 따르면 파르지팔은 속세의 욕망과 처세에서 벗어나 초연하였기에 세상을 구원할 수 있었던 ‘순진한 바보’입니다. 군사정권 시절의 순진한 바보는 앵무새 언론이었을까요, 언론에게 세뇌당한 시민들이었을까요? 음악은 프로파간다 담당자에 의해 본래의 맥락을 이탈하여 새로운 맥락 속에 놓임으로써 일정한 의미를 획득하면서 선전 효과를 누리게 됩니다. ‘핀란디아’는 찬송가 '내 영혼아 잠잠하여라(Be Still, My Soul)'의 선율로도 사용되는데, 이 곡을 들으면 영혼이 잠잠해지기는커녕 격렬하게 요동치곤 하니 찬송가도 본래의 맥락을 벗어난 하나의 사례로 볼 수 있겠군요. 자주와 독립의 정신을 자극하는 ‘핀란디아’를 올해 6‧25엔 방송에서 듣지 못했지만, 대신 더 강렬한 메뉴가 등장하더군요. NLL 관련 정상회담 대화록 전문을 6.25에 맞추어 공개하는 센스! 시벨리우스(Sibelius) 하면, 고등학교 시절 “Ssibalius”라고 했다가 음악 선생님에게 신나게 얻어터진 친구도 떠오릅니다. 시벨리우스 공원까지 버스를 운전해주신 기사 노동자님은 시벨리우스의 만년의 모습처럼 대머리였습니다. 이 친절한 기사님과 헤어질 때 “Mr. Sibelius !”라고 부르니 엄청 좋아하시더군요. 기념 사진 찰칵 !  헬싱키에서 저녁에 헬싱키 필하모니나 핀란드 라디오 심포니의 연주회를 가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우리 체류 기간에는 연주회가 없었습니다.

  헬싱키에서 ‘라토카르타노 종합학교(Latokartanon Peruskoulu)’와 ‘예르벤빠 고등학교(Järvenpään Lukio)’를 방문한 후 단 하루를 헬싱키에 묵을 수 있었기에 자는 시간 아껴 백야의 헬싱키를 거닐다보니 어느덧 날이 새더군요. 대통령궁조차 항구 부둣가에 밋밋하게 위치해있는, 우리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소박함과 검소함이 잔잔한 감동을 주는 도시였습니다.

  이제 에스토니아로 가는 ‘M.S Silja Europa’에 몸을 싣습니다. 대형 유람선이라지만 에스토니아의 배라서 그런지 역시 소박한 맛이 있습니다. 와인도 무한 리필이구요. 딸린의 부두에 정박한 배 위에서 22시 경 바라 본 일몰은 지금껏 어디서도 보지 못한 신비로운 것이었습니다. 예산 절감을 위해 코딱지만한 방(cabin)에 4명이 들어가 자느라 화장실 갈 때에는 캐리어 짐짝을 넘어 다녀야 했지만, 마음만큼은 최고의 부자였습니다. 지금도 그 일몰의 장관을 기억 속에 다시 그려내면 어느덧 몸과 마음이 현실계를 이탈해버립니다.

  인구 130만의 나라, 에스토니아의 수도 딸린(Talin)은 시계가 중세에 멈춰버린 듯 했습니다. 이처럼 수수하고 아기자기하고 조용한 도시가 한 나라의 수도라니! 에스토니아는 소련으로부터 1991년 8월 20일 독립하는데, 이 혁명의 이름이 음악적입니다. ‘노래 혁명(Singing Revolution)’.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는 평화적인 반소 혁명으로 독립을 쟁취하게 됩니다. 세 나라에서 온 200만의 군중이 딸린 등의 가도를 점거한 채 손을 맞잡고 노래를 했는데 그 행렬이 600km에 달하였다고 하니(위키백과), 이보다 음악적인 음악의 순간이 세상 어디에 또 있었을까 싶습니다.

   딸린에서 오후에 혼자 이탈하여 이 동네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조그만 음반‧악보 가게를 찾았습니다. 1대의 피아노 반주판으로 된 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 악보집을 제법 저렴한 가격으로 구할 수 있었습니다. 돌아와 전교조 서울지부 합창단에 연습용으로 기부했지요. 단연 눈에 띈 음반은 ‘노래 혁명’ 음반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알려지지 않았고 구경할 수도 없는 음반들을 행복한 마음으로 주섬주섬 챙겨 나오다 가게 유리창 쪽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작고 허름한 피아노에게 말을 걸어봤습니다. 유일하게 악보대로 외워서 칠 수 있는 바흐의 ‘평균율 C장조 전주곡’을 뚱땅거린 후 마음 좋은 레코드 가게 아주머니와 귀여운 아들을 위해 어설프지만 ‘아리랑’을 쳐 드렸지요.  

  귀족과 서민의 옛 거주지를 가르는 마찻길의 담벼락에 앉아 거리의 악사가 묘하게 생긴 악기를 연주합니다. 악기는 비가 올 듯 비올라와 비슷한 소리를 내더군요. 녹음하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음반으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에스토니아의 음악은 우수 젖은 단조가 주류를 이루는 것 같습니다. 그 도시의 풍광과 그리 다르지 않은 분위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 옆에 앉아 열심히 그림 그리는 거리의 화가 양반에게 왜 주로 여자를 그리시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심오합니다.  "난 여자가 좋아요"

  에스토니아 딸린에서 스웨덴의 스톡홀름으로 가는 ‘M.S Baltic Queen’은 스웨덴 배라서 그런지 인테리어도 더 화려하고 들어서자마자 환영 음악이 연주됩니다. 와인과 물을 돈 내고 먹어야 하는 야박함도 겸비한 호화로움이었지요. 배에 오르기 전 선착장에서는 스웨덴으로 수학여행을 가는 에스토니아 학생들에게 말을 걸어봤습니다. ‘South Korea’는 몰라도 ‘강남스타일’은 잘 아는 아이들, 한 친구가 ‘말춤’을 아주 제대로 신나게 쳐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건 돈벌이는 되어도 좋은 음악은 아니라고 생각해왔는데, 북유럽의 아이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진 것을 목격하니 한 편 씁쓸한 마음마저 들었음을 숨기지 않겠습니다. 좋은 소리만이 멀리 갈 수 있는 건 아니겠지요.

  배 안을 이리저리 거닐다 소파에 앉아 뜻하지 않게 공짜로 멋진 공연을 보게 되었습니다. 3인조 악단인데 쿠바에서 왔답니다. 당신네 나라의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몇 곡 하고 나서 신청곡을 받겠답니다. “아스타 시엠프레(Hasta Siempre)”라고 하니 놀랍게도 즉석에서 연주를 시작합니다. 쿠바의 카를로스 푸에블라가 1965년 작곡한 이 노래, ‘체 게바라여 영원하라’는 혁명가 체 게바라를 기리는 스페인어 노래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신청자로서 기립하여 정중히 듣고 노래가 끝나자 오른손 번쩍 들고 “Che !” 우리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그 분들께 진토닉 석 잔을 드렸습니다. 뜻하지 않게 남미의 명곡을 발트해 유람선상에서 제대로 감상했네요. 영화에서나 보던 부르주아적 체험의 주인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수입되었던 체 게바라 30주년 기념 추모음반(1997, 빨강색 표지)에는 ‘아스타 시엠프레’의 세 가지 버전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카를로스 푸에블라(쿠바),  솔레다드 브라보(베네수엘라), 그리고 마리아 파란투리(그리스). 인터넷에 부유하는 가사의 일부를 가져옵니다.


우리는 당신의 용기가 죽음을 멈칫하게 만든 그 역사적 순간부터
당신을 흠모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우리의 지도자 체 게바라여!
여기 당신의 존재가 갖는 선명하고 깊은 투명함이 남아있습니다.

당신의 강하고 역사 속에서 승리를 장담하는 손은
산타 클라라 계곡이 당신을 만나기 위해 깨어난 그 순간에 더욱 빛납니다.

당신의 웃음이 빛나는 깃발을 꽂기 위하여
당신은 봄날의 햇살로 산들바람을 태우며 옵니다.

당신의 혁명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당신의 너무나도 단단한 해방의 가슴은
당신을 기다리는 새로운 세계로 향합니다.

당신과 함께인 듯 우리는 여기서 전진합니다.
피델과 함께 당신에게 선언합니다.
영원히 당신은 우리들의 지도자라고.

우리의 지도자 체 게바라여!
여기 당신의 존재가 갖는 선명하고 깊은 투명함이 남아있습니다.


스웨덴에서는 중등 종합학교인 카스타니엔(Kastanjen) 프레네 학교와 지방자치단체 연합회(Sveriges Kommuner och Landsting)를 방문했습니다. 지극히 교육적인 교육 체제를 배우고 부러워하면서, 한 편으로 이 나라에서도 음악회 하나 볼 수 있지 않을까 호시탐탐 노리던 중, 노벨상 시상식 기념 연주회가 열린다는 푸른색의 스톡홀름 콘서트하우스(Koncerthuset) 건물에 엘 시스테마가 배출한 베네수엘라 출신의 젊은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의 모습을 담은  광고물이 부착된 것을 목격합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딱 맞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예매하러 가니 안타깝게도 두다멜이 아파서 못 오고 대신 콜롬비아 출신의 오로스코-에스트라다(Andrés Orozco-Estrada)가 지휘한다고 합니다. 주말에 스웨덴 왕궁을 보다가 동행자 중 한 분을 꾀어 대오를 이탈, 연주회장으로 향했습니다. 왕궁 앞 선착장에서 작은 배를 타야 했습니다. 배삯은 유람선 안에서 치르는데, 이상하게 신용카드가 안 읽혀지자 마음 좋은 선원이 공짜 처리해줍니다. 그래서 그 양반과도 기념사진 한 장 찰칵!
  
  콘서트홀 바로 앞은 값싼 과일과 꽃을 파는 재래식 시장입니다. 삶과 예술이 이렇게 가깝게 공존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연주회장 직원에게 사진 촬영이 가능한지 문의하니 베를린의 필하모니나 서울의 예술의전당과는 달리, 연주하는 도중만 아니면 사진 촬영이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하여 마음껏 사진 찍었습니다. 국적을 알 수 없는 한 아시아계 여성 단원이 맨 먼저 무대에 홀로 나와 연습을 하더군요. 에스트라다의 지휘도 두다멜 못지않게 박력 있고 신선했습니다.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 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그리고 드보르작의 교향곡 신세계. 개성 철철 넘치는 연주였습니다. 악단은 스웨덴의 예테보리 심포니였는데 음반으로만 접하던 악단의 실제 사운드는 투박, 강건, 씩씩, 절도입니다. ‘고텐부르크’ 심포니라는 발음은 잘못된 거라고 합니다. ‘예테보리’는 스톡홀름에서 꽤 먼 곳에 위치한 스웨덴의 도시입니다. 특히 플룻 주자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나이 느긋한 할아버지가 시종일관 다리를 꼬고 앉아 플룻을 마치 장난감 다루듯이 쉽게 연주하더군요. 자신감에서 나오는 여유이겠지요. 빗나가는 이야기지만, 예테보리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1992년 녹음한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  연주(BIS), 참 좋아합니다. 에스토니아 출신, 느메 예르비가 지휘했습니다.  

  독일에서는‘예나플란 학교(Yenaplan Schule)’ 중 예나에 위치한 종합학교와 동베를린 지역의 ‘하인츠 브란트 실업학교(Heinz Brandt Schule)’를 방문하여 학생과 선생님들을 만났습니다. 핀란드나 스웨덴이나 독일이나 학교를 둘러볼 때 학생들이 안내를 하더군요. ‘하인츠 브란트 실업학교’ 학생들이 해준 말이 가슴에 쓰라리게 남아 있습니다. “우리 선생님들은 우리를 믿어주세요. 그래서 우리 학교가 좋아요”

   베를린의 거대한 동물원 구역을 거닐다가 뜻하지 않게 데모 군중을 마주쳤습니다. 터키에서는 공원과 광장 재개발에 반대하는 운동을 폭력적으로 진압한 경찰에 의해 시위대가 사망하는 일까지 발생하자 큰 규모의 대중투쟁이 발생하였고 신자유주의적 이슬람주의 정부에 저항하는 운동으로까지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일련의 집회가 터키 밖에서도 진행되고 있었는데, 우리는 독일의 터키 시위대와 마주치게 된 것입니다. 같은 업종 사람들이라 무조건 반가워서 그냥 지나치지 못했지요. 대사관들이 밀집한 지역이었지만 시위를 보호하는 독일 경찰의 태도는 평화롭고 우호적으로 보였습니다.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의 동상 앞에서 경찰관과 사진 한 컷!

  베를린에서의 마지막 밤은 그 유명한 ‘필하모니(Philharmonie)’에서 보내게 됩니다. 우리 방문 기간 중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는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공연하러 가버린지라, 아쉬운 대로 ‘카메라타 잘츠부르크(Camerata Salzburg)’가 연주하는 남아메리카의 교향악과 관현악 공연을 보게 되었습니다. 유명 타악기 주자인 그루빙어(Martin Grubinger)가 맹활약을 보여주는 공연이었습니다. 원래 예정에 없던 관람이었지만, 베를린에서 필하모니를 지나칠 수는 없었고, 관람 제안에 모두가 동의하여 6명 일행 모두 함께 했습니다. 나중에 소감 나누기 결과 여행 전체 일정 중 교육기관 방문을 제외하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으로 바이마르의 괴테‧쉴러 유적 방문과 더불어 필하모니 관람이 2대 강렬 추억으로 선정되었습니다. 필하모니는 로비부터 촬영금지이지만 찍어도 제지하지는 않았기에 소중한 기록을 남길 수 있었지요. 실내악 공연장과 대공연장이 나란히 있는데 대규모 관현악이라서 대공연장에서 봤습니다. 클래식 DVD 화면 속 필하모니 홀이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연주된 곡들 중 우리 귀에 가장 익숙한 것은 피아졸라(Piazzolla)의 ‘리베르 탱고(Libertango)’였습니다. 1974년 작곡 당시 피아졸라는 ‘sort of song to liberty (일종의 자유에 부치는 노래)’ 라고 명명했답니다.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강마에로부터 ‘똥덩어리’라고 불리는 수모를 당한 중년의 여성 첼로 주자가 자신의 삶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꾹꾹 담아 첼로로 박박 긁어댔던 곡이지요.

  이번에 세 나라의 학교와 교육기관을 방문하면서, 통제와 경쟁이 아니라 신뢰와 협력으로 학교 교육이 가능한 모습을 보니 참 부러웠습니다. 한 편 교육에 대한 그들의 고민 지점이 우리와 유사하다는 것도 봤습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가진 문제는 어디나 본질적으로 비슷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술술 잘 풀려버린 즉석 음악 기행은 덤으로 얻은 행운의 수확이었습니다.

  분단으로부터 통일에 이른 나라답게 독일 사람들은 한반도 문제에 관심이 많아 보였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오늘의 우리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있던 자리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고, 허물어진 장벽의 부스러기들이 색깔을 입어 관광 상품으로 팔리고 있더군요. 3대에 걸쳐 팔고도 남을 물량이 확보되어 있다는 말을 듣고는, 250여 킬로미터에 걸쳐있는 휴전선의 철조망을 잘게 잘라 관광상품화하는 방안을 연구하고픈 욕구가 불쑥. 우리의 소원도 평화와 통일!

  세계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했다는 동베를린 지역의 ‘운터 덴 린덴(Unter den Linden)’에 위치한 훔볼트 대학을 구경하던 중, 1층 중앙 계단 위로 크게 새겨진 글귀가 눈에 번쩍 들어옵니다.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다양하게 해석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이에 중요한 것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Die Philosophen haben die Welt nur verschieden interpretiert; es kommt aber darauf an, sie zu verändern.)  

  칼 마르크스의 ‘포이어바흐(Ludwig Feuerbach)에 관한 테제’ 중 11번째 단락이 이 대학 건물에 진입하는 학생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겁니다. 2차 대전 후 1953년 대학 재건축 당시 당의 주문에 의해 새겨졌다는 이 글귀는 독일이 통일된 지 23년이 지나서도 사람들에게 여전히 유의미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나 봅니다.

  스탈린과 같은 날 사망한 천재 작곡가 프로코피예프(Prokofiev)는 음악 시간에 들었던 ‘피터와 늑대’ 같은 동화 음악만 쓴 사람이 아닙니다. 러시아 혁명을 피해 미국으로 넘어갔다가 유럽에서 소비에트의 변화에 호감을 가지고 1935년 가족과 함께 다시 소련으로 돌아가, 당국으로부터 비판도 받으면서 한 편으로는 기괴하고 독특한 음악을, 또 한 편으로는 혁명 정신을 구가하는 음악을 쏟아냈습니다. 그의 작품 중 거의 알려져 있지 않고 음악 해설서에서도 다루어지지 않는 ‘10월 혁명 20주년을 위한 칸타타(1937년)’는 대규모 성악과 관현악이 포효하는 10개 악장의 작품인데, 나긋나긋하고 희망적인 음률에 노래를 실어 부르는 두 번째 곡 ‘철학자들’의 가사는 훔볼트 대학에 새겨진 11번째 테제를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음반으로도 들을 수 있습니다. 느메 예르비가 지휘한 필하모니아 관현악단과 합창단(영국)의 1992년 녹음(Chandos), 키릴 콘드라신 지휘, 모스크바 필하모니와 유를로프 국립 카펠라 합창단의 1967년 녹음(Melodiya), 그리고 마크 엘더 지휘, BBC 교향악단과 합창단의 1996년 녹음(BBC music)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당시 사회주의 리얼리즘 음악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살펴보는데 충분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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