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48호 [기획] 1. 비고츠키의 발달론과 발생적 관점

2013.04.15 17:04

진보교육 조회 수:1653

비고츠키 발달론과 발생적 관점

진보교육연구소 교육이론분과

비고츠키 발달론이 각광받는 이유는 인간 의식발달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탁월한 설명력 때문이다. 80년 전의 분석과 설명이 오늘날에도 탁월함을 발휘하는 데는 그의 천재성과 협력적 연구의 힘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올바른 관점과 연구방법론에 기인한 바 크다. 그의 관점과 방법론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의식발달에 대한 변증법적 유물론의 적용이라 할 수 있다.

1. '변증법적․역사적 유물론의 적절한 심리학적 적용'이 아마도 비고츠키의 고등정신과정에 대한 사회문화적 이론의 정확한 요약일 것이다.(마인드인 소사이어티, 서론, M.콜)

그런데 한편으로 비고츠키는 자신의 관점 및 방법론과 관련 유난히 ‘발생적’ 방법을 강조하였는데 이 글에서는 비고츠키의 논의를 관통하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시각을 간략히 살펴보고 ‘발생적’ 방법의 의미와 의의, 적용의 문제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  


1. 변증법적 유물론의 관점

● 기본관점
비고츠키는 인간의 의식발달을 연구하는데 있어 심리학 초기 당시 의식 형성을 ‘개인적’ 차원으로 이해하던 경향에 반대하면서 문화, 역사적 규정과 영향력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그는 모든 인간의 인지활동이 사회 속에서 형성되고 사회발전을 야기한다고 주장하였으며 기호를 매개로 한 그의 분석과 설명이 현대교육학과 인지심리학에 상당히 수용되면서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의식발달에 대한 문화, 역사적 규정력을 강조했다고 해서 비고츠키 이론을 ‘문화역사적 이론’이라고 한다.

비고츠키는 의식이 마치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의식의 본질을 분석한 학자들을 매우 비판했으며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역사발전의 특정한 시점에서의 그들의 물질적 생활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고의 내용은 역사발전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종의 인지능력도 역사적 변화, 특히 기술적 발전의 결과로서 변화한다. 초기 도구사용이 진보된 지능과 언어 같은 고유한 인간특질의 발달을 가져왔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손지희. 2011)

그는 문화역사적 총체성과 기원을 강조하였고 인간의 능동적 주체성을 강조하면서도 물질의 선차성에 입각하여 인간의 자유의지 형성을 설명함으로써 관념론, 주관주의, 행동주의에 대해 철학적, 이데올로기 투쟁을 전개하였다. ‘문화역사적(사회적) 총체성’ ‘물질의 선차성’ ‘의간의식에 대한 문화역사적 규정성’ 등은 변증법적 유물론의 기본 관점에 해당한다.

● 문화역사적 총체성
문화역사적(사회적) 총체성의 의미에 대해서는 약간의 서술이 필요하다고 본다.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사회’란 생산을 중심으로 정치, 법, 예술 등 각 구성요소와 분야가 서로 얽혀있으며 인간의 실천적 활동을 통해 구성되는 ‘총체’(사회구성체)이며 지속적으로 변화, 발전하는 ‘역사적’ 실체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라는 말에는 문화역사적(사회적) 총체성이 전제된다. 그런데 사회적 구성주의와 같은 상대주의적 견해에서의 ‘사회’는 그 의미가 다르다. 그들은 사회적 총체성을 부정한다. 그래서 ‘사회’라는 같은 말을 쓰더라도 ‘사람들 간의 네트워크’, ‘인간을 둘러싼 인공적 환경’이라는 현상적 의미로 사용한다. 그들도 ‘사회적 상호작용’을 강조하지만 그것은 사회적 총체성이 거세된 현상적 상호작용에 불과하며 결국 자립적 개인을 설정하고 중심에 두게 된다.

● 핵심 개념과 방법
기본관점만이 아니라 분석과 설명방식에도 비고츠키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일관되게 적용하였다. 변증법적 대립물(생각과 말, 기초와 고등정신기능, 일상적 개념과 과학적 개념....)을 분석대상으로 설정하였으며 상호관계 및 작용의 변화, 발전과정을 양질전환과 변증법적 지양과정으로 분석하고 설명하였다.
그는 핵심적 방법과 개념을 맑스·엥겔스로부터 직접 끌어오기도 했으며 많은 부분 그들을 따랐다. 예컨대 비고츠키는 ‘유기체의 성질을 유지하고 반영하는 세포단위‘의 비유를 들면서 생각과 말의 관계를 분석하는 단위로서 “낱말 의미”를 설정하였는데 이는 자본주의를 분석하기 위한 세포로서 ’상품‘을 설정한 맑스의 분석단위 설정과 동일한 방식이다. 또한 엥겔스의 ‘도구’ 개념을 인간의 심리 발달에 적용하여 ‘심리적 도구로서의 기호(언어)’로 의미를 확장하였다. 실제로 ‘낱말의미’와 ‘심리적 도구로서의 기호’는 비고츠키발달론의 핵심 개념으로 위치한다.

“작은 물방울에 태양을 비추듯, 의식은 낱말에 비춰진다. 살아 있는 세포와 유기체처럼, 원자와 우주처럼, 작은 세계가 큰 세계와 관련되듯, 낱말은 의식과 관련된다. 낱말은 의식을 담은 작은 세계이다. 뜻이 담긴 낱말은 인간 의식을 담은 작은 우주이다.”(생각과 말 7장)

비고츠키는 맑스처럼 당대의 여러 관련 학문들에 대해 정통하면서 비판적으로 점유하고 다학문적 종합연구(통섭)를 추구하였다. 연구과정과 서술과정이 역전된다는 서술방식까지 닮고자 했다. 그러나 비고츠키의 맑스 ‘따라하기’는 막연히 맑스를 흉내내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다. 맑스가 그랬듯이 변증법적 유물론의 방법론에 철저하게 입각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2. 비고츠키의 발생적 방법론
그런데 비고츠키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관점과 방법에 의거하여 연구와 논의를 전개함에 있어 ‘발생적’ 방법을 특별히 강조한다. 이에 대한 강조는 저술 곳곳에 등장한다.
비고츠키가 강조한 발생적 관점과 방법이란 무엇일까? 언뜻 이해될 듯도 하지만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발생적 방법’이란 과연 무슨 의미이고 비고츠키는 왜 그토록 강조했던 것일까?

1) 발생적 관점과 방법이란?

● 발생적 방법
발생이란 어떤 사물, 현상이 생겨나는 것. 변화, 발전하는 것을 말한다. 발생적 방법은 모든 사물이 변화, 발전하는 것으로 보면서 발생과정, 즉 변화과정을 시작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분석하는 것으로 ‘과정적 분석’ ‘역사적 방법’이라고도 한다. 비고츠키에 따르면 발생적 방법은 ‘출발점으로 가서...어떤 형태의 발달과정을 모두 복원하는’ 분석이며 ‘선행하는 형태들에 대한 분석과 종합’이다.

"사물이 아닌 과정 분석, 단순히 외적 징후를 하나하나 구분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인과-역동적 연결과 관계를 드러내는 따라서 기술적이 아닌 설명적인 분석, 그리고 마지막으로 출발점으로 되돌아가서 심리적 화석화를 거친 어떤 형태의 발달 과정을 모두 복원하는 발생적 분석. 이 세 가지 계기는 모두 함께 취해지며, 고등심리형태를 기술심리학이 가정하듯 순수하게 정신적인 형성으로 보거나, 연합 심리학이 주장하듯 기초적 과정들의 단순한 누적으로 보지 않고, 발달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질적으로 고유하고 진정 새로운 형태라고 보는 새로운 이해로부터 기인한다."(어린이 자기행동숙달의 역사와 발달, 3-37)

“발달은 모든 고차원적 형태의 이해에 있어 열쇠가 된다. 발생론적 분석과 종합, 선행하는 형태에 대한 조사 그리고 구성요소들의 일반적인 비교 없이는 이와 같이 본질적으로 복잡하고 내적으로 서로 연결된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오직 발생적 과정의 여러 조각들의 비교 분석만이 심리적 구조들의 실제적인 구성과 그들의 내적 연관을 밝힐 수 있다.”(생각과 말 6장2절)

대립물은 상호작용하면서 서로 영향을 미친다. 그에 따라 서로 변화, 발전하게 되고 상호작용과정도 변화해 나간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발생적 방법은 고정된 사물의 상호작용 분석에 그치지 않고 상호작용 속에서 대립물의 변화와 관계의 변화를 함께 분석해 나가는 것이다. 즉 상호작용의 역사(변화과정)를 탐구하는 것이다.

● 고등정신기능 발달에 대한 발생적 접근
발생적 분석에 기초하면서 비고츠키는 생각과 말, 기호의 매개를 통한 고등정신기능의 발달과정을 기원에서부터 추적, 분석함으로써 상호관계와 문화역사의 규정성을 명확히 할 수 있었다.
2.  예컨대 생각과 말의 관계를 분석함에 있어 비고츠키는 ‘생각’과 ‘말’이 기원이 서로 다름을 확인하고 발달 경로에서 동물은 별개로 나아가는데 반해 인간은 서로 만나면서 ‘말로하는 생각’이 탄생하게 됨을 밝혔다. ‘말로하는 생각’의 탄생을 고등정신기능 발달의 핵심으로 본 이 같은 분석은 동물과 인간의 질적 차이를 ‘언어’ 자체로 보던 통상적 견해보다 훨씬 명확하고 구체적인 설명으로 연결된다. ‘기호의 매개적 역할’에 대한 분석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기호(말)가 노동의 사회적 협력과정에서 탄생했으며(기원) 처음에는 ‘의사소통’의 수단으로만 기능하다 이후 의미를 상징하게 되면서 생각발달의 수단이 되는 경로를 분석함으로써 고등정신기능 발달에 대한 매개적 역할을 규명했다. 이 역시 단지 ‘인간의 생각이 사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라는 통상적 견해를 넘어서서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해 들어가는 경로와 연관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 변화의 묘사가 아니라 인과관계의 분석
발생적 분석은 단지 변화과정을 묘사하는데 있지 않다. 발생적 분석의 핵심은 변화의 인과관계를 규명하는데 있다. 비고츠키는 ‘진정한 인과-역동적 연결과 관계를 드러내는 따라서 기술적이 아닌 설명적인 분석’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예컨대 ‘말로하는 생각’의 탄생을 본래부터 있던 것이 어느 날 갑자기 발현되는 것으로 보거나, 외부로부터 고스란이 이식되는 것으로 보는 것 모두 관념적인 것으로 비판한다. 그런 견해들도 말로하는 생각을 묘사는 하지만 인과관계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비고츠키는 말의 외적, 기능적 사용 속에서 지각, 주의라는 기초정신기능이 재구조화되고 오랜 숙달을 통해 초인지(의식적 파악) 기능이 형성되면서 비로소 말로하는 생각이 형성됨을 인과적으로 설명한다. 질적 변화(발생)를 인과관계를 통한 새로운 구조형성으로 분석, 설명하는 것이다.

3.  기원과 경로를 분석하면서 인과과정과 제 연관을 종합한다는 의미에서 비고츠키는 발생적 방법을 ‘역사적’ 방법으로 일컫기도 했으며 이는 자본주의를 분석한 맑스의 방법과 동일하다. 맑스 역시 노동과 노동수단,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관계를 기원에서부터 출발하여 역사적 계기 속에서 분석했다.
4.  새로운 공헌이 있다면 비고츠키는 발생적 방법을 ‘실험’의 영역까지 확장한 것이다. 그는 연구대상인 의식발달 자체가 새로운 변화이고 발생이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해명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난생처음 일어나는 새로운 심리변화를 관찰 할 수 있는 ‘발생적 실험법’을 고안했다. 그리고 그를 통해 많은 연구성과를 이룩할 수 있었다.(이 실험방법 역시 오랜 기간 묻혀있다가 현대심리학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 논리적 분석과 결합
발생적 분석은 형태적, 논리적 분석과 대립되지 않는다. 오히려 통합을 지향한다. 비고츠키는 기본적인 사고범주를 ‘혼합체-복합체-개념’이라는 형태로 분석하면서 ‘논리적 방법은 역사적 방법과 대립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논리적 분석은 ‘우연적인 요소를 쳐내고 역사적 과정을 추상화하고 일관된 형태로 반영한 것’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복잡한 실제 정신 현상을 형태적,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불완전하며 발생적 분석과 결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생각발달과 관련 ‘실제의 경로에서 생각의 제 형태들은 복잡하고 혼합된 형태로 나타난다’고 보면서 ‘발달적 관점을 통해 과정을 전체적으로 밝히면서 개별 순간 각각을 명확히 하고자’ 했다.

“이는 기능적, 구조적 그리고 발생적 겹층이다. 자기중심적 말의 구조, 기능 그리고 발생학적 운명과 관련한 이 새로운 작업가설은 이 현상에 대한 우리 전체 연구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할 가능성뿐만이 아니라 내적 말의 성질에 대한 문제를 새로운 깊이로 꿰뚫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생각과 말 7장3절)

비고츠키는 논리적 분석과 발생적 분석을 결합하여 ‘구조적, 기능적, 발생적 방법’으로 죵햡해 표현한다. 비고츠키의 방법론은 횡적(형태적, 논리적-구조와 기능) 분석과 종적(발생) 분석의 종합이며 현재에 대한 분석과 역사적 분석의 종합이라 할 수 있다.

2) 발생적 방법을 강조한 이유
모든 사물이 변화, 발전한다는 점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발생적 방법은 한편으로 당연하기도 하다. 그런데 왜 특별히 강조한 것일까?

● 과학적 분석과 설명
우선, 과학적 분석과 설명을 위해서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사물의 분석에서 발생적 방법은 필수적이다. 더구나 변화와 발달, 즉 발생 그 자체인 인간의 의식발달을 연구함에 있어 발생적 방법은 중요성이 더하다. 그는 ‘고등정신기능’과 ‘기호(말)’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데 있어 등장하는 어려움들을 발생적 방법을 통해 돌파해 냈다.

“내적 말은 심리학 연구 영역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이다. 실제 데이터는 거의 전무하다. 발생적 방법이 적용되기 전까지는 실험에는 거의 접근 불가능했다. 여기서 발달이 인간 의식의 복잡한 내적 기능의 하나를 이해하는 열쇠임이 밝혀졌다.”(생각과 말 7장3절)
“개념들 사이의 가장 기본적이고 자연적이고 흔한 관계 형태는 일반성의 관계이다.(식물, 꽃, 장미와 같은 차이와 일반성의 관계) 모든 개념이 일반화라면, 한 개념이 다른 개념과 가지는 관계는 일반화의 관계라는 것이 분명하다. 일반화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주로 보편과 개별의 논리적 관계에 집중되었으나 이제 개념 형태들 사이의 발생적이고 심리적인 관계를 연구해야 한다.”(생각과 말 6장)

● 관념론의 극복
둘째, 앞의 이유와 연관되지만 철학적, 이론적인 이유이다. 사물을 고정적으로 보면서 변화, 발전을 분석, 이해하지 못하는 관념론적 방법을 극복하기 위한 개념적 무기이기도 했다. 그들에게는 발생적(역사적) 관점과 방법이 없었다. 구조와 기능을 형태적으로 분석하더라도 영속하는 것으로 이해했으며 과거와 미래가 없었다. 따라서 현재를 이해하는 데도 불완전하다. 비고츠키는 연구방법에 잇어 관념론과의 가장 큰 차이가 바로 발생적 방법의 문제였다고 보았던 것이며 그것이 특별한 강조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비고츠키가 인간의 의식발달에 대한 관념론적 이해의 극복을 매우 중시했으며 그의 연구목적 중 하나였음을 연구의 결론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어린이의 정신 발달은 개별 기능들의 발달이나 성숙이라기보다는 기능들 사이의 연관과 관계의 변화로 이루어지며, 개별 심리기능들의 발달은 이러한 변화에 달려있음을 주장한 바 있다. 의식은 매번 새로운 단계에서 그 내적 구조 전체와 그 부분들 사이의 연결을 수정하면서 발달하며 각 기능의 발달에 개입하는 부분적인 수정들의 총합으로 발달하지 않는다.(생각과 말 6장)

"어린이 발달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하고 그것이 복합적 변증법적 과정이며 이 과정은 복잡한 주기성,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의 질적 변형, 진화와 퇴화 과정들의 복합적 엮임, 외적 요소들과 내적 요소들의 복합적 교차, 위기를 극복하는 동시에 위기에 적응하는 복잡한 과정이라는 특징을 갖는다는 것을 고려해야만 한다."(역사와 발달 5장)

그는 발생적 분석을 통해 정신발달을 ‘개별기능의 발달’이나 ‘성숙’으로 바라보는 관념론적 시각이 잘못된 것이며 복잡한 ‘변증법적 변화의 과정’임을 밝혔다고 하면서 인식의 변화를 촉구한다. 발생론적 이해는 비고츠키 교육학의 가장 특징적이고 방법론적으로 중요한 지점이며 또한 진정한 인간발달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 피아제의 ‘발생적 인식론’과의 차이
피아제도 어린이 정신발달을 변화의 과정으로 묘사한다. 그래서 ‘인식 발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스스로 ‘발생적 인식론’이라 불렀으며 제도교육학에서도 그런 명칭을 수용하고 있다. 그러나 비고츠키는 피아제의 견해를 관념론이라 비판했으며 비발생적 접근으로 보았다. 왜냐하면 비고츠키가 보기에 피아제는 변화과정을 묘사했을 뿐 변화의 인과관계를 분석,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피아제는 정신발달과정을 ‘동화’와 ‘조절’로 설명하지만 그것은 현상적 기술이며 질적  변화를 연관관계와 내적구조 차원에서 인과적으로 분석하지 못한다. 그래서 생물학적 ‘시계’에 의해 때가 되면 인지구조가 변화한다는 설명에 맡겨버린다.
발생, 즉 변화를 중시한다고 해서 올바른 발생적 관점과 방법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얼마든지 비변증법적이고 관념적일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역사를 중시한다고 하면서 관념론적 영웅사관이나 사회진화론 따위로 흐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비고츠키의 발생적 방법은 변화의 변증법적 인과관계 분석에 초점이 있는 것이며 과학적 유물론과 결합한다. 유물론적 전제가 거세된 ‘발생 중시’ 시각은 관념론이며 발생적 관점이 빠진 ‘물질 우선’ 시각은 기계적이며 마찬가지로 관념론으로 귀결된다.


3. 발생적 관점의 의의와 적용에 대해

● 발생적 관점의 실천적 의미
지금까지 비고츠키의 발생적 접근에 대해 살펴보았다. 발생적 관점과 방법이란 어떤 현상 혹은 대립물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그 기원에서부터 발달경로, 상호관계와 작용의 변화과정을 분석, 설명하는 것이며 역사적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다만 ‘역사적’이란 표현이 거시적이고 ‘과거~현재’ 과정의 의미를 주는 반면 ‘발생적’이란 표현은 미시적 차원과 ‘지금 일어나는 변화’도 포괄하는 느낌을 준다.) 모든 사물이 변화, 발전한다는 점에서 발생적 접근은 변증법적 유물론 자체에 내재된 방법론이며 논리적 분석과 결합함으로써 종합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조금만 생각해도 발생적 접근은 현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상당히 유용하다. 예를 들면 외양으로 고래는 물고기와 전혀 다름없지만 발생적 시각에서는 쉽게 육상에 있던 포유류가 수중생활에 재적응한 것으로 설명된다. 잘 보이지 않던 현상 자체도 다시 보이게 한다. 벌이 땅으로 내려와 개미로 진화한 사실을 알게 되면 개미가 벌보다 훨씬 집단규모가 크고 더 복잡한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음이 보이게 된다. 팔레스타인 문제도 그 지역에 대한 이스라엘민족과 아랍민족의 점유와 생활의 역사를 알게 되면 어렵지 않게 인종주의적 시각을 벗어날 수 있다. 나아가 자본주의에 대한 맑스의 분석이나 인간의식에 대한 비고츠키의 발생적(역사적) 분석의 경우에는 총체적 사회와 인간의식에 대한 과학적 이해에 커다란 지평을 열어 준다.

● 기존 논의에 대한 문제의식
그런데 이 지점에서 우리는 발생적 방법과 관련 새삼스런 문제의식을 느낀다. 왜냐하면 비고츠키의 분석과 설명을 접하기 이전에는 인간의식에 대해 비고츠키가 비판한 바로 그 ‘관념적 시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다. 또한 발생적 방법 자체가 변증법적 유물론에 내재된 것임에도 한편으론 새롭고 생소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매우 의미심장할 수 있다. 왜냐하면 유물론적 변증법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더라도 실제의 문제들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관념론적 이해를 지니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며 발생적 접근을 빠뜨린 채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해 왔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실 진보적 시각의 논의에서도 어떤 현상을 설명함에 있어 많은 부분 발생적 분석은 빠져 있어 왔다고 생각된다. 적어도 교육현상에 대한 논의는 특히 그러하다. 예컨대 대표적인 진보적 교육이론인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재생산론의 경우 ‘상황’ 분석은 있었지만 ‘발생적’ 분석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래서 역동성이 거세된 정적 분석으로 귀결되고 변화의 전망이 아니라 지배의 영속이라는 절망을 주고 만다. 재생산이론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논의가 그러하다.

● 목적의식적 방법론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현상은 당연하기도 하다. 왜냐하면 발생적 접근이 쉬운 것이 아니며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의 기원에서부터 역사적 변화의 과정을 밟아온다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새로운 발생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것이 쉬운 것은 결코 아니다. 비고츠키도 인간의식의 본질을 규명함에 있어 발생적 분석이 쉽지 않은 것임 을 알고 있었으며 그래서 역동적 변화를 보다 쉽게 관찰, 확인할 수 있었던 아동발달을 연구대상으로 삼았다고도 할 수 있다.

“(비고츠키에게는) 인간의식의 본질 규명이 근본 관심이다. 그런데 비고츠키는 왜 ‘어린이’를 주요 실험대상으로 설정한 것일까? 의식 연구의 핵심 계기는 생각과 말의 관계이고 그 출발점으로 ‘아동기의 개념 발달“을 잡고 있다. 그것은 인간은 역사라는 맥락 속에서 이해될 수밖에 없다는 맑스의 기본관점과 동일하다. 따라서 인간의 의식 발달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인간의 발달된 사고형태의 본질을 규명하려면 ‘과정적으로’ ‘발생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손지희. 2012)

비고츠키는 눈에 보이는 현상과 자신의 경험을 뛰어넘는 것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 매우 지난한 과정임을 역설했다. 발생적 방법은 매우 목적의식적인 접근방법이며 실천적 창조성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 발생적 접근의 결합이 필요하다.
비고츠키가 변증법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논리적 분석과 발생적 분석을 결합하여 연구하면서 의식발달에 대한 설명력에 있어 커다란 성과를 가져왔듯이 제반의 교육현상 나아가 사회현상을 분석함에 있어 발생적 방법의 결합은 새로운 진전을 가져다 줄 것이라 생각한다. 예컨대 입시문제의 경우 진보진영은 의식적 방법론으로 채택한 것은 아니지만 발생적 접근을 일정하게 결합하면서 논의를 진전시킬 수 있었다. 즉 단지 ‘학벌이 문제’라는 것, ‘입시경쟁이 문제’라는 것을 넘어서서 입시가 대학서열구조에서 발생하는 것임을 논리적, 역사적으로 밝히고 지난 수 십 년간 부분적 개선 노력이 구조적으로 실패해 왔음을 인과적으로 설명하고, 그리고 다른 나라와의 비교를 통해 얼마든지 변화 가능한 것임을 알게 되면서 대학평준화 논의에 이르게 되었고 점차 현실적 의제로 만들어 갈 수 있었다. 교육과정 논의도 논의가 축적되면서 형태적 분석을 넘어 역사적(발생적) 분석이 쌓이고 설명력과 영향력을 높여 나가고 있다. 앞으로 ‘교육위기’나 ‘학교폭력’(예들 들면 학교폭력의 원인을 입시경쟁으로 얼버무려 설명하는 방식은 무매개적이고 기계적인 설명이다) 같은 주요 의제들도 형태적 분석을 넘어 발생적 분석이 결합된다면 설명력과 영향력을 제고시켜 나갈 수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발생적 접근이 쉬운 것이 아니며 변화와 역사를 중시한다고 해서 올바른 발생적 접근을 곧바로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발생적 접근의 핵심은 변화의 인과관계를 해명하는 것이며 지난 과정을 돌아본다고 해서 과학적 분석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발생적 접근을 하고자 하더라도 우리는 얼마든지 관념론적 오류들에 빠지고 기계론적 설명에 머물 수도 있다. 그러나 발생적 접근을 결합하려는 노력은 인식과 실천, 역사와 현재, 구조와 발생의 변증법적 나선형의 과정을 통해 점차 과학적 해명의 길로 인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