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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과문화]1.

레미제라블에서 만난 소년 혁명가 ‘가브로쉬’

이영주 / 전교조 수석부위원장


서울학생인권조례 1년. 그러나 아직도 학교는, 큰 결단을 하지 않고는 [학생인권]을 말할 수 없는 분위기이다. 문제 해결까진 바라지도 않고, 문제를 문제라 말하고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획득하는 것(이건, 뭐,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도 아니고..ㅠ.ㅠ..), 그러한 표현방법과 공간을 찾는 것이 현실에서 시급하다. [학생인권 무비메이커]는 그러한 의도로 만들어졌다. 학생인권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 고민을 동영상으로 만드는 동아리이다.

2012년 12월 31일, [학생인권 무비메이커]동아리의 마지막 [함께]행사로 [레미제라블] 조조영화를 보았다. 실패한 혁명, 그럼에도 다시 혁명을 꿈꾸게 하는 희망의 앤딩. 12월 대선 후, 상처 받은 많은 영혼들을 위로하며 영화관으로 잡아끌 만한 매력이 있는 영화다.
혹시, 초딩이 보기에 넘 어렵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했었다. 그런데 웬걸. 영화가 끝나자마자, 한 녀석이 화장실로 달려간다. 영화의 흐름을 놓칠 수 없어, 도저히 중간에 화장실을 갈 수 없었단다..ㅋ..

이 영화에서 내 눈과 맘을 잡아 끈 매력적인 인물은 장발장이 아니라, [가브로쉬]였다. [가브로쉬]는 10살 쯤 되는 거리의 소년 혁명가다. 다른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현실을 바라볼 때,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가브로쉬는 원칙을 지키며 미래를 응시한다.

가브로쉬가 화면에 등장하며 부르는 첫 노래.

우리는 왕을 처단했고, 새로운 왕을 세웠지.
자유를 찾던 우리는, 이제 빵을 찾아다니게 되었지.
평등이란 대체 무엇인가, 죽으면 평등해지지.
기회를 잡아. 비바 프랑스!

순간, 충격! 우리나라 감독이라면 이런 대사를 꼬마아이(!) 입을 통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영화에서 [아이]는 하나의 장치로 사용된다. 아이는 순수무결무죄의 존재라서, 그 아이의 불행과 상처를 통해 비극은 더 비극으로, 폭력은 더 폭력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감성적 장치이다. 그래서 [아이]의 역할은 울거나, 두려움에 떨거나, 상처받거나, 도망치거나 하며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해맑게 웃거나,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 아이의 가장 큰 매력이자 무기이기도 하다. 보호만 받아야하는 연약한 존재. 아이는 자기 생각과 판단, 선택이 불가능한 생명체이다. 그래서 보수언론은 툭하면, 청소년단체를 전교조가 배후조종했다는 모욕적인 말을 하곤 한다.

[가브로쉬]는 경험을 통해 습득한 진실을 말한다. 그래서 그의 말이 갖는 힘은 더욱 강렬하다. 혁명군이 자베르의 겉모습에 속을 때, 그가 경감임을 폭로하는 것도 가브로쉬이며, 시민들이 등을 돌려 실의에 빠져있는 혁명군들을 다시 일어나 하나로 뭉치게 하는 것도 가브로쉬의 노래다.

그대는 들리는가 성난 민중의 노래
노예를 거부하는 민중들의 뜨거운 숨결
우리 심장의 소리 북소리 되어 울릴 때
새 날은 밝아오네 태양과 함께

탄약이 부족해지자, 가브로쉬는 사망자들의 사체를 뒤져 탄약을 모은다. 두려움 없이 앞장서는 그가 부르는 마지막 노래 한 소절.. [내가 커서 어른이 되면]...이 노래를 마저 부르지 못하고, 가브로쉬는 총에 맞아 피 흘리며 숨을 거둔다.  

혁명 실패 후, 자베르 경감은 자신의 가슴에 달려있던 훈장을 떼어, 수많은 혁명군의 시신 속에 누워있는 가브로쉬의 가슴에 달아준다. 망설이지도 타협하지도 않고, 원칙을 지키며 신념대로 행동한 진정한 혁명가 가브로쉬를 위해.

빅토르 위고는 [가브로쉬]라는 인물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라는 그림의 오른쪽 소년에서 착안했다는 설이 있다. 실제 영화에서의 모습과 그림에서의 모습은 상당히 유사한 면이 있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아동의 탄생]이라는 책이 머리에서 맴돌았다. 도대체 우리 사회는, 그리고 우리는 [아동/청소년]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 것일까?!..

중세사회에 아동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동이라는 존재]에 대한 의식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과정 속에서 가족과 함께 아동이라는 존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17세기 말, 학교가 교육수단이 되면서 [아동]은 어른과 격리되어 인생을 배우게 된다. 소위 아동에 대한 격리 감금과정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 [아동]은 학교에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길들여지기 시작한다. 이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길들이기는 [아동]의 육체에 깊게 각인되고, 그렇게 [아동]은 길들여진 어른이 되어 사회로 나오게 된다.

학생들에게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고 우려하는 학부모. 촛불집회에 나온 아동은 무조건 부모에게 끌려나왔다고 생각하는 조중동. 아동과 어른은 애초 종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길들여진 사회의 길들여진 어른들은 [아동]들이 길들여지지 않을까봐 전전긍긍 두려워한다.

프랑스와 우리의 차이는 [아동관]의 차이가 아닐까?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는 나라, 부끄러운 역사를 지치지도 않고 반복하는 이 나라. 그네를 찍은 이들을 탓하기 전에, 나의 [아동관]을 점검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대한민국의 아동은 오늘을 저당 잡힌 미래의 주인이나, 가브로쉬는 미래를 꿈꾸며 오늘을 사는 혁명가이다. 이제, 우리 사회의 [아동]들도 오늘의 주인으로, 오늘을 살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커서 어른이 되면].. 이 한마디가 오늘 하루 종일, 내 맘 속에 휘몰아친다. 오늘, 다시, 이 땅의 수많은 [가브로쉬]에게 동지로서 뜨거운 연대의 손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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