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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호 [기획] 1. 비고츠키 교육혁명

2012.10.15 15:28

진보교육 조회 수:922

[기획]1
1. 비고츠키 교육혁명

진보교육연구소 교육이론분과

* 여기저기서 교육혁명을 말하다.
점차 낯익은 소리가 되고 있다. 진보진영과 많은 교육비평가들은 물론이고 일부 대선주자들까지 교육의 혁명적 변화가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교육의 구조적 문제가 폭발직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혁명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나 개혁 내용은 저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대학서열해소를 말하고 어떤 이는 창의인성교육을 말한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스마트기기를 활용한 교육을 혁명이라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적 견지에서 보다 본질적으로 교육혁명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와 관련 비고츠키는 새롭고도 근본적인 시각을 제공한다.  


1. 발달로 바라보는 교육혁명의 필요성

* 한국교육이 왜 문제야?
한국교육이 ‘곪을대로 곪았다’라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있어왔다. 보통 ‘사교육의 창궐’, ‘입시위주, 암기식․주입식교육’, ‘학교폭력과 왕따 현상의 확대’ 등이 지적되어 왔고 이런 문제들에 ‘신분이동사다리의 붕괴’, ‘교육불평등’ 등의 문제의식이 더해진다. 물론 다 맞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기존 시각들에서는 내적 구조가 아니라 현상적, 결과적 측면들을 주로 포착하고 있다.

* 인간발달에 반하는 한국교육
문제인식이 현상적 측면에 머문다면 근본적 변혁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예컨대 ‘사교육’에 초점을 둔다면 전두환 시절처럼 단호한(?) ‘과외금지’ 처방이 나올 수도 있고, 암기식․주입식 수업방식에 초점을 둔다면 ‘열린교육’ 캠페인처럼 진행될 수도 있다.
비고츠키의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발달의 차원에서 교육혁명의 필요성을 제기하게 된다. 지금의 한국교육은 사교육 등의 온갖 문제와 고통을 안겨줄 뿐만 아니라 인간발달에 역행하는 반교육적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발달은 교육의 근본문제이며 비고츠키 관점에서 교육혁명은 올바른 발달을 위해 한시라도 바삐 이루어야 할 과제로 설정된다. 발달의 차원에서 바라볼 때 근본적인 문제와 파생적인 문제들을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다. ‘발달’은 교육혁명에서 해체와 건설을 관통하는 중심 원리이다.  

1) 머리도 안 크는 발달왜곡 시스템
한국입시교육은 지나친 경쟁, 사교육의 강요, 주입식 수업, 부익부빈익빈 등의 문제들을 야기할 뿐 아니라 발달정체와 왜곡을 구조화하는 발달역행시스템이다.

* 개념적 사고 발달/주체적 인간 형성을 가로막는다.
한국초중등교육의 핵심적 특징은 입시준비와 교과서떼기가 결합된 입시진도교육이라 할 수 있다. 보통 교육선진국에서 교과서는 기본지침과 참고자료에 해당하며 일선교육에서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지만 한국의 입시교육에서 교과서는 시험범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벗어날 수 없는 경전이 된다. 입시진도교육에서는 ‘발달’이 아니라 교과서 떼기와 시험 준비가 수업의 기본 과제가 됨으로써 ‘목표’와 ‘과정’이 전도되는 ‘뒤짚힌 구조’(본래 목표인 발달은 실종되고 진도나가기가 수업의 현실적 목표가 되는 상황)가 발생한다. 게다가 변별력과 서열화를 요구하는 입시교육에서 교과내용과 난이도는 불가피하게 상승되는데 이는 숨가쁜 진도나가기 전투로 현실화된다.
입시진도교육에서는 발달의 관점에서 결손을 보충하고, 숙달하는 것을 기다려 줄 여유가 없으며 토론식, 의제식 수업, 글쓰기, 다양한 실험, 실습 교육 역시 구조적으로 어렵다. 결국 일방적 강의식, 문제풀이식 수업이 주요 형태가 된다. 교과서는 과도한 정보와 개념들로 가득 차있으며 입시교육은 교과서보다 더 많은 정보와 개념 이해를 요구한다. 입시교육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양과 개념을 언어적 정의로 이해(형식적 이해)하고 암기하며 반복적 문제풀이로 시험 적응력을 키운다. 세계 최고의 학습량은 대부분 이 같은 과정으로 채워진다.

비고츠키에 따르면 개념의 언어적 암기와 이해는 개념 이해의 시작일 뿐 진정한 개념 형성은 구체적인 상황에서 실천적 사용을 통한 숙달과 주체적 체화(내면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는 단순한 언어적 암기와 이해를 넘어서서 토론과 발표, 글쓰기, 실천적 적용 경험 등을 통해서 가능하다. 언어적 정의로부터 시작된 개념에 대한 이해는 구체적 상황 및 경험과 만날 때 실제화되고 실천적 숙달을 통해 내면화된다. 이 같은 과정은 개념과 활동, 경험이 서로를 향해 나아가면서 서로를 고양시키는 역동적 과정이다. 개념이 내면화될 때 비로소 주체적 인식으로 형성되며 사고체계가 상승적으로 변화,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입시교육은 개념과 구체적 상황이 만나는 것을 가로 막는다. 실천적 숙달의 여유도 없지만 또한 시험 잘 보는 데도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입시교육에서는 형식적 이해의 숙달(문제풀이의 반복을 통한)까지로 한정되어 버린다. 그것만으로도 객관식 문제를 풀기에는 충분하다. 이 때문에 어떤 개념의 언어적 이해 다음에 실천적 성숙과 내면화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다른 개념의 언어적 기억, 이해로 이동해 버리며 난이도의 조절도 대부분 새로운 지식, 정보를 묻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결국 입시교육을 충실하게 따르는 아이들도 발달의 시작 단계에 머물러 있는 수많은 개념의 양적 축적으로 진행될 뿐 개념의 성숙과 발달로 나아가지 못한다.
개념적 사고 발달의 실패는 더 높은 고등정신기능들인 비판적 사고, 총체적 인식, 성찰적 태도, 창조적 사고와 실천력의 형성 실패로 연결된다. 이것이 학교공부를 그렇게 많이 해도 대부분 개념적이고 성숙한 주체로 발달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 총체적 발달, 전인적 소양의 배제
입시진도교육에서는 지, 덕, 체, 예의 전반적 소양을 함께 도모하는 것 역시 구조적으로 배제된다. 인지적 측면, 그것도 주체적 내면화가 아닌 형식적 이해에 머무는 일부 주지교과 중심의 주입식교육에 집중된다.
이 같은 편향은 인간의 총체적 발달에 위배될 뿐 아니라 인지능력 자체의 발달에도 한계를 부여한다. 왜냐하면 인지적 측면은 여타의 다른 기능과 분리되고 고립된 것이 아니라 서로 결합하면서 함께 발달해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 발달결손/정체/왜곡의 양산
형식개념에 머무는 일방적 입시진도교육, 과도한 난이도와 분량, 소수 주지교과 중심의 교육은 발달결손을 대규모로 야기한다. 어떤 분야나 주제에 대해 잠시 뒤처진 아이들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발생한 결손에 대해 교사나 학습자나 모두 보충하기 매우 어렵다. 진도는 나가야 하고, 아이들은 잠시 뒤처지면 힘겨워한다.
발생한 결손은 대부분 보충되지 못한 채 누적되어 나간다. 결국 시간이 갈수록, 학년이 올라갈수록 결손의 범위와 정도는 확대되며 일부 아이들은 교수-학습 전반에 참여하기 어려운 조건이 되어 버린다. 이러한 발달결손/정체의 양산은 대규모의 학교, 학습 부적응아를 낳는 것으로 연결된다.  

한편 왕따, 학교폭력 등 발달왜곡의 문제도 크다. 발달왜곡은 정상적인 사회적 관계에서의 일탈로 규정할 수 있는데 기본적 의사소통기능, 타인과 생명에 대한 존중을 익히지 못하고 비정상적 욕구실현방식을 내면화해 나감으로써 발생한다. 발달왜곡의 많은 경우는 발달결손/정체로부터 유래한다. 발달결손 및 정체는 학교생활 및 또래 관계에서 정상적이고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어렵게 하고 이 때문에 다른 방식의 일탈적 욕구충족방식을 익혀 나가기 쉽기 때문이다.
전인교육의 실종도 발달왜곡의 원인이다. 고대의대생 성폭행 사건, 일부 법조인과 언론인 등 한국사회에 만연한 사회엘리트의 비도덕적 행태들은 현재의 학교교육을 충실하게 이행하더라도 얼마든지 왜곡된 성장으로 귀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발달정체아의 왜곡이나 엘리트의 왜곡 모두 미발달과 왜곡의 양 극단이며 사회적 위치가 다를 뿐 마찬가지의 본질이다.

* 학습을 고통으로 각인한다.
본래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깨닫는 과정은 즐거운 과정이다. 비고츠키교육학의 ‘아하현상’ 그리고 공자가 말했듯이 인간은 본질적으로 배우고 깨닫는 것을 기뻐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한국교육을 경험한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배움은 고통으로 각인되어 있다. 이는 과도한 난이도와 분량, 형식개념에 머무는 일방적 수업, 발달결손의 누적으로 인한 학교생활의 소외, 체벌과 꾸지람 등 교사와의 적대적 상호작용 등 온갖 고통의 경험으로 인해 각인된 것들이다.
학습을 고통으로 각인함으로써 사람들은 배움으로부터 도망간다. 상당수의 아이들이 초중등교육과정에서 도망치며, 보통의 많은 아이들이 대학입시를 마치는 순간 도망친다. 자기주도적 학습은커녕 학습혐오감의 각인은 평생발달의 차원과 사회역사발달의 차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지속적으로 발달해 나가는 존재로서 인간의 생애발달을 가로 막는 것이며 사회구성원의 지속적 발달을 통한 역사발달의 힘을 소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애교육의 힘을 요즘 대학생들의 취업 및 스펙 경쟁처럼 강제로 연장할 수는 없다. 그 역시 진정한 학문과 발달의 힘이 되지 않으며 고생에 대한 다른 댓가를 추구하게 만들 뿐이다. ‘학습에 대한 즐거움을 익히는 것’ 이는 진정한 발달의 내적 원천으로서 초중등교육의 가장 기본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  

* 시스템 재편 없이 발달정체와 왜곡의 극복은 불가능하다.
입시진도교육체제와 그에 종속된 교육과정을 두고서 발달정체와 왜곡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완전한 환상이고 자기기만이다. 많은 사람들이 수십 년 동안 입시체제를 놔둔 채 교육문제를 극복하고자 온갖 고민과 노력을 해왔지만 헛된 일이었다. 지금도 수업기술의 개선이나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진 시도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부분적 그리고 현상적으로 고통을 약간 완화시킬 수는 있을지 몰라도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교과서와 진도, 입시를 벗어나 발달단계와 아이들의 상태에 맞게 발달목표를 설정하고 교육내용을 구성하면서 협력적 상호작용을 넓혀 나가는 것이 현재의 입시체제, 교육과정, 평가체제에서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설사 어떤 교사가 시도하고자 하더라도 입시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학부모와 학생 당사자들이 동의하지 않는다. 발달정체와 왜곡을 구조적으로 강요하는 입시진도체제와 교육과정 자체를 완전히 재구성하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방안이다.

2) 서로를 웬수로 대하는 적대적 교육관계
협력은 올바른 인간발달의 위한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경로이며 과정이다. 그러나 한국교육은 협력은커녕 서로를 미워하고 적대시하게 하는 왜곡된 교육관계로 구성되어 있다. 협력적이어야 할 교육관계들이 왜 이렇게 왜곡되고 적대적으로 맺어지고 있는가? 이는 근본적으로 ‘발달’이라는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목표를 상실하고 ‘서열사다리에서의 위치’라는 매우 제한적인 욕망을 배분하게 되는 시스템에서 유래한다.
서열사다리의 높은 위치에 오를 수 있는 수는 어차피 제한적이다. 입시교육을 따라오지 못하는 다수의 아이들에 대해 교사들은 답답해하고 폄하하며 학생과 학부모들은 그것을 실현할만한 충분한 지원과 배려, 수업기술을 요구하면서 부족하다고 느끼고 불신한다. 이 욕구는 서로 간에 결코 실현될 수 없는 적대적 욕망이다. 왜냐하면 서로가 아무리 노력한 들 오직 소수만이 충족하며 실현불가의 지평이 항상 절대적으로 압도하기 때문이다.

* 적대적 교육관계의 주요 양상들
이런 구조적 모순 하에서 다양한 불신과 적대의 양상들이 파생되고 결합된다. 우리들의 자화상을 잠시 살펴보자.

첫째, ‘서로에게 고통이 되는 교사-학생’ 관계이다. 우선 입시교육과 관련 서로 불신하고 폄하하면서 대한다. 교사들은 아이들을 ‘공부안하고, 못한다’며 비하하며 학생들은 ‘사교육보다 학교수업이 못하다’며 불신한다. 교수-학습 과정에서 둘은 서로를 소외시킨다. 교사의 교수행위는 많은 부분 학생들의 앎과 깨달음으로 연결되지 않으며 학생 역시 노력한 만큼의 성취로 나아가지 못한다. 아예 배움으로부터 이탈하기도 한다. 교수 학습의 분리, 소외는 관계를 적대화하는 기본 요인이 된다.
입시진도교육 외에 또 하나의 문제가 거대학교-과밀학급 문제이다. 거대학교-과밀학교 체제는 발달의 관점는 상호접촉면을 제한하고 나아가 익명화를 야기한다는 점에서 큰 장애지만 입시진도교육체제에서는 그다지 결정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거대학교-과밀학급 체제는 불가피하게 관리-통제를 학생과의 관계 속에서 교사가 수행해야 할 가장 주된 임무로 승격시켜 버리는 반면 아이들의 상황과 욕구가 더욱 다양하게 펼쳐짐으로써 갈등과 대립을 증폭시키는 구조로 작용한다. 익명적 상황은 존중의 토대를 허물며 정상적 상호작용까지도 어렵게 한다.

둘째, ‘동료인지 적인지 헷갈리는 학생 간 관계’이다. 학생 간 관계는 정서와 꿈을 나누면서 발달을 함께 도모하는 동료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학력과 사회적 지위, 내신의 배분을 둘러싸고 제로섬 경쟁을 벌이는 경쟁관계를 형성한다. 제로섬 경쟁은 기본 성격 자체가 적대적이다. 이로 인해 아이들은 협력과 경쟁 사이에서 혼란을 느낀다. 학생들은 여러 측면에서 다양한 모습을 지닌다. 다양성은 협력을 북돋는 조건이 되기도 하고, 이질감을 확대하는 조건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제로섬 경쟁의 비협력성, 적대성은 이질감을 확대하고 동료 간의 관계마저 악화시킨다.
발달의 협력적 경험과 기쁨을 함께 채워 나가지 못하는 가운데 아이들은 취향이나 사회적 조건을 기초로 형성된 제한적 또래집단을 통해 사회적 욕구를 해소하고자 한다. 이 가운데 일부는 비사회적 의사소통과 욕구충족방식을 익히기도 하며, 일부는 개별적으로 고립된 채 지내기도 한다. 학교폭력과 왕따 등의 현상은 일부 학생 간 관계가 발달의 동료는커녕 아예 비정상적 욕구충족의 대상과 수단이 되어버린 상황을 의미한다. 동료 간 관계에서 협력이 상실될 경우 단지 그에 그치지 않고 서로를 파괴하는 관계로 전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셋째, 웬수가 따로 없는 학생-학부모 관계이다. 적지 않은 경우 교육문제에 관한 한 부모-아이 관계는 교사와의 관계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적대적이다. 입시경쟁에 대한 요구가 더 강렬하고 직접적이기 때문이다. 더 많은 요구에 더 많은 잔소리와 규제들이 가해진다. 교사-학생 관계보다 훨씬 다기한 상황 속에서 일부는 극단적으로 관계가 훼손되고 파괴되기도 한다. 공부잘하고 말잘듣는 소수를 제외한다면 입시교육은 부모-자식 관계를 웬수로 만드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경우는 공부잘하고 말잘듣는 경우에도 그러하다.

넷째, 상호불신의 교사-학부모 관계이다. 교사/학생 관계의 적대화는 교사/학부모 관계의 적대화로 전이된다. 발달에 기초한 진정한 교육노동의 전문성(학습자이해의 전문성)이 형성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입시교육에 대한 요구도, 교양교육과 발달에 대한 요구도, 소통과 존중의 요구도 채우지 못하며 학교와 교사에 대한 불신과 폄하의 조건을 형성하는 것이다. 더욱이 감옥학교-체벌교사에 대한 부모세대의 경험과 이미지, 아직까지 남아있는 일부 교사들의 비인격적 대우 등이 불신을 강화한다. 이런 가운데 시장주의의 경쟁이데올로기와 교육소비자론의 만연과 분할통치전략 관철은 교사-학부모 간 대립의 확대를 야기해 오고 있다.

다섯째, 따로노는 동료교사 간 관계이다. 학생들이 배움의 동료라면 교사들 역시 교육의 동료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교육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입시진도교육은 교사 간 협력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발달에 초점이 두어진다면 어떤 아동, 청소년에 대한 이해와 처방에서 교사 간 협력은 불가피해진다. 어떤 학생에 대한 서로의 관찰 내용과 이해를 교류하고 적절한 처방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이런 식의 협력은 현재의 교육시스템에서는 소위 문제학생에 대한 논의 및 대응에서 일부 나타난다.) 그러나 입시진도교육체제에서는 학생의 발달에 초점이 두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 교수행위에 초점이 두어진다. 얼핏 생각하면 더 나은 교수방법을 위한 협력이 진행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개별적 능력, 노력의 문제가 됨으로써 경쟁 대상이 되고 비교를 꺼리게 만들기까지 한다. 또한 행정업무를 중심으로 하는 현행의 교사조직 형태도 교수-학습의 협력을 어렵게 하는 조건이 되고 있다.

* 적대적 관계 속에서 협력교육은 불가능하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협력을 태도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협력은 태도 이전에 관계의 성격 문제이다. 협력적 관계 속에서 협력적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며 그런 가운데 협력의 기능과 태도 역시 형성된다.
적대적 교육관계는 한국교육이 지닌 근본적 문제 중의 하나이다. 우선 협력적 상호작용을 가로막음으로써 발달 자체를 저해한다. 또한 잘못된 관계인식과 의사소통 및 상호작용의 협소화, 왜곡을 야기함으로써 공동체와 민주주의의 토양을 약화시킨다. 그리고 당장 교육주체에게 매일매일의 고통을 야기한다.  

* 감내할 문제가 아닌 교육의 근본 문제
교육적 본질에 비추어 본다면 이런 상황은 그냥 하소연하고 감내할 문제가 아니다. 특히 비고츠키교육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불행한 교육관계’는 교육 자체의 근본위기에 해당한다. 인간발달의 제 형태와 내용은 결국 ‘사회적 관계’를 통해 형성되며, 올바르고 풍부한 인간발달은 ‘협력적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서로에게 불행한 관계 속에서 협력적 발달이 제대로 이루어질 순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올바른 발달이 어려울 뿐 아니라 나아가 발달이 왜곡되기까지 한다. 관계의 근본적 전환이 절실하다.

3) 역설의 한국교육 : 여타의 교육문제들과 관련하여
발달과 협력의 관점은 입시위주교육, 잘못된 교육과정과 수업방식 등이 왜 교육적으로 문제가 되는지 재규정할 수 있게 해준다. 교육불평등 문제 역시 사회적 지위 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적 발달 차원의 문제라는 점에서 절실성을 더해준다.
교육의 본질적이고 내적인 문제와 파생적, 현상적 문제를 함께 묶어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그럼으로써 교육혁명을 통해 해체해야 할 부분과 건설해야할 방향과 과제를 우리는 더욱 명료하게 설정할 수 있다.


3. 발달로 바라보는 교육혁명의 방향과 과제

1) 교양교육(초중등교육)의 자율성 확보와 전면발달의 추구

* 대학서열해체/입시폐지는 필요조건
발달의 관점에서 대학서열해체/입시폐지는 교육혁명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조건이다. 대학서열이 해체되고 입시가 없어진다고 해서 발달과 협력의 교육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 없이 교육혁명은 불가능하다. 지난 수십년의 경험은 이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대학서열해체/입시폐지는 초중등교육과 대학교육 양 쪽의 교육적 자율성과 정체성 확보를 비로소 가능하게 한다. 그 동안 초중등교육은 입시교육에 완전히 지배당해왔고 대학은 학문발달과 후학양성이 아닌 선발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해 왔다. 이 고리를 끊어야 두 부분 모두 본래 목적에 맞게 바로 설 수 있다.

* ‘출세’에서 ‘발달’로 : 교양교육의 재구성
대학서열과 입시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은 교육혁명의 최소한의 조건에 불과하다. 실 내용은 교육과정 개편, 교육환경개선 등 다양한 개혁과 실천으로 채워져야 한다. 그것들은 전면적 인간발달이라는 기본 방향하에 총체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 교육목표의 재정립 : 지금까지 한국교육현실에서 교육행위의 실제 목표는  사회적지위 확보에 있었다. 성적이나 학벌 모두 사회적 지위로 귀결된다. 교육혁명과정을 통해 전면적 인간발달이 문서나 구호가 아닌 실제적 교육목표로 설정되어야 한다. 그래야 교육과정이나 교과수업의 실제 변화가 가능하다.
- 협력적 문화교육과정 수립 : 전면적 인간발달을 지향하는 교육과정이 수립되어야 한다. 새로운 교육과정은 지, 정, 의, 체 등 총체적 인간발달을 위한 영역이 발달단계에 입각하여 균형있게 포괄되고 협력적 발달을 도모할 수 있도록 개편되어야 한다.
- 교사별 평가권체제 수립 : 교육과정의 일부이지만 평가체제의 개혁을 별도로 강조할 필요가 있다. 교사별 평가체제여야 교수-학습과정의 자율성과 다양성이 보장될 수 있으며 평가가 교슈-학습의 일부라는 본래의 위치를 찾을 수 있다. 대학입시가 폐지되더라도 현행의 학교별 일제식 평가가 남아있다면 교육의 실제적 자율성과 다양성은 수립될 수 없다.

2) ‘군중 속의 아귀다툼’에서 ‘협력 속의 나’로 : 교육관계의 혁명
교육관계의 혁명은 발달의 핵심 지점의 하나로 별도로 강조할 필요가 있다. 입시경쟁이 사라지고 발달과 협력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이 재구성될 경우 관계의 성격 역시 상당히 달라질 것이다. 극히 제한된 지위를 다투는 입시경쟁과 달리 ‘함께 발달하기’를 협력적으로 지향할 수 있음으로써 제 교육주체간 ‘아귀타툼’은 사라지고 적대적 대립구조가 해소될 수 있다.
그 속에서 협력의 실 내용을 채우는 노력들이 이루어져야 한다. 교사 조직이 재구성되고, 수업방식이 변화되고 학교와 학부모, 지역사회의 관계도 재구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것 만으로는 반쪽에 그친다. 현재와 같은 과도한 학생 수는 협력활동의 실내용을 채우고 관계를 강화하기에 결정적 한계를 부여한다. 협력은 자기정체성을 지닌 주체들의 협력이어야 한다. 협력교육은 개별교육의 강화와 결합한다. 다시 말해 교사는 학생 하나하나와 관계맺으면서 또 전체와 관계맺는 것이다. 따라서 접촉면을 늘리고 인격적 관계맺기가 가능한 소인수학급, 작은학교로의 개편이 중요한 과제로 설정되어야 한다. 도시에서 작은 학교로 재편하는 것은 장기간의 시간이 걸리겠지만 소인수학급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학급당 학생수 20명 의제는 그런 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의제가 된다.

3) 학령기교육에서 생애교육으로
한국사회에서 지금까지 교육하면 주로 초중등교육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는 교육을 통해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려는 시각과 관련이 깊다. 초중등교육에서의 학업과 경쟁을 통해 학벌을 획득하면 기본적 지위가 마련된 것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달의 관점에서 본다면 교육은 전생애적 과정이 된다. 인간은 전생애를 통해 지속적으로 변화, 발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기술과 노동, 문화와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의 역사적 조건도 생애교육의 관점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학령기교육에서 생애교육으로 교육의 시간적 범위를 확장하는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다.
생애교육의 관점에서 볼 때 크게 부각되는 과제는 두 가지이다.
첫째, 보육, 유아교육의 사회적 보장과 강화이다. 생애발달에서 초기발달은 매우 중요하다. 고등정신기능의 기초와 인성 형성에서 가장 큰 영향이 미치는 시기이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학령기교육보다 더 큰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부분일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초기발달시기의 교육은 개별 가정과 사교육에 맡겨저 왔고 매우 제한적인 국가지원과 조직이 있어왔을 뿐이다. 비고츠키교육혁명에서 가장 강조되어야 할 부분 중의 하나가 보육 및 유아교육의 사회적 보장과 강화이다. 교육권의 한 부분으로서 무상으로 실현되어야 하며 기초교육영역으로서 체계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특히 핵가족, 맞벌이가 광범한 현실에서 교육적 측면이 세심하게 강화되어 나가야 한다.  아무리 많은 돈이 들더라도 보육 및 유아교육의 보장과 강화는 발달의 관점에서 볼 때 백배 남는 일이다.  
둘째, 성인교육의 재구성이다. 성인교육 역시 사회적 권리로 보장되어 나가야 한다. 직업세계에 진출한 이후 지속교육이 직장 내, 외에서 강화, 확대되어야 한다. 성인의 고등교육진입이 용이해져야 하며 사회적 지원이 확대되어야 한다. 북구에서처럼 노동자학습권도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내용적으로 노동재교육, 여가활용 차원을 넘어서서 지속적인 인간발달의 차원에서 성인교육의 영역이 확대되어야 한다. 역사발전의 현실적 주체가 바로 성인이기 때문이다.


4) 교육관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이미 앞 선 내용들이 관점의 변화를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교육혁명에는 범사회적 차원의 교육관 변화가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그래야 변혁의 힘을 크게 모을 수 있고 구체적이고 광범한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다. 기존의 통상적 관년과 관련된 몇 가지를 제기해 본다.
첫째,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출세와 경쟁에서 발달과 협력으로’의 전환이다. 교육의 핵심지료가 근본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이 점은 누누이 강조되어 왔고 또한 널리 펴지고 있다. 물론 좀 더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개념과 원리들도 함께 확산되어 나가야 한다.
둘째, 고통에서 즐거움으로 교육에 대한 관념을 전환하는 것이다. 교육에 대한 통상적 관념은 ‘의미있지만 고통스러운 것’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교육권확대를 주장하는 진보진영에서도 대다수는 학교란 가능하면 빨리 떠나야 할 곳으로 취급한다. 물론 이 같은 관념들은 한국교육의 현실적 고통구조와 그 속에서 겪은 경험들에 기반한다. ‘행복한 교육’ 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조차 교육은 본래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교수-학습의 기술이나 부가적 프로그램으로 접근하려 한다. 이러한 관념으로는 진정한 변혁을 결코 이룰 수 없다. 전도된 교육의 내적 구조를 바꾸지 않고 제도적 틀만을 바꾸는 문제로 보거나 거꾸로 틀과 상관없는 기술적 접근에 그치게 된다. 교육과 발달이 본래 즐거운 것으로 볼 때 그를 가로 막는 조건과 장애들을 제거해 나가면서 교육의 본질을 회복해 나갈 수 있다. 인간은 본래 새로운 앎과 발달에 기쁨을 느끼는 존재이다.
셋째, 협력지향적 인간관으로의 전환이다. 이 역시 많은 사람들의 관념과 관련된다. 대개는 경쟁은 인간본능이고 협력은 문화적 소양으로 본다. 협력을 도덕적 차원의 문제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비고츠키교육학은 협력을 가장 효과적이고 필수적인 발달의 과정으로 볼 뿐 아니라 인간존재에 내재된 본질적 특성으로 바라본다. 이미 현대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협력지향적 본질이 입증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교육혁명을 통한 협력교육실현은 본능을 도덕으로 누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본질의 실현으로 보아야 한다.
넷째, 천부인권으로서의 교육권이다. 이미 교육을 개인적 책임으로 보는 관념에 대해 투쟁이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사회적 권리라는 관념으로 상당히 진전되었지만 교육권에 대한 기존의 개념을 더욱 상승시킬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인간적 발달은 오직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책적 시혜가 아니라 한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보장해야 할 권리이다. 전생애적 차원에서 교육권확대, 무상교육이 이루어져 나가야 한다.


4. 비고츠키 교육혁명의 시급성과 현실성

1)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교육혁명
작금의 상황만으로도 교육혁명은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그런데 이에 더해 새로운 문화역사적 환경은 교육혁명을 더욱 시급하고 절실한 과제로 제기한다.

* 사회적 관계의 협소화, 파편화
핵가족화, 지역사회의 해체 등은 아동의 성장과정에서 그만큼 가정의 교육적 기능이 약화되고 사회적 관계가 협소해짐을 의미한다. 이 같은 상황은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하나의 사회문화적 추세이다. 이런 조건과 대중매체와 전자기기의 출현 속에서 아동기 중요한 교육적 기능을 담당했던 놀이문화도 실종되었다. 비고츠키 발달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같은 상황은 매우 중대한 위협이자 새로운 역사적 조건 형성이다. 실제로 최근 아동 및 청소년의 주의력결핍증후군의 증가, 사회성의 약화, 언어문화의 협소화는 이러한 상황변화에 기인하는 바 크다. 그에 따라 학교부적응아의 확대, 마마보이 등의 비주체적 인간형, 고립적 신인류 등 비공동체적 인간형이 늘고 있고 이는 장기적으로 사회의 공동체성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새로운 역사적 조건 형성에 대응한 교육시스템의 변화가 시급하다. 성장기 협소해진 사회적 관계, 언어문화를 대체하고 실종된 놀이활동을 되살려 풍부하고 올바른 발달토대를 형성하는 새로운 사회체제가 필요한 것이다. 늦으면 늦을수록 이후의 교육적, 사회적 댓가는 클 것이다.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과 교사들이 서로 늘어나는 현상은 이미 한국사회가 그 댓가를 치루기 시작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교육혁명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 주체적, 창조적 인간 발달을 필요로 하는 역사적 조건
공동체와 민주주의를 어렵게하는 요소들이 느는 것과는 반대로 생태와 평화의 위협, 사회적 네트워크의 확대 등 현대사회전체의 역사적 흐름은 공동체성과 민주주의의 강화를 요청한다. 이 간극을 메울 수 있는 것이 바로 교육이며 그런 의미에서 교육문제를 뛰어넘는 교육혁명은 역사적 과제이기도 하다.

2) 이미 대세는 시작되었다.
제도적 변혁 이전에 먼저 시작되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기존 체제가 모순의 누적으로 스스로 붕괴 직전에 이른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담론 헤게모니의 변화이다. 한국사회에 이 두 가지는 이미 시작되었다. 우선 온갖 문제점들이 폭발하는 가운데 한국교육이 이 상태로 유지될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혁명이든 개혁이든 모든 사람들이 교육의 대변화를 말하고 있다. 또한 교육담론에서도 이미 경쟁담론은 쇠퇴하고 협력교육담론이 대세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남은 것은 변혁의 방향을 올바로 잡고 실제로 이루어내는 일이다.
발달과 협력의 관점에서 선 교육혁명을 실현해 나가는 것은 적지 않은 시간과 과정을 요할 것이다. 우선의 과제는 대규모의 정치사회적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정치적 승리, 정책적 실현이다. 그리고 교육현장을 실제로 바꾸고 뿌리내리는 일이다. 이 전과정은 미시적인 현장실천, 혁신학교 및 학교개혁운동, 교육혁명운동이 함께 결합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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