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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호 [담론과 문화] 3. 창조론, 과학에 도전하다

2012.10.15 15:25

진보교육 조회 수:990

[담론과문화]3

과학 이야기 창조론, 과학에 도전하다

양재철 / 진보교육연구소 부소장


1. 교과서에서 진화론 삭제 요구한 교진추
작년 12월과 올해 3월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위원회(이하 교진추)는 "시조새는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 종(種)이 아니고 말(馬)의 진화 계열은 상상의 산물"이라며 교육과학기술부를 대상으로 현행 과학 검인정 교과서 내 관련 자료 삭제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교과부에서는 이들의 청원을 받아들여 해당 교과서를 펴낸 출판사들에게 검토를 요청하였고 출판사 집필진 일곱 중 여섯은 시조새 부분을, 셋은 말 진화 부분을 각각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의아한 점은 갑자기 등장하여 언론에 주목을 받은 교진추라는 단체가 정부를 상대로 행사한 막강한 파워(?)와 이들의 요구에 즉각적으로 굴복한 듯한 교과부의 태도이다.
교진추가 청원한 내용이 ‘진화론을 빼라’가 아니라 진화론의 일부 내용을 삭제하라는 것이기 때문에 일부 언론과 주류 과학계에서도 마치 그들의 주장이 합리적인 면이 있고, 그래서 수정해야 한다는 식으로 논지를 펴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과연 이들의 주장은 타당성이 있고 교과서가 잘못된 것일까? 그리고 이들의 주장이 담고 있는 저의(?)는 무엇일까?

교진추의 청원 내용이 알려지고 출판사들이 교과서 내용 삭제, 수정 등의 조치를 취하게 되면서 국내 과학계에서는 발느리게 "기독교계의 주장이 계속 받아들여지면 나중엔 인류 진화 관련 증거까지 공격 받게 될 것"이라며 명백한 반대 입장을 밝혔고-한국고생물학회(회장 허민 전남대 교수)와 한국진화학회추진위원회는 6월 20일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위원회(교진추)의 청원서에 대한 공식 반론문’을 발표하였으며, 한국생물과학협회에서는 교진추의 청원을 기각하라는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또한 황우석 사태 때 황우석의 사기논문을 여러 가지 근거를 제시하며 주장한 바 있는 BRIC(생물학 연구정보센터)에서도 공식 반론문을 내었다. 실제로 교진추에서는 ‘화학진화론이 생명의 기원과 무관하다’는 내용의 3차 췅원을, 9월에는 ‘생물계통수는 허구다’라는 내용의 4차 청원을 내고, 이후 인류의 진화 내용에 대해서도 추가로 청원을 낼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잇다른 청원은 자기들 나름대로의 치밀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진추의 갑작스러운 도발과 이에 대한 언론 보도, 양측의 논쟁으로 우리나라는 황우석 사태 이후 다시 한 번 국제적인 망신을 사게 되었다. 지난 6월 6일 영국 과학 전문 주간지 '네이처'에 게재된 기사 '한국, 창조론자 요구에 항복하다(South Korea surrenders to creationist demands)'뿐만 아니라 사이언티픽 아메리카, 타임지 등에서도 한국에서의 진화론 논쟁을 기사로 삼아 세계 과학계에서 화제가 된 것이다.

2. 창조론, 지적 설계론으로 진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한국 창조과학회(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를 중심으로 주로 교회와 대학동아리 등을 통해 신자들에게 선교의 한 과정으로 진화론을 부정하고 창조론을 과학적인 것으로 포장하여 주장해왔지만 교육과정에 본격적으로 개입한 적은 없었다.
미국의 경우 근본주의 기독교 신자가 많은 주에선 '학교에서도 창조론을 진화론과 함께 가르쳐야 한다'는 청원이 끝없이 접수되고 있다. 대략 31개가 넘는 주에서 창조론, 지적 설계론을 가르쳐야 한다든가 진화론의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줄여야 한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으며 최근 들어 이런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대부분 정교분리를 원칙으로 규정하고 있는 미국의 수정헌법 1조에 따라 위헌 판결을 받아 무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에서 진화론과 관련한 재판의 시초는 1925년 테네시주에서 있었던 이른바 ‘원숭이 재판’이다. 테네시 주에서 그리스도교 근본주의 단체인 세계기독교근본주의협회(World's Christian Fundamentals Association)의 로비로 주내의 공립학교에서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는 이른바 ‘버틀러법’이 통과되면서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을 중심으로 반대 운동이 일어났고, 고등학교 생물교사이자 미식축구 코치인 존 스콥스가 자원하여 5월 5일 다윈의 ‘종의 기원’을 바탕으로 개발된 교과서로 진화론을 가르쳐 기소된 사건이다. 존 스콥스는 유죄 판결을 받고 100달러의 벌금을 내야 했다. 이 재판으로 미국의 과학교육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었다. 이후 소련의 스푸트닉 인공위성 발사의 영향을 받아 1960년에 이루어진 미국 교육개혁 덕분에 미국의 학교에서는 진화론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게 되었고, 마침내 1984년 연방대법원에서는 창조론 수업을 금지(미 수정헌법 정교분리 원칙 위배를 이유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새로 등장한 지적설계론(ID, Intelligence Design)과 이를 조직적으로 주장하고 전파하기 위한 디스커버리 연구소의 활동이 활발하게 되면서 특히 2000년 중반 이후에 각 주에서 진화론을 줄이거나, 지적 설계론을 교육과정에 넣으려는 시도가 계속 되고 있다.
이의 대표적인 사례로 EBS에서 2008년에 방영한 다큐프라임 ‘법정에 선 다윈’에도 나온 바 있는 펜실베니아주 도버 시에서의 재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04년 작은 도시인 도버의 시위원회는 지적 설계론을 과학시간에 가르쳐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다윈의 이론은 검증되지 않은 사실이며 확증되지 않은 허점이 존재한다. 지적설계론도 함께 가르쳐야 하며”, ‘판다와 사람에 관하여’을 보조 교재로 사용하도록 한 것이다. 이에 대해 학부모들이 소송을 제기하였고 2005년 연방대법원 판사인 존 E. 존스 3세(John E. Jones III) 판사는 “'인텔리전트 디자인'은 단순히 창조론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러므로 공립학교에서 이것을 가르치는 것은 교회와 국가를 분리한다는 헌법원칙에 위배된다”고 판결하여 지적 설계론이 과학이 아니며, 특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창조론의 하나라는 것을 논증하였다. ‘원숭이 재판’이 창조론으로 도전한 것이었다면 ‘도버 재판’은 지적 설계론으로 재무장하여 도전한 것이었다.

3. 지적 설계론이 득세하는 생태계의 조건
미국
미국에서 1990년 이후, 특히 2000년 들어 진화론과 관련한 논쟁과 법정 다툼이 잦아진 이유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 정권의 등장과 이들의 지지기반이 되고 있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활약으로 형성된 정치적 분위기 속에서 종교적 신념을 확산시키고자 하는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의 활동이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둘째, 특히 전통적으로 보수성이 강한 미국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몇 개 주에서는 이미 창조론을 교육과정에 포함시키거나 진화론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으로 교육과정을 짜도록 하고 있었는데 헌법의 정교분리 원칙을 피해가면서 종교적인 내용을 포함시키는 데에는 지적설계론을 도입하는 것이 좋은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물론 ‘도버 재판’으로 지적설계론이 과학이 아니라 창조론의 변형이라는 것이 증명되긴 했지만)
셋째, 지적 설계론자들의 집요하고 치밀한 계획이 있었다는 것이다.
ID 운동의 산파역을 담당했던 디스커버리 연구소(DI, Discovery Institute)는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의 법학 교수 필립 존슨(Phillip E. Johnson, 1940년~ )의 주도로 1998년부터 이른바 '쐐기 문건(Wedge document)'을 작성하였다. 이 문건에는 미국에 ID를 퍼뜨리기 위한 향후 5개년 전략이 담겨져 있었는데, '쐐기 전략(Wedge strategy)'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전략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과학적 유물론(scientific materialism)과 그것의 파괴적인 도덕적·문화적·정치적 유산을 물리치는 일이고, 둘째는 유물론적 설명을 인간과 자연이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유신론적 이해로 대체하는 것이다"
넷째, 지적 설계론을 주도하는 학자들의 활발한 출판과 적극적인 논쟁 개입이다. 법 논리학 교수인 필립 존슨은 1991년 <심판대의 다윈(Darwin on Trial)>(이승엽 외 옮김, 까치)을 통해 지적 설계론을 확산시켰고, '논쟁을 가르치라'라는 캠페인을 시작하였다. 리하이 대학교(Lehigh University)의 생화학 교수인 마이클 비히(Michael Behe, 1952년~)는 1996년에 <다윈의 블랙박스(Darwin's Black Box)>(김창환 외 옮김, 풀빛)를 통해 진화론과의 치열한 논쟁에 불을 지폈다. 윌리엄 뎀스키(William A. Dembski, 1960년~)는 <설계 추론>(1998년), <설계 혁명>(2004년), <공짜 점심은 없다>(2002년) 등 6권의 단독 저서와, 저명한 생물 철학자 루즈(Michael Ruse)와 함께 편집한 <설계에 대해 논쟁하기>(2004년) 등을 통해 지적 설계론의 지위를 높이고자 하고 있다.
이들의 역할이 갖는 의미는 학문적 능력을 갖춘 논자들이 전면에 나섬으로써 보수 엘리트 세력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는 것과 ID 교과서 채택과 ID의 공교육 침투를 위해 법적인 투쟁을 꾸준히 전개함으로써 지적 설계론에 대한 관심을 계속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우리나라의 경우 1980년대의 창조론과 1990년대 이후의 지적 설계론은 미국의 것을 그대로 도입했다고 할 수 있다. 지적 설계론은 얼마 전까지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는데(‘신’이 빠져 있는 이론이라는 게 주된 이유인 듯), 교진추가 만들어지고 그들의 활동이 교과서의 진화론을 중점적으로 문제삼기 시작한 것은 지적 설계론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인 것을 의미한다.
교진추의 전략은 미국의 지적 설계론자들의 교과서 채택과 공교육 침투 전략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교진추의 이광원 회장은 정기총회에서 인사말을 통해 "교진추의 설립 목적은 교과서의 진화론 내용을 분석하여 그 허구성과 폐해를 사회 일반에 널리 알리고, 교과서의 진화론을 개정함으로써 생명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건전한 과학발전 및 학술 진흥에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하고, "이와 같은 목적 하에 초 ․ 중 ․ 고 교과서의 진화론 관련 내용 중 명백한 오류는 삭제하고, 논란의 여지가 많은 내용은 논란의 이유와 양측 주장을 모두 기술하여 진화론은 법칙이 아닌 가설임을 서술하는 것을 단기 목표로 하고, 궁극적으로 교과서에서 진화론을 삭제하는 것이 우리의 최종목표"라고 밝혔다.
이어 이 회장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으로 우리는 종교적 색채를 배제하고 오로지 학술적 관점에서 진화론을 반대하는 순수 학술단체로서 활동하며, 종교와 관련지을 수 있는 창조과학 강의나 지적설계 강의는 하지 않고, 반 진화론 강의나 교과서의 진화론 관련 강의만 하고 있다"고 밝히고, ▶진화론 개정을 위한 사업(교과서개정 청원, 교과서 집필 등) ▶진화론 실상연구 및 문헌발간 사업(연구소 운영, 도서발간) ▶진화론 폐해와 허구성 홍보 및 시정교육 사업(홍보강의, 시정강의, 매스컴 연재 등) 등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고 했다.
이 회장은 "위와 같은 목적과 목표와 전략 하에 2012년도에는 우리의 역량강화에 전력을 다할 것이고, 2013년도에는 진화론개정을 사회적 이슈로 부각시키는 일에 진력할 것"이라고 밝히고, "2014년도부터는 실제로 교과서에서 진화론을 삭제하는 교과서 집필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했다.

또한 한국진화론실상연구회의 회장 김기환 장로는 자신의 글에서
‘7. 교과서 개정의 방향’에서 진화론이 기술되어있는 교과서를 개정하는 방법으로 미국의 사례를 근거로 들면서 창조과학을 교과서에 삽입하는 방법, 지적설계를 삽입하는 방법, 진화론의 제거 등 세 가지를 들고 있고
‘8. 교과서 개정을 위한 시민 단체’에서 진화론을 교과서에서 제거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반 진화론 서적<생물의 진화는 과학적 사실인가?>의 발간 , 저널스캐닝(유수 학술지의 진화론 관련 기사를 분석), 예장 통합 총회와의 연대, 집요한 연구와 추궁(집요한 연구를 하고 교과서에서 진화론을 제거하기 위한 전술전략을 수립), 시정교육과 저변확대(진화론 시정교육을 실시하여 반 진화론 정서를 교회 내에 확산, 진화론 교과서 개정의 우군을 양성), 중고교에서 진화론 반대교육((사)좋은 교사와 함께 기독교사모임을 통하여 반 진화론 내용을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도록 자료를 제공하고 동기부여를 하는 프로그램 추진)
‘10. 진화론의 과학적 실상과 연구, 홍보’에서 교과서에서 진화론이 사라지게 하자면...... 진화론의 연구와 홍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진화론 오픈 포럼>을 열고 진화론진영과 반 진화론진영이 동수로 논문발표를 하는 장을 만드는 것, 기독교 계열의 학교에서는 반 진화론 교육을 적극적으로 실시하여 자라나는 학생이 진화론에 빠지지 않게 해야, 진화론 일색인 매스컴에 반 진화론 기사를 많이 도입하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해야, 학계에 대한 반 진화론 캠페인도 기회를 찾아 충실하게 시도해야한다 는 등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교진추와 한진연의 이러한 활동과 계획은 미국의 디스커버리 연구소의 전략과 상당히 닮아 있다.

부시와 이명박의 신정 국가
한국에서 교진추라는 조직이 만들어지고, 본격적으로 공교육의 교육과정에 개입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은 공교롭게도 그 출발과 시기가 이명박 정부의 집권 시기와 중첩된다. 미국에서도 지적 설계론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 정치적 시점이 기독교 근본주의의 지원을 받는 레이건, 부시 정권 때였고, 2005년 8월 1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텍사스 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진화론과 지적 설계론을 함께 가르쳐 학생들에게 논쟁이 무엇인지를 이해시키는 것이 타당하다"며 공개적으로 디스커버리 연구소의 주장과 똑같은 발언을 함으로써 지적 설계론을 지지하기도 하였다.
이명박은 서울 시장 시절 자신이 마치 황제가 된 양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하겠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의 비웃음을 산 적이 있으며,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특정 교회 출신들을 요직에 중용함으로써 특정 종교에 편파적인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러한 정치인들의 종교 편향은 그들의 지원을 받는 보수적인 종교인들에게는 천국과 같은 세상일 것이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이교도나, 자신들의 종교 교리를 부정하는 듯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는 과학적 사실들(진화론, 빅뱅이론 등)은 눈엣가시일 것이고 따라서 시급히 제거 되어야 하는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과 같은 기독교 국가들인 유럽이나 다른 나라에서 이러한 논란이 별로 없다는 것은 종교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멍청한 교과부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인정 교과서 체제
국내 교과서는 국정, 검정, 인정 도서가 있다(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 대통령령 제23726호). 이번에 교진추가 교과부에 청원한 진화론 삭제와 관련된 사항은 고등학교 1학년이 배우는 융합과학교과에 관련된 내용으로 총 6개의 출판사에서 7종을 발행하였고 학교별로 선택이 가능한 인정도서다. 국정도서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으나 인정도서의 경우 심의 권한이 시도교육감에게 있다. 교과서에 대한 청원이 들어오면 교육감의 권한으로 연구정보원 주관 하에 심의위원회를 구성하여 판단하여 청원의 수용여부를 결정한다.
2009 교육과정 개정과정에서 과학 교과서를 인정도서로 하는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특정 종교나 이데올로기가 개입될 여지가 있을 수 있고, 심의 과정에서 거의 100% 통과되어 함량 미달의 교과서가 채택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편수지침 등을 통해 내용을 어느 정도 정하긴 하겠지만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진화론 내용 수정, 삭제와 같은 요구가 지속될 수 있고, 미국의 지적 설계론자들이 만든 것처럼 한국판 ‘판다와 사람에 관하여’도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와 출판사가 취한 태도와 절차도 심각한 문제이다. 작년 12월 1차 청원이 있자마자 교과부는 뭐가 그리 급했는지 과학창의재단, 서울시 교육청, 출판사에 청원통보를 하였고 이에 따라 6개 출판사 중 5개 출판사가 수정, 삭제 결정을 하였다. 이 과정에서 수정, 삭제 결정을 한 5개 출판사는 저자들의 협의도 없이 해당 집필진이 결정을 하여 논란거리가 되었다.
이런 논란이 일자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6월 7일 한국과학창의재단(이사장 강혜련, 이화여대 경영학), 교육과학기술부, 서울시교육청과 협의를 거쳐 ‘전문가협의회를 발족시키고 의뢰를 받은 한국과학기술한림원(원장 정길생)은 지난 9월 5일 ‘고등학교 과학교과서 진화론 내용 수정·보완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진화론은 과학적 반증을 통해 정립된 현대 과학의 이론 중 하나로 모든 학생에게 반드시 가르쳐야 할 핵심 내용 중 하나’라는 것과 생물종의 진화는 방향성을 갖고 ‘직선형’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복잡한 ‘관목형’ 과정을 거쳤음을 인식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4. 진화론에 대한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교진추의 청원으로부터 비롯된 논란은 일차적으로 정리가 된 상황이다. 하지만 교진추의 활동계획에서 보듯이 지금까지는 시작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 나름대로의 목표가 있기 때문에 3차, 4차 청원에 이어 학술대회, 언론 작업, 출판 작업을 계속해나가면서 세를 넓혀 나가려고 할 것이다. 특히 교과서 출판에 개입하여 지적 설계론이나 창조론을 공공연하게 과학이나 사회 교과서에 끼워 넣으려고 시도할 것이고 지금의 인정도서 체계에서는 교육감의 인정만 받으면 되니까 한국판 ‘ 판다와 사람에 관하여’ 같은 교과서를 만드는 구상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전략이 미국에서 성공한 바 있는데 그 좋은 전략을 굳이 외면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마도 지금까지는 나름대로 성공을 하고 있다고 자평할 것이다. 어차피 노이즈 마케팅을 하면서 자기들의 주장을 진화론과 대등하게 논쟁의 장으로 끌어 들이려고 하는 것이 1차적인 목표이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올 7월 한국 갤럽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45%가 진화론을 인정하지만, 성경의 창세기에 바탕을 둔 창조론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무려 32%나 된다고 한다. 2009년 EBS의 대한민국 진화론 지지도 조사 결과가 62.2%였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많이 감소한 결과이다. 진화론 지지도가 더 떨어질 수도 있고 다시 늘어날 수도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판단의 기준과 그렇게 판단하게 만드는 환경이 뭐냐는 것이다. 창조론을 믿든 지적 설계론을 믿든 개인의 자유이지만, 그것이 ‘과학’인가에 대해 판단을 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신앙과 과학적 사실을 같은 잣대로 재면서 혼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진연 회장의 주장처럼 진화론이 보수적인 종교인들에게 손해(교세의 약화)를 끼치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도 진화론은 죽어주어야 할 놈이 될 수밖에 없고, 그 핑계로 순진한 신도들은 과학도 아니면서 과학의 탈을 쓰고 있는 지적 설계론의 세례를 계속 받게 될 것이다. 인간이 자기를 둘러싼 상황이 악화되어 나약하게 되는 조건에서는 종교의 힘은 더 강해지게 마련이고 지금 나타나는 현상은 그 반영의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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