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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짱칼럼]

전교조에게 부족한 것들, 그러니까 지금 필요한 것들

조종현 / 청주농고

“TV 드라마를 보듯 만날 청와대와 국회, 언론만 보고 있는 사람들은 조명이 비춰지지 않는 곳에서 어떤 삶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어떤 실험들, 어떤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모른다. 조명이 사람들의 눈을 빼앗아 사태를 어둡게 만든다. 중증 장애인들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늙은 농부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이들의 투쟁, 이들의 실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람들은, 무엇보다, 학자들은 좀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도대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거냐고?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냐고? 내 대답은 이렇다. 또 다시 ‘민주주의가 움트고 있다.’” 고병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중

전교조는 거대 조직이다. 여전히 보수 세력들에 갖은 돌팔매를 맞고, 이명박 정권 하에서 모질게 탄압받는 조직이기도 하다.
또한 전교조는 여전히 기대 받고 있는 조직이다. 제 민중사회단체들은 우리 교육의 미래를, 불안한 현실을 이야기 할 때 늘 전교조를 중심에 두고 이야기한다. 엊그제 파업 중인 언론노조 동지와 맥주 한 잔 나누는데, 그 동지 굉장히 격한 어조로 ‘시내 명문고를 가면 서울대에 간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의 생각에 화가 난다. 전교조가 어떻게 해 보시오!’라고 요구했다. 나의 답은, 그저 쓴 웃음일 수 밖에.

전교조 내외의 많은 사람들이 전교조에 대한 기대와 환상,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어쩌면 창립 당시, 그리고 이후 해직 교사들의 고단한 삶, 합법화 과정에서 연유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결국 모진 탄압 속에서도 ‘참교육’을 끈질기게 밀어 올린 뚝심이 현재의 전교조에 대한 기대치를 형성한 것이라 해도 무방할 터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의 조직 전교조는 ‘과대평가’ 받고 있다.
그래서 매일 불편하다. 지금 우리는 전교조에 무엇이 부족하고, 그것을 살피지 않으면 ‘건강한 전교조’로 다시 서기 어려운 시절의 한 가운데에 있다.

현장 지향성

사실상 전교조 집행부는 현장과 유리되어 있다. 이는 물리적 공간 뿐 아니라, 실제로 내용성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현장 교사들이 무엇 때문에 어려워하고, 무엇을 절절히 원하는지가 조합의 지도부에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설령 전달된다 하더라도, 집행부가 추진하는 ‘정치적 방향’에 맞게 윤색되거나, 왜곡되기 십상이다.
노동조합은 철저히 현장 교사들의 물리적 조건에 근거해서 사업을 집행해야 한다. 이와 같은 기본이 지켜지지 않을 때,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권위적인 관료들’일 것이다.
덧붙여, 노동조합의 현장 지향성의 원칙은 실천과 집행 역시도 현장과 조응해야 한다. 참교육 투쟁, 학교 혁신의 주체가 현장 교사인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집행부는 조합원을 ‘대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언젠가는 조합원들이 집행부의 지침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객체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나쁜 순환이 구조화되면서, 전교조 힘의 원천인 현장은 무너졌고, 사회적 발언권도 상실했다. 전교조는 몇몇 명망가들이 움직이는 패거리 집단이 아니지 않은가?

실질적 민주주의

현장 지향성이 약화되면서 민주주의가 조합에서 사라지고 있다. 조합 안에서 토론과 실천이 사라지고 있다. 일상적 민주주의는 그 수고로움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조를 민주노조답게 하는 핵심 덕목인 것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의 전교조를 보면 민주주의는 사라졌고, 다수파의 패권과 다수결만 남았다. 왜 그럴까?
이는 전교조 집행부가 현장실천을 통한 교육변혁보다는 국회나 교과부와의 교섭 등 상층부의 대리주의적 전략으로만 일관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현장 실천력이 담보되지 않는 상층 교섭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전교조는 이와 같은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현장 조합원들의 이해와 요구를 책임있게 조직하고 대표하는 것이 집행부의 최우선 과제임에도, 마치 특정한 의견그룹의 견해를 관철시키는 듯한 오해를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전교조는 소위 민중진영에서조차 박수와 응원의 소리가 작아지는 현실을 감내해야 한다. 우리는 소수 집행부 몇몇이 전체 조합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엘리트주의 집단이 아니지 않은가?

책임있는 집행과 평가

우리는 병든 한국의 교육을 책임지고자 출발한 조직이다. 조합의 상층 집행부에서부터 현장의 조합원까지 우리 조직의 ‘방향’, ‘실천’, ‘개인의 양심’에 대한 끝없는 책임을 따져 묻는 것이 우리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책임을 다 한다는 것은, 집단적 토론과 여론 수렴을 통해 조합이 정한 각종 실천 방침과 지침이 제대로 집행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결코 추궁하는 것은 아니다. 조합이 정한 입장과 방침이 현장에서 어떻게 집행되는지, 발현되는지를 점검하고 이의 성패를 면밀히 따지는 것은 노동조합이 아니라도 기본적인 조직의 덕목이다.
하지만 최근 조합은 ‘책임감’과 거리가 멀다. 반교육 반민중적 교육정책들이 학교 현장에 내리 꽂히고 있어도, 조합은 조합원들과 함께 공유하고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무책임으로 일관하고 있다. 소위 ‘있는 집’인 진보교육감들의 성과를 과대포장 하여 ‘낙수 효과’ 정도를 노리고, 또 ‘현장에서 알아서 하시라’ 정도만 해 놓는 것이 현재 전교조의 수준이다. 그러면서도 소위 간부들이 집회장에서 토해 내는 ‘사자후’가 민망한 이유이기도 하다.
무책임의 또 다른 모습은 ‘과도한 정세인식’에서 드러난다. 민주노총과 전교조가 연초에 제출한 사업계획은 말 그대로 장밋빛이었다. 정세가 좋아질 것이므로, 당연히 위원장 동지들은 ‘혁명적 진군’을 웅변했으며,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와 새로운 교육체제 쟁취는 받아 놓은 밥상이었다. 하지만 현장의 활동가들이 ‘과도한 정세인식은 위험하고, 주체의 의지를 발현시키는 구체적 전술방침’을 요구했지만, ‘다 잘 될 것이기에 걱정하지 마시라’고 화답했다.
그런데 최근의 진보진영(통합진보당까지를 포함해서라도 말이다!)의 지리멸렬함을 넘어 총체적 무능 국면의 한 가운데, 과연 총연맹과 전교조 누가 진짜(!) 책임을 지고 있는가?

민중 지향성

사실 현장 지향성, 조합내 실질적 민주주의, 일상적 책임감의 고취가 필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우리 스스로 진보임을 자처하고, 교육체제의 혁명적 전환을 하겠다고 대내외에 밝히고 있지만, 봇물처럼 터져 나왔던 ‘참교육의 가치 지향’이 점점 옅어지면서 동시에 드러나는 문제들로 볼 수 있겠다.
‘지금과 다른 그 무엇’을 추구하는 것만으로 진보라 할 수 없다. 형식과 내용을 달리하는 것보다 우선하는 것은, 우리 운동이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가를 부단히 되물을 때라야 올바른 진보교육을 토론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즈음 ‘진보’도 ‘혁명’도 상품이 되어 버렸다. 골방에서 팟캐스트 방송을 귀에 꽂고, 키득거리며 소비하는 시절이다. 우리 스스로 변화의 주체로 나서고, 광장의 주체로 나서면서 교육운동의 전망과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심화되는 불평등의 현장에서 끊임없이 평등교육을 부르짖고 구현하는 실천들은 ‘구태한 행위’로 간주되기 쉽다. 노동자 민중의 교육권을 주창하던 전교조는 어느 새 ‘교육 체제의 갑’을 자임하고 나섰다.
우리가 교육권력을 유용한 공간으로 여기는 이유는, 독점적 권력을 해체하고 현장으로 그 권력을 돌려주기 위함이다. 우리도 누군가와 같이 그 권력을 ‘우리 식’으로 휘두르는 것, 또 그것을 용인하는 것은 더 이상 진보라 말할 수 없다. 진보교육이라 할 수 없다.

노동자 민중을 위해 복무하고, 노동자 민중에 의해 통제되고, 불평등과 차별을 넘어서는 교육. 즉, 민족/민주/인간화라는 우리의 선언 안에 포함된 실질적 내용을 구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변화/발전/실천해야만 ‘전교조다움’을 유지할 수 있고, 가치로울 수 있다.

반민족/반민중/반민주/반인간화 교육정책들이 현장에서 횡행하고, 득세하고 있다.
우리의 제자들과 조합원들과 교사들이 신음하고, 고통받고, 죽음을 선택하고 있다.
민주노조 전교조는 답해야 한다.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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