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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화장하기 - 영화 ‘써니’ 를 보고

 

은하철도 / 진보교육연구소 연구원

 

꿈 그리고 추억

 

모처럼 몇 개월만에 꿈을 꾸었다. 복권을 살만한 돼지꿈은 아니었지만 멋진 옷을 입고 신나게 오토바이를 타고 ‘라이더’가 되는 꿈이었다. 잠에서 깨어 담배를 빼어 물고 불을 붙여 한 대 피면서 ‘왜 이런 꿈을 꾸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한 때는 꿈을 자주 꾸던 시절이 있있었다. 보지 못했던 친구를 만나는 꿈, 허름한 술집에서 밑도 끝도 없는 말도 안되는 토론을 하는 꿈, 베니스의 리얄토 다리, 파리의 에펠 탑, 로마의 콜로세움이 함께 있는 미지 미상의 도시를 끝도 없이 산책하는 꿈. 이런 꿈들을 통해 현재 내 마음속에 어떤 소망하지만 이루지 못하는 욕망이 있는지를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가끔은 유쾌하지 못한 꿈도 있었다. 이제는 꾸지 않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간 고등학교 시절로 되돌아 가는 꿈을 꾸었다. 꿈의 내용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항상 같은 주제, 내용의 꿈이었다. 중간,기말 고사기간에 지각을 하는 꿈이었다. 꿈에서 항상 나 또는 타인에 의해 등교가 지연되었다. 꿈에서의 나는 이상하게도 천연스럽게 느긋하다. 그러나 그런 나를 보는 꿈을 꾸는 나는 너무도 가슴을 졸이면서 속상해한다. 기억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어린 시절 계속 꾸어온 꿈이 있다. 둥그렇고 커다란 정말로 순수한 눈동자 두 개가 나를 응시하는 꿈이다. 이 눈동자의 시선으로부터 나는 벗어날 수도 없고 이 눈동자를 응시 안할 수도 없다. 그리고 눈동자의 시선으로 나는 무기력에 빠지고 나를 받히는 바닥은 늪이 되어 나의 몸은 서서히 함몰되는 꿈이다. 나이가 들어 이것이 바로 ‘가위눌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공포와 고통의 정도만큼 나를 응시하는 그 커다랗고 둥그런 순수한 눈동자의 의미를 알아내고자 했다.

이처럼 꿈은 우리에게 기쁨도 주지만 알 수 없는 공포의 근원을 제공하기도 한다. 꿈은 자신의 두뇌 작용의 일부이면서도 자신의 심장의 박동을 자신의 뇌가 제어하지 못하듯이 어찌할 수 없는 ‘치외법권’, ‘신비’의 영역이다.

 

이른 봄의 교정

 

입학식 전 소집일에 맞추어 처음으로 가본 중학교 교정을 잊지 못한다. 텅 빈 운동장 주변의 나무는 이파리 하나 남김없이 앙상하게 2월의 차가운 하늘아래 헐벗어 있었고 겨울 내내 얼어있던 운동장은 한 낮의 태양의 열기로 진창이 되어 있었다. 하나 같이 개성이 없던 콘크리트 교실들과 주인없이 열과 행을 맞추어 도열해 있던 책상과 걸상은 막 입학을 앞둔 초등학교 졸업생에게 희망과 기대보다는 공포로 다가왔었다.

70여명의 학생들이 공부하던 교실은 한 낮에도 어두컴컴한 동굴 같았고, 난방용으로 제공하던 조개탄은 벌겋게 녹이 슬은 쇠덩이 난로의 주변만 덥혀줄 뿐 복도와 운동장을 바라보는 창가 쪽의 자리는 시베리아 벌판이었다. 일상화된 폭력은 들어오는 여자 교사를 대신해서 남자 교사가 대리 폭행을 하기도 하였고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치러지던 애국 조회의 한 없이 길고 긴 교장선생님의 훈화로 날이 더워질수록 쓰러지는 학생들이 속출했다. 아침마다 학생부 소속 교사와 같이 서서 명찰이나 교표 그리고 두발을 체크하는 선도부 학생들은 뒤의 교사들의 빽을 믿고 같은 학생들에게 권력으로 군림하였다. 고등학교 연합고사가 있던 시절 학교별 고교 입시의 성과를 위해 실시했던 강제 보충수업...

일상화된 폭력에 순응하던가 아니면 일탈이 우리에게 놓여 있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폭력에 둔감해지거나 폭력을 두려워 순응하게 되었고 일부의 친구들은 폭력의 피해가 되면서 또다른 가해자가 되는 길을 통해서 일탈을 꿈꾸었다. 술, 담배 그리고 부탄 가스와 본드 흡입. 맥주로 머리 탈색하기, 콜라를 발라서 머리 세우기, 친구들 학용품 절도에서 빈 차 털기 그리고 빈집에서의 절도 급기야 빈집으로 알고 들어갔다가 사람이 있어 들고 있던 칼로 찌르는 강도가 되기도 하였다. 짱돌, 책상 또는 걸상 다리, 자전거 체인 등 ‘다구발’ 싸움이 자행되었고 친구들을 상대로 하는 금품 갈취가 아무런 죄책감 없이 자행되었다.

교실에서의 경쟁은 교실밖에서의 생존 경쟁으로 이어지고 우리들 모두는 이런 공식 비공식적인 폭력에 둔감해지게 되었다.

 

학창시절의 우정과 추억

 

작년 여름무렵 ‘써니’가 개봉되어 조용한 소문을 타고 흥행에 성공을 거두었다. 80년대 중후반의 고등학교 여학생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는 사람들의 예상을 보기 좋게 깨고 400만명에 가까운 관객을 영화관에 불러모았다. 서바이벌 프로와 오디션 프로가 브라운관 앞으로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걸’그룹들이 오빠와 삼촌팬들의 가슴을 흔들고, 식스팩의 짐승돌, 미소년들이 누나와 이모팬들의 여심을 설레게하는 21세기 한반도에 80년대의 디스코 청바지와 롤러장의 풍경이 조용하게 아니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80년대는 피의 광주로 시작되었다. 피 묻은 손으로 전 대통령을 내쫒고 스스로 왕관을 쓴 독재는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피의 손과 왕관을 감추기 위해서 문화정책을 편다. 마치 3.1운동을 학살로 마무리한 일본 제국주의가 문화정책을 하듯이 사회 각 방면에 자율과 정화라는 명목으로 민심얻기에 힘쓴다. 컬러텔레비젼이 보급이 되고 비디오가 보편화 되면서 서양의 현란한 문화가 일부 계층에 한정되지 않고 청소년들에게까지 보편화되고 교복과 두발 자유화에 따라 ‘캐주얼 패션’이 등장한다. 이용이라는 가수를 일약 조용필에 버금가는 스타로 만들었던 여의도 광장에서 며칠간 시작되었던 ‘국풍’ 잔치판은 마치 ‘태평성대’의 도래를 느끼게 해주었다. 과외 금지와 졸업정원제로 인한 입학 인원 확대는 청소년들에게 자유시간(?)을 안겨주었고 이 시간을 소모하기 위한 문화와 장소가 필요하게 되었다.

용산에 넓게 위치한 미 8군들의 위락을 위해 존재하던 이태원에 하나둘 디스코 텍이 들어서고 이 청소년들에게 문화 공간을 제공해주었다. 영화 ‘써니’의 써니는 사람이름이 아니고 이 곳에서 틀어졌던 디스코 음악이었다. 미국에서 음악 전문 캐이블 방송인 MTV가 본격화되고 이 방송에서 틀어지기 위해 가수들이 뮤직 비디오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이제 미국의 문화는 라디오나 음반으로 보급되어지는 것을 뛰어 넘어 텔레비전과 비디오 등의 비주얼을 통해서도 들어오게 되면서 우리의 오감모두를 지배하고 나아가 사고를 지배하게 되었다. 마이클 잭슨의 뮤직 비디오를 보고 얼마나 많은 우리의 청소년들이 뒤로 가는 춤을 추었던가?

문화정책의 가시적 효과는 자유와 다양성이었다. 현란한 조명 아래의 흐느적거리던 디스코 텍의 플로어의 이면에는 86년 아시안 게임 육상에서의 금메달 리스트 임춘애의 금메달 이면에 ‘라면’을 먹고 달려야만 했던 가난이 있었듯이 70년대 이후 계속되던 노동탄압과 학원탄압이 도사리고 있었으며, 각종 국제 회의와 대회를 위해 대규모 개발이 계속되면서 수 많은 철거민들의 고통과 빈곤이 숨겨져 있었으며 절대로 이런 모순이 드러나지 못하게 더욱더 자극적이고 현란하게 문화는 꽃을 피워야 했다.

 

일상화된 폭력과 무디어진 모순의 상품화

 

짧은 러닝 타임에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 하는 영화라는 매체의 속성을 감안하더라도 영화 써니의. 80년대 학창 시절의 묘사는 지극히 비현실적이다. 아니 비현실을 넘어서서 왜곡과 덫씌우기의 극치이다. 폭력에 대한 미화와 따돌림 행태를 정당화할 뿐더라 변혁운동에 대한 조소와 조롱 그리고 민주화 운동에 대한 희화가 두드러진다.

참여정부에 이어서 MB정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 현상의 특징중의 하나인 정치의 드라마화의 여파가 여기서도 보여진다. 텔레비전의 드라마는 막장이 아니면 흥행을 하지 못하듯이 정치인들의 변신과 말바꾸기는 막장을 치닫고 있다. 참여정부 주류들의 한미 FTA와 관련된 사안, 새누리당의 빨간색 로고 등등.... 예를 들을 수가 없을 정도로 다반사로 자행되는 어처구니없는 모순이 자행되는 한반도에서 정치와 관련되어서도 막장 드라마화가 일반화되어 가고 있는 현실에서 써니의 왜곡과 포장은 이러한 추세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죽어가는 40대 부유한 여성의 친구 찾기 그리고 그 친구의 죽음으로 나머지 친구들의 횡재는 취업에 실패하고 취업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 청년들의 로또 복권 로망에 부응하고 있다.

 

학교 폭력의 근원적 해결책

 

올해 들어 정권 차원에서의 학교 폭력에 대한 관심이 연일 보도 되고 있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가 열리기도 하고 어떤 교원단체가 참여하지 않았다고 해서 왈가왈부 한다. 누구나 호들갑을 떨고 서둘러 대책을 내놓고 있다. 경찰인원의 확대, 상담 교사의 증원, CCTV확대 설치........

학교에 잔존하는 군사 문화적 인권 유린 더 나아가 생존을 강조하면서 경쟁만을 최선으로 여기는 학교 문화와 입시교육이 존속하는 한 학교 폭력은 여전히 계속될 것이다. 우리 교육의 혁명적 전환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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