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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호 [맞짱칼럼] 교육과 경쟁 사이

2012.03.22 15:43

진보교육 조회 수:731

 

교육과 경쟁 사이

 

송원재 / 고척고

 

언제부턴가 교육에 대해 말할 때 ‘교육 경쟁력’이란 말을 스스럼없이 붙이게 됐다. 어떨 때는 교육이 ‘국가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라며 짐짓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자원도 적고 국토도 좁으니 교육으로 인재를 길러야만 먹고 살 수 있다.”는 말은 의심할 나위 없는 금과옥조처럼 여겨진다. 이렇듯 요즘 교육은 ‘경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묶여버린 느낌이다.

하지만 경쟁은 본디 교육보다는 생물학과 관련이 깊다. 생물학에서 경쟁은 각각의 개체나 집단이 생존을 위해 한정된 자원을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는 것을 뜻한다. 다른 개체와의 경쟁에서 패배하는 개체는 도태되고, 다른 종과의 경쟁에서 패배를 거듭하는 종은 멸망할 수도 있다. 양보란 없다. 온정적 태도는 위험한 행동이다. 언제 적으로 돌변할 지 모르는 잠재적 경쟁자는 초전에 박살내 버려야 한다. 내 후손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상대 역시 사전에 미리미리 제거하는 게 상책이다.

알고 보면 ‘교육 경쟁력’이라는 말은 참으로 살벌하고 섬뜩한 말이다. 그 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또는 세계를 강자만이 살아남는 ‘적자생존의 밀림’으로 전제한다. 거기서 살아남으려면 잠재적 적들을 제압하고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 교육은 그에 필요한 수단과 무기를 남보다 먼저 풍부하게 확보하기 위한 사전 단계에 해당한다. ‘교육의 경쟁력’이 ‘개인과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말은 바로 그런 뜻이다.

그런 눈으로 교육을 바라보면 학교와 아이들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많은 무리가 따르더라도 남보다 먼저 유리한 지위를 차지하고 봐야 한다. 전인적 성장?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남을 딛고 한 뼘이라도 더 올라가야 한다. 친구와의 우정? 그딴 거 신경 쓰다가는 순식간에 밀려나기 십상이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이 주장은 수상쩍은 대목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자세히 뜯어보자. 논증이란 원래 전제가 잘못 되었으면 결론 자체가 엉터리가 된다. 첫 번째 명제부터 살펴보자. 사회는 강자만이 살아남는 ‘적자생존의 밀림’인가? 사실 그런 측면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는 문명이 본능보다는 이성에 의해 성장하고 성숙해 왔음을 말해준다. 때로 야만과 폭력의 시대가 있었지만, 역사적으로 인간은 경쟁과 배제보다는 상호 이해와 협력을 통해 더 많은 발전을 이루어 왔다. 문명의 성숙도는 ‘적자생존의 밀림을 방치하느냐’, 아니면 ‘적극 개입해서 밀림에 평화와 공존의 질서를 도입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전자 쪽으로 갈수록 야만에 가까워진다면, 후자 쪽으로 갈수록 그 사회는 문명사회에 가까워진다. 인간의 사회를 ‘적자생존의 밀림’으로만 규정하는 것은 하나의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했을 뿐, 인류 역사가 이루어낸 조화로운 문명의 성장과 발전을 설명하지 못한다.

두 번째 명제 역시 수상쩍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타인을 제압해야만 하는가? 개체 간의 이해와 협력이 애당초 불가능한 하등동물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인류는 언어라는 소통수단을 통해 복잡한 사회적 유대를 발전시켜 왔고, 실로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와 협력을 다지며 생존에 필요한 한정된 자원을 함께 공유해 왔다. 오늘날 인류가 다른 동물과 질적으로 구별되는 높은 수준의 문명사회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경쟁을 통해 타인을 억압하고 배제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해와 협력을 통해 집단 내의 불필요한 갈등과 폭력을 최소화하는데 상당 부분 성공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경쟁이 다른 종과의 경쟁도 아니고, 같은 인류 또는 같은 사회에 속한 구성원 내부의 경쟁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오늘날 인류 전체가 생산하는 자원의 총량은 인류 전체가 생존하는 데 필요한 자원의 총량을 훌쩍 뛰어넘은 지 오래다. 따라서 경쟁은 더 이상 인류나 국민의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라, 사회 내의 우월한 집단이 더 많은 자원을 점유하기 위해 타인의 몫을 탈취하기 위한 ‘약탈적 폭력’의 양상을 띤다. 그런데도 ‘적자생존’을 입에 올리는 것은 경쟁이 본질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폭력성’을 은폐하고, 폭력과 약탈을 정당화함으로써 야만적 시스템이 더 오래 버틸 수 있도록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함이다.

따라서 ‘경쟁’을 선전하는 스피커는 외부를 향할 때보다는 사회집단 내부를 향할 때가 더 많다. 교육과 경쟁을 결부시키는 것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우리나라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대거 무역회사에 취직하거나 외국에 나가 살 것도 아닌데, 그들은 왜 입만 열면 ‘교육 경쟁력’을 외칠까? 또 그나마 국가적 인재(?)를 양성한다고 볼 수도 있는 대학보다는 국민공통 교양과정에 해당하는 초․중․고등학교에 ‘교육 경쟁력’ 잣대를 유독 들이대는 이유는 또 뭘까?

그 이유는 그들이 말하는 ‘교육 경쟁력’이란 게 ‘국내 먹이사슬’의 상층부를 차지하기 위한 ‘국내용 경쟁력-학벌 경쟁’이기 때문이다. 결국 ‘교육 경쟁력’은 처음부터 ‘국가 경쟁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런데도 이 둘을 억지로 묶어놓은 의도는 뻔하다. 우리 사회에서 우월한 집단이 자원을 독점하기 위해 배타적 폭력구조를 조립하면서 중간에 서열화된 학벌체제라는 여과막을 삽입해 놓은 것이다. 번듯한 직장을 얻으려면 명문대를 나와야 하고, 명문대에 들어가려면 치열한 입시경쟁을 뚫어야 하고, 입시경쟁에서 이기려면 천문학적 사교육비를 쏟아 부어야 하고, 사교육비를 감당하려면 부모를 잘 만나야 하고……

3중 4중의 촘촘한 여과막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그들만이 좁디좁은 땅덩어리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자원을 독점할 수 있다. 나머지는 공부 못한 죄 때문에, 가난한 죄 때문에 꿀 먹은 벙어리 냉가슴 앓는다. 결과적으로 경쟁은 차별을 낳고, 차별은 패자에게 내면화되어 제도로 굳어진다. 이것을 거부하는 패자들에겐 가차없이 폭력이 가해진다. 이른 바 ‘수직적 폭력’이다. 패자의 갈 곳 없는 절망과 분노는 자기 자신을 망가뜨리기도 하고, 또 때로는 같은 패자를 향해 분출되기도 한다. 이른 바 ‘수평적 폭력’이다. 요즘 이슈로 떠오르는 학교폭력도 그 중 하나다.

그들이 말하는 ‘교육 경쟁력’의 실체는 바로 이런 것이다. 이제 분명히 말해야 한다. 경쟁은 폭력일 뿐, 교육이 아니다. 근본적인 질문도 던져야 한다. 이게 누구를 위한 경쟁인가? 최소한의 합리성도 공정성도 없는 게임을 우리가 왜 해야 하는가? 내가 피땀 흘려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교육기관에서 왜 내가 소외받고 버림받아야 하는가?

이제 미친 짓을 그만둘 때가 됐다. 브레이크 고장으로 폭주하는 기관차는 탈선시키는 게 공익에도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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