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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움의 근원을 찾아 나서는 심리학 여행

비고츠키와 루리아의 『도구와 기호』

 

손지희 / 진보교육연구소 비고츠키교육학실천연구모임

 

 

비고츠키 입문서가 한국어로 '완역'되다.

 

『생각과 말』(2011년 초 한국어 완역본 출판)에 이어 비고츠키가 제자이자 동료인 루리아와 함께 쓴 "아동발달에서의 도구와 기호"의 한국어 완역본이 출판되었다. 올해 초 출간된 비고츠키 선집 제2권『도구와 기호: 어린이 발달』이 그것으로서 사회-문화적 이론의 창시자인 러시아 심리학자 비고츠키의 모든 작품에 대한 최고의 입문서라고 평가받는 중요한 책이다. 제목을 통해 압축적이지만 고스란히 표현된 대로 어린이가 자신들의 사고와 행위를 기호를 통해 표현하고, 이를 장난감과 도구를 이용한 실행적 활동으로 나타내는 과정이 아동기에 얼마나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명료하고 설득력 있는 논의가 전개된다.

비고츠키 이론을 서방세계에 처음으로 알리고 비고츠키 붐의 전조를 예고한 책이 『생각과 말』이라면 M. Cole 등이 비고츠키의 저술을 모아 편역한 것으로 알려진 『Mind in Society』는 비고츠키 붐에 일조한 책이라 볼 수 있다.『Mind in Society』가 모태로 삼은 비고츠키의 원전이 바로 『도구와 기호』이다. 하지만 원본을 '각색'하다시피 한 탓에 주의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도구와 기호] 한국어판은 원전에 매우 충실한 형태로 완역하여 오해와 왜곡의 여지가 없으며 역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써내려나간 해설 덕에 비고츠키 이론의 정수를 분명하고 풍부히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쉬운 텍스트는 결코 아니다.

 

[도구와 기호]에서 [생각과 말]로의 변증법적 고양

 

[도구와 기호]는 1930년 무렵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언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생각과 말](1934년)보다 앞서 쓰여졌다는 점만이 확실하다. 두 책의 내용 사이에는 일관성이 있으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다음의 두 가지 사항은 커다란 차이이다. 얼핏 '모순 아니야?'라고 느낄 수도 있다.

첫째, [생각과 말]에서는 피아제의 '사회화'를 비판하면서 '개인화'로 어린이 발달의 과정을 표현한 반면 [도구와 기호]에서는 '어린이의 사회화'라는 용어를 수용적으로 사용하였다.

둘째, [도구와 기호]에서는 행동주의의 자극-반응 도식의 변증법적 부정을 통해 자극-도구-반응 삼각형 도식으로 상승시켜 인간정신발달의 '내적변혁'에 있어서 '매개'의 결정적 중요성을 이 도식을 통해 설명한 반면 [생각과 말]에서 이 도식은 아예 거론되지 않는다. 차라리 이 삼각형 도식은 부정된다. '문화적 매개'인 '말' 자체가 인간발달과정에서 발생적, 구조적, 기능적인 측면에서 역동적으로 변화하지만 삼각형 도식에서는 '매개'의 인간의 주체적 사용과정에서의 역동적 변화를 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도구와 기호]와 [생각과 말]이 가지는 핵심적인 차이는 비고츠키가 [도구와 기호]에서 반복하여 사용하는 피아제적 용어와 개념, 즉 '실행 지성이 사회화된다'는 것이 [생각과 말]에서는 완전히 거부된다는 점이다. 이는 피아제의 저작에 대한 비고츠키의 입장 변화를 보여준다." (103쪽 해설 내용 중)

 

이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비고츠키의 '변증법적 태도'이다. 비고츠키가 변증법적 유물론에 입각한 심리학자라는 의미이며 비고츠키의 이론은 맑스주의 심리학이라는 의미이다. 비고츠키 이론은 계속하여 변화해 갔으며 이는 단순히 기존의 생각을 정교화하는 수준이 아니라 기존 입장에 대한 변증법적 부정을 통한 상승과정이었다. 비고츠키의 인간발달에 대한 연구 과정 자체가 변증법적 유물론의 길을 따른 셈이다. '변증법적 부정을 통한 고양'이 [도구와 기호]에서 [생각과 말]로 이르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아동의 고유한 특성이 사회적 압력에 의해 떠밀려나는 '사회화' 과정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문화역사적 매개를 통해 주체로서 형성되어가는 '개인화'의 과정이 바로 인간발달의 과정이라는 것과 "낱말의미는 발달한다"는 [생각과 말]의 핵심 내용은 바로 자극-도구-반응의 삼각형 도식, 피아제의 이론에 대한 비판적 점유 즉 변증법적 부정을 통해 가능했다.

 

'인간다움'의 근원과 핵심 수단

 

비고츠키는 인간이 생물학적 존재에서 문화역사적 주체로 나아감에 있어서의 원천은 '사회적 관계'임을 확신하고 단언한다. 그리고 이를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확증하고자 했다.

비고츠키는 인간이 동물과 왜, 어떻게 다른지 보이고자 노력한다. 인간은 동물로부터 확장된 존재라기보다는 고유의 발달노선을 거친다. 그 발달노선은 바로 문화역사적 노선이다. 이 노선에서의 핵심은 바로 '기호'이다. 이의 출발점으로 행동주의와 생득주의의 오류를 지적한다.

 

"그러나 일부 행동주의자들이 그러했듯이 이러한 통합성(말, 도구 사용 그리고 자연적인 시각장 사이의 복잡한 기능적 연결)이 훈련과 습관의 결과이며 이것이 동물로부터 확장되었으며 우연에 의해 지적 본성을 획득하는 자연적인 발달의 노선에 직접적으로 병합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또한 여러 아동 심리학자들처럼 말의 이러한 역할이 어린이가 성취한 갑작스러운 발견의 결과라고 주장하는 것 역시 그에 못지 않게 잘못된 것이다." (80쪽)

 

잠시 멈추어 생각해보면 비고츠키가 비판한 행동주의와 선천주의적 관점이 우리에게 아주 익숙하지 않은가! 훈련, 습관, 갑작스러운 발현 등. 비고츠키 이론에 있어서 '사회적 관계' 그 속에서 역사적으로 발생한 문화적 도구와 기호는 인간발달에서 있어서 중요한 '요소'라는 정도가 아니다.

 

"어린이 정신 발달의 전체 역사는 발달의 첫날부터 환경에 대한 적응이 사회적 수단을 통해 어린이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획득된다는 것을 보여준다."(88쪽)

 

사회적 관계 즉 협력을 전제로 하는 기호와 도구 없이는 인간이 인간됨을 획득할 수 없다는, 즉 비고츠키에 있어서 그것들은 인간발달의 '원천'인 것이다.

 

비고츠키에 있어서 '인간됨' '인간다움'의 의미

 

그렇다면 '인간의 가치'를 중시하는 비고츠키의 이론은 생태계에 대한 타인에 대한 인간의 횡포를 정당화하는 이론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비고츠키가 말하는 인간은 '상황의 노예'가 아닌 자기규제력을 획득함을 통해 보다 자유로워진 해방된 주체이다.

 

"말이 작용하기 시작하자 (…) 지각은 시각장의 노예가 되기를 멈추고 어린이는 낱말에 의해 변형된 인상들을 수용하고 전달한다" (56쪽)

 

엄청난 긴장이 느껴진다. 그야말로 대립물의 통일 상황이다. '(멋대로가 아니라) 스스로를 규제함으로써 더욱 자유로워진다'라니? 비고츠키의 설명을 따라가면 그 의미가 분명히 다가온다. 상황이 시키는대로 하고 싶은 대로는 결코 인간적 자유, 주체적 자유가 아니다. 컴퓨터 게임을 하고 싶은 대로 맘껏 하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 컴퓨터 게임을 멈출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함으로써 주체적인 인간이 된다. 전자의 경우는 실은 컴퓨터 게임에 반사적으로 반응하며 통제당하는 것이다. 자극의 노예가 되어 충동적이고 즉자적인 반응을 하는 것을 자유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말의 도움을 통해 만들어지는 이러한 2차적 자극들로 인해 어린이의 행동은 더욱 높은 수준으로 고양되어 어린이를 직접 끌어당기는 상황으로부터 상대적인 자유를 가지고 충동적인 시도들은 이에 따라 계획되고 조직된 행동으로 변환된다."

 

비고츠키의 자유는 '자유의지'이며 인간은 유일하게 자기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자기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주체이다. 그 가능성은 인간 역사 발전과정에서 발생했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자신에 대한 의식은 저절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사회적 관계, 도구와 기호를 통한 길고긴 여정을 통해 형성된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발달이다. 이며 이것이 바로 비고츠키가 말하는 '인간됨'의 의미라고 생각된다.

 

"이제 어린이는 자기 자신을 미리 제어하고 자신의 행동을 미리 조직화하는 매개적 수단을 통해서 자신에게 제시된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 이것은 사회적 활동이 주체 내적인 것으로 대체된 것이다. 이것은 어린이가 이미 거쳐 왔던 발달 경로의 결과로 주어진다. '시각장의 노예' 같은 존재인 유인원에게는 없는, 상황으로부터 행동의 자유, 즉 주변의 구체적인 대상들로부터의 독립성을 보증해준다. 게다가 어린이는 즉시적인 공간에서 행동하는 것을 그만둔다. 어린이는 미래의 활동을 조직화하기 위해서 행동을 계획하고 이전 경험을 요약하면서 장기간에 걸쳐 능동적인 조작으로 옮겨 간다." (108쪽)

[도구와 기호]를 단 몇 줄로 요약하라고 요청받는다면 이렇게 하고 싶다.

인간다움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획득'되는 것이다. 인간(생물학적 존재)이 인간다움(문화역사적 주체)을 획득을 가능케 하는 원천은 사회적 관계이고 이것에 있어서 (불가피하고 가장 일차적이라는 의미에서) 핵심 수단은 도구만이 아니라 '기호' 그 가운데에서도 '말'이다.

[도구와 기호]는 어린이 발달에서 도구와 기호의 기능에 논의가 집중되어 있다. '교육'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는다. 비고츠키는 생각한다. 문화역사적 발달노선에서 최고형태의 인간적 실천은 무엇인가? [도구와 기호]에 맹아적 형태로 있던 비고츠키의 <인간발달과 교육>의 이야기는 [생각과 말] 6장에서 드디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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