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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호 [분석] 입학사정관제의 비밀

2012.01.26 17:14

진보교육 조회 수:1282

 

[분석] 입학사정관제의 비밀

박영진/진보교육연구소 연구원

 

 

들어가며-2007년도부터 시작된 새로운 입시제도 “입학사정관제”

 

얼마 전 수능이 끝나고 이제 본격적으로 학생들이 자신의 성적과 능력에 맞는 대학에 지원하는 시즌이 되었다. 올해는 예년보다 수능이 쉬워짐에 따라 수능 외에 다른 요소들이 전형에 비중있게 반영된다는 전망에 따라 대치동 학원가는 수능이 끝나자마자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과거 시험전형으로만 대학을 입학하던 시절에 많은 이들은 대학입학을 성적위주로만 뽑기 때문에 고등학교 교육이 왜곡되고 사교육비가 증가된다고 비판했었다. 따라서 한국도 미국처럼 다양한 능력이 입학시험에 반영되어야 한다며, 미국의 입학사정관제를 동경하더니 한국도 급기야 2007년도에 새로운 입시제도인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되게 된다.

한국의 대학입학제도는 해방 후 시험주체, 전형방식 등 큰 흐름에서는 12차례 작게는 35차례의 변화를 겪었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이 걱정하는 ‘입시위주의 교육’은 해결되지 않았다. 2007년도부터 시행하고 있는 입학사정관제는 ‘대학이 고등학교 교육과정, 대학의 학생선발 방법 등에 대한 전문가인 입학사정관을 채용하고, 입학사정관을 활용하여 학생의 성적, 개인 환경, 잠재력 및 소질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신입생을 선발하는 제도’를 말한다. 교육관계자들은 입학사정관제가 그동안 실시되었던 성적위주의 획일적인 정량평가에서 학생의 잠재력, 대학의 설립이념 및 모집단위의 특성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한 정성평가방법 등을 활용하기 때문에 입시위주의 교육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그러나 입학사정관제를 실시한 과거 5년을 되돌아보면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각종 홍보는 ‘빛좋은 개살구’임을 알 수 있다.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입학사정관의 전문성 및 역할범위, 입학사정관제를 통한 신입생 선발에 대한 신뢰성과 공정성 문제, 입학사정관제를 실시하는 대학들의 전형유형과 절차 개발의 어려움, 객관적인 잠재적 평가의 어려움, 고등학교 현장과 대학 간의 소통문제, 입학사정관의 지위와 교육훈련, 비용문제 등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이러한 표면적인 지적 외에도 입학사정관제는 교육적인 의미도 별로 없으면서 공정하지도 않고, 더욱 본질적인 문제는 현재의 대학의 위기와 교육의 위기라는 조건 속에서 사회적 불평등을 효율적으로 재생산하는 시험제도라는 점이다.

 

1. 입학사정관제의 역사적 기원과 현 실태

 

입학사정관제도는 1920년대 미국에서 생겨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00년대 초반까지는 학생들의 학업능력을 가장 중요시 하던 미국 대학들이 1920년대부터 입학전형에 주관적 판단기준을 적용하게 되면서 도입된 것이라고 한다. 이 제도가 생각난 것은 당시 유럽 출신의 이민자가 증가하면서 유대인의 유입이 많아지자 미국 대학에서 유대인의 입학을 억제하려는 것과 관련이 있다. 대니얼 골든(2010)의 책『왜 학벌은 세습되는가?(The Price of Admission)』에서도 미국의 입학사정관제의 현 실태에 대해 노골적으로 폭로하고 있는데, 미국의 입학사정관제는 유대인을 배제하기 위해 세워진 동문 특혜와 리더십 같은 입학기준들이 기원이 된 제도이며, 현재는 아시아계를 배제하는 데 적용된다고 한다. 입학사정관들 사이에서 아시아계 학생은 수학과 과학과목을 만점 받도록 부모에 의해 조정되는 준로봇이라는 이미지로 고착화되어서 아시아계들은 입학사정관제에 의해 불이익을 당했다. 또한 이 책에 의하면 미국 입학사정관제를 실시하는 명문 사립대학들은 부유하거나 연줄있는 학생에게 특혜를 주어 명문 엘리트대학 입학생의 최소 3분의1, 그리고 명문 교양대학 입학생의 절반 이상이 ‘우대대상’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합격한다고 한다.

미국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명문대학이 ‘신분상승과 균등한 기회’를 부여해줄 것으로 기대하겠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현행 미국 입시제도는 소수의 저소득층 자녀들에게는 바늘구멍만 한 합격의 문을 열고 있는 반면 특권층 자녀들에게는 손쉽게 명문 대학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으며, 심지어 졸업 후 기업과 정부기관의 고위직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친절히 안내해준다. 펜싱, 조정, 폴로 등 부자들의 스포츠로 체육특기생 선발, 거액기부자들을 위한 명단, 유명인사 자녀들에 대한 특별한 배려, 교수자녀에게 활짝 열린 대학문 등 명문대 입시에서 특권층에 대한 특혜는 총체적 불균형을 낳는데, 한 연구에 의하면 미국의 일류 대학 재학생 가운데 소득분포 기준 하위 25% 출신 학생은 겨우 3~11%이라고 한다.

물론 한국은 미국의 입학사정관제처럼 동문자녀 특혜나 기부입학제도는 아직 도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은 미국의 경우처럼 심각하지는 않지만, 입학사정관제는 기본적으로 대학에서 자율적으로 인재를 선발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이므로 고소득층을 위한 여러 가지 특혜를 이후에 추가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입학사정관제 자체가 뽑고 싶은 인재를 뽑고, 배제하고 싶은 인재를 배제할 수 있는 기준을 대학별로 마련할 수 있는 형식적 틀을 제공하는 시험제도이므로 기회의 평등조차 제대로 실현 될 수 없는 시험제도이다. 때문에 이미 오래 전부터 입학사정관제를 실시한 미국에서조차 입학사정관제의 자료위조, 점수부풀리기, 마케팅비용의 증가, 서열지키기를 위한 대학의 과도한 경쟁, 특혜논란에 대해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2. 입학사정관제의 허상

 

2012학년도에 입학사정관전형을 시행하는 대학은 120개 대학의 4만1250명으로 전체 4년제 대학모집 정원의 10.8%에 해당된다.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국민들의 시각은 ‘그동안 입시제도가 입시위주의 교육을 낳고 이에 따른 사교육비지출 증가라는 부담을 안겨줬다.’고 판단하면서 시험점수로 학생을 뽑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입시전형을 반영한 입학사정관제가 공교육을 정상화 시킬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입학사정관제가 실시 된지 올해로 5년째 접어드는데 과연 입학사정관제는 국민들의 기대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인가?

각 대학에서 발표한 입학사정관제의 전형요소를 간단히 정리해보면, 성적 외에 학생의 특성, 대학 및 모집전형과의 적합성, 교육환경의 3가지 범주로 나누어서 각 범주별 하위요소들을 전형자료로 활용한다고 한다. 학생의 특성으로는 사고력, 적성 및 역량, 표현력 등을 포함하는 인지적 특성과 인성, 흥미, 태도 등의 정의적 특성, 잠재력, 미래가능성, 전공적응 가능성 등이 해당되며, 대학 및 모집전형과의 적합성에는 대학의 건학이념 및 학과특성에의 부합여부, 모집전형에의 부합여부가 해당되고, 교육환경에는 사회경제적 배경으로서의 가정환경, 교육여건, 고등학교의 교육과정 특성 등이 해당된다. 이러한 내용만 보면 분명 기존 입시제도와 많은 차별성이 있는 듯 보이고, 특히 세 번째 교육환경에서 가정환경과 교육여건을 고려한다는 대목에서는 현재 학생의 학업성취도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서도 학생이 얼마나 자신의 환경을 극복하고 앞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는 측정하겠다는 대학의 긍정적인 의지도 엿보인다. 그러나 입학사정관제가 5년째 시행되고 있지만, 각 대학의 홍보자료처럼 입학사정관제가 그다지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1) 입학사정관제는 점수의 신화를 깨려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시험점수에 의존한다.

입학사정관제는 기존의 점수위주의 입시제도를 극복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점수의 신화를 깨고 있는지 의문이다. 입학사정관제로 선발한 학생의 절반 이상은 일반전형으로 뽑아도 선발되었을 것이라는 통계도 있을 뿐만 아니라, 입학사정관 전형을 처음 실시하는 대학들은 이 전형을 기존의 사회적 배려차원으로 진행되어 온 농어촌 특별전형, 기회균등전형, 특수교육대상자 전형과 같은 정원 외 특별전형에 적용함으로써 신입생들의 사회적 다양성 확보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색만 낼 뿐이다. 실제로는 정원 외 특별전형이 너무나 소수이므로 특별전형이 아니더라도 합격할 수 있는 정도의 성적임에도 불안해서 특별전형을 넣은 경우가 많으며, 진짜 특별전형이 필요한 학생들에게는 혜택이 미흡하다. 즉, 입학사정관제는 점수의 신화를 깨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점수대에 학생이 몰릴 경우 다른 요소들도 참조하여 최종결정을 내리는 역할을 할 뿐이다. 때문에 학생들은 시험점수도 관리해야 하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논술시험을 대비하거나, 특기와 관련된 여러 대회에 참가하는 등 입시준비에 대한 부담이 증가될 수밖에 없다.

 

2) 입학사정관제는 공교육을 정상화 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피폐화 시킨다.

공교육이 정상화 될 것이라고 낙관하는 입장은 입학사정관제가 정량적인 평가요소와는 다른 평가요소, 즉 자기주도 학습능력, 잠재력, 창의력, 적성, 소질, 인성, 교육환경적 특성 등의 평가요소들이 포함되기 때문에 ‘선발경쟁’이 아니라, ‘교육적 의미를 살릴 수 있는 경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의 다양한 자질을 평가하는 것이 과연 공정하게 진행될 수 있을지, 그리고 이미 이러한 평가도 경쟁이 수반되는데, 이러한 경쟁이 교육적으로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 예를 들면 입학사정관제 열풍으로 대외 시상 경력이 인정되지 않다보니, 각종 교내 경시대회가 수시로 열리고 상이 남발되며, 리더십 전형에 조금이라도 유리하도록 반장을 10명씩 두는가 하면 생활기록부에 올라갈 한 줄을 위해 밤샘독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학교현장을 두고 우리는 과연 ‘학교교육이 정상화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또한 입학사정관제에서 창의적 체험활동이 평가의 주요요소로 활용되므로, 학교 동아리 활동, 봉사활동, 전공에 필요한 학습활동을 고교시절에 해야 하기 때문에 학교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학교 내 활동이 충분하지 못할 뿐 아니라 학교마다 제공하는 활동 프로그램에도 많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고등학교에 있는 학교 내 동아리 활동만으로 창의적 체험활동을 준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때문에 창의적 체험활동을 준비하는 학생들 대다수는 학교가 아닌 학원이나 전문가의 도움을 주고받게 된다. 이렇듯 학교교육과 동떨어진 입시제도는 필연적으로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한편 과거 입시제도 중에서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최대한 살렸던 입시제도는 학력고사라는 연구가 있다.요컨대, 학력고사는 고등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는가라는 것을 묻는 시험이었다면, 수능은 대학에서 수학할 수 있는 사고력을 갖추었는지 측정하는 시험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수험생들의 입장에서는 학교에서 배운 것만으로 수능에 충분히 대비하기 어려우므로, 결국 사교육에 더욱 의지하는 현상이 빚어졌다. 따라서 수능과 다양한 전형을 요구하는 입학사정관제는 수능보다도 더욱 사교육에 대한 의존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 입학전형이 될 것이며, 고교교육 정상화는 사교육의 의존율이 줄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입학사정관제가 고교교육을 오히려 피폐화 시킬 것이다.

 

3) 입학사정관제는 오히려 사교육비를 증가시킨다.

입학사정관제가 실시된 후에 사교육비에 절감 효과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지만, 대체로 입학사정관제가 사교육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의견이 많았고 입학사정관 자신들도 사교육비 감소에 대한 기대가 낮았다. 대입제도의 변경이 사교육비를 증가시키는 요인은 세 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 새로 도입된 전형요소나 방식이 학교에서 대비하기 어려운 경우, 대학입학전형이 너무 복잡하거나 전형요소가 많아지는 경우, 학교에서 대비가 가능하지만 사교육기관에서 더욱 효과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경우이다. 그런데 입학사정관제는 위의 세 가지 요인 모두를 포함하고 있으니, 사교육증가는 필연적이다.

입학사정관제가 실시되면서 국어능력, 한국사능력, 한자급수, AP증권경제경시, 철학비판사고, 포트폴리오, 각 학과별 경시대회를 준비하는 탐색몰입반 등을 개설하는 학원들이 늘어나고 있고, 학생만의 독특한 포트폴리오 구성을 위해 학과 공부에 관련된 독서지도부터 각종 봉사활동 지도, 인증시험, 경시대회 대비, 자기주도 훈련 캠프 참여 그리고 대학 교수팀의 학습인증제를 실시하고 있다. 또한 대입 입학사정관 출신이 차린 전문 컨설팅업체에서는 4회 상담에 300만원이란 고가의 비용에도 불구하고 수험생이 줄을 서고 있어, 입학사정관 경력이 사실상 ‘전관예우’가 돼 기막힌 돈벌이로 전락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입학사정관제 선발대학과 인원의 확대는 새로운 과외나 컨설팅 시장을 창출하며 사교육을 받을 수 있고 다양하고 복잡한 입학전형 정보를 빨리 수집하고 접할 수 있는 계층이 유리해 질 수밖에 없는 여건을 만든다. 따라서 저소득 가정이나 소외계층의 자녀들은 사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적고, 정보수집에도 소외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결국 사회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계층과 그러한 계층이 많은 곳에 소재한 고등학교가 유리하게 되고 이는 또 다른 사교육의 발생과 기회불평등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4) 성장잠재력을 갖춘 학생을 뽑는다는 것은 조기 입시준비열풍을 만든다.

입학사정관제는 현재의 능력이 아니라, 성장잠재력을 갖춘 학생을 뽑는 시험이라는 주장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교육적으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성장잠재력을 보여주려면 심사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교육의 모든 활동을 점수화(또는 상징화) 하여 보여주거나, 어릴적부터 스토리가 있는 특기적성을 계발해온 포트폴리오를 보여줘야 한다. 한국보다 몇 십년 먼저 입학사정관제를 시작한 미국에서도 이러한 부분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는데, 미국에서도 입학사정관제 준비를 위해 성장의 초기부터 상을 받으려는 경쟁이 시작되고, 전문가들이 아이에게 인터뷰에서 눈을 마주치는 점, 관찰 장면에서 리더십과 협력을 행사하는 법등을 가르친다고 한다. 이처럼 성장잠재력을 갖춘 학생임을 증명하려면 독서, 취미활동, 봉사활동 등 교육과 관련된 모든 활동을 자료화해야 하며, 준비하는 시기도 고등학교가 아닌 빠르면 빠를수록 긍정적인 평가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또한 입학사정관제에서 요구하는 성장 잠재력을 갖춘 인간상은 기업취업전형에서나 요구하는 인간상이지 대학에서 학문탐구 및 연구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인간상은 아니다. 대학에서 취업에 필요한 인간상을 요구하게 된 것은 학업성적이 취업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각 대학들은 팀워크, 새로운 환경에의 적응, 리더십, 새로운 기술적용, 글로벌 작업환경에서 필수적인 능력, 잠재적으로 능력 등과 같은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들을 미리 선발하겠다는 의도로 비춰진다.

 

3. 입학사정관제의 진실

 

이제까지 살펴본 입학사정관제는 수능시험 외에 다른 전형 요소들을 추가함에 따라 학생들에게 입시부담을 증가시키고,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배경을 가진 학생들에게 유리하며 그렇다고 공교육을 정상화시킨다고 보기도 어렵다. 또한 입학사정관제는 대학의 입장에선 입학사정관 양성과 채용 및 전형요소 개발에 대한 예산이 소요되며,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사교육비 증가가 필연적인 ‘비용이 많이 드는 제도’이다. 그렇다면 입학사정관제의 진실은 무엇일까?

 

1) 입학사정관제는 대학의 구조조정 정책일 뿐이다.

현재 한국은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진학 비율이 2008년 기준 83.8%(통계청) OECD 국가 중 최고수준인데, 이러한 현상은 비단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미국은 이미 60년대 중반부터 대학과 대학원의 입학정원이 크게 증가하고 90년대에 들어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고등교육은 또 다시 팽창한다. 경제적 위기는 고등교육에 대한 수요를 증대시키고, 국가는 이를 수용하면서 대학교육을 양적으로 팽창시키는데, 이러한 대학교육의 팽창은 대학을 질적으로 발달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다.

자본과 국가는 재정위기를 이유로 ‘수월성’에 따라 대학의 구조조정을 유도하고, 과정에서 평가를 통한 재정지원을 차별화하는데 입학사정관제도 차별적 지원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대학의 구조조정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정부는 입학사정관제 지원을 2007년 20억원에서 2011년 351억원으로 증대했는데, 모든 대학에 균등하게 지원한 것이 아니라, 선도대학, 우수대학, 특성화 모집단위 운영대학 등으로 차별적으로 지원했다. 특히 선도대학에게는 입학사정관 지원 사업에 드는 비용 가운데 대학이 담당해야 할 비용을 줄여주는 방식의 인센티브가 제시되었는데, 결과적으로 그 발표가 있은 후에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선발하는 규모가 확대되었다.

한국보다 입학사정관제를 먼저 실시한 일본에서는 고등학교 졸업생 정원이 대학에 입학 가능한 시대(일본대학의 수용력 90%이상)을 맞아, 국립대학들은 정답이 있는 교과목의 필기시험만으로 측정불가능한 학력 및 능력이나 의욕, 관심, 열정, 적성 등을 학생 본인과 직접 대면하여 측정하는 종합적 평가를 통해 학생을 선발하고자 하는 반면, 사립대학 가운데 정원을 채울 목적으로 입학사정관제 입시(AO입시)를 실시하는 대학도 적잖이 있다. 한국도 정원이 미달되는 대학들이 정원을 채울 목적으로 입학사정관제 입시를 활용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정부의 지원을 받는 입학사정관제 실시대학과 자체적으로 정원을 채울 목적으로 실시하는 입학사정관제 실시대학으로 양분 될 것이며, 이는 소수의 엘리트 대학과 다수의 대중대학으로 양분 될 것이다. 입학사정관제가 아니더라도 고등교육의 대중화에 대한 대학개혁의 방향이 대학원 중심대학(이른바 연구대학)과 학부 중심대학(이른바 교양대학)으로 나뉘어 대학원 중심대학을 지원해주는 대학구조조정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입학사정관제는 대학구조조정이라는 정부의 개혁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2) 입학사정관제는 대학의 입맛에 맞는 학생선발을 합법화하는 것이다.

앞서 입학 사정관제를 살펴보면서, 입학사정관제가 기존 입시제도와 확연히 다른 지점이 대학선택권의 자율화에 있다. 이미 입학사정관제가 특목고 우대제도로 전락하고 있다는 신문기사도 있다. 실제로 입학사정관제 시행 이후 상위권 대학의 특목고 학생 비율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고, 글로벌 인재전형의 경우 입학생의 73%가 외고 출신들로 채워지기도 했다.

일부 특목고 입학의 경우 교과부는 대학의 입학사정관제와 취지가 비슷한 자기주도 학습전형을 도입하고 11월 4일 교과부는 자율형사립고의 입학전형 방법을 교육감 승인 없이 학교장 뜻대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침을 세우고,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곧 입법 예고할 방침등 특목고도 입학사정관제에 맞춰 발빠르게 출구를 찾고 있다.

가장 먼저 입학사정관제를 실시한 건국대학교의 양성관 교수는(2010) 입학사정관 전형에서 특목고 학생들을 우대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 중 하나는 지원 자격 조건을 특목고 학생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 그 학생들의 강점이라 할 수 있는 특별한 전형요소를 비중있게 반영하는 방법이며, 또 다른 방법은 지원 자격과 전형요소 이외에 입학사정관들이 서류평가나 면접평가 시에 출신학교의 비중을 의미 있게 반영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양성관 교수의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입학사정관제는 비단 특목고 학생의 우대 뿐아니라, 대학이 선발하고 싶은 학교, 지역, 학생의 특성에 대한 가산점을 합법적으로 줄 수 있고, 대학에서 선발하고 싶은 학생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전형요소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입학사정관제는 대학의 학생선발 자율화를 위한 것이며, 이는 이전 정부의 ‘3불정책’을 우회적으로 폐기하게 되는 것이다.

 

3) 입학사정관제는 사회적 불평등을 재생산 하는 입시제도이다.

2011년 6월3일자 한겨례 신문에 따르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주요 대학 10곳이 2011학년도 수시모집 때 실시한 입학사정관 전형에서 서울 자치구 중 강남3구라 칭해지는 강남구, 송파구, 서초구와 목동이 속한 양천구의 100명당 합격생이 다른 자치구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입학사정관제가 진행되면서 이미 예상했던 결과이다. 앞서 살펴봤듯이 입학사정관제는 ‘돈이 많이 드는’ 입시제도이다. 따라서 부모의 경제적 지위가 높은 지역의 학생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입학사정관제 포트폴리오에 요구되는 봉사활동이나 수상경력 등은 부모의 지원을 받는 아이들에게 훨씬 유리한 항목일 수밖에 없다.

황여정, 김경근(2010) 등은 학부모 학력, 경제활동 참여비율 등이 높을수록 학부모가 입학사정관 전형에 관해 많이 안다는 일반적인 인식을 재확인하면서, 자녀의 학업성취도는 사교육 참여 여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 기존 입시제도에서 경쟁력을 갖췄던 학생들이 입학사정관 제도에서도 여전히 유리한 입지를 점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연구결과 맞벌이 가정보다는 전업주부 어머니가 많은 외벌이 가정의 부모가 입학사정관제에 대해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고, 읍면지역보다 서울지역 가정이 입학사정관제 관련 정보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한국의 입학사정관제는 미국의 입학사정관제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자본에 의한 사회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데, 이러한 매커니즘에서 부모(특히 엄마)의 정보력과 교육수준은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나오며- ‘능력주의(meritocracy) 교육개혁’의 담론을 넘어

 

이제까지 발표된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연구들을 종합해보면, 입학사정관제가 실시되는 의도는 좋으나, 입학사정관의 공정한 평가와 사교육비 경감방안이 없다면 기회의 평등조차 위협받을 수 있으니, 입학사정관의 공정성확보와 사교육비의 경감방안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입학사정관제도 자체는 좋은 제도인데, 입학사정관의 신분불안과 비전문성으로 인하여 학생들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느냐의 문제와 집안배경에 의해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집안배경변인을 제외한 능력평가 방안에 대해 고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입학사정관제에서 요구하는 ‘다양한 능력’, 혹은 ‘잠재적 능력’은 이미 노동시장에서도 활발하게 논의된 바 있다. 즉, 근대화 초기에는 학교교육수준을 능력의 지표로 보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학력이 능력을 적절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평가로 잠재능력과 실무능력을 계발하여 기존의 학력주의를 극복하고 교육과 직업세계를 의미있게 연결하자는 것이다. 입학사정관제에서 논의되는 학생의 잠재적 능력 계발은 바로 노동시장에서 요구하는 능력과 일맥상통한다. 또한 입학사정관제를 포함한 정부의 교육개혁은 ‘능력주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능력주의를 전제로 하는 한, 대중의 지식에 대한 접근권리(교육권)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대중에게 교육의 기회가 열려 있지만, 대중의 지식에 대한 욕구는 축소되고 있고, 교육을 취업의 도구로만 생각하고 있다. 또한 고등교육의 대중화로 대학교육이 보편화되고 있지만 연간 등록금 천만원 시대를 맞이하여 교육비에 대한 부담도 사상 최악이다. 더욱이 학생들은 취업 및 계층상승을 위해 대학교육외의 취업을 위한 학업에 몰두하지만, 그렇다고 청년실업이 해결 되는 것이 아니다. 청년 실업의 문제는 자본주의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계층상승을 위해 교육제도 하에서 고군분투 하고 있는데, 이는 교육제도가 신분상승을 꾀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능력주의에 의해 교육기회가 배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제도로 신분상승의 혜택을 받는 이는 소수뿐이고 대다수는 비싼 교육비를 지불하며, 대학교육까지 받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교육을 받고 있다. 즉, 대중적인 대학진학, 취업을 위한 자격증 취득, 사교육 증가 등등 실업난을 극복하려고 끊임없이 뭔가를 공부하고 있지만, 진실로 자기 자신의 해방을 위한 교육, 사회의 모순을 꿰뚫어 보는 교육,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교육에 대한 접근 권리는 점점 그 비중이 감소되고 있다. 이렇게 교육비와 교육기한은 연장되는데, 정작 ‘자기해방’을 위한 교육이 감소되는 것이 현재의 ‘교육위기’의 핵심이다. 따라서 ‘능력주의’에 근거한 교육개혁은 허구적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교육개혁은 능력과 상관없이 대중이 ‘자기해방’을 위해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교육개혁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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