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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호 [담론과문화] 교사와 감정노동자

2012.01.26 17:07

진보교육 조회 수:899

 

[담론과문화] 교사와 감정노동자

김산/진보교육연구소 연구원

 

“고객님 사랑합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외쳐야 하는 감정노동자들의 구호이다. 감정노동자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야 유능한 노동자가 된다. 얼굴에 미소를 띠고 허리는 90도로 숙이고 인사를 한다. 아무리 고객이 잘못해도 화를 내서는 안 된다. 항상 웃음 띤 얼굴 이면에는 자괴감과 시퍼렇게 멍들어 가는 가슴이 있다. 정신을 제대로 차리기도 힘들어 우울증도 많이 걸린다. 지금같이 경제가 어려울 때는 더욱 더 감정노동자의 가슴은 숯 덩어리가 된다. 생존의 처절함에 인간이 아닌 친절 로봇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그렇게 살아간다.

 

‘감정노동’이란 업무상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거나 변경해 일을 수행해야만 하는 노동형태로 주로 고객과 감정적인 상호관계를 맺으면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무를 말한다. 주로 전화 상담원, 대형마트 점원, 판매원 등 대인서비스를 업무로 하는 서비스 노동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서비스 업종만 감정 노동일까? 정글자본주의하에서는 모든 노동자는 사실상 감정노동자나 마찬가지다. 감정노동자를 오직 고객과의 관계에서만 본다면 대인 서비스 업종이 주가 되겠지만 노동자가 생존하기 위해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참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모든 노동자는 사실상 감정 노동자다.

 

한때 개그프로그램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사장님 나빠요.”하고 외치곤 했지만 노동현장에서 노동자가 사장님 보고 “사장님 나빠요” 하고 말할 용기를 가진 노동자는 사실상 없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니 노동자가 감히 자본가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불가능하다. 군대에서 관료사회에서 기업에서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면서 잘못을 말할 수 없다. 말하는 순간 그는 용기 있는 자가 될지는 모르지만 더 이상 그 조직에 남아 있지 못한다.

 

이렇게 본다면 특정 직군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전체가 감정노동자인 셈이다. 물론 특정 직군의 노동자가 좀 더 감정노동을 한다고 할 수는 있지만 말이다. 한때 교사는 자존심을 먹고 산다고 하였다.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 아니니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숭고한(?)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며 자존심으로 교단을 지킨다고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이젠 옛말이 되었다. 교사는 더 이상 자존심을 지키지 못하며 이제는 감정노동자가 되어 가고 있다.

 

교육청 눈치에 학교장 눈치, 학부모눈치, 아이들 눈치. 이제 교사는 이 모든 상전들에게 감정을 숨기고 웃으며 대해야 한다. 교육수요자의 요구에 맞춤형 교육을 하여야 한다. 교육의 의미가 뭔지, 본질이 뭔지, 어떤 교육이 바람직한지 이런 건 중요하지 않다. 설사 중요하더라도 그건 교사의 선택이 아니다. 교사는 그저 수요자의 요구에 응해야 한다. 학력신장이 우선이라면 학력신장을 위해서, 나눔과 배려의 창의·인성교육이 우선이라면 창의·인성교육을 위해서. 그 어떤 말을 갖다 붙이든 교사는 수요자의 요구에 따라 생산하는 수공업자에 불과하다.

내가 능력이 부족한 교사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문득문득 드는 생각은 도대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교육도 아니고 훈육도 아니고 사육도 아니고 그저 하루하루 아이들과 씨름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하루 중 제일 행복한 시간은 하교시간이다. 아이들을 하교시키면서 이 징그러운 놈들 잘 가라 하면서 돌아서 오는 길은 잠시나마 짜릿한 행복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지 같은 공문이라도 기다리고 있으면 교육청이 왜 있는지 짜증이 난다. 교육지원청인지 고통지원청인지. 젠장.

 

정글 자본주의사회에서 학부모가 교사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건 바로 자기 자식이 정글에서 살아남게 해달라는 것이다. 정말 소박한 바램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정글에서 살아남지? 사자가 되든가 적어도 하이에나는 돼야 살아남지 않겠는가? 그럼 답은 정해졌다. 고객의 요구에 맞춰 교육을 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서운 소비자들은 무능 교사 물러나라고 시위를 할 것이다. 그럼 이때다 하고 교장은 사직을 권고할 것이고(안양예고 처럼 말이다) 교육청은 나 몰라라 할 것이다. 고객님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노동자의전적인 잘못이라 하면서 말이다.

 

자존심 강한 교사, 뻣뻣한 교사, 웃길 줄 모르는 교사, 불친절한 교사는 고객님들이 싫어한다. 교육관이 투철하고 참교육을 위해 노력한다 해도 고객님들은 교원평가에서 불만족을 선택함으로써 그 교사는 무능교사로 연수를 받아야할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 일반 기업에서 블랙 컨슈머(Black Consumer)가 문제되듯이 우리 불량고객님들도 문제를 일으키면 교사는 지은 죄 없이 사과해야 하고 교육청 놈들은 사과를 강요한다. 그놈들은 중립이라 하면서 절대 교사 편을 들지 않는다. 그런데 하는 짓 보면 블랙컨슈머 편이다. 왜? 고객이니까.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다.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직접 사냥을 하거나 남이 먹다버린 것이라도 주워 먹어야 한다. 그런데 교사는 그렇게 살기를 싫어한다. 노동자는 그렇게 살기 싫어한다. 노동자는 열심히 일해서 일한 만큼 먹고 살고 싶어 한다. 농부가 씨를 뿌려 농사를 짓듯이 노동자도 몸뚱아리를 굴려 먹고 살고자 한다. 당당하게 말이다. 그런데 이놈의 정글 자본주의하에서는 당당할 수가 없다. 때로는 비굴하고 비겁해 져야 한다. 그래야 산다.

 

노동자로서 내가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이 정글자본주의를 없애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비로소 사람이 될 수 있다. 화가 나면 화를 내는 그런 인간 말이다. 잘못 된 것을 보면 잘못 되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가 좋은 거 아닌가.

 

제기랄! 방학이나 빨리 왔으면 좋겠다. 나도 감정 있거든. 그것도 더럽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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