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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호 [논단] 비고츠키 협력교육에 대하여

2011.10.12 12:40

진보교육 조회 수:1105

 

비고츠키 협력교육에 대하여

 

천보선 / 진보교육연구소 연구실장

 

* 새로운 대세? ‘협력학습’

 

“교육의 틀, 경쟁서 공생으로 바꿀 때다”

각종 상 휩쓴 다큐멘터리 ‘학교란 무엇인가’의 PD

- 최근(2011.9.24) 중앙일보의 대담기사 제목이다. 한국방송대상 다큐멘타리부문 대상을 수상한 EBS 제작 PD 대담기사를 실은 것 자체는 그렇다 쳐도, 제법 크게 다루면서 제목을 굳이 ‘경쟁서 공생으로’로 잡은 것은 좀 의외다.

- 어느새 부터인가 협력학습이 새로운 유행(?)으로 뜨고 있다. 물론 실제 정책과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담론과 이론 분야에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전교조나 진보적 교육운동진영에서는 한참 전부터 ‘협력학습’을 이야기해 왔지만 최근엔 ‘배움의 공동체’ 등 새로운 교육담론, 진보교육감들 나아가 제도권에서도 ‘협력학습’을 말하기 시작하고 있다.

- 이 같은 협력학습 대세(?)가 형성된 것은 온갖 폐해와 갈등을 양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교육시장화에 대한 반발과 비판 그리고 공생과 연대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시대적 요청이 함께 맞물리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이론적으로는 비고츠키교육학의 공헌도 상당했다고 할 수 있다. 협력학습을 주장하는 여러 논자들은 비고츠키의 ‘사회적 협력’ 개념을 이러저러하게 인용하고 있으며 비고츠키교육학은 2000년대 이후 ‘협력’을 강조하는 세계교육학계의 논의 흐름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 그런데 막상 비고츠키의 협력학습 자체는 구체적으로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왜일까? 비고츠키의 협력학습 개념은 뜨고 있는데, 왜 비고츠키 협력학습 모형은 보이지 않는 걸까?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비고츠키의 협력학습의 구체적 방법론이 무엇이냐고. 이 글에서는 비고츠키 협력교육의 성격과 의미를 다루면서 그 이유와 교육적 함의를 논하고자 한다.

 

1. 비고츠키의 ‘협력교육’ 개념에 대하여

- 비고츠키는 교육실천에서 협력을 강조했지만 사람들의 많은 기대(?)와 달리 정작 ‘협력적 교수학습’에 대해서는 구체화한 것이 거의 없다. 비고츠키 주요 저작인 ‘생각과 말’에서 협력과 관련된 비고츠키의 주요 언급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회과학의 과학적 개념의 발달은 교육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이루어진다. 이 교육과정은 교사와 학생의 체계적인 협력이라는 특수한 형태로 나타난다. 어린이의 고등정신기능의 성숙은 어른의 참여를 통해 이루어지는 협력 과정에서 발생한다.”(생각과말 6장1절)

“어린이에게 있어, 협력과 모방을 통한 발달, 교수-학습을 통한 발달은 근본적 사실이다. 그러므로 교수-학습을 심리학적으로 연구할 때 중심에 놓여야만 하는 요소는, 협력을 통해 발달의 상위 지적 수준으로 자신을 고양시킬 수 있으며, 모방을 통해 그가 가지고 있는 것에서 그가 가지지 못한 것으로 나아가게 하는 아동의 가능성이다.”(6장4절)

오늘 협력을 통해 할 줄 아는 것을 내일은 혼자서 할 줄 알게 될 것이다. ...발달을 앞서서 발달의 전진을 이끄는 학습만이 학교에서의 효과적 학습이다. 교수는 모방이 가능할 때만 가능하다.(6장4절)

 

- 보는 바와 같이 비고츠키는 여러 논의의 맥락 속에서 협력을 강조하고 있지만 ‘생각과 말’은 물론 다른 저작에서도 협력 학습 자체에 대해서는 별도로 설명하거나 방법론을 체계적으로 다루지 않고 있다. 협력과 관련된 비고츠키의 주요 언급은 ‘교사와 학생의 체계적인 협력’ ‘협력과 모방을 통한 발달’ ‘근접발달영역에서의 협력의 중요성’ 등이며 내용적으로는 ‘도움주기’라는 통상적 의미와 사실상 동일하다. 결론적으로 비고츠키의 협력은 발달과정에서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강조점으로 위치할 뿐 구체적 방법론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 협력은 교육실천의 전제, 교육관계의 본질

- 비고츠키가 협력을 강조했음에도 ‘협력적 교수-학습’을 따로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 첫째, 비고츠키에게 있어 협력은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는 인간발달의 당연한 전제이자 본질이기 때문이었다. 사회적 협력을 통하지 않고서는 인간발달이 제대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전개될 수 없다는 것이 비고츠키 교육학의 관점이다. 당시 비고츠키는 사회적 협력을 떠나 개개인이 독립적으로 발달해 나간다는 ‘독립적 학습자관’, ‘주관주의’에 대해 분명히 반대하면서 인간발달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와 과정으로 협력을 강조한 것이었다. 이 같은 협력 자체의 강조는 여전히 유효하다. 경쟁이 발달의 근원인양 오도하는 시장주의 담론과 교육시스템이 주도하는 교육현실에서 ‘협력이 교육의 본질이며 가장 효과적인 발달과정을 이끌 수 있다’는 비고츠키 관점과 분석은 매우 힘있는 대응력을 지닌다.

 

- 둘째, 협력적 발달 과정을 정형화된 모델과 방법론으로 설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고츠키는 ‘발달에 이르는 과정은 수천, 수만가지의 경로’를 지니기 때문에 특정한 모델이나 방법론으로 고정화할 수 없다고 보았다. 적절한 교수-학습 방법은 교사와 학생들의 상태, 서로의 상호관계, 학습 주제와 영역의 특성 등에 의해 구체적이고 특수하게 설정되는 것이지 구체적 상황과 내용을 뛰어 넘는 일반적 모델과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어떤 교사에게 적절한 것이 다른 교사에게 적절하지 않을 수 있고, 어떤 아이들에게 적절한 것이 다른 아이들에게는 적절하지 않을 수 있으며, 어떤 교과에 적절한 것이 다른 교과에는 적절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효과적인 교수-학습이란 일반화된 방법으로 설정되는 것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들의 상태에 대한 정확한 파악, 학습 내용의 주제와 성격에 맞게 ‘구체적이고 특수하게 창출’되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일반적 방법론이 아니라 정확한 관찰과 그에 따른 구체적 처방이다.

 

2. 비고츠키 협력교육 논의의 확장과 방법론적 원리

- 비고츠키가 협력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면서 별도의 설명을 하지 않고, 일반화된 방법론을 반대하였지만 협력에 대한 비고츠키 논의의 맥락 속에서 협력교육의 핵심과 방법론적 원리를 일정하게 도출할 수 있다.

 

1) 협력적 교육관계의 형성

- 비고츠키는 교육관계의 성립 자체를 넓은 의미의 ‘협력’으로 보았다. 비고츠키는 학교에서의 교수-학습과정 자체를 ‘체계적인 협력’으로 규정했으며, 아동이 혼자 있을 때에도 배운 것을 떠올리면서 익히려 한다면 ‘협력적 상황’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았다. 즉, 비고츠키의 협력교육은 넓게 보면 ‘교육적 관계 맺기’ 자체이다.

그러나 매우 단순하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전제 및 요소가 존재한다. 하나는 관계 맺기가 성립할 수 있는 목적의 공유인데 비고츠키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것은 ‘발달적 목표의 공유’가 된다. 비고츠키교육학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핵심 축은 인간발달의 문제이며 전면적인 인간 발달을 돕는 불가결하고 효과적인 과정으로 협력을 강조하였다. 발달적 목표의 공유라는 전제 다음의 요소는 발달을 위한 호혜적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것, 즉 ‘상호존중’이다. 교사는 학습자의 가능성을 믿고 발달을 돕고자 하며, 학습자는 혼자 있을 때조차 배운 것을 떠올릴 정도로 관계를 존중한다. ‘협력과 모방을 통한 발달’ 과정은 상호존중이 있을 때 비로소 펼쳐질 수 있는 과정이다.

 

2) 상호작용의 활성화

- 비고츠키는 발달과정을 매우 역동적인 과정으로 규정하였으며 또한 그러한 역동적인 발달과정을 분석하고 설명하는데 주력하였다. 사회적 관계가 발달의 원천이라는 점에서 발달과정은 한편으로 곧 사회적 상호작용의 활성화 및 상승적 재구성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비고츠키의 협력교육은 ‘교육적 상호작용의 활성화와 상승’에 대한 지향이라고 할 수 있다.

- 비고츠키 협력교육에서 교사-학습자 간 상호작용과 학습자 간 상호작용은 둘 다 중요하다. 그러나 협력교육을 ‘학습자 간 상호작용’으로만 이해하는 일부의 오해와 달리 교사-학습자 간 상호작용이 일차적이고 우선적이다. 교사-학습자 간 상호작용이 원할 할 때 학습자 간 상호작용도 잘 이루어 질 수 있다.

- 협력교육이 상호작용 과정이라는 점이 바로 일반화된 모델과 방법론을 설정하기 어려운 근본 원인이기도 하다. 상호작용은 교사와 학습자 모두 다양한 상황의 주체, 다양한 내용 그리고 역동적인 과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호작용을 활성화할 수 있는 몇 가지 기본적인 방법적 원리가 설정된다.

 

0 대화 : 대화는 상호작용을 활성화하는 가장 기본적 과정이다. 대화란 기본적으로 변증법적 과정이며 상호작용을 매우 역동적으로 활성화할 수 있다. 교수-학습과정에서 대화가 활성화된다면 일방적 강의-듣기에 비해 상호작용은 훨씬 진전된다.

0 매개 : 적절한 매개의 도입 역시 상호작용을 활성화한다. 그림, 사진, 도구, 음악 등의 물리적 매개 만이 아니라 적절한 예시 등도 내용적 매개이다. 판서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면 훌륭한 매개가 될 수 있다.

0 시범과 모방 : 어떤 기능 수행에 있어 시범은 협력의 주요한 형태이다. 아직 할 수 없었던 것을 시범을 보이고 학습자가 모방을 할 수 있다면 근접발달영역이 창출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0 활동 : 활동은 경험만이 아니라 모방에서부터 숙달, 내면화에 이르는 다양한 단계에서 진행될 수 있으며 쓰기, 그리기, 발표하기, 움직이기, 팀학습에서 역할 수행하기 등 다양한 활동은 상호작용의 한 형태이며 관찰의 주요 영역으로 후속 상호작용으로 연결된다.

0 팀학습 : 동료 간에 좀 더 조직적 형태의 사회적 협력활동을 전개할 수 있으며 다양한 수준의 상호작용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 몇 가지 비고츠키 협력교육의 방법적 원리를 제시해 보았다. 그렇지만 사실 대화, 매개, 활동, 팀학습 등의 주요한 방법적 원리는 대화학습법, 인지도제이론, 팀학습모형 등 이미 다양한 교수-학습 이론과 모델로 나와 있기도 하다. 이 같은 현대 교수-학습 이론과 모델은 비고츠키의 영향을 받기도 하였지만 또한 대부분 일정하게 왜곡하고 있기도 하다. 왜냐하면 앞서 지적했든 정형화된 협력교육 모델은 없으며 올바른 협력이란 모델의 문제가 아니라 상황과 내용에 맞게 적절한 과정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창출할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최근 일부에서 유행하고 있는 사또마나부의 배움의 공동체 역시 정형화된 모델을 강조하는 것으로 비친다는 점에서 일정한 위험이 있다.

실제의 교수-학습과정에서는 대화법이든, 매체활동이든, 팀학습이든, 토론학습이든 다양하게 도입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상황과 내용에 맞게 적절하게 도입되는 것인가 이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과연 ‘협력적’으로 진행되는가의 문제이다. 예컨대 같은 팀학습이나 토론학습도 협력적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적대적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역할독점’과 ‘무임승차’의 팀학습이나 ‘오직 승리만을 위한 전투’처럼 진행되는 토론학습의 부작용도 얼마든지 있다. 즉, 토론학습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협력적’ 토론학습이냐 아니냐가 중요하다.

 

교수-학습방법의 적절성과 실제적 협력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비고츠키 협력교육의 가장 선차적 핵심은 방법론 이전에 학습자의 상태와 발달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교육적 관찰’과 ‘상호존중의 교육관계’가 된다. 방법은 그 다음의 문제이다. 교육적 관찰을 통할 때만 적절한 처방과 방법론을 설정할 수 있으며 상호존중의 관계에서라야 비로소 교수-학습과정은 협력적으로 전개될 수 있다.

3) 교육적 관찰과 적절한 도움주기(근접발달 영역의 창출)

- 적절한 교수-학습방법의 도입, 적절한 도움주기는 학습자의 발달단계와 상황에 대한 파악에 근거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이점에 대해 비고츠키는 ‘현재적 발달상황’과 ‘미래의 발달가능성’ 두 가지 모두 염두에 두면서 근접발달영역을 창출하는 협력적 도움을 강조하였다. 근접발달영역 창출이란 발달을 위한 적절한 도움주기에 다름 아니다.

- 교육적 관찰을 통한 학습자의 상태를 정확히 이해할 때 적절한 처방과 교수-학습 방법의 도입이 가능하다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교육의 현실에서 교육적 관찰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공부를 잘하느냐 아니냐’ ‘성격과 취미, 희망’ 정도이다.

- 관찰을 통한 학습자 이해에 발달적 기능에 입각한 관찰 기준을 필요로 한다. 비고츠키교육학에서는 자발적주의집중, 논리적 기억력의 형성, 자기규제, 도구활용능력과 대화, 발표력 등의 의사소통기능(초등), 자기정체성과 주체성, 개념적 사고, 협력적 토론 등 고도화된 의사소통기능, 비판적 사고력과 성찰(중등) 등을 발달단계에 따른 주요 기능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같은 부분들과 함께 교과 차원의 주요 기능이 주요한 관찰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한 기준을 갖고 지속적으로 관찰한다면 학습자에 대한 교육적 이해는 휠씬 증대될 수 있으며 방법적, 내용적 처방도 보다 적절해 질 수 있다.(관찰 기준-즉, 발달단계에 따른 고등정신기능의 설정은 한편으로 문화역사적 조건과 결부되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적 상황에서 일정하게 재구성될 수 있다.) 적절한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발달단계 차원의 거시적 수준 파악만이 아니라 일상적 경험과 심리적 상태 등 발달상황에 대한 전반적이고 파악이 필요하며 이는 관찰의 구체성을 의미한다.

또한 관찰의 대상에는 개별 학습자 만이 아니라 교사와의 상호관계, 학습자 간 상호관계도 포함된다. 이 역시 교육관계를 협력적으로 재구성하는 기초가 될 것이다.

 

3. 발달과정에 입각한 협력적 도움주기

- 비고츠키 협력교육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핵심 축은 ‘발달과정’의 문제이다. 발달과정에 입각하여 ‘교육목표의 공유’가 이루어지며 ‘교육적 관찰’을 행하며 ‘근접발달영역을 창출하는 적절한 도움’이 전개진다. 상호존중의 관계 맺기도 학습자의 자기규제력, 의사소통수준, 개념적 사고의 진전 정도 등 ‘발달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협력은 곧 발달과정에 의거하는 것이다. 따라서 발달과정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협력교육의 필수적인 전제가 된다.

 

발달과정에 대한 이해에는 ‘발달단계와 고등정신기능’이라는 거시적 차원만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개별적 주체’, ‘인식과 실천’, ‘일상적 개념과 과학적 개념’ 등의 변증법적 관계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협력은 인간발달의 변증법적 과정을 돕는 의식적 실천으로 위치한다. 비고츠키는 개념적 사고, 과학적 개념 형성은 어른이나 교사와의 협력을 통할 때 비로소 현실화될 수 있음을 특별히 강조하였다.

 

과학적 개념의 발달은 교육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이루어진다. 이 교육과정은 교사와 학생의 체계적인 협력이라는 특수한 형태로 나타난다. 어린이의 고등정신기능의 성숙은 어른의 참여를 통해 이루어지는 협력 과정에서 발생한다.”(생각과 말 6장 1절)

“학령기 어린이의 자연발생적 개념에서는 미발달된 채로 남아있는 자질인, 개념에 대한 의식적 파악과 의지적 사용이 온전히 학령기 어린이의 근접발달영역 내에 있다는 것은 논의와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이들은 어른과의 협력을 통해 나타나고 현실화된다.” (생각과 말 6장 5절)

 

과학적 개념 형성에 도움이 불가피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오직 협력을 통해서만 숨겨진 해결에 이를 수 있기’(생각과 말 6장 5절) 때문이다. 직접 보이지 않고,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개념적 사고(과학적 개념)에 이르기 위해 어른, 교사의 도움은 학습자가 이미 알고 있는 일상적 경험 및 개념과 연결하면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근접발달영역의 창출인 것이며 교사의 주요 역할이 된다.

 

발달과정이 역동적이기 때문에 협력 과정 역시 역동적이다. 효과적 도움은 학습자의 상태를 새롭게 변화시키며 도움주기 역시 변화된 상황에 맞게 다시 재구성되어야 한다.

 

“이는 과학적 개념은 자연발생적 개념의 일정한 발달 수준, 즉 근접발달영역에서 의식적 파악과 의지가 나타나는 수준을 전제로 한다는 것 뿐 아니라 과학적 개념은 자연발생적 개념을 변형시키고 이들을 높은 수준으로 올리면서 그들의 근접발달영역을 형성한다는 것 또한 설명한다.” (생각과 말 6장 5절)

 

협력적 발달과정은 ‘교육관계에서의 어른, 교사의 도움-학습자의 주체적 노력과 변화’ 간의 변증법적이고 역동적인 과정이다. 도움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도 그렇지만 배운 것을 스스로 파악, 모방, 숙달하며 나아가 내면화, 재구성하면서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은 학습자의 주체적 과정이다. ‘교육적 도움과 주체적 실천의 결합’이 바로 비고츠키 협력교육인 것이다.

이 과정은 복잡다단할 뿐 아니라 상승과 하강의 굴곡도 포함하는 과정이다. 학습자가 이미 알고 있는 일상적 개념과 새로운 과학적 개념을 연결하면서 근접발달영역을 효과적으로 창출하는 것도 쉽지 않으며 발달에 대한 학습자의 상태 역시 매우 다양하며 또한 변화하기 때문이다. 결국 협력은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변증법적으로 증대될 수 있는 것이다.

 

4. 비고츠키 협력교육의 실천적 의의에 대하여

교육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은 없다. 만약 그런 방법이 있다면 ‘이론’ 이전에 이미 ‘방법’이 먼저 나왔을 것이다. 비고츠키교육 역시 마찬가지이다. 비고츠키 협력교육이 분명한 관점과 방향, 그리고 몇 가지 방법론적 원리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결국 협력의 증대란 상호존중의 관계를 형성하고 학습자의 상황을 파악하면서 적절한 도움(방법)을 역동적으로 구성해 나가는 구체적이고 지난한 과정이 된다. 다시 말해 비고츠키 협력교육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출발이며 실천적 고민의 시작일 뿐이다.

또한 한국교육 현실은 협력교육을 실현하기 어려운 구조적 장애를 지니고 있다. 입시교육 하에서는 발달적 목표를 실제적 교육목표로 설정할 수 없으며 학습자간 간 협력과도 구조적으로 대립한다. 뿐만 아니라 교사-학생 간의 관계 역시 발달 상황에 맞지 않는 진도교육, 입시교육으로 적대화된다. 교육과정 역시 마찬가지이다. 발달단계를 무시한 현재의 고난이도, 많은 학습량의 교육과정 하에서는 적절한 도움주기가 매우 어렵다. 과밀한 학급당 학생수와 거대학교라는 조건은 관찰을 어렵게 한다. 관찰 이전에 익명성에 기초한 관계 파괴 현상이 나타난다. 비고츠키 협력교육은 한국적 교육현실에서는 구조적으로 막혀있는 것이다.(사실 방법의 문제와 관련해서도 협력교육이 진전되지 않는 것은 많은 부분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의제학습이나 토론, 다양한 매체 활용 활동 등의 방안으로는 진도를 뺄 수 없다. 그래서 잘해봐야 가끔 행사식으로 진행될 뿐 협력 증대의 지속적 방안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 같은 조건에서 비고츠키 협력교육은 어떤 실천적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 제도가 바뀌고 구조적 장애가 제거되어야만 실현 가능한 먼 미래의 교육학인가? 그렇지는 않다. 비고츠키 협력교육은 충분하지 않지만 현재에 있어서도 일정한 실천적 의미를 지니며 구조적 장애를 제거하는데 있어서도 효과적 무기를 제공한다.

첫째, 교육관계 재구성의 분명한 관점과 방향을 제공한다. 협력교육 실현의 가장 선차적이고 우선적인 전제는 ‘상호존중의 관계맺기’이다. 경쟁교육의 가장 큰 폐해는 교육관계의 파괴이며 교사와 학생들의 가장 큰 고통이기도 하다. 상호존중과 관계개선에 노력하는 만큼 고통은 줄어들며 협력과 도움의 적절성도 개선되어 나갈 수 있다. EBS 다큐멘터리 ‘학교란 무엇인가’의 최종 결론이 ‘교수-학습과정의 왕도란 없다! 학습자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출발점이다!’로 맺어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리고 ‘교육적 관찰을 통한 학생 이해의 증대’이다. 이해하는 만큼 관계가 개선되고 적절한 처방이 나올 수 있으며 교육노동의 핵심적 전문성이 증대된다.

둘째, 협력을 증대하는 방법론적 원리의 실천적 적용이다. 입시교육하에서 제한적일 수밖에 없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교사-학생 간, 학생 상호 간 상호작용을 증대시키는 방법의 적용을 확대해 나갈 수 있다. 상호작용이 증대하는 만큼 발달은 역동적으로 진행되며 관계도 개선된다. 물론 그 적용은 구체적 상황에 맞게 구체적으로 실행되어야 한다. 이런 노력들은 협력교육을 온전히 실현하기는 어렵더라도 적어도 어제보다 나은 상황들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

셋째, 협력교육 실현을 위한 제도적 개선에 더욱 분명하게 나서야 한다. 입시교육폐지, 교육과정개선, 학급당 학생수 감축 등은 협력교육 실현의 제도적 전제이다. 협력교육이야말로 효과적 발달의 길임을 분명히 하면서 더욱 확고하고 분명한 태도로 제도개선에 노력해야 한다.

넷째, 적어도 초등교육에서는 일정하게 협력교육을 실제적으로 실현해 나갈 수 있다. 평가권이 교사에게 주어지기 때문에 진도교육을 벗어날 수 있다. 순식간에 되지는 않겠지만 협력교육을 증대시키는 노력과 실천이 지속적으로 진행될 경우 구체적인 모습들이 나타날 것이라 생각된다. 초등혁신학교 및 많은 교사들의 실천적 성과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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