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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호 [현장에서] 우리는 튼튼한 말 역할을 했습니다.

2011.10.12 12:24

진보교육 조회 수:1058

[현장에서]  우리는 튼튼한 말 역할을 했습니다.

신윤철/울산공고


폐지! 대학등록금, 반대! 국립대법인화, 실현! 입시폐지-대학평준화, 실현! 대학비정규직 정규직화란 4개의 큰 주제를 내세우고 한 교육공공성실현을 위한 전국도보대장정

기획 단계부터 결합하지는 않아서 실행 전까지의 논의 과정은 잘 알지 못한다.
중학교 2년, 인문계고등학교 9년 6월, 전문계 고등학교에 14년째 근무하고 있으면서 우리사회에서 뿌리 깊게 박혀있는 학벌사회의 모순에 의욕을 잃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철저하게 서열화 된 대학구조에서 한 등급이라도 상위학교에 진학하기위한 준비기간 이상도 이하도 아닌 초 중 고등학교의 교육에 대해 더 이상의 전망이나 비젼을 찾을 수 가 없다는 상실감에 교직에 대한 회의를 갖을 때도 많았었다.

몇 년 전 프랑스 파리 몇 대학 하며 대학평준화에 대한 내용을 들어봤지만 우리와는 관계없는 이야기일거야, “그게 가능할까?” “아마 우리현실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학거야” 라고  깊이 고민을 하지 않고 있을 때 대학평준화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전문가로부터 우리의 현실에서도 발상의 전환만 하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좀 더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강연을 몇 시간 들으며 대학평준화가 입시교육의 완전한 대안은 아닐지 모르지만 상당히 완화시거나 초 중 고등학교의 교육을 그나마 어느 정도 정상화 시킬 방법이란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학벌이 곧 권력의 구조로 인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세계 최고의 등록금문제, 비정규직 문제가 어느 정도 이슈화되면서 묶어서 이런 행사를 한다는 것에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503Km(실제 걸으면서 이정표를 보고 거리를 합산하니 526km였음)를 16일 동안 걸어서 간다는 계획서를 접하고 나도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할 생각으로 부산에서 대구까지 걸어갈 생각을 하고 홈페이지에 신청을 했다..
부산에서의 종주희망자를 보니 한분, 목포에서는 10여명 되는데..
7월 초가 돼도 희망자는 역시 한명 뿐이다. 생각과 시간,  체력의 3가지가 허락해야 서울까지 완주 할 텐데... 생각과 체력은 자신 있지만 시간을 내는 것이... 이번 방학을 거의 쓸어 담아야 하는데... 고민 끝에 집에 가서 아내와 고3인 아들 앞에서 상황을 설명하며 서울까지 완주를 해야겠다 라며 이해를 구했다.
고3인 아들 녀석은 지가 아버지대신에 집을 지키겠다면서 적극적 지지를 한다.
아내는 몸조심 하라는 말로 의사 표시를 대신한다.

홈페이지에 부산에서 서울까지 완주를 하겠다고 댓글을 달아놓고, 기왕 완주를 할거면 제대로 해야지 하는 생각에 7월 12일부터 훈련에 돌입했다.
주로 훈련을 해야 할 부분이 체력을 기르는 것, 아무리 체력에 자신 있다 하더라도 하루 이틀 걷는 것이 아니고 16일 동안을 한여름의 뜨거운 불볕 더위 아래서 땀 흘리며,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면서도 거뜬하게 견뎌야 하므로 자신감만으로는 부족하다. 또한 발에 굳은살 만들어 물집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 그리고 내 걸음이 시속 몇 Km로 가지는지를 몸으로 느낄 수 있어야 중간에 합류한 동지들이 하루 소화할 수 있는 거리를 알맞게 이끌 수 있을 것이다. 하루 가야 할 거리를 보니 보통사람 평균시속 4Km로 가서는 안 되고 5Km에서 7Km는 가야한다.

태화강고수부지 산책코스에 표시되어있는 거리를 보면서 초시계로 내 걸음속도를 5, 6, 7Km에 맞추어 적응해 놓으며 하루에 평균 20Km씩 3일을 걷고 나니 허리와 허벅지, 장단지가 뻐근하다. 평소에 운동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각 운동 마다 사용하는 근육이 다르므로 걷는것에 근육이 적응하기 위한 통증이겠지 하고 참으며 이틀정도 지나니 통증이 없어진다. 이렇게 10일을 걷고 나니 좀 더 자신감이 생긴다.

이젠 출발만 하면 된다.
출발전날 서울 종합청사 뒤에서 출발 기자회견을 하는데 왜 그렇게 비가 많이 오는지... 더욱이 서울의 비 피해 때문에 모든 기자가 비 피해 현장으로 뛰어가서 기자 없는 기자회견을 하는 우리모습을 보며 걱정이 앞선다.
다행히 출발 장소인 부산에는 출발시간에 비가오지 않을 것이라 하니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

7월 28일 아침 일찍 울산의 몇 동지와 차를 타고 부산대 앞으로 갔다. 잠시 출발 기자회견을 준비하는데 부산지부동지들, 경남지부 동지들, 울산지부동지들 그리고 각 단체에서 참석한 동지들이 30여명이모여 기자회견 및 결의를 다지고 출발을 했다.

시내거리엔 더워서인지 사람들이 많지 않아 지나가는 차에게 주로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며 노포동을 막 지났는데 지나가는 소나기인지 한 줄금 내려 온몸과 운동화까지 질척질척, 더위는 좀 누그러뜨렸지만 운동화가 젖으니 걷는 게 불편하다. 허나 그것도 비가 그친 후 1시간 정도 오니 뽀송뽀송 말라 버린다.
첫날 숙박 장소인 양산서창에 도착하여 지역단체사무실에서 자며 두 번에 걸쳐 간담회를 했는데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다. 웅상희망이라는 단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우리 도보 대장정의 내용을 설명하니 눈이 반짝반짝하다. 첫날부터 내가 뭔가 한 것 같아 기분이 참 좋다. 마침 다음날이 서창 장날인지라 훈훈한 시골의 모습을 뒤로 한 채 울산으로 출발했다
울산에선 민주노총주최의 집회가 계획되어있다. 여러 동지들의 발언 후 종주자의 각오 한마디를 하란다.
“우리들이 이렇게 짧은 시간 각 지역을 지나가는 것이 어느 정도의 홍보 효과가 있을까 회의가 들기도 했지만, 콩나물에 물을 주면 물이 바로 흘러내립니다. 그러나 콩나물은 무럭무럭 자랍니다 라는 말을 하며 그런 마음을 간직하며 열심히 종주 하겠다”는 말로 대신했다.

이틀밖에 걷지 않았는데 울산지부 많은 동지들이 같이 하시면서 걱정과 결려를 해주신다. 날씨가 더운 관계로 새벽에 출발하여 1시간여를 간 다음 아침식사를 하려고 식당에 들어가니 식당주인께서 설명을 하지 않아도 눈치 채시고 “왜 이 좋은 일을 이제서 하느냐” “우리 애들은 이미 다 졸업했지만 참 좋은 일 한다면서 주시는 밥상에서 훈훈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첫날 둘째 날은 거리가 멀지 않아 큰 어려움이 없었는데 셋째 날은 43Km이다. 더욱이 경주역까지 오후6시 30분에 잡혀있는 집회에 참석해야 하니 서두를 수밖에... 사업 홍보지에는 30Km로 되어있어 오전에 여유 있게 가다가 오후에 이정표를 확인하니 시속 7Km로 가야 겨우 약속시간을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훈련 했던 감각을 살려 최 선생님과 시속 7Km로 몇 시간을 앞에서 이끌었다. 처지고 불만스러운 표정들이 역력하고 또 소나기까지 한참을 내리려 발에 물집이 생겨 아프다고 난리들이다. 그래도 잠깐 잠깐 쉬면서 열심히 걸어간 결과 6시 45분경에 경주역에 도착하니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 한진중공업으로 가다가 우리들을 격려해주겠다고 잠시 고속도로를 벗어나 이곳에 온 서울대 학생 동지들과 경북지부 동지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날 고생했던 해방연대 동지들, 울산지부동지들 정말정말 고생많았습니다.

셋째 날은 경주지회 지회장님 집에가서 서울에서 내려온 두 동지와 공무원노조 대학본부 전임자 동지와 같이 간단하게 맥주잔을 기울이며 편안한 잠을 잤다. 다음날까지 지회장과 지회장 사모님까지 오셔서 최선을 다해 주시는 모습에서 동지애가 느껴 졌고 그런 분들이 같이하시기에 이사업이 제대로 집행될 수밖에 없고 의미가 있을 것이다.

공무원노동조합전임자 한분이 결합해서 이젠 서울까지 종주자가 3명이 됐다. 울산지부방송차를 이용하여 작은 소도시라도 번화가를 지나갈 때 방송을 하시는데 이번 행사에 대한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참으로 설득력 있게 설명을 하시니 반응이 더 좋은 듯 하고 힘이 솟는다.

영천 시청 앞에 도착하니 “환영 교육공공성 강화 대학서열화 폐지 전국도보대장정”, “영천민주시민협의회”란 PC를 들고 지역활동가들이 기다리고 있다. 거리 선전전을 마치고 식당으로 이동하여 30여명이 식사, 식사 값은 영천에 사시면서 경주동국대에서 비정규교수생활을 10년 정도 했다는 분이 흔쾌히 계산하신다. 상당한 액수일 텐데, 돈이 많다고 낼 수 있는 것은 아닐 텐데... 구석구석에 한이 맺힌 분들이... 어깨가 무거워진다.

영천에서 농민회 활동을 하신다는 분이 주신 정성이 담긴 싱싱한 천도복숭아 한 상자가 대구까지 오는데 여러 동지들에게 힘을 주었다.
특히 금호를 지나는데 가정주부인 듯한 분께서 5만원을 손에 쥐어주시면서 “같이 못해 미안합니다. 음료수라도 사드시면서 가세요” 라며 빠른 걸음으로 가던 길을 가신다. 또한 우리의 도보가 차량흐름을 방해하는 관계로 크락션 소리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뒤에서 커다란 덤프트럭이 빵! 한다. 겸연쩍게 돌아보니 차문을 열고 역시 5만원을 주가 지나가신다.
거리선전전을 여러 번 하면서 홍보지를 잘 받기만 해도 고마운데 이런 환대를 받고나니...

선전지를 잘 받는 것, 수고 한다 라는 말 하는 것까지는 그래도 어렵지 않겠지만 그냥 지나가다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주시는 것은 웬만한 정성이 아니면 불가능 할텐데... 우리 할 일이 그만큼 많아진 것이겠죠?
하양에서도 약국 안에서 잠깐만요 하면서 냉장고에서 박카스를 한 아름 들고 막 뛰어 오셔서 안기고 가신다.

그런 기분을 간직 한 채 대구백화점 앞에 도착하여 방송과 함께 선전지를 나누어 주는데 지금까지 거쳤던 중소도시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도시에 살기 때문에 돈이 많아서 그런가?

더욱이 다음날 대구 동아아울렛 앞을 지나다 잠시 거리선전전을 하려 하는데 직원들의 방해가 심하다. 그들도 대학문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격고 있는 어려움들을 격고 있을 텐데 저렇게 저돌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보니 미워하는 마음이 앞서면서도 결국 초 중 고등학교에서 입시위주의 교육으로 인해 인간이 어떠해야 하는 지를 제대로 말해주지 못한 탓 일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대구를 벗어나 왜관으로 가는데 구름이 서서히 몰려와 비가오시 시작한다.
점심 먹으러 들어가기 전부터 거친 소나기가 내리더니 왜관 도착할 때까지 도로에 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어 물속을 걸으며 갔다. 처음엔 몇 동지들이 우산을 쓰기도 하고, 우의를 입기도 하다가 결국 더워 땀나 젖으나 비 맞아 젖으나 같다하며 치워 버린다. 발 이외에는 오히려 비가오니 더 힘이 난다. 7일정도 지나지 종주자 2명은 적응이 됐는지 발걸음이 가볍다. 다만 공무원노조 동지는 피부알레르기 때문에 피부과를 다녀오기도 하는 등 고생하시는 모습에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분은 씩씩하게 걸으며 방송을 하신다. 저런 신념, 활동력, 헌신성이 어디에서 나올까? 걸으면서도 지역마다 공무원노조 대학본부조합원이나 활동가들을 열심히 조직해서 이번 사업이 보다 힘차게, 초라하지 않게 집행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한다.

구미에서도 자가용차를 타고 가다가 돌아와서 음료수를 한보따리 주시는 분, 시원한 박카를 몇 상자를 들고 와 수줍은 모습으로  주고 가는 같이 걸으시는 동지의 제자, 사진을 열심히 찍어 주고는 꼬깃꼬깃한 만원짜리 한 장을 주시고 가는 분도 있다. 이러한 지지와 정성들을 보면서 어찌 힘들다 할 수 있겠는가, 어찌 나태해질 수 있겠는가, 어찌 힘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구미에서 상주거리가 이번 일정에서 가장 먼 거리인 46Km이다. 계획 되었던 곳으로 가면 53Km를 가야한다.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지름길을 물어보니 알려준다. 큰 고개는 있었지만 그래도 7Km정도 줄었으니 다행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속 7Km로 걸어야 한다.  쉽지 않은 하루일정이지만 완벽하게 적응을 하신 최선생님께서 선두에 서서 이끌어 주어 예정했던 시간에 상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상주는 농민회 활동이 활성화 되어있단다. 여성농민회 사무실까지 있을 정도이니... 농민회회원들의 환대를 받으며 하루를 정리할 수 있었다. 문경을 지나 이번 코스 중에서 가장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문경새재를 넘으며 좋은 풍경을 볼 수 있는 기회까지 주어지니 휴가를 보내는 기분이다.

충주를 지날 때는 많은 동지들이 결합하여 멋진 대형을 갖추며 도보를 할 수 있었고 방송차를 이용하여 가두방송을 하며 많은 선전지를 나누어 줬다. 충주지회 동지들의 빈틈없는 준비가 있었기 때문이었겠죠.  

경기도로 접어들어 서니 나 스스로부터도 긴장감이 약간을 떨어지는 듯 했다. 하루에 걸어야 하는 거리도 짧아졌고, 이젠 이 정도까지 왔으니 별 사고 없이 완주는 할 것이고 서울에서 마지막 정리 집회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아침부터 분위기를 만들어서 보다 힘찬 마무리를 해야 할텐데 하는 염려가 되곤 한다. 긴장감이 떨어져서일까 뒤에서 오던 화물차와 우리 방송차 운전석부분이 접촉사고가 나고 말았다. 화물차 브레이크가 잘 안 들어서 그렇다면서 일방으로 처리해준다니 안도는 했지만 만약 방송차가 없었으면 걷고 있는 사람들을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오싹하다.

드디어 서울 진입 서울에서는 선전지도 많이 나누어 주고 방송도 많이 하며 제대로 분위기를 만들 수 있겠지 하는 기대를 했었는데 생각 했던 것 보다 참석자가 많지 않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특히 강남역에서 선전지를 나누어줄 때의 반갑지 않은 시민들의 표정이 의외로 많다. 거의 60%정도는 받지 않는 것 같다. 그 대단한 서울 강남지역이라 그런가?

청계광장에 도착해 마무리 집회를 할 것이고 혹 발언권을 준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이리 저리 궁리해서 하려고 했던 말

동지여러분!
우리는 튼튼한 말 역할을 했습니다.
부산에서 이곳까지 커다란 짐을 지고 힘들게 왔습니다. 그러나 몸은 힘들지만 마음만은 아주아주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실고 온 짐이 교육공공성 실현이라는 아주 좋은 짐을 실고 왔기 때문입니다. 그 좋은 짐을 부산에, 양산에, 울산에, 경주에, 영천에, 대구에, 왜관에, 구미에, 상주에, 문경에, 문경새재에, 충주에, 장호원에, 이천에, 광주에, 성남에 나누어 주고 이곳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희가 지고 온 짐은 오히려 더 큰 짐이 되어버렸습니다.
오면서 국민들의 커다란 바램을 짐으로 만들어 실고 왔기 때문입니다. 이젠 이곳에 이 짐을 주저 없이 내려놓겠습니다. 여기에 계신 모든 분들께서 각자 수많은 말이 되어 이 짐을 등에 지고 구석구석으로 돌아가 또다시 나누어 드려야 할 것입니다.
교육공공성실현이라는 이 사업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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