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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도 팝니다 - 영화 ‘써니’를 보고
은하철도

그 때 그시절 80년대
  83년 중학교 입학시절 까까머리와 검정 교복 대신 처음으로 초등학교 졸업 때의 머리와 사복으로 입학식을 치뤘다. 초등학교 때의 운동장 보다도 한 없이 크고 넓었던 질척 거리던 운동장이 눈물 시리게 두려웠다. 새로운 세상, 태어나고 살아온 동네 너머에 있던 중학교는 초등학교를 막 졸업한 13살 학생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해 여름 담장을 사이에 둔 중국 음식점의 주방에서는 점심때 주문에 대비해서 엄청난 양의 짜장을 만들고 있었다. 엄청나게 마약적인 짜장의 냄새와 더불어 마이클 잭슨의 ‘Beat it'은 4교시 영어시간에 ’I'm Tom. You are Jane'보다 눈과 귀를 자극하는 영어였다.
몇 해전 시작된 컬러 방송에 뒤이어 뮤직 비디오가 본격 상륙하기 시작하였다, 영국의 뉴웨이브 그룹들과 미국의 헤비 메탈 그룹의 색다르고 현란한 움직임과 패션이 우리의 오감을 자극할 때 즈음 유로 댄스 음악이 형들과 누나들이 다니던 이태원의 디스코장과 우리들이 주말에 가던 롤러장을 뒤엎을 즈음 아시안 게임의 라면 먹고 달리던 임춘애가 우리에게 귀감이 되었다. 고등학교 들어가 머리가 어느 정도 커지나 싶었는데 때마침 머리 숱 적은 아니 아주 많이 적은 ‘각하’의 업적(?) 중 하나인 한강고수 부지가 완공이 되고 이 고수 부지는 갈 곳 없는 우리들에게는 낮에는 농구장을 제공해 주었고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한강 변 무심하게 일렬로 불야성을 이루었던 아파트의 야경과 더불어 흡연과 음주의 장이 되었다.

추억은 항상 아련한가?
  80년 피의 광주 학살로 정권을 탈취한 신군부 독재 정권은 처음부터 당근과 채찍을 통해 파시스트 체제의 완성을 향해 치달았다. 처음 잘못 채워진 단추는 아무리 용을 써도 제대로 폼이 날 없고 잘못 채워진 것이듯이 각종 규제의 완화와 철폐를 통한 유화 정책은 본인들의 손과 온 몸에 칠갑을 한 피의 붉음과 냄새를 지울 수 없었다.
‘정의’와 ‘복지’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프로야구를 시작으로 스포츠의 활성화와 야간 통행 금지 해제와 학원 자율화 등으로 국민들의 소비 풍조 조장과 말초 신경의 자극으로 달콤한 인생이 도래했다고 믿게 만들었지만 파시스트 정권의 정체성은 결코 지워지지 않았고 지워질수 없었다.
80년대 중반 이후 터져 나온 노동계와 학생 운동의 봇물은 양의 탈을 쓴 늑대로서는 해결될 수 없었고 결국 양의 탈을 던져버린 늑대가 되어 철권을 휘두르면서 본질을 자뻑하기 시작했다.
  영화 ‘써니’ 영화의 제목처럼 보니엠의 노래가사 처럼 햇빛 찬란한 청소년 시기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 청소년들이 살아온 나라는 결코 써니가 아니었기에 동조하기 어렵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말 그대로 중산층의 확대와 산업구조의 고도화는 단순한 노동의 판매만으로 살아가기 힘든 사회를 만들었다. 가정의 소득이 늘어날수록 고등교육에 대한 수요는 급격하게 증가하게 되었고 사회와 부모들의 고등교육에 대한 요구와 기대는 청소년들에게는 부담으로 전가되었다. 과외와 학원 교습의 금지로 모든 교육이 학교의 울타리 안에서 이뤄져야 하게 되면서 보충수업과 야간 자율학습이 등장하게 되었고 평준화 체제하에서의 입시의 성과(?)는 고스란히 강남 8학군의 신화를 만들었고 8학군의 학교들의 소위 명문대 진학률이 지역의 아파트 값과 연동하게 되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경제학적 가설을 만들었다.
집에서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모든 시간을 학교의 교실 안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이 만들어지고 옆자리의 또는 옆 반의 친구가 바로 나의 경쟁자가 되는 치열한 입시 경쟁 체제가 높은 학교의 울타리만큼이나 높아져 갔다.
내신과 학력고사의 점수로 학교와 학과 그리고 등락이 결정되는 제도에서 피 말리는 점수 경쟁은 시작이 되고 이 점수 경쟁의 조련사이자 멘토(?)로서 학교 내에서의 교사들의 위상도 가지고 다니는 회초리의 길이 만큼 커져갔다.
  ‘말죽거리 잔혹사’ 에서 보여지는 유신 시대의 폭력 보다는 덜하지만 더 과학화되고 자기 내면화된 폭력의 객관화가 시작된다.
맞는 횟수만큼 점수가 올라간다거나 많이 때리는 선생님이 입시의 달인이라는 둥 유사 과학이 판을 치면서 입시의 폭력에 많은 학생들은 체념하고 순응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 분위기를 따를 수 없었던 다른 학생들은 자살로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추억이 아닌 초심으로 돌아가기(?)
도가니 영화가 대세인가 보다. 몇 년 전에 일어난 어느 도시에 있는 특수학교의 성폭력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게 되었다. 영화를 본 관객을 중심으로 가해자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과 사후 대책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면서 해당 시도 교육청에서는 폐교와 뒤늦은 징계를 호언하면서 서둘러 공분을 달래려고 안간힘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여의도의 국회와 서초동의 법원에서도 입법과 양형 과정에서의 재발 방지를 공언하면서 여론 잠재우기에 애를 쓰고 있다. MB도 영화 ‘도가니’를 보았다고 한다.
역시나 “제도를 통한 문제 해결보다 개개인들의 의식 개혁” 운운하면서 개드립을 했다.
여전히 일관성 있다. 철저한 개인 책임의 부르주아지의 의식의 발현이다. 영화 ‘써니’도 마찬가지이다. 왜 그들이 칠공주가 되었고 왜 그들이 갈등하는지? 그들의 갈등의 내용은? 모두가 개인으로 회귀한다. 심지어 마지막 죽은 친구의 장례식장에서도 이런 개인 무한 책임의 정신은 눈물의 유서 낭독으로 절정을 맞이한다.
  도가니를 보고 문득 ‘그때 우리들은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편화된 우리가 아닌 조직화된 우리들은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물음에 답하지 않는 우리들을 상대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고 외치며 목숨을 던졌던 학생들에게 답하기 위해 우리는 뭉치고 조직화 되었다.  
초심으로 돌아가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얼마나 이런 외침에 우리들은 귀를 귀울였으며 또 다른 희생을 막기 위해 그리고 계속되는 희생을 막기 위해  무엇을 얼마나 했으며 하고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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