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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 [기획] 1. 청소년의 미발달 문제와 한국의 대학입시

2011.07.18 21:49

진보교육 조회 수:1299

<청소년 미발달 문제와 한국의 대학입시>
- 비고츠키교육학의 관점에서 본 입시교육의 문제점


진보교육연구소 이론분과


1. 한국청소년의 미발달

* 마마보이 대세?
요즘 고등학생을 보면 예전에 비해 어리다고들 한다. 청소년은 물론이고 대학생, 심지어 대학 졸업 후에도 마마보이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경우들도 허다하다. 마마보이 문제는 한편으론 한국의 청소년과 청년세대의 미성숙 문제를 나타낸다. 이를 비고츠키교육학의 관점으로 본다면 사회적 관계에 대한 ‘주체적 인식과 실천 기능’의 미발달이라 할 수 있다.
마마보이 문제는 물론 핵가족-소수자녀 시대라는 사회문화적 조건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중요하게는 교육과정의 문제이기도 하다. 유럽 청소년들의 경우 마찬가지로 핵가족-소수자녀의 조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 머리도 크지 않다!
주체적이지 못하고 문화예술적 소양이 떨어지는데 정신적으로만 뛰어난 것을 두고 ‘머리만 크다’라고들 한다. 그러나 정확히 말한다면 한국 청소년과 청년은 머리도 결코 크지 않다. 왜냐하면 그 세대에 도달, 형성해야 할 고도화되고 조직화된 ‘고등정신기능’이 미발달해 있기 때문이다. 마마보이 문제와 관련된 주체적 인식과 태도 역시 고등정신기능의 한 형태이다.(뿐만 아니라 주체성과 문화적 소양과 분리된 채 정신기능만 따로 발달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한국청소년의 고등정신기능 미발달 문제는 표면적으로는 중등교육 이후에서 잘 드러난다. 상당정도의 청소년들이 대학에 진입하지만 막상 고등교육 수학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고등교육 수학능력 부족은 비단 전문대와 하위권대학만이 아니라 중상위대학에서도 상당정도 나타나는 문제이다. 대학수업을 따라간다 하더라도 많은 부분은 과학적 개념과 이론을 숙달, 내면화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의 언어적 기억과 기능적 수행에 머무는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제대로 모르는 개념과 이론을 가지고 써진 수많은 과제물과 논문들이 그러하다.

* 학업성취도 1, 2위는 ‘발달’이 아닌 ‘겉 똑똑’의 측정 결과일 뿐
발달 문제와 관련된 한국교육의 수수께끼가 하나 있다. 바로 학업성취도 문제이다. 초중등까지는 학업성취도 세계 1, 2위인데 대학에 들어가면 왜 수준이 곤두박질 치는가?
이에 대한 통상적 대답은 “고교까지 공부를 너무하다 질려서 대학부터는 놀기 때문” 혹은 “대학교육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고 교수 역량이 미비해서” 등의 이유를 댄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필연적 과정을 설명하지 못한다. 정답은 ‘알고 보면 초중등교육에서부터 발달이 지체되기 때문’이며 그 결과가 대학에서 표면화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에서도 요즘은 체계적 교양과 학문을 쌓기보다는 스펙관리와 취업준비에 집중한다.(얼마전 어느 일간지에서 지금의 청년세대를 먹고살기가 꿈이 되어버린 ‘역사상 가장 똑똑한 세대’라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이 역시 타당한 규정은 아니다. 전체 사회문제는 그렇다 치고 자신들의 문제조차 제대로 표현 못해 온 세대가 어떻게 똑똑하가? 불쌍하지만 가장 바보 같은 세대이다.)  
‘개념적, 과학적 사고’ ‘종합적, 비판적 인식’ 같은 고등정신기능의 진정한 발달은 객관식 지필시험으로는 결코 측정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예컨대 ‘문화’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것과 관련 객관식으로는 ‘인간의 모든 생활양식’이라는 정의를 외우고 형식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객관식 문제로 측정할 수는 있지만 실제적이고 총체적인 인식정도(비고츠키교육학의 ‘진개념’)를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문화라는 개념을 구체적인 상황에서 실천적으로 사용하는 과정에 대한 관찰, 혹은 적어도 어떤 주제에 대한 풍부한 글쓰기를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다. OECD 할애비라 하더라도 개념에 대한 진정한 이해 정도, 실천적 내면화 정도를 객관식(다지선다형과 답이 있는 주관식) 지필시험으로 측정할 수는 없다. 그것은 객관식 시험의 객관적 한계이다. 한국의 학업성취도가 높게 나오는 이유는 과도한 학습량에 의해 누적적 정보와 단순지식, 반복학습에 의한 ‘의사 개념’의 기능적 수행력이 측정된 것일 뿐이다. 고등교육 수학능력은 의사개념의 기능적 수행력을 뛰어 넘는 보다 실제화되고 고도화된 고등정신기능의 발달을 필요로 하며, 한국청소년은 그 부분이 지연, 왜곡됨으로써 대학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미발달의 문제를 보이게 되는 것이다. 한국청소년의 OECD 학업성취도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개념을 많이 기억하는 ‘겉 똑똑’의 결과일 뿐이다.  



2. 중등교육과정의 왜곡과 발달 지연

청소년 미발달 문제는 보다 높은 고등정신기능을 형성하지 못하는 중등교육의 구조적 상황에서 빚어지며, 근본 원인은 입시교육을 규정하는 서열적 대학입시이다.(입시교육으로 인해 전인교육의 지향 자체가 파괴되고 있지만 여기서는 정신발달, 즉 고등정신기능 발달에 초점을 두고 논의하고자 한다.)

1) 개념적 사고의 미발달
개념적 사고체계는 주체적 사고와 실천, 과학 및 학문의 기초가 되는 고등정신기능으로서 비고츠키에 따르면 청소년기 발달의 주요 특성이다. 그러나 한국의 입시교육은 개념의 언어적 기억의 양적 확대에 그치게 할 뿐 제대로 된 이해와 내면화 그리고 보다 총체적인 사고체계의 형성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

* 개념의 성숙, 내면화과정의 부재
한국초중등교육의 교과서는 많은 정보와 개념들로 가득 차있다. 입시교육은 교과서보다 더 많은 정보와 개념 이해를 요구한다. 입시교육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양과 개념을 언어적 정의로 이해(형식적 이해)하고 암기하며 반복적 문제풀이로 시험 적응력을 키운다. 세계 최고의 학습량은 대부분 이 같은 과정으로 채워진다.
그러나 비고츠키에 따르면 개념의 언어적 암기와 이해는 개념 이해의 시작일 뿐 진정한 개념 형성은 구체적인 상황에서 실천적 사용을 통한 숙달과 주체적 체화(내면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는 단순한 언어적 암기와 이해를 넘어서서 토론과 발표, 글쓰기, 실천적 적용 경험 등을 통해서 가능하다. 언어적 정의로부터 시작된 개념에 대한 이해는 구체적 상황 및 경험과 만날 때 실제화되고 실천적 숙달을 통해 내면화된다. 이 같은 과정은 개념과 경험이 서로를 향해 나아가면서 서로를 고양시키는 역동적 과정이다. 개념이 내면화될 때 비로소 주체적 인식으로 형성되며 사고체계가 상승적으로 변화,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입시교육은 개념과 구체적 상황이 만나는 것을 방해하며 실천적 숙달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이유는 시험 잘 보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입시교육에서는 언어적 이해의 숙달(문제풀이의 반복을 통한)까지로 한정되어 버린다. 그것만으로도 객관식 문제를 풀기에는 대부분 충분하다. 이 때문에 어떤 개념의 언어적 이해 다음에 실천적 성숙과 내면화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다른 개념의 언어적 기억, 이해로 이동해 버리며 난이도의 조절도 대부분 새로운 지식, 정보를 묻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문제 잘 푸는 아이들도 실제 상황에서는 거의 써 먹지 못하는 일들을 우리는 허다하게 목격한다. 결국 입시교육을 충실하게 따르는 청소년들도 발달의 시작 단계에 머물러 있는 수많은 개념의 양적 축적으로 진행될 뿐 개념의 성숙과 발달, 총체적 사고체계의 형성이라는 질적 고양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것이다.

* 총체적 사고기능 미형성
개개 개념의 발달, 개개의 고등정신기능은 서로 연결, 결합되면서 통일적이고 총체적인 사고체계를 형성한다. 총체적인 개념발달, 사고체계는 특히 개념과 개념, 개념체계와 개념체계의 충돌 그리고 개념, 이론과 경험, 실제의 모순을 접할 때 크게 고양된다. 그것은 개념적 사고의 발달에서 일종의 ‘위기’이며 인식주체는 그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주체적 노력을 경주하게 된다. 모순을 접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개념과 사고체계는 재구성되며 경험과 현상 이해도 재해석된다.
예컨대 새만금이나 일본 핵발전소 사태와 같은 문제를 다루면서 ‘개발, 성장’과 ‘환경, 생태’와 같이 충돌되는 개념을 재구성해 나갈 수 있다. 이 같은 과정은 충돌되는 기존 개념을 재구성하게 할 뿐 아니라 별개로 작동하는 분석과 추리력, 종합력 등 개개의 정신기능을 결합하여 ‘종합적 분석’, ‘분석적 종합’과 같은 보다 고도화되고 총체화된 사고기능을 형성, 발전시킬 수 있다.(입시교육에서는 아주 가끔 다루게 되는 이 같은 문제들조차 ‘개발과 환경의 조화’라는 뻔한 답을 외우는 방식으로 귀결된다.) 이런 과정은 의제학습, 토론 등의 방식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며 개념의 재구성과 사고체계의 변화를 글쓰기, 발표, 실제의 문제해결과정을 살피는 것 등을 통해 관찰할 수 있다. 그러나 입시교육에서 이 같은 교수-학습과정은 매우 제한적이며 제대로 된 과정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개념들이 대립, 충돌하고 개념과 실제가 모순되더라도 재구성하기는커녕 ‘모순과 충돌’ 자체를 인식하지 못 한 채 언어적 이해 수준에 머문 개념들을 쌓기만 하는 발달 지연 상태가 지속된다. 아동의 경우 ‘경험과 경험의 모순’을 인식하지 못하는 단계가 있는데, 한국청소년의 경우 개념과 개념의 모순을 인식하지 못하는 발달단계에 머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 비판적 사고와 성찰, 고차적 의사소통기능, 주체적 의지력과 창조성의 미발달

* 비판적 사고와 성찰 과정의 부재
개념간의 모순, 개념과 경험과의 모순을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정신기능은 비판적 사고력, 성찰기능, 주체적 의지력과 창조성의 형성으로 연결되는 매우 중요한 경로이다. 비판적 사고와 성찰은 보다 고도화된 고등정신기능의 한 형태로서 총체적 사고체계에 ‘주체성’이 결부된 것이다.
비판적 사고는 주로 개념(이론)과 현상과의 모순, 성찰은 개념(이론)과 실천과의 모순을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과정과 결합된다. 비판적 사고와 성찰은 ‘자신이 속한 사회적 관계와 자기 자신의 대상화’라는 실천적이면서 높은 정신기능을 의미하며 스스로와 사회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정신기능이다. 그러나 한국 교육현실은 비판적 사고와 성찰의 기회는커녕 그 전제들의 기회도 거의 부재하다.

* 저차적이고 단순한 의사소통
의사소통기능은 상호작용, 그를 통한 인식과 실천의 역동적 재구성과 발전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의사소통은 그 자체가 중요한 고등정신기능이기도 하다. 의소소통기능은 소통 수단이자 매개인 언어, 상징, 매체 등을 능숙하게 활용하는 능력만이 아니라 상호작용을 민주적이고 역동적으로 이끌어가는 기능까지 포함한다. 그러나 한국교육현실에서는 활용능력에서는 저차적 수준에 머물며 상호작용 측면은 거의 부재하다.
우선 의사소통 수단의 활용능력과 관련 가장 중요한 ‘언어’와 관련, 현재의 교육현실은 주로 교사의 일방적 말하기와 학생의 듣기 그리고 판서나 교과서, 학습지 보기 등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말하기와 글쓰기는 매우 제한적이다. 이 때문에 자기표현력이 매우 떨어지게 된다. 또한 ‘듣기’로 한정된 과정이 듣기를 고도화시키는 것도 결코 아니다. 듣기 역시 말하기 과정과 연결될 때 집중되는 것이며 말할 기회가 있어야 듣기 능력도 향상되는 것이다. 한국 청소년들은 듣기만을 강요받는 상황에서 가만히 딴 생각하기, 딴 짓하기 습관을 키우게 되며 결국 듣기 기능도 떨어지게 된다. 반대로 일방적 말하기를 지속적으로 배우게 된다. 일방적 말하기와 표현력은 전혀 다른 것이다. 표현력은 상호작용을 촉진하지만 일방적 말하기는 상호작용을 억압한다. 결국 서로 간에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말하거나 의소소통을 포기하는 것이 수도 없이 노정되는 한국사회 자화상의 한 원인이 된다.
의사소통 과정은 서로 말하고 듣는 단면만이 아니라 주체와 주체 간에 이루어지는 일련의 상호작용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어떤 의제가 제기되고, 이야기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역할을 분담, 수행하고 성찰까지 이루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의사소통기능은 고도화될 수 있다. 의사소통의 고도화는 대화와 토론, 자기표현과 발표, 의제학습, 공동체에서의 담론과 실천 수행(자치활동 등)을 통해 익히고 숙달되어야 하는데 한국교육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간혹 토론, 발표식 수업을 하더라도 점수나 여타의 보상체계의 의한 것으로 실질적으로 의제에 집중하지 못한다. 토론을 하는 그 순간에도 실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설정된 요건에 맞추려 함으로써 듣기와 말하기가 분리된다. 점수나 보상체계 차원에서 ‘경청’은 담보되지 않으며 이 역시 일방적 말하기 습관을 낳을 뿐이다. 자치활동의 경우 청소년기 학생들이 다양하고 역동적인 의사소통을 담보할 수 있는 주요한 과정이지만 한국교육의 현실에서 학생자치는 형애화되어 있다. 결국 수업에서든 자치활동에서든 고도화된 의사소통을 수행하고 숙달하면서 익힐 기회는 거의 없는 것이다.

* 주체적 의지력과 창조성의 미숙
창조성은 어떤 난관을 극복하고 필요를 실현하기 위해 모든 정신기능이 총체적으로 결합되는 가장 실천적이고 고도화된 정신기능이라 할 수 있다. 창조성은 분리된 별도의 기능으로 독립적으로 형성, 발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정신기능의 형성과 결합 그리고 주체적 의지력을 필요로 한다(창의성을 분리된 독립적 기능으로 다른 정신기능의 발전의 토대 없이 형성되는 것으로 보는 잘못된 관점은 수정되어야 함). 따라서 창조성은 다양한 정신기능의 형성과 고도화, 그리고 주체적 의지력을 형성할 수 있는 자아존중감, 비판적 사고와 성찰의 과정을 통해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창조성을 형성, 발현할 수 있는 전제와 기회 부재하다.

3) 협력의 부재
협력은 다양하고 총체적인 고등정신기능을 형성하는 핵심 기제이다. 인간의 모든 고등정신기능은 협력 속에서 배태된 것이며 사회적 관계 속에서 실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료와의 협력, 토론 과정에서 개념의 실천적 숙달을 통한 내면화가 가능하며 협력을 통해 의사소통기능이 고도화된다. 또한 협력을 통해 사회적 실천을 행할 수 있다. 협력은 개념의 내면화과정에서 매우 중요하다. 언어적 이해에 그친 개념을 동료에게 설명하는 과정을 통해 개념의 성숙, 숙달 그리고 진개념에 실천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비로소 성찰이 가능하고 의지력과 의지력에 기초한 창조성이 발달한다. 그러나 한국교육현실은 학생 간 협력도 부재하지만 교사-학생 간 협력도 부재한 상황이다.
한편 학습집단 구성과 관련 집단 형성은 이질적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학습집단 내 협력은 가로막혀 있다. 기본적으로 입시교육하의 교수-학습과정이 협력을 조성하지 않으며, 경쟁을 유발할 뿐이다. 동료 간에 근접발달영역이 창출되지 못하며 교사-학생 간에도 근접발달영역 창출은 개념의 형식적(언어적 정의 수준) 이해 단계에 그치게 된다.  
동료 간 협력 부재, 교사의 도움이 정보제공 및 개념의 형식적 이해에 집중되는 상황은 발달에 뒤처진 청소년들의 후속발달을 어렵게 한다. 입시교육에서 교사들의 도움은 정상적으로 따라 온 학생들과 앞서는 학생들에 집중될 수밖에 없으며 동료들의 효과적 도움주기가 없을 경우 뒤처진 아이들은 자신들의 일상적 개념 혹은 경험과 새로운 개념이 만나는 과정을 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개념의 형식적 이해 수준도 따라가지 못하게 되며, 누적될 경우 도움주기가 더욱 어려워지게 된다.(협력과 도움주기를 통해 함께 발달하는 과정은 처음부터 진행되어야 하며, 누적될수록 이를 보완하는데는 더 많은 노력과 에너지, 지원이 필요하다. 현행 교육시스템에서는 발달결손이 누적될 수밖에 없으며 보완, 해소하기는 매우 어려운 구조적 문제이다.)


3. 미성숙과 저차적 발달을 구조화하는 한국대학입시

* 객관식 지필시험의 불가피성
기본적으로 서열적 대학입시는 객관식지필시험의 형태일 수밖에 없다. 첫째, 서열에 따른 순위를 매겨야 하는데 순위는 정량적 방식일 수밖에 없으며 그 형태는 객관식 지필시험이 된다. 둘째, 시험의 민감성과 관련 주관성이 최대한 배제되어야 다툼을 최소화할 수 있으며 따라서 그 형태 역시 객관식 지필 시험인 것이다.
객관식 지필시험은 기본 방식 자체가 정보와 개념의 기억, 언어적 이해 그리고 단순한 분석, 종합기능 정도까지 측정하는 것으로 한정된다. 왜냐하면 주어진 질문과 문항을 비교하여 해당하거나 해당하지 않는 것을 고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다지선다형 질문의 끝은 ‘옳은 것’ 또는 ‘틀린 것을 고르시오’로 끝난다.) 이 같은 방식은 기본적으로 정보나 개념에 대한 기억 정도를 측정하는 것이며 잘해야 상위개념이나 하위개념을 연결하는 단순 분석, 종합, 연상기능을 측정하는 것까지 가능할 뿐이다.  
객관식지필시험은 일련의 과정으로 펼쳐지는 것, 즉 사고의 전개과정, 기능과 기능의 결합, 재구성 과정을 표현할 수 없다. 결론적 선택만 표현할 수 있다. 개념과 개념의 충돌을 어떻게 대하고 해결하는지, 개념과 현실의 차이를 어떻게 인식하고 통합하는지 알 수 없으며 따라서 실제 전개되는 사고과정과 정신기능을 측정,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사고과정과 총체적 개념체계는 실제 과정에 대한 충분한 관찰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최소한 자신의 사고과정을 제대로 표현한 글쓰기를 통해 유추할 수 있다.

* 초중등 교육과정으로의 이전
이 같은 객관식시험의 성격은 중등교육에 그대로 이전된다. 대학입시가 현실적 목표인 중등교육에서 실제적 교수-학습과정은 객관식시험을 통해 측정할 수 있는 단계 이상을 나아갈 필요가 없다. 시험문제를 풀 수 있을 만큼 개념의 언어적 이해에 도달한 다음부터는 맞추기 연습(반복)과 더 많은 정보와 개념의 기억 축적으로 횡적 이동하게 된다. 그것이 시험 잘 보는 길이기 때문이다.
입시교육은 초중등교육의 교수-학습을 규정할 뿐 아니라 평가까지 규정한다. 내신이 대입에 반영되는 한 초중등교육(특히 중등)의 평가 역시 점수식 평가일 수밖에 없고, 또한 그것이 입시에도 훈련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학교교육은 입시에 관한 한 사교육에 밀릴 수밖에 없다. 교육과정의 최소한의 규정과 이질집단 구성은 사교육에 비해 전문적 입시 준비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결국 입시교육으로 왜곡될 대로 왜곡되지만 사교육에는 밀리는 구조적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 논술도 매뉴얼화(객관식화)하는 서열구조
객관식시험에 대한 비판에 직면하여 그리고 다양한 전형을 핑계로 등장한 것이 논술이다. 그렇지만 서열구조의 민감성과 압력을 피해갈 수 없다. 논술이라는 형식보다 서열구조의 민감성이 더 큰 규정적 요소이다. 그래서 적지 않은 경우 명칭만 논술일 뿐 주지교과에 대한 지필고사에 불과(개념의 언어적 이해 정도를 묻거나, 기능적 풀이과정 등. 심지어 객관식시험을 보는 학교도 있음)하다. 논술을 보는 경우도 매뉴얼화 되게 된다. 논술이 정량화, 객관화되는 것이다. 결국 사고과정을 펼친다기보다 정해진 매뉴얼의 숙달 정도를 측정하는 것이 되고 만다.(인간의 사고과정이 비주체적으로 메뉴얼화 되는 것은 더욱 끔찍한 일이다.)


4. 인간발달, 사회발전의 걸림돌
청소년의 미성숙, 발달 지연은 초중등교육 만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개개인의 차원에서는 인간적 가치실현의 제약이자 전면적 발달의 기회 박탈이며 사회적으로는 고등교육과 학문의 수준 저하와 문화역사발전 허약함으로 연결된다.
또한 대중운동과 사회진보에도 장애를 부여한다. 맑스가 ‘과학의 해방이 노동자해방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했지만 교육현실에서 과학은 결코 노동자, 민중에게 해방되지 않았다. 과학적, 총체적 사고의 부재는 대중운동과 진보운동의 합리적 의사소통(노선투쟁 등)의 미비/실천에 대한 성찰 미비 등의 주체적 조건을 야기하며 외적 담론 지형도 악화시킨다.
서열적 입시를 핵심으로 하는 한국교육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뒤엎고 진정한 인간발달과 사회진보를 향한 새로운 교육시스템 구성으로 나아가야 한다. 비고츠키교육학의 시각에서 교육혁명의 문제의식을 새롭고 담대하게 펼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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