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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 교수와 학생들이 동맹하여 대학 기업화 저지하고, 교육공공성 확보하자!>

임순광 /한국비정규교수노조


대학과 시간강사
2010년 5월에 조선대에서 서 모 비정규 교수(당시 시간강사)가 교수사회의 비리를 폭로하며 자결했다. 2004년 서울대의 백 모 비정규 교수(당시 연구교수), 2008년 건국대의 한 모 비정규 교수(당시 강의전담교수)에 이어 사회적 반향을 크게 일으킨 3번째 죽음이다. 이들을 괴롭힌 건 교육자나 학자로서의 삶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자괴감, 차별로 인한 고통, 극심한 생활고 등 이었다. 연구교수, 강의전담교수, 초빙교수도 대부분 단기 계약을 맺고 전임교원과 대학의 눈치를 보며 상대적 저임금에 시달리기 때문에 사실상 시간강사 제도의 변형에 불과하다. 노동시장 분단을 통한 승자독식 원리와 야만적 차별은 교수 사회에서 가장 극심하게 관철되고 있다. 대부분의 대학에서 전임교원과 시간강사 간 격차는 상상을 초월한다. 임금 5배 이상, 공간 50배 이상, 의사결정권 차이는 그보다 더 크다. 이런 시간강사 제도를 두고서 고등교육의 올바른 개혁과 사회 성격 변화 투쟁을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대학들은 교육의 1/3 이상을 시간강사에게 의존하고 있다. 시간강사의 변형에 불과한 겸임교수와 초빙교수까지 포함할 경우 교원 법적 지위가 없는 비전임 교원들의 수업 담당 비율은 거의 절반에 가깝다. 교육과학기술부의 보도자료(2011.3.22)에 따르면 전임교원의 수는 약 7만 7천 명이다. 시간강사의 수도 약 7만 7천 명이다. 시간강사 이외의 비전임 교원의 수는 1만 명을 훌쩍 넘긴다.

<표 1> 시간강사 강의 분담 현황(2009년) - 파일 참조

일각에서는 ‘능력주의’로 이들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2006년에 작성한 『전국 4년제 대학 시간강사 실태조사』를 보면 전국 155개 대학의 강의평가 결과(교육능력의 일종)는 별 차이가 없었다. 2006년 10월, 중앙일보는 1면 기사로 서울대의 강의평가 결과를 공개했는데 시간강사 군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나왔다. 이미 많은 학과에서 시간강사를 위촉할 때 일정 정도의 연구 성과를 요구하고 있다. 전임교원에게는 그렇게 하지도 못하면서 1년에 논문 실적 100%를 못 내면 강의를 배정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비정규 교수들을 옥죄는 학과도 많다. 어떤 쪽에서는 시간강사 문제를 수요공급 문제로 접근한다. 대표적인 주장이 ‘박사인력수급불균형론’이다. 즉, 박사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접근은 초점을 완전히 비켜나간 것이다. 박사가 별로 없을 때도 대학 시간강사 문제는 있었고 지금도 상당수의 시간강사는 非박사이다. 박사인력 배출을 줄이도록 대학원을 구조조정 한다고 해도 시간강사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학력이 문제가 아니라 전임교원을 안 뽑는 것이 문제(즉, 노동시장이 분단되어 있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수요공급론은 ‘대학 진학생 급감론’이다. 대학에 진학하는 나이인 18세 학령인구가 2011년까지는 69만 명으로 늘어나지만 2021년에는 47만 1천 명으로 계속 줄어들기 때문에 정규 교원을 뽑는 것이 고용의 경직성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 또한 조금만 생각해보면 앞뒤가 맞지 않다. 수 십 년간 학령인구가 늘어나도 필요한 인력을 안 뽑다가 지금 와서 갑자기 인구 핑계를 대는 것에 동의하긴 어렵다. 게다가 한국의 교원 1인당 학생 수는 OECD 주요국의 2배에 가깝다. 교원 1인당 학생 수가 줄어들면 다양한 과목을 개설하고 토론식으로 수업하며 더 양질의 교육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주요 언론은 정규 교수의 횡포와 비리, 인사 제도의 불투명성, 시간강사의 비참한 생활에 초점을 두어 왔다. 하지만 이런 개별적․온정적 접근보다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접근을 할 때 문제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 야만적 시간강사제도 발생과 재생산의 핵심 원인은 박정희 정권(1962년에 시간강사제도 도입) 때부터 이어져 온 정권의 지식인 통제와 고등교육 방치, 대학의 기업화와 불안정 노동 확산에 있다. 등록금 문제의 본질도 이와 같다. 고등교육재정을 확충하고 교육공공성을 확보하여 지식공장, 착취의 소굴로 전락한 대학을 전면적으로 뜯어고쳐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정부정책의 허구성과 우리의 대안
지난 2011년 3월 22일에 정부가 발표하고 4월 하순에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한 ‘정부 대책안’은 이명박 정권이 대학 자본의 배를 불리기 위해 불안정 교원을 늘리려는 정책이다. 이명박 정권은 2010년 10월, 시간강사 처우 개선을 대폭 개선한다고 언론에 발표했다. 2010년 12월에는 국회에서 예산을 날치기 통과 해 놓고 그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자, 서민 예산 중 하나인 시간강사 예산은 대폭 늘렸다고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막상 국․공립대학에 관련 예산은 늘지 않았고 이에 대한 대학들의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 80% 이상을 차지하는 사립대학의 비정규 교수에 대한 지원책은 사실상 없다. 교원 지위를 준다고는 하지만, ‘교원 외 교원’이라는 해괴한 용어를 쓰며 비정규 교수에게 실질적 교권은 부여하지 않는다. 즉, 면피를 위해 무늬만 교원을 양산하겠다는 것이 이명박 정권의 의도이다. 더욱이 정규 교원을 1년 단위 시간제교원/기간제교원으로 대체하는 독소조항도 이번 ‘정부 대책안’에 담겨 있어 1949년에 교육법이 만들어진 이래 역대 최악의 개악 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기에 6월 6일자 <교수신문>에 실린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65% 이상의 강사가 정부안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학문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담보하고 고등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전임교원이 많아져야 하고 이들이 담당하는 학생의 수가 적어야 한다. 사실상 전임교원확보율이 50% 수준에 불과하고 교원 1인당 학생 수(약 30명)가 OECD 평균(약 15명)의 2배에 이르는 한국은 이제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말로만 선진화와 공평 사회를 외칠 것이 아니라 고등교육의 질 향상과 국가경쟁력 강화 및 대학 내 차별 해소를 위하여, 복잡한 각종 비정규 교수 제도를 통폐합하여 이들에게 교원 지위를 주고 생활임금을 보장하면서 대신 강의 평가 향상과 연구 성과를 지금보다 좀 더 요구하는 연구강의교수제를 도입해야 한다.

<표 2> 연도별, 설립별 교원 1인당 학생 수 (파일 참조)

시간강사제도의 문제는 정부가 고등교육부문에 제대로 투자하지 않기 때문이고 대학이 악덕 기업처럼 비정규 교육 노동자를 착취하도록 방조(실제로는 지원!)하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등록금 문제도 원리는 같다. 대학들은 악덕 기업처럼 편드, 주식, 부동산 투기에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돈벌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정부는 사립대학이 우후죽순처럼 증가하도록 유도해 놓고도 이들 대학에 대한 관리감독은 제대로 하지 않았다. 게다가 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무(고등교육재정 확충 등)까지 져버려 현재의 살인적 등록금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탐욕적인 대학 자본과 그 하수인 역할을 하는 대교협, 교과부, 청와대, 국회를 판갈이 하지 않고 근본적 대안을 쟁취할 수는 없다. 정권과 대학 자본에 의해 가장 피해를 입고 있는 집단이 뭉쳐야 그 판에 균열을 낼 수 있다. 시간강사와 학생들이 단순한 연대를 넘어 ‘동맹’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렇기에 단순한 사제관계가 아니라 ‘교육 참여자’의 입장에서 ‘교육공공성 강화를 위한 동맹’을 제안한다. “등록금과 교원 임금 국가가 책임져라!”라는 슬로건으로 말이다. 6월에 최대한 집중하되, 늘 그렇듯 정치권의 립 서비스와 헛공약에 속지 말고 우리, 6월 투쟁을 함께하며 여름 내내 판을 뒤집기 위한 거대한 동맹체를 갖춰 나가자. 작은 차이를 지나치게 부각하기보다 합의 가능한 큰 틀에서 먼저 공동행동을 시작하자. 촛불을 횃불로, 횃불을 들불로 번지게 하자. 더 이상 착취와 수탈에 신음하며 대학 자본의 노예로 살 순 없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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