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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칼럼]
쿠바혁명을 만들고 혁명 쿠바를 위기에서 구한 학교

정진상 / 경상대 사회학과 교수

혁명 쿠바가 살아남은 비밀

1989년 동유럽 현실 사회주의 블록이 무너지고 잇따라 소련이 해체되었을 때 서방의 주류 학자들과 언론인들은 대부분 쿠바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지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예견했다. 그도 그럴 것이 1959년 혁명 이후 이웃 강대국 미국의 혁명 분쇄 전략과 봉쇄 조치에 맞서 쿠바는 소련의 절대적 지지에 힘입어 혁명 체제를 유지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련 해체 이후 미국이 ‘쿠바민주화법’과 ‘헬름스 버튼 통상금지법’을 동원하여 한층 강도 높은 봉쇄 정책을 폈음에도 불구하고 쿠바 사회주의는 살아남았다. 뿐만 아니라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과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정권이 들어 선 이후 최근에는 볼리바르대안(ALBA)을 추구하는 핵심 국가로 라틴 아메리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009년 1월 전교조 교사 네 분과 함께 쿠바의 각급 학교 견학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 가졌던 가장 큰 의문은 현실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 쿠바 사회주의가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약 보름간의 쿠바 여행 기간 동안 한 주일 간의 학교 견학 공식 일정 이외에 아바나 시내를 비롯하여 농촌지역을 둘러본 후 가진 느낌은 쿠바 사회주의가 살아남은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쿠바의 학교가 지역 주민들의 삶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점이 확실한 이유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쿠바 국제교류부가 주선한 공식 일정에 포함된 각급 학교가 정부 입장에서 모범적인 학교이었겠지만, 우리가 사적 연고를 통해 방문한 학교나 아바나 시내를 걸으면서 초등학교 간판을 보고 불쑥 들른 학교와 지방 여행 중에 우연히 방문한 학교들도 공식 프로그램의 학교와 큰 차이가 없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어느 학교에서든 교사들의 자부심 넘치는 표정과 학생들의 발랄함이었다.

쿠바혁명의 중심에는 교육혁명이 있었다

1959년 쿠바혁명은 미국에 종속되어 있었던 자본주의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 중에서도 교육혁명은 쿠바혁명 그 자체의 상징이었다. 혁명 이전의 교육체제는 기존의 계급구조를 유지하고 오직 소수의 쿠바인들에게 역동적이고 해외자본에 지배되는 부문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면서 정체되어 있었던 반면에, 혁명 이후 교육개혁은 모든 쿠바인들에게 기능 노동력을 가지게 하고 사회주의적 의식을 가지게 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혁명 이후 교육의 확대와 성격 변화는 그 자체로 쿠바 사회를 혁명 이전과 이후를 구분짓는 가장 중요한 지표이기도 하지만, 교육은 또한 혁명에 대한 민중의 참여와 동원의 핵심적인 수단이기도 했다. ‘문맹퇴치운동’(Literacy Campaign)은 쿠바 교육개혁의 특징을 무엇보다도 잘 보여주고 있다. 1961년 카스트로는 ‘교육의 해’로 선포하고 전 국민적인 문맹퇴치운동을 전개했다. 교사와 학생을 비롯하여 글을 읽을 줄 아는 25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동원되었다. 문맹퇴치운동은 약 9개월 동안 모든 학교가 문을 닫고 3백만 권의 책, 10만개의 파라핀 램프가 동원되는 등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들었으며 공식 문맹율은 21%에서 3.9%로 떨어졌다. 교육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운동이 혁명세력이 주장하는 것처럼 압도적인 성공이라고 보기는 힘들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혁명세력의 진정한 의도는 혁명에 민중을 동원하고 정치 문화를 바꾸는 데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점에서는 완전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문맹퇴치운동은 혁명을 농촌과 산간벽지에 전파하는 역할을 했으며 도시의 교육받은 청년들이 농촌의 가난한 문맹자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혁명적 쿠바 사회의 통합에 중요한 기여를 한 것이다. 문맹퇴치 운동에서 학생들을 농촌으로 보내는 이러한 경험은 이후 쿠바 교육체제에서 근간이 되었다.
쿠바 교육혁명의 핵심적 이념은 ‘모두를 위한 교육’(Education for all)이다(이는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www.edu4all.kr)의 슬로건이기도 하다). 혁명 이후 평등교육은 이념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제도화되었다. 유아원에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쿠바의 모든 학교는 원칙적으로 국가가 무상으로 제공한다. 이로써 혁명 이전의 학교가 교육기회의 형식적 평등에 기초한 것이었던 반면에 혁명 이후에는 교육기회의 실질적 평등이 실현되었다. 교육에 대한 이러한 실질적 평등은 쿠바 사회의 새로운 민주화의 표현이었다. 혁명세력은 새로운 민주화란 개인들의 정치적 권리라 아니라 경제적 평등이라고 보았다. 즉 사회적 자원에 대한 민중의 접근과 이러한 자원들의 보다 평등한 분배를 말한다. 시기의 변화에 따라 정치경제 정책이 변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은 모든 인민의 권리라는 혁명 초기의 교육정책의 기조로 유지되었으며, 소련 해체 이후 파멸적인 경제 위기가 왔을 때에도 포기되지 않았다. 특히 위기의 시기에 장애인이나 고아원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선적 배려는 혁명세력의 평등 이데올로기를 잘 반영하고 있다(소련 해체 후 위기가 왔을 때 교육예산이 대폭 줄어들었지만, 장애인 학교와 고아원 예산은 한 푼도 깍지 않았다고 한다). 평등교육과 이로 인한 교육확대는 쿠바 혁명의 가장 중요한 성과일 뿐 아니라 그것은 혁명 그 자체의 과정이었다. 평등교육과 교육의 확대를 통해 혁명세력은 민중들의 혁명 과정에 통합할 수 있었으며 경제적 사회적 구조에서 일어난 혁명적 변화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역공동체에 뿌리박은 학교

교육혁명은 단지 학교에 한정되지 않고 주민들의 삶 속에 뿌리내림으로써 쿠바혁명을 위기에서 구했다. 모든 초등학교는 지역공동체 속에 위치한다. 도시의 초등학교는 규모가 크지 않고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중소 도시의 학교는 대체로 교문과 운동장을 갖추고 있어 외관상으로도 학교임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지만, 아바나와 같은 대도시 도심의 학교는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어 현관에 내걸린 조그만 간판이 아니면 학교라는 것을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이다. 게다가 도심의 학교에는 운동장을 갖춘 경우가 드물다. 그래서 체육시간에 학생들은 주변의 공원 등의 공공시설을 이용한다. 혁명 이후 기능이 줄어든 군부대, 경찰서, 부르조아지의 연회장 등이 학교로 전환된 사례가 많다. 요컨대 학교 공간은 지역공동체 생활공간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도시의 경우는 물론이고 농촌이나 산간벽지의 경우에도 학교는 거주지에 위치한다. 통계를 보면 한 학교에 평균 학생 수가 100명 정도이지만 농촌 지역 학교의 평균 학생 수는 이보다 훨씬 적다. 10명 이하의 학생이 다니는 학교도 약 2000개가 있으며, 산간벽지에는 심지어 1인 1교사 학교도 있다. 이 경우에도 물론 학교당 지급되는 컴퓨터, 비디오 같은 기본 시설과 설비는 제공된다(한국에서 농촌 지역의 소규모 학교를 비용 문제로 폐교 합병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러한 정책은 민중을 혁명에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혁명 정권이 민중에 다가간다는 개념에 입각한 것이다. 농촌 학교는 농촌지역을 발전시키고 농촌지역의 주민들을 지역공동체에 결속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쿠바의 교사들은 지역공동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함으로써 학교와 지역공동체가 긴밀한 관계를 맺는 매개고리이다. 우선 대부분의 교사들은 학교가 위치한 지역공동체에 거주한다(한국의 농촌지역 교사들이 대부분 도시에 거주하면서 출퇴근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따라서 교사는 일과 중에는 선생님이지만, 방과 후에는 학교가 속한 지역 주민으로 활동한다. 교사는 지식인이기 때문에 지역공동체 생활에서 가정의와 함께 매우 중요한 인자이다. 농촌 지역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교사들은 혁명수호위원회(CDR)와 같은 대중조직, 학부모 위원회, 학부모 학교 등과 같은 기구를 통해 지역 주민들과 정기적으로 상호작용한다. 교사들은 대체로 약 80%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고 20%는 학생들의 집에서 보낸다고 한다.  
쿠바의 교육혁명은 쿠바 혁명의 성과물이면서 동시에 혁명 후 쿠바 사회가 유지하는 비결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모두를 위한 교육’(Education for All)을 목표로 한 혁명 정부의 교육혁명은 비단 교육 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바꾼다는 원대한 구상으로 진행되었으며 그것은 과거의 수동적인 인구를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인구로 바꾸었으며 특히 지역공동체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쿠바의 학교는 단순히 다음 세대를 가르치는 장이 아니라 지역공동체 생활에서 핵심적인 기구로 자리 잡고 있다(자세한 내용은 필자가 최근에 번역 출간한 <쿠바식으로 산다>를 참고할 수 있다).

쿠바 학교에 비추어 본 한국의 학교

세 가지 점이 확실히 대조적이다. 첫째로, 쿠바에서 교육이 사회적 지위 배분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이는 학부모들의 높은 교육열로 나타나며 학생들의 학습 경쟁이 매우 높아 학업성취도도 한국과 함께 세계적인 수준이다. 그러나 경쟁이 일어나는 맥락과 방식에서 쿠바는 한국과 극단적으로 대조적이다. 우선, 경쟁이 일어나는 환경이 매우 다르다. 한국의 학교는 초중등 교육을 국가에서 제공하고 있으나 경쟁이 최종적으로 대학입학시험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경쟁은 학교 바깥인 사교육 영역에서 일어난다. 그 때문에 경쟁에서 학생들의 불평등한 사회경제적 배경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이에 비해 쿠바는 유아교육부터 대학교육까지 무상으로 제공되고 상급학교로의 입학도 현재 다니는 학교에서의 학습 결과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경쟁이 학교 안에서 평등한 조건 속에서 이루어진다. 다음으로 경쟁의 방식이 매우 다르다. 한국에서의 경쟁은 거의 전적으로 학생들 개인의 성취에 귀속되는 데 비해, 쿠바 학교의 평가제도에서는 개선을 목표로 학교 간, 학급 간 평가가 중요하다. 이 때문에 경쟁이 가져오는 효과는 한국의 경우는 개인주의와 이기심을 강화하는 반면에 쿠바의 경우는 집단주의와 연대감을 강화한다.  
둘째로, 보편 교육, 평등 교육은 근대 사회의 교육이념에서 핵심적이다. 한국에서도 평등교육은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국민들의 보편적인 권리이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평등교육은 형식적이고 실질적으로는 수월성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사실상 평등교육에 반하는 교육정책이 압도적이다. 이에 비해 쿠바의 교육은 평등교육이 구호가 아니라 실제로 실현되고 있는 전형적인 사회라고 볼 수 있다. 교실에서의 학습경쟁이 있지만 교사들이 학습 부진아에 먼저 관심을 둘 수밖에 없는 평가제도를 갖추고 있다는 점, 농촌이나 도시 주변지역의 학교 시설에 우선적인 관심을 둔다는 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교육적 지원이 최우선적이라는 점 등이 ‘모두를 위한 교육’이라는 이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셋째로, 쿠바의 학교가 지역공동체에 뿌리박고 있다는 점은 한국의 학교와 가장 대조적인 측면이다. 한국의 학교는 거의 상급학교로의 진학을 위한 학습 공간으로 제한되어 있다.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이 만나지만 일과가 끝나면 교사는 먼 거리에 있는 집으로 가고 학생들을 학원으로 향한다. 교사에게 학교는 그저 직장일 뿐이다. 그러나 쿠바의 교사들은 학교가 있는 지역공동체에 거주하기 때문에 방과 후에도 학교생활이 연장되는 셈이다. 교사들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뿐 아니라 학부모들과 일상적으로 접촉하여 지역공동체의 여러 조직에서 지역 주민으로 활동한다. 지역공동체 생활에서 항상 학교가 같이 있는 셈이다. 또한 한국의 경우는 학생들이 방과 후에 예술, 문화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자 할 때 학교와 분명하게 구분되는 상품화된 시설을 이용해야 하지만 쿠바의 경우에는 그러한 활동을 모두 공적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 이러한 지역공동체의 여러 시설들은 학교 공간이 확장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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