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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과 문화] 우리는 누구를 연민한 적이 있었던가?
              - 비스콘티의 ‘레오파드’

은하철도(진보교육연구소 연구원)

  지난 6월 3일 지방선거가 이뤄졌다. ‘현 정권 심판론’에 맞불로 ‘전 정권 심판론’이라는 기상천외한 선거 전략이 나오고, 3월달 발생했던 천안함 침몰사건이 북풍과 연결되면서 작년에 작고한 전대통령의 추모바람을 잠재우기 위해 동원되면서 부부간도 아닌데 맞바람이 붙었다.  ‘반MB전선’이라는 쁘띠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의 전가의 보도가 진보진영의 제도 정치권 진입을 역시나 가로 막았고 결국 원칙이 실리와 협잡에 발목이 잡히고, 급기야 희생양을 넘어 마녀 사냥감이 되었다.
  이번 선거로 결국 진보 교육감이 전국적으로 진출되었지만 재작년 7월 서울의 교육감 선거로 ‘강남 교육감’이 나왔다면 ‘강남 시장’이 급기야 출현하였다. 하기사 ‘강남 교육감’ , ‘강남시장’으로 표현되는 계급 투표는 부르주아 정치 체제에서의 위장막의 최고봉이 선거라고 한다면 근대 이후의 유럽에서는 비록 믿고 싶지 않거나 믿을 능력이 없는 것과 상관없이 애둘러 ‘선거법 개정운동’ , ‘차티스트 운동’등의 전거를 들먹이지 않아도 이미 선거가 시작과 더불어 출현하였다.
  선거 결과를 놓고 투표자 수를 가지고 ‘현정권을 심판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하는 여당이나 ‘현정권의 오만과 독선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심판’ 이라고 주장하는 야당이나 아전인수격의 해석은 반복되어 틀어진 어느 고물 카세트의 흘러간 옛노래라고 치부해 버릴수 있지만 나름 ‘강남 교육감’에 이은 ‘강남 시장’이 진흙 속에 핀 연꽃 한송이라고 자평한다면, 아마도 혹자는 야유와 조소가 심하다고 힐난할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과잉 의미 부여일지....?  


이중의 질곡 그리고 불모의 땅
  세계사에서 각광 받는 그리고 주목되는 계급 투쟁의 전범을 보여주는 혁명이 ‘프랑스 대혁명’이다.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던 유럽의 중앙에 위치한 나름 거대한 영토와 많은 인구를 가진 프랑스 정세의 변화는 바다 건너 척박한 자연환경을 가졌던 그러나 산업혁명을 진행 시키던 영국이나 고대 로마 이래 프랑스인들의 잠재적 적이었던 독일이나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런 그들에게 낙후한 남쪽의 이태리와 스페인은 그들의 시각으로는 변방이었으리라....
그러나 스페인과 이태리의 계급투쟁과 갈등은 이중의 질곡이었다. 외세에 의한 지배와 계급의 착취가 지양되지 못했다.
스페인의 경우는 일찍이 대항해의 시대에 아메리카 대륙을 호령(?)하였으나 자본주의에 편승하지 못하고 결국 ‘무적함대’라는 이름과 반대로 첫 번째의 출항과 해전에서 영국에 대패함으로써 찌그러져 호시절을 추억하며 과거의 약탈물로 연명하던 늙은 왕국이었다. 넓은 영지를 가진 과거 봉건 귀족들이 여전히 지방의 호족으로 중앙 정치를 좌지우지했으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관심과 개입의 시기를 제외하고는 17세기 이래 태양왕 루이 14세가 뿌려놓은 피레네 산맥 저쪽의 프랑스계 부르봉 왕가의 전제 정치가 가뜩이나 침울하고 어두운 궁정의 홀을 스캔들로 채우며 하루하루 퇴보하고 있었다.
부르봉 왕가의 퇴폐와 나폴레옹의 개입의 시기를 온 몸으로 느끼며 궁정화가였던 고야의 시대를 앞서간 그의 암울한 그림은 당시의 스페인의 모순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자기 자식을 먹어치우는 사투르누스, 치열한 서로를 살육하는 전쟁터에 홀연히 나타나 양 측을 무화하는 거인(콜로누스),그리고 저항하는 민중을 향해 학살하는 해방자 나폴레옹 군은 화가 고야의 역사와 현실 인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시대의 암울을 보여준다.

  스페인이 유럽과 피레네 산맥으로 고립되어 있다면, 이탈리아는 알프스로 고립되어 있다.
서로마제국의 몰락 이후 이민족의 침입으로 지역과 도시로 나누어 쪼개져 군웅할거의 역사가 계속되던 이탈리아 반도의 북부는 유럽의 강대국들에 의해서 분할 통치되었으며, 중부는 교황에 의해 그리고 남부는 나폴리왕국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형국이었다. 마피아의 본향으로 기억하는 이탈리아 남부의 시칠리아 섬의 역사를 보면 복잡한 지정학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시칠리아 섬은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이민족의 식민지 상태였다. 고대 그리이스의 지배로 문화와 역사가 시작되면서 많은 신의 탄생의 장소가 되었다. 한니발이 이끄는 카르카고의 편을 들다가 결국 로마의 식민지로 전락되어 탈그리이스화를 겪고 급속한 로마화를 거치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이후 지중해 너머의 이슬람교도 그리고 노르만 왕조의 지배를 거쳐서 나폴리왕국의 식민지로 19세기를 맞았다.
  지배계층의 부단한 부침에도 불구하고 기층 피억압 계급의 상황은 유사이래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척박하고 황량한 산지와 겨울에 잠깐 밀농사를 통해 생계를 이어가면서 하루하루의 노동으로 자신과 가족의 연명하는 그들에게 있어서 지배 민족이 누구던지 지배 계급의 종교가 무엇이던지 관심이 있었을까?
그러나 착취계급은 달랐다. 바다 건너 나폴리왕국의 정세에 더 나아가 유럽의 지정학적 변화의 여부에 따라서 친프랑스파가 되거나 친스페인파 또는 친교황파가 되어야 했다.
그것이 그들의 생존의 조건이고 착취하는 기생 생활의 전제였다. 이런 상황에서 착취하는 계급이나 착취받는 이 두 계급에게 국가나 민족은 애초부터 관심거리가 아니었고 당장의 권력의 향방이 중요할 수 밖에 없었다.  


우아함 그 몰락의 전조
  영화의 배경은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의 19세기이다. 가리발디를 중심으로 자유주의자들과 자본가 계급이 주축이 된 통일 전쟁의 거센 물결이 시간이 정지한 듯한 시칠리아 섬에 몰려들던 시기 가문의 표장을 본따 ‘표범’(Leopard, Gattopardo)이라고 불리던 살리나 공작 돈 파브리치오(버트 랭카스터 분)의 거대하고 화려한 장원의 평온도 끝나간다. 거대한 장원에 둘러싸인 현재의 궁전 말고도 높은 고산 지역에 더위를 피하기 위한 여름 별궁이 있던 세습 귀족 살리나 백작의 궁전은 통일전쟁의 진행과정과 결과에 대한 우려로 공포 분위기가 엄습한다. 교회의 신부를 마치 비서인양 거느리고 외출을 하고 가정의 대소사에도 하인 부리듯 하는 권력자인 살리나 공작은 작위 세습을 자신에게 양보한 형의 아들이 있었다.
  바로 이 조카(알랭 들롱 분)는 작위를 동생에게 양보한 아버지로 인해 허울뿐인 귀족으로 통일 전쟁의 혼란기에 편승하여 무위도식하면서 숙부에 기생하는 생활을 청산하고 야망을 달성하고자 아름다운 궁전을 떠나 통일 전쟁의 전쟁터로 달려간다. 팔레르모 시가전에서 부상을 입고 전쟁의 영웅이 된 그는 이탈리아 북부 지역의 또 다른 프레스코화를 좋아하는 귀족 출신의 장교와 같이 살리나 공작의 궁전으로 돌아온다. 이미 혁명이나 통일 전쟁은 저 너머의 명분일 뿐이고 수백년 지속된 과거의 구체제에 대한 경탄이 궁전 천장의 프레스코화를 보는 순간 장교의 입과 표정에서 흘러나오고 조카 역시 전쟁을 통한 야망 달성을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일거에 살리나 공작을 포함한 가솔들이 가졌던 우려와 공포는 사라진다.
  여름이 오고 대규모의 행장을 차리고 몇 대의 마차에 살리나 공작의 가족은 나눠 타고 여름영지로 출발한다. 혁명과 통일의 전운은 이미 시칠리아섬 전체로 확산이 되고 잔뜩 먼지를 덮어쓰고 영지에 도착한 공작과 가족 일행은 교회에 들러 신부의 축복을 받고 여름의 생활을 시작한다. 전쟁과 혁명의 결과 새로운 입헌 군주제를 위한 국민투표가 실시가 되고 시대의 흐름에 떠밀려 살리나 공작도 한 명의 유권자로 과거 자신의 농노들과 더불어 주권을 행사하고 수순에 의해 왕국이 붕괴되고 입헌군주제가 시작이 되면서 의원을 선출하는 선거가 시작된다.
  세상은 급격히 또는 서서히 바뀌고 있다. 그러나 살리나 공작은 여전히 표범 공작으로서의 위엄을 버리지 않고 하인의 시중을 받으며 모든 것을 처리하고 여름 영지가 위치한 읍장에게도 호령을 계속한다. 그러나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은 변화되었다. 중앙정부로부터의 사절이 상원의원으로의 출마를 권유하기 위해 영지로 찾아오지만 애둘러 우아하게 거절하고 오히려 자신의 수하였던 읍장을 그 자리에 추천하고 혐오하던 자본가 계급인 읍장의 딸과 자신의 조카와의 결혼을 추진한다.
  여름 한철이 끝나고 여름 영지에서 시내의 궁전으로 돌아온 후 귀족들의 화려한 연회가 열리고 살리나 공작은 가족들을 대동하고 연회에 참석한다. 과장되고 화려한 여성들의 드레스와 거추장스러울 정도의 계급장과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남성들이 커다란 홀을 가득 채운다. 통일과 혁명 전쟁의 주역들인 혁명군의 장군도 출석을 하고 동문서답의 서로 합쳐지지 않는 듯한 대화가 오간다. 화려하고 우아한 춤판이 열리고 진수성찬의 만찬이 차려지고 결혼을 앞둔 조카와 조카며느리에게 축하를 하면서 희망에 들떠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그들을 촉촉한 눈망울을 보면서도 과거 연회의 총아였던 살리나 공작은 어색함을 넘어 불편함을 느낀다.
  한밤을 지나 새벽이 밝아올 무렵 이미 연회는 파장으로 가고 있다. 커다란 홀에는 철부지 커플만이 춤을 추고 있으며 연로한 귀족들은 저마다 자리를 잡고 대화할 힘조차 떨어져 졸고 앉아 있다. 살리나 공작은 가족들을 마차에 태우고 궁전으로 보내고 자신은 혼자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이른 새벽의 시가지를 쓸쓸히 걸으며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도 그리고 저주도 하지 않고 뒷모습을 보이며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영화는 끝을 맺는다.


귀족 그 화려함의 이면  이탈리아 거장중 하나인 루키오 비스콘티 감독은 40년대부터 ‘흔들리는 대지’(1948)를 시작으로  ‘로코와 그의 형제들’(1960), 그리고 ‘레오파드’(1963)로 이른바 시칠리아 삼부작을 마감한다. 이탈리아 북부의 밀라노에서 태어난 감독은 최남단 시칠리아와 관련된 영화를 찍었다. 이른바 ‘발달한 북부와 저개발된 남부’라는 그람시의 초기 연구 대상을 답습이라도 하듯이 감독은 시칠리아에 대한 영화 창작으로 사회의 모순을 보여주고자 했다. 르네상스 시기 직전 밀라노를 지배한던 비스콘티 가문의 후손으로 귀족출신의 감독은 역시나 초기에는 공산주의자였다가 후기에 와서는 탐미주의 영화로 전향(?)을 하였다.
초기의 흔들리는 대지를 통해 시칠리아 섬의 어부의 빈곤한 생활을 고발했고, 로코와 그의 형제들을 통해서는 시칠리아를 떠나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자 하는 농민의 도시로의 정착을 필림에 담으면서 사회성 많은 영화를 찍었다. 그러나 정작 삼부작의 마지막 레오파드를 통해서 전향의 혐의를 받고 탐미주의자적 후기로 접어든다.
  원래 이 영화는 시칠리아 출신의 람페두사 공작이었던 토마시 디 람페두사의 동명의 원작소설을 영화화 한 작품이다. 1860년대 혁명과 통일의 와중에 시칠리아의 전통적 귀족의 몰락과 자본가 계급의 부상 그리고 귀족들의 발빠른 변화를 사회의 변화에 초연한 주인공 살리나 공작 돈 파브리치오와 새로운 변화에 동화하기 위해서 자신의 계급을 배반하고 혁명전쟁에 참여하고 결국 출세를 위해 자본가 계급의 딸과 결혼하는 조카를 대비해서 보여주면서 담담하면서도 냉소적으로 묘사한 역사소설이다. 작품에서 저자는 경박하지 않으면서도 초연하게 몰락하는 살리나 공작의 손을 들어주면서 사라지면서 몰락하는 귀족 계급의 장송곡에 가까운 송가를 부른다. 비스콘티 감독 역시 원작자의 의도에 충실하게 필림에 재현하였다.


우리는 누구를 연민한 적이 있었던가?
  우리에게는 박경리 여사의 ‘토지’라는 역사 소설이 있다.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양반 가문의 부침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앞의 레오파드와 차이점이 있다면 토지의 주인공은 변화에 대해 저항하면서도 나름 합리적인 변신을 거듭하는 반면 레오파드의 주인공인 살리나 공작은 변화를 거부하면서 서서히 몰락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차이는 아마도 역사적 경험의 차이에서 찾을수 있을 것이다.
  귀족 가문 출신의 원작자와 람페두사와 영화 감독 비스콘티는 ‘레오파드’라는 작품을 통해 ‘과거로의 회귀’ 내지는 ‘박제된 과거의 집착’ 등의 비판을 같이 받았다. 귀족으로 태어나 공작의 작위를 가지고 죽었던 람페두사는 차치하더라도 단지 과거의 귀족 가문 출신이었던 비스콘티 감독의 경우 비판의 내용이 맞아떨어지는 듯 보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미 혁명이 이뤄지고 과거의 구체제의 주역인 귀족들이 사라지고 새 시대의 총아인 부르주아 계급의 개선가가 울려 퍼지는 상황에서 승자인 부르주아에게 있어서 과거의 주인이었으나 현재의 패자인 귀족의 시체에 대한 더 이상의 훼손은 불필요하지 않을까?
이제는 악착같은 깍정이 이미지보다는 너그러운 승자의 이미지가 필요하지는 않았을까?
  철저하게 부르주아지 혁명에 의해 구체제의 유물들이 무덤으로 들어가거나 박제되어 박물관에 들어간 상황에서 이미 자신이 꿈꾸던 세상을 손에 넣고 발빠르게 자신들의 편으로 돌아서고 있는 과거의 유물인 귀족들을 짓밟는 것은 부르주아들에게 있어서는 자신에게 손해나는 짓이리라. 뼛속까지 귀족이었던 람페두사는 초연하고 의연한 살리나 공작을 통해서  자신의 계급에게 송가를 부르며 경박하고 무시했던 대상이었던 자본가 계급에게는 눈도 주지 않고 오직 과거를 추억하지만 비스콘티 감독의 경우에는 부르주아들의 입장에서 승자의 관점에서 이미 패자가 되어 부활할 가능성이 전무한 살리나 공작으로 대표되는 과거의 귀족계급에 대한 연민을 보내고 있지는 않을까? 패자에게 후한 장례를 치러주어라!!
  우리는 이러한 값싼, 위선적 연민이라도 보내 본 경험이 있는가? 강남의 국민만이 아닌 많은 수의 유권자들이 착취계급에 표를 보태고 동경을 하는 선거의 결과에 그래서 분노를 넘어서는 우울을 느낀다. 아마도 박경리 여사를 능가하는 다른 작가가 ‘토지’를 대신해서 ‘자본’을 쓰면서 아마도 초연하고도 의연한 부르주아지의 몰락을 연민을 담아 담담하게 묘사할 바로 그때, 그들이 우리를 동경하면서 그들 자신들로부터 이탈을 하고 우리에게 동화를 시작하려할 때, 그리고 그들이 내면의 공포와 외적인 거대함에 압도되어 우아한 척 하면서 체념하고 몰락할 때 비로서 우리도 허리띠를 풀고 그들을 연민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가 될 때까지 연민은 사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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