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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과 문화] 맘마미아, 이 한심한 음악을 어쩌면 좋아

이성우/ 진보교육연구소 회원

  2008년 추석 때인가 영화 [맘마미아]를 봤다. 내가 찾은 대구의 그 극장은 공교롭게도 지금부터 약 30년전 내가 중3때(1979년) ABBA를 주제로 한 영화 - 정확한 제목은 [Abba, the Movie]로 일종의 다큐 영화이다 - 를 봤던 바로 그곳이었다. 그 나이에 영화관을 혼자 찾기가 드문 일이었는데 나는 그 당시 이 영화를 혼자서 두 차례나 연속으로 보았다. 두 번씩 보고도 질리지 않아 극장 문을 나서기가 무척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이렇듯 한창 감수성이 예민했을 그 무렵 나는 ABBA의 열혈 팬이었다. 강력한 록 사운드 - 이들의 음악은 장르상 소프트 록에 속한다. 그리고 당시 한국에는 레드 제플린이나 딥 퍼플 따위의 정통 록 음악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 에 세련된 멜로디의 이들 음악은 말 그대로 "귀에 친숙하게 다가오는" 이지리스닝(easy listening) 음악의 진수를 보여준다. 타이틀 곡 [Mama Mia]를 비롯 [Waterloo], [Honey, Honey], [I Do I Do I Do], [S.O.S.], [Fernando], [Dancing Queen] 등의 달콤한 이들 음악은 그 시대 청춘들의 감성을 사로잡고도 남음이 있었다. 한마디로, 우리 486들은 "아바의 키드"들이었다!


최민수와 독고영재 주연의 훌륭한 영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어린 시절에 무비판적으로 입력된 감성 코드가 평생을 지배하게 되는 이치를 멋지게 그려내고 있다. 영화를 못 보신 분들을 위해 이 글과 관련한 중요한 맥락을 잠깐 짚어보면, 소년시절부터 영화에 대해 남다른 열정과 해박한 지식까지 갖춘 영화광 병석(최민수 분)이 평생에 걸쳐 완성한 시나리오가 창작품이 아닌 모방 작품으로 밝혀지는 장면이다. 고교시절 병석의 영향으로 영화에 눈을 떠 나중에 충무로의 감독이 된 명길(독고영재)이 병석을 몰아 부치면서 패러디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추궁하는데, 문제는 병석 자신도 그게 패러디인 줄 몰랐다는 것이다. 병석은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나도 헐리우드 키드한테 속았어!” 어린 시절 병석의 삶은 곧 헐리우드 영화가 전부였다. 프로이드 식으로 말하면 무의식의 심연 깊숙한 곳에 헐리우드 영화가 강력하게 자리하고 있어서, 의식적으로 창작정신을 발휘하려고 해도 그 굴레를 못 벗어나게 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이 글을 쓰면서 영화 [맘맘미아]에 대해 내가 갖는 정서를 통해 이 "문화적 식민지"의 위력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된다. 30년이 지난 지금의 내 “이성”으로 ABBA의 음악을 분석해보건대, 이들 음악들은 내용적으로 저질이라고 감히 말하겠다. 그러나 지금도 나는 여전히 ABBA 음악이 좋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그것이 내 어린 시절의 소중한 추억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한다. 요컨대, 내게 ABBA음악은 이성적으로는 한심한 음악이지만 감성적으로는 고향친구와도 같은 푸근한 음악인 것이다. 뭐든 어릴 적 것이 평생을 간다. 칠십 노인에게 맥도널드 햄버그를 한 끼 식사로 내미는 것은 그야말로 ‘어른 욕보이기’ 외에 아무 것도 아니겠으나 현재의 어린이들이 칠십이 되었을 때는 그에 대해 아무런 거부감을 갖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햄버그는 매우 ‘친숙한 맛(taste)’일 것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이치로 양담배회사들이 한국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으로 청소년을 타겟으로 삼는다고 한다. 만약 그들은 한국정부가 허용만 해준다면 청소년들에게 양담배를 공짜로 팔 의향도 있을 것이다. 음식 맛이나 담배 맛처럼 음악의 맛(taste, 취향)도 길들여지는 것이다. 어릴 적에 길들여진 취향이 평생을 가기 쉽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조기의 음악교육이 그만큼 중요하다 할 것이다.


왜 ABBA의 음악이 한심한가? 영화 [맘마미아]를 보신 분들은 배우들이 아바의 노래를 부를 때 스크린 아래에 흐르는 한글 자막을 읽으면서 “음악은 좋은데 그 가사들이 저렇게 유치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혹 어떤 분들은 영화 속의 노랫말은 영화 속의 스토리에 맞게끔 각색된 것으로 ABBA의 원 노랫말은 그렇지 않으리라고 애써 자위하신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 속에 나오는 아바의 음악들은 영화 스토리 전개에 어울리게끔 곡에 따라 가사를 약간씩 고쳐질 뿐 원곡과 다르지 않다. [맘마 미아]의 예를 들면, 첫 줄 "I've been cheated by you"라는 현재완료형의 문장이 "I was cheated by you"로 바뀌는 정도이다. 영화 스토리상 남여주인공 메릴 스트립과 피어스 브로스넌의 인연은 하룻밤 사랑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영화의 자막에 나오는 그 한심한 노랫말들, 그것이 “ABBA의 음악세계”이다. ABBA의 음악은 철저히 틴에이지들을 겨냥한 말초적 감각에만 호소하는 음악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심지어 청소년들을 ‘섹스의 노예’로 상정하기도 한다. [Fernando]나 [I Have a Dream], [Thank You for the Music]을 제외한 많은 이들의 히트곡들이 천박한 사랑타령으로 일관하는데, 대히트곡 [댄싱 퀸]이 그러하듯 디스코텍에서 청소년들이 댄스를 즐기는 시츄에이션에 여자 아이의 섹스 어필을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곡들이 많다. 그 대표적인 예로 [Does Your Mother Know That You're Out]의 노랫말을 살펴보자. 제목부터 노골적이다 [엄마가 너 외출한 걸 알고 계시니?]


You're so hot. Teasing me, so you're blue

but I can't take a chance on a chick like you.

너는 달아올라 있구나. 내게 추파를 던지며, 외롭다고 말하는 듯...

하지만 내 어찌 너 같은 병아리에게 작업을 걸 수 있겠니


There's that look in your eyes I can read in your face

that your feelings are driving you wild Ah

But girl, you're a child

네 눈빛을 보면 읽을 수 있어, 지금 네 기분이 도발적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얘야, 너는 어린애잖아
!!!


계속해서, 영화의 동명 타이틀곡이자 그룹 ABBA를 표상하는 노래 [맘마 미아]의 가사를 뜯어보기로 하자.


I've been cheated by you since I don't know when

So I made up my mind, it must come to an end

Look at me now, will I ever learn?

I don't know how but I suddenly lose control

There's a fire within my soul

Just one look and I can hear a bell ring

One more look and I forget everything, o-o-o-oh


언제부터인가는 몰라도 당신이 날 속이는 듯 했어 (cheat는 ‘바람피우다’는 뜻)

그래서 결심했지, 끝내야겠다고

자 나를 보세요, 내가 (당신 마음을) 알 수 있을까요

어찌할지 모르겠어요. 갑자기 내 마음이 무너져요

내 마음 속에서 불길이 타올라요

그저 한번만 (당신 얼굴을) 쳐다봐도 내 마음의 벨이 울리네요

한 번 더 보면, 모든 것을 잊게 되요. 아~~~


Mamma mia, here I go again

My my, how can I resist you?

Mamma mia, does it show again?

My my, just how much I've missed you

Yes, I've been brokenhearted

Blue since the day we parted

Why, why did I ever let you go?

Mamma mia, now I really know,

My my, I could never let you go.


엄마야 어떡하지, 자 내가 다시 당신에게 갑니다

어머머머, 어찌 내가 당신을 거부하겠어요

엄마야 어쩌면 좋아, 다시 보여 줄까요

어머머머, 내가 얼마나 당신을 그리워하는지

예, 나는 마음의 상처를 받았죠

우리가 헤어진 날부터 우울했죠

어떡하면 좋아, 이제 정말 알 것 같아

아 ~ 내가 당신 없인 못 산다는 것을


어떤가?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Does Your Mother...]보다 이 곡이 더 한심하다고 생각한다. 늘 자신을 기만하고 농락하는 줄 뻔히 알면서도 그 남자 앞에만 서면 어찌할 바를 모른다(Mama Mia)는 한심한 사랑타령은 이 노래의 주고객(?)이 10대 청소년인 점을 감안할 때 해악하다 못해 가히 쓰레기라 일컫고 싶다. 페미니즘이란 차원에서 볼 때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교육현장, 그것도 초등학교 영어노래부르기 콘테스트에서 이 노래가 가장 많이 불려지는 레퍼토리라고 한다. 곡 선정을 선생님들이 하셨을 텐데, 아마도 그 매혹적인 리듬과 멜로디에만 현혹되어 그 뜻을 비판적으로 음미하는 것을 잊으신 듯하다.

물론, 아바의 고국 스웨덴은 ‘성의 천국’이라 불리는 만큼 그 동네에선 나의 이 심각한 비평에 대해 아랑곳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외람되지만, 글쓴이는 청소년의 성욕에 대해 누구보다 관대한 입장이다. 이를테면, 청소년기의 성해방을 주장한 파이어스톤(S. Firestone, [Dialectics of Sex])이나 미드(Margaret Mead, [Coming of Age in Samoa])의 견해에 대해 긍정하는 편이다. 그러나 ABBA의 음악은 청소년의 성적 자유와 별 관계도 없다. 이 글을 통해 내가 주로 문제시 여겼던 점은, 우리 한국인들이 그들의 음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만약 우리들이 청소년들도 성적으로 즐겨야 하지 않냐고 그리고 ABBA의 음악은 청소년들의 성욕을 대변하는 음악들인 것으로 이해하고 듣는다면 이렇듯 심각하게 비평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한국인들은 대부분의 팝송을 들을 때와 마찬가지로 ABBA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에 별 관심이 없이 그저 그들의 멜로디와 리듬만을 감각적으로 즐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문제라는 것을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맘마미아]에 대한 평으로 글을 맺겠다. 이 영화에 대한 내 개인적인 평점을 적자면, 5점 만점에 1.5점 정도밖에 주고 싶지 않은 졸작이라 하겠다. 이 영화를 보고 좋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아바의 음악 자체에 대한 호감도 탓일 것이다. 냉철하게 다시 판단해보라, 과연 그게 잘 만든 영화인지. 스토리가 조잡한 것은 둘째 치고, 캐스팅 - 특히, 메릴 스트립 - 도 전혀 어울리지 않아 뮤지컬 영화가 지녀야 할 핵심이라 할 '율동'이나 '가창력'이 빈곤하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완성도는 수준 이하이다.


Mama mia!
이태리어로 ‘Mamma mia(맘마 미아)’는 ‘My mother'이란 뜻이다. 우리말에 ‘어머나’라는 말이 이와 비슷하다. 동서를 막론하고 누구나 급할 때는 ‘어머니’를 찾는 모양이다. 즉, ‘맘마 미아’란 말은 다급한 상황에서 놀라움을 나타내는 감탄문인데, ‘어머나, 어쩌면 좋아’라는 뜻이다.

맘마미아, 내용상 너무나 한심한 이 음악을 거부하기 힘들다(How can I resist you).

이걸 어쩌면 좋아......?

p.s.) ABBA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나의 이 글에 약간의 충격과 함께 적잖은 반감을 느꼈을 것이다. 솔직히 나도 여전히 ABBA 음악이 좋다. 단, 10분 이상 들으면 좀 지겨워진다. 아무튼, 다음에는 ABBA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담은 영화감상문을 쓸 것이다. 제목은 [뮤리엘의 웨딩]인데, ABBA 음악과 페미니즘, 이 둘 중 한 가지라도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이 영화를 강추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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