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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학교자율화 비판-인사관리원칙 개악을 중심으로

이두표 / 개웅중


# 자율화와 책무성
자율화에 꼭 따라 오는 말이 있습니다. 책무성이라는 말입니다.
학교 자율화 조치! 정말 간단합니다.
자율적으로(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학교 성적 올려라.
못 올리면 책임(그 실력으로 교장, 교감 될 수 있겠니?)을 묻겠다.
대신 여건(국영수사과 수업 시수 늘릴 수 있게 해줄께. 말 잘 듣는 교사들만 모아서 한 번 해봐.)을 마련해 주마.

# 또 하나의 학교, 방과후 학교
올 해 학교를 옮겼습니다. 옮기고 보니 전 학교에는 없던 부서가 하나 눈에 띄었습니다. 방과후교육부! 전 학교에는 특별활동부의 업무 중 하나였던, 방과후 교육이 하나의 부서로 독립되어 있더군요.

그리고는 이런 저런 요구들...
공부방(저소득층 1학년 학생 20명 )학생을 추천해 달라. 학교에 왠 공부방? 공부방 담당 교사는 기간제 선생님이네? 거의 매일 8시 퇴근? 힘들어서 어쩌나?
방과후학교에 많은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해 달라. 흠~ 특기적성도 있지만 국영수사과 위주네?
방과후학교 강사를 해 달라. 정규 수업 열심히 해야지! 주당 수업 시수 줄여달라고 했었던 내가 그럴 순 없지.

그러다가 3.31일 전국 일제고사(교과학습 진단평가) 결과가 나온 5월초였습니다. 이번에 연구부에서 나서더군요. “우리학교에 교과학습 미도달 학생이 유난히 많다. 국영수사과 모두 부진아 지도를 하자.” 원래 국영수는 하지 않았나? 왜 사회, 과학까지? 억지로 남겨서 시킨다고 성적이 오르나?

그리고 기함했던 6월말 1학기 기말고사 내신 대비반 모집(국영수사과 시험대비 핵심정리, 본교교사 및 유명강사) 가정통신문(몇몇 교사들의 항의로 결국은 폐기),  7월 여름방학 직전 학력향상중점학교 지정(내년 상반기까지 1억줄테니 성적 올려라! 교육청에서 일제고사 성적순으로 지정한 겁니다. 무조건 해야 합니다.), 9월말 년말까지 매일 오후 8시까지 야간자율학습 감독자 모집(말도 많고 희망자도 적어서 인지 유야무야) 등등등
물론 모든 것이 자원봉사는 아닙니다. 돈을 받지요. 나름 수입이 쏠쏠하다고도 하네요.

돈돈돈!!! 성적 성적 성적!!!

# 교과학습미도달 학생을 박멸하라
그러니 성적이 나쁜 아이들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일제고사 성적이 나쁜 아이들 대부분이 중간고사, 기말고사 성적도 나쁩니다. 그래서 선발된 성적 안 좋은 아이들(저희 반의 경우 6명)에게는 끊임없이 “부진아 수업 들어라, 방과후 수업 들어라, 학력향상 중점학교 프로그램 들어라, 일제고사 기출 문제집 줄께”라는 강요와 노출이 반복되었습니다. 그 아이들은 인권을 존중 받아야 할 학생이 아닌 마치 박멸되어야 할 존재들처럼 보였습니다.



문제 제기 하면 관리자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도 문제 있는 것 다 안다. 이건 교육이 아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위에서 무조건 시키는 것을... 나도 힘없다. 학교 성적 올려서 이 모든 어려움에서 벗어나자.”

# 개기는 선생들 있어서 힘들지? 힘 실어 줄께!
11월초 "학력향상중점학교의 자율학교 지정 운영 신청 안내"라는 공문이 내려왔습니다.
읽어보니 눈에 띠는 게 다음과 같았습니다.

1. 교육과정 운영 -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 수업시수를 20% 범위 내에서 증감 운영 허용
-> 국영수사과 늘릴 수 있게 해줄께.
2. 교사배치 - 초빙교사 정원의 50%까지 임용
-> 말 잘 듣는 교사만 모을 수 있게 해줄께.
3. 자율학교 지정 절차
-> 교사들은 모르지만, 학부모에게 의견 물어봐. 찬성이 훨씬 많을껄?
4. 자율학교는 담임장학, 종합장학시 지도, 점검 대상이 되며 학교평가에 반영될 수 있음
-> 대신 책임은 져야지.

긴장했는데 이상하게도 교사 의견도 학부모 의견도 묻지 않고 지나가더군요. 교육청에 독려하지 않았던 거지요. 왜 그러지? 의문은 이렇게 풀리더군요.

좀 있다가 “2010학년도 학교 교육과정 자율화 추진”이라는 공문이 내려왔습니다.
핵심 내용이 “국민공통기본 교과별로 연간 수업시수의 20% 범위 내에서 증감 운영 허용”인데, 내년부터는 올 해와 똑같이 교육과정을 운영하면 안 된답니다. 자율적으로 하되 꼭 바꿔! 그래서 문서상으로는 심화와 창재를 바꾸되 실제로는 똑같이 운영하기로 했다는 학교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오고, 학부모 의견 조사했더니 사회 교과 늘리라고 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학교도 있다고 하네요. 국영수사과 늘리는 문제는 장기적으로 이렇게 해결 하겠다는 거죠.

그리고 핵폭탄처럼 “2010학년도 중등학교 교원 및 교육전문직 인사관리원칙 개정(안) 행정 예고” 공문이 내려왔습니다. 핵심 독소 조항이 다음과 같았습니다.

1. 모든 학교를 대상으로 교사 정원의 20% 이내 초빙 (교사 초빙 확대)
2. 현임교 근무 3년 이상인 교사는 학교장이 전보 내신한 경우 전보 가능(3년이면 보낼 수 있다)
3. 당해 학교에서 재직하는 동안 3회 이상 주의 또는 경고 처분을 받은 교원 특별 전보(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지요?)
4. 전입자수의 20% 이내에서 전교과 교사 전입요청 (전입요청 확대)
5. 모든 학교 정기전보 대상자의 30% 이내 전보 유예 (전보유예확대)
6. 원거리 내신, 신체허약자 비정기 전보 폐지

저희 학교는 물론 많은 학교에서 많은 선생님들이 이 개정안에 대하여 반대하는 서명을 벌였습니다. 서명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예고안 그대로 개악됨.
2. 달라진 하나 : 행정예고에서는 "당해학교 정기전보 대상자는 초빙교사 불가능"이었으나, 공고된 내용에서는 "1회에 한하여 가능". (오 마이 갓! 동일교 10년 근무 가능)

굳이 자율학교 안 해도 효과는 똑 같네요.

# 교장공모제 까지
그리고 11월말 교장공모제 6차 시범운영 학교를 선정한다는 공문이 내려왔습니다. 서울시 전체에서 중학교는 4개교를 뽑는다는데, 저희 지역교육청 중학교 중 정년퇴임 교장이 있는 학교 4개교 중에서 저희 학교가 제일 열악하다고, 장학사가 교감한테 전화하고 교장한테 전화하고 지역교육청 중등교육과장까지 왔다갔다나 뭐라나... 무조건 하라는 얘기죠.

민주적 절차를 밟으라고 요구했습니다. 민주적 절차를 심하게 밟더군요. 긴급 부장회의 3번후, 교직원회의하고 찬반토론하고 찬반투표까지 일사천리. 교직원회의 안 오신 분들을 위해서 그 다음날 까지 투표하고 결근하신 분들에게는 전화까지 걸어서 의사를 물어서 투표 참여율 100%? 찬성 논리 중 황당했던 건 “어차피 할 거 모양 좋게 하자. 우리가 원하는 교장 뽑아보자.”(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죠?) 그 다음날 학부모 의견 조사 가정통신문이 배포되었습니다. 배포되고 일사천리로 결과 발표. 요건 100% 참여 아님. 결과는?

교직원 찬성:반대:기권=27명(40%):38명(56%):3명(4%)
학부모 찬성:반대=505명(76.4%):156명(23.6%)

이제 마지막으로 학교운영위 심의라는 절차가 남아있습니다. 저희 학교 분회장이자 운영위원이신 선생님이 꼭 막겠다고는 하시는데...

그리고 어제 저희 학교가 교장공모제 6차 시범운영 예비학교로 지정되었습니다. 서울시 전체에서 4개를 뽑는다는데, 예비 지정학교가 딱 4개네요. 오 마이 갓!

만약에 제가 우리 학교에 공모제 교장으로 온다면 학교를 민주적으로 운영할 자신 있습니다. 초빙교원 50%(4년 임기 초빙교장의 권한입니다.)라는 막강한 무기, 학부모의 지지, 선발된 교장으로서의 정당성까지 가지고 있는데 투표에 붙이면 무엇이 통과되지 않겠습니까? 탄탄대로이지요. 교과학습미도달 학생 박멸을 위해!!!

# 이젠 이명박 욕하기도 지겹다
요즘은 우리 주위에 이명박 욕하지 않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이명박만 물러나면 뭐가 될 것 같기도 합니다.(공정택은 물러났는데 살림살이 좀 나아졌나요?) 하지만 이명박이라는 백을 믿고 여기저기서 끝없이 발호하는 저들의 공세에 학교는 바쁩니다. 학교 일도 바쁘고, 밀려오는 것 문제제기 하느라 바쁘고, 남는 건 뭐지?

올 초인가 유행했던 장기하의 노래말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칠까 합니다.
어쨋든 이러거나 저러거나 바쁘고 힘들고 열받아도 이렇게 살고 싶네요.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아 아-
별일 없이 산다 아 아-
사는 게 재밌다 아 아-
나는 사는 게 재밌다
매일매일 하루하루 아주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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