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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입시폐지․대학평준화’,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나영 /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팀장,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 활동가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꿈의 등장과 현실의 한계

11월 14일 ‘3회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공동행동’을 마치고 나서 2주가 지났을 때 즈음, 꾸준히 활동해 오시던 지역공실단의 한 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지역에서 내년 계획을 논의하면서 입시폐지 운동을 더 활성화 해보고 싶은데 국본의 조직 현황이나 향후 계획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죄송하게도 국본의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뭐라 드릴 말씀이 없었다. 솔직히 향후 계획은커녕 조직의 지속적인 운영조차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 분과의 통화는 한숨과 걱정, ‘그래도 힘을 내보자’는 아쉬운 격려로 채워지고 말았다.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가 출범한 지 어느 덧 3년이 되었다. 입시폐지, 대학평준화라는 엄청난 과제를 두고 몇 차례의 토론 끝에 채 순식간에 조직이 결성되고 천여 명의 회원이 모였다. 처음엔 ‘중장기적 교육운동의 전환 과제’이자 ‘방향’으로 제안되었던 것이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조직 결성에 대한 조급함이 앞서면서 추진속도가 빨라진 것이다. 그래도 조직 출범까지의 준비기간이 짧았던 것에 비해 파급효과는 상당했다. 그 해 8월 30일부터 9월 20일까지 ‘전국 자전거 대행진’을 진행한 후 9월 20일 준비위원회 출범식을 거쳐 11월 24일 첫 번째 ‘전국 공동행동’을 진행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은 처음으로 ‘입시폐지’와 ‘대학평준화’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사회적 파장을 지니며 의제화 되었던 의미 있는 기간이었다. 진보진영의 후보들 뿐 아니라 당시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마저도 ‘입시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서울을 포함하여 12개 지역에서 ‘공동행동’이 진행되었다. 지역 곳곳에서 공동실천단이 구성되고 일부 지역에서는 청소년 동아리까지 결성되는 모습들은 한국사회에서 ‘입시폐지’라는 화두가 가지는 의미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새삼 확인시켜 주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2007년의 화려한 데뷔를 마치고 대선의 폭풍이 한바탕 지나간 후, 이명박 정권에서 ‘입시폐지’, ‘대학평준화’는 ‘나중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2007년 11월 24일까지 놀라운 열정으로 함께했던 이들은 빠르게 지쳐갔다. 촛불집회의 끝자락에서는 교육감 선거가, 그리고 연이은 일제고사의 폭풍이 2008년을 장악했고 매서운 추위 속에서 휑하니 비어버린 보신각을 가까스로 견뎌내며 두 번째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문화제’를 끝내고 났을 때 그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2009년이 시작될 즈음에는 아주 소수의 인원만이 간신히 국본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처음부터 다시하자

2009년 국본은 ‘전국 공실단 회의’는커녕 제대로 된 사무처 회의조차 몇 번 진행하지 못한 채, ‘범국민교육연대’의 특별기구로 통합운영을 하며 겨우 운영을 유지해 왔다. 3천여 명의 회원이 있지만 사실 CMS와 같은 정기후원 구조가 없는 이상, 별다른 소속감이 없을 수밖에 없는 회원조직을 지니고 있으며 상근 활동가도 없고 사무처 조직구조 역시 구속력이 없는 현실을 생각할 때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2009년 11월 14일, 처음으로 따뜻한 햇살이 비추는 한낮에 시작한 ‘3회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문화제’는 150여 명이 함께한 가운데 소소하면서도 즐겁게 마무리 되었다. 광주와 마산, 창원에서도 선전전과 자전거행진을 통해 ‘입시폐지’, ‘대학평준화’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계기들을 마련했다. 하지만 ‘미래형 교육과정 저지’, ‘교원평가 폐기’, ‘입시폐지, 무상교육 실현’이라는 3회 공동행동의 슬로건은 이후 또 다른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구호에 머무르고 말았다. 한편, 문화제가 시작되기 전에는 광화문에서 ‘일단, 멈춤’ 플래시몹을 준비하던 참가자들을 시작도 하기 전에 경찰이 둘러싸 세 명을 연행해 가는 말도 안 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명은 다행히 청소년이라 바로 풀려났지만 두 명은 결국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와야 했고, 지금까지도 재차 이해할 수 없는 조사를 받고 있다. 최근 경찰은 먼저 풀려났던 청소년의 학교에까지 전화를 걸어 참고인 조사를 받을 것을 강요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아마도 ‘배후가 전교조다’라는 확실한 먹잇감일 것이다.
가혹하지만, 냉정하게 현실을 평가한다면 국본은 현재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끼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본인조차도 좀 더 적극적으로 국본의 활동을 추진해오지 못했다는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관은 금물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한숨이 아니라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한 적극적인 모색이다. 이대로는 국본이 유지될 수 없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교육운동 진영 내부에서부터 논의를 다시 일으키고, 일상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전략들을 구상하는 것, 지역의 모임들부터 결속력 있는 회원 구조를 만들어 나가고 개별단체 활동가들의 이중 멤버쉽에 의존하지 않는 상설 조직체로서의 구조를 다시 차근차근 만들어가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물론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이와 같은 활동들을 당장 시작하기는 어렵겠지만 조급할 필요는 없다. 함께할 사람들을 다시 모으는 일부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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