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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과문화]  [음악으로 생각하기, 생각으로 음악 듣기]

Terry Jacks의 "Seasons in the Sun"에서 청소년 문제를 생각하다


이성우 / 약목초

이 곡은 1968년, 로드 맥퀜 Rod McKuen이 먼저 발표하였지만, 국내에서는 테리 잭스 Terry Jacks의 노래로 소개되어 오리지널 아티스트에 대한 오해의 소지가 있는 듯 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테리 잭스의 [Seasons in The Sun]은 1973년의 리메이크 작품임을 유념하기 바란다. 물론, 현재의 청소년들이나 20대 청년들에게 이 노래는 그룹 Westlife의 곡으로 알 것이다. 그러니까 이 노래는 신세대와 쉰세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법도 하다. 쉰세대에 해당하는 필자는 이 글에서 테리 잭스의 버전의 [Seasons in the Sun]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놓을 것이다.





이 곡을 만든 사람은 쟈끄 브렐 Jacques Brell인데, [If You Go Away] - 프랑스어 원제목은 [Ne Me Quitte Pas] -로 유명한 샹송 뮤지션이다. 아마 쟈끄 브렐은 몰라도 닐 다이아몬드, 짐 리브스, 나나 무스꾸리 등의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 되면서 팝의 명곡으로 남아 있는 [If You Go Away]를 모르시는 분은 없으리라. 로드 맥퀜과 테리 잭스는 비슷한 연배는 아니나 두 사람 모두 샹송계의 거물 쟈끄 브렐과 깊은 친분을 맺고 있었고, 그 공통의 결실이 [Seasons in the Sun]이다. 하지만, 로드 맥퀜의 노래와 테리 잭스의 노래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특유의 허스키 보이스로 격조 높은 팝을 추구하는 로드 맥퀜은 이 노래를 재즈풍으로 처절하게 부르는데, 예술성은 있으나 대중성은 모자라는 반면, 테리 잭스의 음악은 그 반대이다.
테리 잭스와 쟈끄 브렐의 만남은 마치, 고대 중국 주(周)왕조의 태공망 여상과 서백의 극적인 랑데부를 연상케 할 만큼 흥미롭다. 쟈끄 브렐을 만나기 직전, 테리 잭스는 자신의 밴드 Poppy Family를 해체하고, 거기서 노래하던 자신의 아내 수전 잭스 Susan Jacks와도 갈라서는 비운을 겪고 있었다. 그 후 테리 잭스는 세상을 등진 채 낚시터에서 1년의 세월을 낚다가, 팝계로 돌아와 쟈끄 브렐이란 귀인을 만나게 된다. 테리 잭스는 5년 전 로드 맥퀜의 [태양의 계절]이 실패했던 이유를 알고 있었다. 사형수의 심정을 너무 진지하게 노래했던 탓에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했던 로드 맥퀜과는 달리, 테리 잭스는 쟈끄 브렐의 명곡을 경쾌하게 리메이크하여 골드피쉬 레코더사에 1,150만장의 음반 수익을 올려 주었다. 하지만, 상업성과 예술성은 양립할 수 없는 까닭에 나는 로드 맥퀜의 음악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어쩌면 ‘테리 잭스’ 이후로 사람들이 이 노래에 실린 “사색의 무게와 공감의 의무”를 져버리게 된 지도 모른다.

단순한 8비트 주법의 키보드 사운드가 언뜻 경쾌한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듯하지만, 가사 내용을 음미해보면 결코 부담 없이 흘려들을 곡이 아님을 알게 된다. 반음 스케일에 리벌브(reverb)를 많이 걸어 원인 모를 불안감을 유발하는 기타 인트로(intro), 이것이 꽃다운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갈 소년범의 운명을 예고하는 것임을 깨달을 때 이 노래는 전율로 다가온다. 가사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자.

내가 신뢰하는 친구여 잘 있게나.
우리가 서로 알고 지내기 시작한 것이 9살 아니면 10살쯤 일거야.
우리는 함께 언덕을 오르고 나무를 타곤 했었지.
ABC를 익히고 가슴과 가슴으로 피부를 부딪기며 사랑을 배워 갔어.
친구! 하늘엔 새들이 노래하고 봄기운이 완연한 이 계절에 내가 죽어야만 한다니 너무나 끔찍해.
어디든지 귀여운 소녀들이 있겠지. 친구야 나를 생각해 주렴, 그럼 내가 달려갈게.
아, 즐겁고 신났던 그 시절, 우리는 태양의 계절을 마음껏 누렸었지.
하지만 우리가 함께 오르던 그 언덕은 더 이상 그 시절의 언덕이 아니구려.

사랑하는 아버지, 부디 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난 늘 집안의 골치덩이였죠. 아버지께서는 늘 저를 바른 길로 인도하려 애쓰셨건만, 저는 늘 술과 노래에 찌들어 어떻게 살아왔는지 조차 모르겠어요.
아버지! 하늘엔 새들이 노래하고 봄기운이 완연한 이 계절에 제가 죽어야만 한다니 너무나 끔찍해요.
어디든지 어린아이들을 볼 수 있겠죠. 아버지께서 아이들을 볼 때면 그 속에서 저를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아, 즐겁고 신났던 그 시절, 우리는 태양의 계절을 마음껏 누렸었지.
하지만 그 시절의 술과 노래들도 세월과 함께 가고 없다네.

사랑하는 나의 미셸, 잘 있어!
넌 내게 사랑을 주었고 나를 밝은 곳으로 이끌어 줬어.
내가 지쳐 있을 때면 언제나 내게 다가와 나를 일으켜 세워주었지.
오, 미셸, 새들이 노래하고 봄기운이 완연한 이 계절에 내가 죽어야만 한다니 너무나 끔찍해.
어디든지 꽃들이 피어 있을 거야. 우리 함께 그곳에 갈 수 있다면 정말 좋으련만.
아, 즐겁고 신났던 그 시절, 우리는 태양의 계절을 마음껏 누렸었지.
하지만 우리가 꿈을 안고 헤아렸던 밤하늘의 별(star)들은 해변의 불가사리(starfish) 마냥 사라지고 말았구려.


흉악범답지 않게 감수성이 풍부한 이 이름 모를 소년은 좋은 환경에서 자랐더라면 분명 시인이나 음악가가 되었을 것 같다. 무슨 사연으로 형무소에서 죽음을 맞게 된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친구, 부모님, 여자친구, 추가로 죄 많은 우리 어른들 모두에게 처절한 하소연을 담아 보낸 이 소년의 편지를 통해 이른바 ‘청소년 문제’에 대한 나의 사색을 정리해 본다.


청소년, 심리적 모라토리움을 강요당한 어른아이들

청소년 문제를 거론하기 전에 우선, ‘청소년(adolescence)’이란 말 자체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인지에 대해 먼저 짚어 보기로 하자. 조선시대에 청소년 문제가 있었냐 하면 그렇지 않다. 이유는 너무도 싱겁지만 그 시대엔 청소년이 없었기 때문이다. 존재하지도 않은 그 무엇에 관한 문제가 있을 까닭이 없지 않은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나이에 목숨 건 사랑을 나누었던 로미오와 줄리엣을 아무도 비행청소년으로 보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오륙십 년대엔 나무하러 간 소년이 지게를 받쳐 놓고서 힘든 자신의 과업을 수행한 보상심리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울 성싶으면, 하등의 죄의식을 갖지 않고 속 후련하게 담배연기를 내뿜고선 산을 내려오지 않았던가? 또한, 겨울날 10대 남녀 청춘들이 사랑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동동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풍경에 대해서도 어른들은 크게 눈살을 찌푸리지 않고 못 본 척 넘겨 왔다. 술 취한 뒤 그곳에서 어떠한 상황이 벌어진들 그것은 그다지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도 시집장가 잘 가서 모두들 선량한 백성으로 한세상을 살았기 때문이다. 분명한 사실은 사랑방의 그 청춘들 때문에 이 나라에 IMF가 온 것은 아니며, 그 시대 청춘들이 옥상에 올라가 자살하거나(올라갈 옥상도 없었지만), 본드나 약물에 찌들어 ‘막가는’ 행동을 서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청소년 심리학자들은 ‘질풍노도(stress and storm)’니 ‘제 2의 탄생(the secondary birth)’이니 하는 용어를 들며 굳이 청소년기를 특별한 시기로 규정하려 애쓴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은 마치 어린아이가 이 빠지는 고통을 겪으며 성장하는 것처럼 청소년들이 정신적 혼란을 겪는 것을 불가피한 통과의례로 간주함으로써 청소년 문제가 발생하는 인과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한다. 나는 청소년들이 ‘파도 같은 분노(怒濤)’를 품게 되는 것은 외부에서 강요된 불합리한 억압에 대한 당연한 반작용이라 생각한다. 사춘기니 청소년이니 하는 개념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라는 사실은 마가렛 미드 Margaret Mead의 흥미 있는 리포트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사모아 섬에서 미드는 소년소녀들이 사춘기의 홍역을 치르지 않고 아이에서 곧바로 어른으로 넘어가는 것을 목격했던 것이다.

......사모아의 소년소녀들에게 그러한 딜레마는 아예 있지도 않는다. 섹스는 자연스럽고도 짜릿한 행위일 뿐이다. 무엇에 탐닉할 자유는 단 한가지의 기준인 사회적 지위에 따라서만 제한될 뿐이다. 족장의 딸이나 아내의 경우 혼외의 어떠한 성적 유희도 추구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책임이 부여된 어른들이나 집안의 가장 또는 씨족의 큰어머니들은 너무도 많은 일거리를 떠맡고 있는 관계로 일상의 성적 모험을 즐길 여유가 없는 것이다. 사모아인들 중에 이러한 풍속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반감을 품는 유일한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선교사들이며, 사모아인들은 선교사들의 반대가 너무도 엉뚱한 것이기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우리는 물론 선교사 편을 들것이다. 왜 사모아에서 정상적인 행위들이 우리 사회에선 문제가 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사모아인들은 야만인이기 때문에 우리하고 비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문명인과 미개인 가운데 과연 누가 더 도덕적인가”, “짐승 같은 파렴치한 짓거리들이 어느 쪽에서 더 많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성의 무분별한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에게 성(性)의 문제는 그리 쉽게 결론 내릴 성질의 것이 아니며, 나는 다만 도덕을 상대적인 문제로, ‘시대의 도덕’으로 생각할 뿐이다. 사모아에는 사모아의 도덕이 있을 것이고 우리 시대에는 우리의 도덕이 따로 있는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미드가 사모아에서 발견한 사실을 통해 청소년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자는 것이다.
나는 사춘기가 인간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특정 시기에 이르러 생겨난 관념의 산물이란 것을 주장하고자 한다. 경제 수준이 낮아 생존에 필요한 충분한 생산물을 얻기가 어려웠던 시대에는 노동 능력을 가진 모든 연령층이 생업에 종사해야만 사회가 존속될 수 있었다. 따라서 그 시대의 나이 어린 청년(청소년)들에게 정서적 혼란 따위의 사치는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고, 어른들 또한 그들을 아이 취급하지 않았기에 질풍노도도 없었다. 청소년들은 가족의 생존을 위해 부모와 함께 노동 현장에 뛰어 들어야 했으므로 어른들과 대등한 책임감과 인격적 대우를 받았다. 쉽게 말해, 그 시대의 인간은 아이 아니면 어른이지 그 중간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생산력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 산업사회에 이르러 소비와 공급의 평형을 이루기 위해 청소년들을 생산자로서보다는 소비자로 머무르게 할 필요가 생겨났다. ‘미성년’이란 개념을 도입하여 몸뚱아리는 어른이지만 어른 노릇을 못하도록 하는 일종의 ‘모라토리움(moratorium, 성년의 유예)’을 선포한 것이다. 그리고 학교를 많이 지어 유예 기간 동안 이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게끔 통제하도록 하였다. 물론 학교의 기능이 이것뿐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청소년이란 개념의 발생과 공교육의 확대는 자본주의의 발달과 시기적으로 정확히 맞물려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상적인 성인을 정신병원에 가두어 놓으면 어떻게 될까? 울화병이 생겨 진짜 정신병자가 될 것이다. 또한 20년 이상이나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다가 치유불능의 판정을 받았던 정신이상자들이 정상적인 환경에 놓인 지 불과 몇 달 만에 대부분 완치되었다는 보고가 있다. 나는 이 같은 예에서 청소년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과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몸뚱아리는 어른이 되었는데 행동은 아이처럼 하길 강요받으니까 스트레스가 발생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지나친 통제와 간섭만을 일삼을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해 질 수밖에 없다.

억압적인 구조 속에서 인간은 노예 아니면 반항아로 성장하게 된다. 혹시 우리는 뜻도 영문도 모른 채 그저 시키는 대로 따르는 유순한 인간을 ‘모범생’이라 불러 온 것은 아닐까? 맹목적인 순종은 노예근성일 뿐이며 그것은 맹목적인 반항만큼이나 무가치하다고 본다. 나는 교사가 시키는 대로만 행동하며, 이웃의 운명엔 아랑곳하지 않고 공부만 열심히 하는 모범생에게서 개인과 사회의 발전을 위한 가능성을 별로 보지 못했다. 어쩌면 화창한 봄기운에 취해 학교를 하루쯤 빼먹고 자연 속으로 뛰어들고픈 충동을 느끼는 청소년들에게서 오히려 더 큰 가능성을 찾을 수 있진 않을까?
순응적인 인간은 현상유지를 원하는 자들에게나 바람직할 뿐이다. 사회가 발전하는 것은 풍부한 감성과 창의력을 통해서이다. 아인슈타인이 어린 시절 억압적인 북부독일 학교를 떠나지 않았더라면 과연 그 천재성을 제대로 발휘했겠는가를 생각해 보라. 그런 면에서 우리는 한순간 울타리를 벗어나려는 청소년들을 문제아로 몰아갈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생각해서 좀 더 너그러운 인내심을 갖고 그들을 대해야 할 것이다. 통제와 감시만 있고 창의력과 감성을 한껏 발산할 기회는 주지 않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으며, 그 속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자면 질풍노도를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끝으로 청소년의 비행 문제에 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나는 우선, ‘청소년 비행’이란 말은 있고 ‘성인 비행’ 이란 말은 없는 것부터가 유감이다. 이 자체가 같은 눈높이에서 대상을 바라보지 않으려는 기성세대의 편견과 아집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청소년의 비행은 어른들의 하수도 문화가 아래로 유입된 결과로 보아야 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 따라서 청소년의 비행을 막기 위해서는 어른들부터 ‘소돔과 고모라’를 파괴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사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의미 있는 상호작용행위(?)에 비해 우리 어른들은 얼마나 부끄러운 짓거리들로 찌들어 있는지 모른다. 시장경제사회에서 우리 남성들은 돈을 지불하고 섹스라는 상품을 사는데 얼마나 익숙해져 있는가? 남성들이 사창가나 룸살롱을 제집 드나들 듯이 하는 것은 사건이 아니고 여고생이 화장실에서 애를 낳은 경우는 사건이 되어 매스컴에서 특종으로 보도되는 현실에 멀미를 느낄 따름이다. 사모아인들이 본다면 참으로 이상한 세상이라 할 것이다.
중세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과연 뽀뽀만 하고 그쳤겠는가를 생각하면 오늘날 청소년들의 성문제에 대해서도 우리 어른들은 좀 더 관용적인 시선으로 대할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우리의 청소년들을 사모아식으로 키우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피끓는 나이에 성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것은 미드의 말대로 너무도 당연한 현상이며, 설령 부적절한 결과를 초래한다 하더라도 우리 어른들이 그들을 따뜻하게 포용해 준다면 그들은 분명 미래에 선량한 시민으로 성장할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청소년의 성적 모험은 일탈이 아니라 ‘아름다운 청춘’이 된다.
청소년의 성문제는 물론 방조할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버젓이 있는 현실을 “그저 나쁘니까 하지 말아야한다”는 식으로 건강한 모든 청소년들을 ‘신의 아그네스’로 몰아가는 어른들의 위선적인 태도는 문제를 더욱 나쁘게 만들뿐이다. 문제의 원인은 전적으로 어른들에게 있다. 어른들 모두가 정신 차려 깨끗한 환경을 만들어 나간다면, 우리 아이들은 아무렇게나 내던져 놓아도 저절로 잘 커갈 것이다. 나는 자연상태에서 모든 인간은 스스로를 통제하고 발전해 나가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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