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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호 [현장에서] 학생인권을 위한 조례는 있다?

2010.01.05 13:00

진보교육 조회 수:1205

학생인권을 위한 조례는 있다?

공현 /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연구용역팀 연구보조)

  올해 경기도 교육계를 후끈거리게 한 이슈 중 하나가 ‘무상급식’ 예산이었다. 경기도 교육감으로 당선된 김상곤 교육감이 공약으로 내걸었고 취임 직후에 추경예산으로 제출한 ‘무상급식’ 예산이 도교육위원회와 도의회에서 전액 삭감되었던 것이다. 무상급식 삭감에서 보여준 몇몇 경기도 교육위원들이나 도의원들의 보편적 복지나 교육권, 사회공공성에 대한 무개념이야 뭐 워낙 많이 까여서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무상급식 이슈의 이면에서, 별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았던 예산 삭감이 또 있었으니, 바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예산 삭감이었다. 약 6000만원으로 제출되었던 학생인권조례 예산은 3000만원 남짓으로 50% 정도가 삭감되었다. 몇백억짜리 무상급식 예산이 예산편성에서 논란이 되는 거야 규모상 그럴 수 있다 쳐도, 겨우 몇천만원 수준의 학생인권조례 제정 예산을 굳이 절반씩 깎아내는 이 쪼잔함이라니…. 몇 억 단위에서 노는 무상급식 예산보다 규모가 작아서였을까, 아니면 학생인권 사안은 무상급식 사안보다 덜 중요한 사안이라고 생각되어서였을까, 이유가 무엇이건 학생인권조례 예산 문제는 그 당시에 별다른 논란이 되지도 못했었다. 그나마 절반이라도 남은 학생인권조례 예산 덕택에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순조롭지는 않더라도 어찌어찌 추진되고 있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의 의미

  학생인권조례는 광주, 경남 등지에서 추진되었고, 지금도 광주, 경남 지역에서는 현재 진행형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학생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많은 학생인권 침해가 의미 있는 문제 ― 이슈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학생인권 운동의 흐름은 2005년 광주 학생인권조례 제정 추진 움직임, 그리고 2006년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이 발의한 ‘학생인권법’(초중등교육법 개정안)과 같은 형태로 법제도 속에 학생인권 보장에 관한 내용을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추진되고 있는 것, 아니 애초에 주경복 서울시 교육감 후보나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 후보의 공약에 ‘학생인권조례’가 포함되었던 것도 그러한 학생인권운동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은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 판례, 국제기구의 권고, 인권단체의 주장 등을 통해서 개별적으로 제시되었던 학생인권에 대한 기준을 통합된 법제의 형태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한때 국가인권위원회가 추진했었으나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던 ‘학생인권 지침(가이드라인)’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학생인권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조차 부실한 한국 사회 실정에서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은 학생인권의 구체적 내용과 최소한의 기준을 공식적으로 확인시키는 효과를 지닐 것이다.
  이처럼 공식 확인된 학생인권의 기준은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인권침해 문제를 제기하고 싸울 때 큰 힘이 되어줄 수 있다. 또한 공식적인 규범의 제정은 그 자체로 사회 전체에 대한 교육의 효과가 있어서 학생인권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려고 하는 노력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다른 지역에도 전범이 되어 전국적으로 학생인권조례,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법률이 제정될 수 있게 된다면 최선의 결과가 될 것이다.

  물론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경기도 지역 학생들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는 점이 그 가장 큰 의의이다. 학생인권에 대한 기준을 확립하는 것 외에도 학생인권조례에 들어가게 될 학생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계획 수립과 집행, 학생인권 상황에 대한 조사와 평가, 학생인권침해 구제기구 설치 등은 이를 실현하기 위한 장치들이라고 할 수 있다.
  경기도 지역은 평준화 지역, 비평준화 지역, 부유층 거주 지역, 빈곤층 거주 지역 등이 뒤섞여 있으며, 두발규제, 강제적 자율학습, 체벌 등의 대표적 학생인권 문제에서도 상대적으로 심한 지역 중 하나로 꼽혀 왔다. 학생인권조례 추진 소식에 인터넷 등으로 보인 학생들의 열렬한 반응은 이런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경기도 지역에는 한국 전체 인구의 20~25% 정도의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학생 수도 이와 큰 차이가 나지는 않을 테니,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한국 전체 학생들의 약 1/4이 그 적용을 받게 될 학생인권에 대한 법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학생인권조례는 경쟁, 차별, 폭력에 쩔어 있는 교육 현장에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두발자유를 비롯하여 용의복장의 자유, 체벌금지, 강제적 자율학습, 보충수업의 금지, 학생들의 쉴 권리 보장 등은 학생들에 대한 통제와 학교간 학생간 경쟁을 강화시켜나가고 있는 교육 현실에서 유의미한 태클이 될 수 있다. 인권을 중심에 둔 학교 ―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학교와 경쟁적 학교, 통제적인 학교, 독재적․권위적인 학교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학생인권조례는 학생들의 학교 운영 참여, 교육 정책 수립에 참여 등을 보장할 것이다. 이러한 통로를 통해 학생들이 일상적인 학교 운영을 비롯하여 교육 현안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교육에 변화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또한 학생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질 학생들의 조직 등은 학생 조직화, 세력화를 촉진시킬 수도 있다. 이런 점은 무상급식보다 학생인권조례가 교육 개혁에 있어 더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에서의 한계

  그러나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 제정 과정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들이 드러나고 있다. 우선 조례제정을 위해 꾸려진 자문위원회 구성에서부터 학교 관리자, 교사 등이 상당수 포함되었는데 이 중에 학생인권이나 인권에 대해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이는 어떻게 말하면, 교육자들 중 대부분이 교육에 있어 중요한 인권에 대해서는 무지한 씁쓸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김상곤 교육감의 임기 중에 학생인권조례를 발의하고 논의하여 제정하려고 하다 보니 생기는 문제도 있다. ‘학생참여기획단’을 통해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들으려고 하고 있지만, 사전에 학생인권과 조례 제정 과정에 대해 같이 공부하고 토론하는 시간도 가지지 못하고 온라인을 통해서 학생들의 의견을 모으기에 급급한 상황이다. 연구팀 또한 고작 2개월밖에 안 되는 연구기간 동안에 설문조사, 면접조사, 외국사례조사를 시행하고 조례 예시안까지 만들어 내려다보니 조사 내용을 충분히 분석하고 논의하지 못하고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다. 자문위원회 또한 학생인권조례의 내용에 대한 논의는 1달도 채 못하고 조례안을 내놔야 하는 형편이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에서 경기도교육청이 지역 사회, 청소년단체, 교육단체 등을 충분히 잘 활용했는지도 의문이다. 김상곤 교육감은 경기도 지역의 좌파적/진보적 교육단체들과 시민사회의 지지 속에 당선되었고, 이들과 어느 정도의 공조 속에서 정책들을 추진해갈 수 있는 기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경기도 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에서 청소년단체나 교육단체들과 충분히 이야기하고 그 자원을 활용하지 못했다. 일부 교육청 공무원들의 센스 없음 탓도 있겠고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이러한 한계는 이후 학생인권조례 추진 과정에서 충분한 힘을 받지 못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도교육위와 도의회가 학생인권조례 제정 예산을 삭감한 덕분에 부족한 예산도 빼놓을 수 없는 걸림돌이다. 연구팀에 연구비로 주고 나면 자문위원회, 학생참여기획단에 쓸 예산은 별로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래놓고 학생인권조례가 발의되면 졸속 추진이라느니 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지 않았다느니 하고 딴지를 걸어댈 교육위원, 도의원이 있을 거라 예상하니, 이거 참, 억울하다고 해야 할지 화딱지가 난다고 해야 할지.

  무엇보다 큰 문제는 제대로 된 내용으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경기도교육위원들 다수와 경기도의회 의원 다수는 무상급식 예산 삭감, 학생인권조례 예산 삭감 등으로 김상곤 교육감의 정책을 막아설 준비가 되어 있음을 어필해왔다. 또한 경기도의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학생인권법안, (학생회 법제화와 학생의 학교운영참여를 포함한) 학교자치법안 등도 제대로 통과시키지 않은 전력이 있다. 만약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신나게 추진되다가 도의회에서 좌절되거나 하면 학생인권조례에 기대감을 걸던 학생들은 더 큰 좌절과 패배감에 빠질 수도 있다.
  학교 관리자, 교사, 보호자(학부모 등), 학생들 내부에 존재하는 학생인권에 친화적이지 못한 분위기도 문제이다. 연구팀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학교 관리자, 교사, 보호자 등은 학생들의 학교 운영 참여에는 큰 거부감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체벌 금지나 두발자유 등에는 상당히 큰 거부감을 보이거나 반반으로 의견이 갈라졌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도 체벌금지나 (염색 등 허용, 교복폐지를 포함한) 두발복장규제폐지에 대한 거부감이 어느 정도 있다. 기존의 학교 모습과 ‘학생들은 맞아야 말을 듣는다’ 같은 이야기에 익숙해져 있고, 체벌과 두발규제 같은 폭력을 포기하면 학생들을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학생인권조례가 제정 과정에서도 (당장 조례 제정 자문위원회 안에서부터!)많은 반발에 부딪칠 수 있으며, 설령 제정되더라도 당장 모든 것이 확 나아지기는 어렵다는 걸 의미한다.
  뻔한 소리긴 하지만 조례로는 해결할 수 없는 좀 더 거시적인 문제들도 엄연히 존재한다. 입시경쟁, 학교서열화, 학벌, 교육예산 부족, 장애차별, 크게는 자본주의․국가주의 등은 도 차원의 조례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학생인권 개선을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학생인권조례는 이러한 것들을 해결해나가는 과정 없이는 그 한계가 뚜렷하다. 예컨대, 조례가 아무리 학생들의 참여를 규정하더라도, 학생들의 참여는 공교육․사교육에서 심야까지 공부해야 하는 현실 때문에 활성화되지 못할 것이며 경제력, 성적, 장애여부 등으로 인한 차별도 그 안에 그대로 존재하기 십상일 것이다.

학생인권을 위한 한 걸음

광주, 경남에서의 학생인권조례들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광주도 곧 학생인권조례를 발의하고 공식적으로 논의할 기세다. 이번에 추진되고 있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광주, 경남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도교육청 차원의 계획과 지원 속에 추진되고 있다는 점, 그렇기 때문에 학생인권조례 제정 가능성이 비교적 높다는 점일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김상곤 교육감 본인도 이번에 학생인권조례를 제대로 된 내용으로 통과시킬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고 있을 것 같다.(근거는 별로 없다.) 이번에 또 무상교육 급식을 전액 삭감한 도의회의 상황 같은 걸 봐도 딱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학생인권조례가 제대로 된 내용으로 교육청 이름으로 공식 추진되고 발표되는 것만으로도 그 파장은 작지 않을 것 같다. 설령 도교육위나 도의회를 거치면서 무산되더라도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연구결과가 존재하고, 제대로 된 학생인권조례안이 발표되는 것만으로도 이후의 학생인권 운동에는 중요한 참고자료이자 성과로 남을 것이다.
  지금도 심각한 두발복장규제, 체벌, 강제야자, 차별, 경쟁 등에 노출되어 있는 학생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나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당장 통과되지 못하더라도 그 자체는 일단 별 수 없다고 생각한다. 통과되도록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활동을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말이다. 다만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설령 도중에 좌초되더라도 학생인권 신장에 그 나름의 기여를 할 수 있으리라 믿으며, 그 기여를 받아먹고 자랄 수 있는 학생인권 운동의 발전에 힘쓰는 것이 내 일일 것이다. 그리고 설령 좌절되더라도 다시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조례 등이 추진될 수 있도록, 내년 교육감 선거에도 좀 신경을 써야 할 일이다. 나도 그렇고, 인권보장을 열망하는 학생들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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