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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 [책을 읽고] 상상력으로 민주주의를 혁명하라

2009.10.06 16:16

진보교육 조회 수:1151

[책을 읽고]     상상력으로 민주주의를 혁명하라!

이철호/배문중


C. Wright Mills는 그의 저서 『사회학적 상상력(The Sociological Imagination)』에서 사회학, 넓게는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지녀야 할 문제의식과 학자로서 어떠한 자세를 견지해야 하는지 말한 바 있다.
사회학의 학문적 의미를 재검토하고 반성한 밀즈는 이 책에서 주류 사회학의 두 가지 경향인 추상적 경험주의와 거대이론에 대해 비판하였다. 그가 말하는 추상적 경험주의자는 사회 구조와 역사와 관련되는 문제보다 사소한 문제를 연구 주제로 택한다. 마치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선거구 분할만을 논하는 방식이다. 그 결과 이들은 결국 사회구조와 역사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문제를 그들만의 방법론으로 연구하는 조사 전문 기술자가 되고 만다. 이와는 반대로 추상성과 일반성의 높은 수준에 매몰되어 경험적 현실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 거대이론의 담론 또한 비판한다. 거대이론가들은 오로지 끝없는 개념 만 조작할 뿐, 역사적이며 사회구조적인 맥락을 알려 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의식 자체가 없고 비현실적이다.
그가 제기한 사회학적 상상력은 이미 친근하게 되어 버린 우리 일상생활의 타성으로부터 우리를 멀리 떨어뜨려 새롭게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한 관점에서 다른 관점으로 시선을 옮겨가는 능력이다. 미시적인 일상생활에 작동하는 세력들 사이의 움직임을 읽어 내가는 힘이다.  
사회학적 상상력은 끊임없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을 던지게 한다. 사회를 하나의 전체로 볼 경우 그 구조는 무엇인가? 이 사회가 인류 전체의 발전에 차지하는 위치는 무엇이며, 지니는 의의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 사회의 지배자는 누구이며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 이러한 질문을 불러일으키는 사회학적 상상력은 우리들로 하여금 역사와 개인의 일생, 그리고 사회라는 테두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관계와 나아갈 바를 찾아갈 수 있도록 한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최근 발간된 김영수의 [민주주의를 혁명하라]는 민주주의를 혁명하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상상력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상상해야할 대상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말하기 어려운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를 말하기 두렵다. 신 새벽 뒷골목에 남몰래 쓴다고 숨죽여 외치던 시대는 분명 아니다. 국민이나 시민으로 살아가든 노동자로서 살아가든 또는 학생으로서 살아가든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일상이 되었다. 민주주의는 국가의 권력을 편제하는 과정에서 작동하고 있거나 한편으로 어떤 사안을 결정하는 일련의 절차에서 이미 일상화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러하기에 민주주의는 참으로 민주주의라고 호명해서는 안 될 것들과 분간하기가 쉽지 않다. 일상생활의 층위에서부터 국가의 권력 문제까지 얽혀 있으며, 민주주의는 독립적으로 사용되기 보다는 다양한 수식어를 얹어서 사용되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라거나 대의민주주의라거나 참여민주주의 등으로 말이다.
국민국가라는 단위로 분할되어 있는 지금 시대에 민주주의는 자기 삶에 대한 스스로의 통제라는 기본적인 원칙은 실종되었다. 남아 있는 것은 직접민주주의와 간접민주주의라는 방법의 문제일 뿐이다. 그것조차도 간접민주주의, 특히 정당과 의회로 상징되는 대의제가 마치 민주주의 그 자체인양 간주되고 있다. 오직 민주주의 실천은 투표하는 행위로만 형해화되어 있다. 현대사회의 복잡한 구조와 기능 분화로 인민이 직접 참여하는 민주주의는 실행이 어려우며 다만 특정한 경우에만 그것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 이러한 논리를 지탱하고 있지만 이야말로 대중을 대상화하는 지독한 엘리트주의나 계급차별의식이다.

2008년 촛불 광장에서 진지하게 던져진 물음은 ‘대한민국은 과연 민주공화국인가?’라는 물음이다. 이 물음은 이명박 정권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아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민주주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리고 광장에서 어떻게 실천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광장에서의 촛불이 꺼지고 평택은 군화 발에 짓밟히고 용산은 외면당하고 있는 지금, 김영수는 ‘민주주의를 혁명하라’고 민주주의를 다시 상상하자고 진지하게 다가오고 있다.
이 책은 민주주의 자체를 혁명해야 한다고 한다. 기존에 알고 있던 민주주의의 내용을 규정했던 몇 가지 형식들은 잘못이다. 지금 이곳과 이것에 머무르는 한 새로운 세상은 오지 않는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상상력 없이는 아무 것도 가능하지 않다고 일깨운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한국사회는 위기임에 틀림없으며 그 위기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기성세대의 상상력 고갈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새로운 세대의 상상력조차 봉쇄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미덕은 바로 상상력이 봉쇄당한 채 죽음과도 같은 입시전쟁과 학습 노동의 지옥에서 인권이 말살당하고 있는 청소년·소녀들에게서 희망을 찾아 낸 데에 있다. 책머리에서 저자는 2008년 여름, 학교가 미쳤다고 외치며, 학교에서 배웠던 자유민주주의를 전복해 버린 그들이 자신의 스승이라고 헌사를 보낸다. 그들이 몸으로 실천해 낸 새로움, 일상의 관계와 질서의 파괴, 전복의 양식들이 진정한 민주주의의 출발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이 책은 민주주의의 본질을 꿰뚫고 세계적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사례들을 근거로 상상적 대안을 제출한다. 또한 민주주의에 대한 형식적인 사고의 틀에 갇혀 있는 독자들에게 상상력의 끝이 어디까지인가를 보여 준다. 형식을 깨는 순간 무한한 창조와 창의의 힘이 발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혁명이다. 그것은 의식혁명이기도 하고 제도혁명이기도 하다. 선언적인 주장에 머물러 버리는 혁명은 우리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지만, 우리의 의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혁명은 곧 내 안에서 꿈틀대는 변화의 욕망을 자극할 것이다. 상상은 몽상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바탕으로 하는 미래의 꿈이다.
이 책에서 상상은 네 분야에서 구체적으로 전개된다.
상상혁명 첫 번째인 헌법에서 글쓴이는 헌법이 정말 국민주권을 보장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헌법을 분석하고 있다. 김영수는 헌법의 구조 및 주요 조항 등을 근거로 현행 헌법은 국민의 헌법이 아니라 국가와 지배세력의 헌법이라는 점을 규명하고 있다. 그리고 헌법 편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3국가 통일방안을 제시하면서, 통일헌법이 어떻게 구성되고 만들어져야 하는가를 상상하고 있다.
상상혁명 두 번째인 국가에서는 국가가 국민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국민이 국가를 위한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3권 분립, 대통령제나 의원내각제 등의 정부형태 등을 비판하면서 행정부와 사법부를 폐지한 새로운 정부형태를 제시한다. 특히 국민이 직접 국가에 대한 감사 및 평가를 넘어서서 정책까지도 생산할 수 있는 대안적 제도를 상상하고 있다.
상상혁명 세 번째인 선거에서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지만 거기까지만 하용하고 있는 선거제도를 비판하고 있다. 1인 1표, 과반수 결정제도, 선거권과 피선거권의 제한 등을 비판하면서 저자가 상상력을 발휘하여 제시하고 있는 대안은 차등투표제, 기명투표제, 선호 투표제 등이다. 또한 저자는 국민의 주권을 실질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선거제도를 상상하고 있다. 그리고 선거권과 피선거권의 연령이 왜 분리되어 있는가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15세 청소년·소녀들에게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상혁명 마지막에서는 특권을 누리는 제도정치를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저자의 상상은 국회의원을 1만 명으로 확대, 무료로 봉사하는 대통령, 정당 국고보조금을 폐지하는 대신에 그 돈을 국민의 생활안정기금으로 전환, 주민이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지방자치 등이다. 이러한 상상은 정치의 실질적 주체인 국민을 대상화하고 소외시키고 있는 현 정치를 극복하고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강화하자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유민주주의라는 포장으로 법과 제도를 통해 국민들을 조작하고 통제한다. 일상생활이나 관심은 자본의 이해를 충족시키기 위해 욕망이 조작된다. 그리고 개인의 상상공간이 전체의 상상공간으로 확대되는 것을 방지한다. 민주주의는 자기지배의 실현이기에 일상생활과 정치에서 국민 스스로 자신과 국가를 지배하는 정치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국민주권이란 바로 국민스스로 선의 정치를 일궈내기 위해 권리의 차별을 없애거나 지배세력의 특권을 없애면서 국가 중심의 정치를 소멸시켜 나가는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이 과정에서 혁명적으로 진화한다. 국민이 권력과 국가를 지배하는 상상혁명!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를 사랑하고 혁명하는 국민주권의 희망이라고 저자는 이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물론 이 책의 필자가 상상하는 것만이 민주주의라거나 민주주의의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지금 우리가 알고 있거나 현재를 규정하고 있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상상력의 공간을 열어젖히는 시도로는 충분하다. 바로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상상과 희망은 언제나 함께하기 마련이다. 불행한 미래를 꿈꾸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윤논리에 추동되는 자본, 그것이 지배하는 시장의 논리가 거의 모든 사회관계들을 지배함으로써  민주주의는 특정 계급의 이익을 노골적으로 보장하는 수단이 되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신자유주의가 양산하는 비정규직노동자들, 해고노동자들에게는 자신의 의지를 자유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그 어떤 법적, 제도적 장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교실에서 자신들을 지켜낼 어떠한 수단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바로 이것부터 바꾸어 나가야 한다. 억압과 피지배 관계들을 해소, 극복하고자 하는 대중의 모든 직접적인 실천들이야말로 자기지배의 실현을 위한 민주주의투쟁의 가장 전형적인 모습이다. 새로운 정치는 국민의 자치체제가 지향해야 할 법과 제도를 현실에서 재구성해야 한다.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 국민에서 정치의 주체로 다시서야 한다.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기억으로 회귀하거나 공허한 미래를 추상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의 실천과 그 운동이 나아갈 방향을 세워나가는 것이다. 현존하는 억압적이고 지배적인 관계들을 폐지하는 것이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이거나, 성적인 차이거나, 자본주의적인 생산관계거나,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