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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의 전교조’,  근본적인 전화가 필요하다.

                                                            진보교육연구소 정세분석팀


들어가며

전교조 운동이 침체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몇 년 째 지속되는 조합원 감소 현상, 신규조합 확대의 어려움, 분회장과 지회장 선출 어려움 등이 침체를 보여주는 양적 지표라면, 분회활동력과 논의력 약화, 전교조 사업 집행력의 이완, 전교조의 전선 형성과 여론 조성 능력의 약화 등은 대표적인 질적 지표일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교조 침체의 원인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이런 의견 중에 단연 다수를 차지하는 것이 이른바 ‘초심’류일 것이다, 것이다. ‘초심론’은 보수언론에서부터 전교조 내부에까지 폭넓게 퍼져 있다. 이들의 논리에 의하면 전교조 침체의 원인은 전교조가 초심을 잃어버리고 교사의 집단이기주의의 옹호에 과도한 역량을 쏟거나, 순수성을 상실하고 정치적 논리에 휘둘리는 바람에 국민(특히 학생과 학부모)으로부터 심지어는 교사 대중으로부터 외면 받고 있다는 논리이다.
또 하나의 의견은 전교조가 ‘정파’ 대립 때문에 망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권력의지로 뭉쳐 있는 정파들이 과도한 권력투쟁으로 전교조 내의 분열을 일으키고,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소통의 순환을 가로막음으로써 전교조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지도부의 기회주의적 처신과 책임의식의 부재 때문에, 또는 대중노선의 이탈과 과도한 투쟁 때문에 등등 다양한 의견이 제출되고 있다.
하지만 위의 논의들은 대부분 헛다리를 짚고 있거나 부분적인 요인을 과도하게 확대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좀 더 차분하고 냉정하게 전교조 침체의 원인을 찾아나가야 한다. 그럴 때만이 전교조가 침체를 벗어나 새롭게 활력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


전교조의 세 가지 동력        

전교조 결성 이후 20여 년간 전교조를 추동하여 왔던 동력을 무엇이었을까? 학교민주화 투쟁(비리척결 투쟁을 포함함, 이하 학민투), 참교육 실천 운동, 교육개혁 투쟁(반신자유주의 투쟁을 포함한) 등 3가지를 핵심적인 동력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합법화 이후에도 전교조는 교사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전면적으로 내세운 적이 별로 없었다. 단체교섭도 학민투의 성과를 제도적으로 정착시키는 것이 핵심이었지 일반 노조에서처럼 임금 협상 등이 핵심이 아니었다. 성과급 투쟁, 교원평가 저지 투쟁 등은 교원의 경제적 이해의 옹호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의 일환으로 도입되는 교원 간의 경쟁 시스템 도입을 반대하는 것이었다. 교육시장화 저지 투쟁의 맥락에서 이런 투쟁들이 배치되고 전개되었다.(보수언론들은 단순한 밥그릇 지키기 싸움으로 선전하였지만, 사실상 본격적인 밥그릇 지키기 싸움의 성격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성과급이나 교원평가의 도입이 구조조정에 대한 교사의 두려움을 자아낸 것도 사실이지만 더욱 핵심적인 요인은 교사의 교육활동에 대하여 계량적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고 이를 통해 교사들을 서열화하고 압박하려는 시장주의적 교원정책에 대한 반감이었다.)
이렇듯 전교조는 일반 노조처럼 경제투쟁(학민투가 근무여건 개선투쟁으로서 경제투쟁에 가장 가깝기는 하지만)을 중심으로 하기보다는 참교육 실천이나 교육개혁 투쟁 등을 중심으로 하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전교조의 침체 원인을 제대로 짚어내기 위해서는 3대 영역의 투쟁의 흐름들을 정리하고 분석하여 각각의 영역에서 어떤 변화가 발생하였고 그것이 전교조 운동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면밀히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학민투의 선봉대로서의 전교조

   전교조 조합원은 학교 현장 민주화의 기수였다. 교장·교감 등 교육 관료의 부당하고 독선적인 학교 운영에 대하여, 비합리적이고 억압적인 각종 관행과 제도에 대하여 저항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투쟁을 전개하였다. 대다수의 교사가 이런 전교조 교사에 대하여 적극적인 지원이나 심정적인 지지를 보냈기 때문에 분회원의 수와 상관없이 많은 분회들이 학교 현장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분회는 교장과 교감 등 교육 관료와 대립전선에서 구심적 기능을 하면서 교육 관료의 부당한 학교 운영에 반감을 품고 있던 다수의 교사들의 대변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즉 분회는 양적(분회원의 수) 의미가 아니라 질적(역관계) 측면에서 다수파인 경우가 많았다.
합법화 이후에는 단체교섭을 통하여 학교 현장의 많은 비민주적이고 비합리적인 관행과 제도를 개선해 나갈 수 있었다. 단체교섭이 모든 학교에 법적인 효력을 지님으로써 단위학교 분회의 역량과 관계없이 학교 현장의 민주화를 촉진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였다.

   한편, 학교민주화 투쟁의 진전은 학교 현장에서의 세력관계의 변형을 불러왔다. 전교조 결성 이전에는 교육 관료들이 학교 운영하는 데 있어서 봉건적인 잔재가 강하게 남아 있었다. 학교장의 권력행사는 법적·제도적 장치에 의해 규정되기보다는 매우 자의적이고 관습적인 성격이 강하였다. 때때로 학교장들은 교사들에게 업무적 복종이 아니라 인격적 복종을 강요하였고 이 때문에 교사들은 자주 인격적인 모욕감을 감수해야 했다. 학교장의 횡포를 견제할 장치는 전무하였으며 교사는 학교운영의 주체가 아니라 교장의 명령을 수행해야 하는 객체의 지위를 강요당하였다.
  따라서 초기의 학민투는 교사들의 격렬한 감정적인 분노로부터 터져 나왔다. 초기 학민투는 인격적 모독과 노예와 같은 부자유 상태에서 벗어나고픈 욕망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에  격렬하고 감정적인 성격을 띠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87년 민주·민족 혁명의 열기가 학내로 대거 흘러들어오면서 학민투의 폭발적인 확산을 가져왔으며 학민투를 통해 형성된 거대한 열정과 동력이  전교조 결성의 원동력으로 이어졌다.
   학민투의 폭발적인 발전은 급별이나, 지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학교장의 학교 운영의 방식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일방적인 밀어붙이기가 아니라 다수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 고려, 이른바 ‘헤게모니적’ 행위가 증대하였다. 적어도 겉으로는 교사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부드러운 모습을 취하는 교육 관료들이 늘어났으며, 교사의 인격을 함부로 깔아뭉개는 행위도 점차로 감소하였다(교장의 유연 지배 방식으로의 전환).
둘째로는 몇몇 제도적 변화가 수반되었다. 교육부-교육청 등 상급 단위에서 교사들의 의사를 수렴하는 모양새를 보일 수 있는 형식적 기구 설치를 권장하게 되었다. 학교운영위, 인사자문위, 교육과정위원회 등등 온갖 회의기구들이 만들어졌다. 이들 기구 내에서 교사들은 실질적인 결정권을 가질 수 없었던 반면 교장들은 이들 기구들을 통하여 형식적인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침으로써 학교 운영에 높은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었다.  
학민투는 학교 내의 근본적인 세력 관계의 변화로까지 전진하지 못하였다. 여전히 교육관료들이 모든 학교 운영의 결정권을 독점하고 있다. 그러나 교장의 학교 운영방식 변화와 형식적인 의사수렴기구의 도입은 교사들의 정서적 분노나 적대감을 급격히 해소 또는 완화하는 효과를 발휘하였다. 학민투의 개량적인 효과 위에 신자유주의 시대에 교직의 상대적인 직업안정성이 부각되면서 이제 학교는 교사들에게 그럭저럭 지낼만한 공간으로 여겨졌으며 교사대중의 학민투에 대한 관심도 서서히 식어갔다.
  이전의 학민투 전선은 매우 명료하고 단순하게 이분화된 적대적인 전선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전교조 교사들은 정당성의 압도적인 우위 속에서 교육 관료들에게 문제를 제기하였고 대다수의 교사들이 이에 동조하는 방식으로 학민투가 전개되었다. 하지만 점차 중간층 교사들의 일방적인 지지가 철회되고 사안의 내용이나 문제제기의 방식에 따라 찬반 여부의 태도가 결정되었다. 심지어는 분회 내부에서조차 문제에 대한 인식의 편차가 발생하고 문제 제기 방식에 대한 전술적인 강온의 대립이 발생하였다. 학민투가 단순화하게 이분화된 적대의 문제에서 훨씬 복잡한 정치적 문제로 바뀐 것이다. 이전에 학민투가 분회내부의 단결과 분회원과 일반교사와의 연대를 강화하는 시멘트의 역할을 하였다면 이제는 종종 분회와 일반교사와 때로는 분회 내부의 갈등을 확대시키는 역효과를 내기도 하였다.
  학민투 전선을 교란시키기는 또 하나의 중대한 변인이 등장하였다. 97년 IMF 사태 이후 신자유주의 체제가 성립하고 사회적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교육을 통한 사회적 지위  경쟁이 더욱 강화되었다. 이에 따라 심화된 입시경쟁의 압력이 학교를 더욱 강하게 압박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각종 시장주의적인 교육정책이 추진되면서 학교는 더욱 강력한 경쟁 체제로 휘말려 들어갔다. 학부모를 소비자로 호명하는 시장적 교육정책에 따라 입시 교육을 요구하는 학부모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입시경쟁교육에 대한 압박의 강도나 체감도는 더욱 증가되었다. 이런 외적 압력은 개별학교 차원에서는 대적할 수 없는 강제적 법칙으로 다가온다. 이는 학교의 자율적 공간을 축소하고 구성원 간의 수평적 합의 체계 즉 민주주의의 기반을 침식한다. 교육 관료라는 가시적인 적과의 싸움에서 입시경쟁체제와 시장적 시스템이라는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은 학민투를 더욱 어려움에 빠뜨리고 학교 구성원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학민투 전선에서 생긴 변화를 정리하자면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학민투의 고양이 교육 관료의 유연성의 확대와 형식적인 의사 수렴기구의 확대를 초래하고 이것이 거꾸로 학민투 전선을 이완시키고 학민투를 매우 정치적인 사안으로 전환시킨 점(이전의 억압적이고 일방적인 지배에서 헤게모니적 지배방식으로 전환이 이루어졌다는 점). 둘째로는 입시경쟁의 압력 수위의 상승과 교육시장화 정책의 확대 등 외적 압력에 의해  학민투 공간이 축소되었다는 점.
결국 이전에는 교육관료들의 완강한 저항과 탄압 때문에 학민투가 힘들었다면 이제는 중간층 교사들의 유동성과 때로는 무관심 때문에 그리고 가끔은 분회 내부의 갈등과 합의 과정의 지난함 때문에 피로감이 쌓이는 형국이다. 또한 입시경쟁구조나 학부모의 요구라는 보이지 않는 또는 대적하기 힘든 적들과 대결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무기력감이 증대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교조 교사들이 향유하여 왔던 학민투 전사로서의 자긍심이나 정체성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 또한 분회와 교사대중과의 결합력이 약화되면서 전교조 교사들이 학교 내에서 소수적 반대자의 위상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이것이 다시 분회원들의 자긍심을 약화시키고 고립감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학민투의 난관을 어떻게 돌파했어야 하는가? 가장 쉽게 떠오르는 대안이  교장선출보직제(이하 교선보) 투쟁이다. 일부 조합원들 중에서는 전교조가 학교 현장의 민주화를 더욱 진전시키고 제도적으로 확고하게 뿌리내리게 할 수 있는 교선보나 교무회의 의결기구화 등의 투쟁에(특히 교선보를 강조하는 입장이 많은데 이는 교선보가 교사들의 승진욕구를 수용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커다란 동력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점을 두지 않은 것을 전교조의 중요한 실책으로 지적하고 있다. 이런 주장에는 학교 현장 민주주의의 최고의 수준인 교선보나 교무회의 의결기구화를 강력히 요구하는 투쟁을 전개했었다면, 민주주의의 지향성을 지니고 있는 자유주의 개혁 세력들이 이를 수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과도한 낙관의 산물이다. 교선보와 교무회의 의결기구화는 현 사회의 재생산의 핵심적인 진지 중에 하나인 교육부문의 통제력을 노동자인 교사의 손에 넘겨주는 것이다. 이는 쉽게 양보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교육부문의 상대적인 자율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단순하게 비교하는데 난점이 있지만 이것들은 산업 현장으로 말하면 노동자의 자주관리와 비슷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교선보나 교무회의 의결기구화가 현실적인 목표로 제시되기 위해서는 교사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학생-학부모-일반 대중의 요구가 결집되어야 한다. 교선보나 교무회의 의결기구화가 높은 수준의 학교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형식과 제도이기 때문에 대중의 열망이 자동적으로 결집되는 것이 아니다. 높은 수준의 학교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적 열망을 고양시키기 위해서는 일정한 매개 과정이 필요하다. 새로운 학교 민주주의가 현재 교육 주체들에게 고통을 주는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수단으로 새롭게 인식되어야 한다. 교사-학부모-학생 모두를 고통으로 내몰고 있는 입시 경쟁 교육을 폐지하고 새로운 교육체제를 만들어가기 위한 운동이 활성화되고 이런 새로운 교육 체제에 조응하는 형식적 틀로 새로운 학교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될 때 교선보나 교무회의 의결기구화 투쟁이 강력한 추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교선보 운동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형식적 틀의 변화를 통해 내용적 변화를 가져오겠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교선보를 추진할 수 있는 새로운 주체적 동력을 확보하지 못함으로써 교선보 운동의 대중화에 실패하였다. 대중적 동력을 상실한 교선보 운동은 학교간 경쟁 체제 강화를 위한 학교장 중심의 단위학교책임경영제와 기묘하게 맞물리면서 교장 공모제라는 타협점으로 귀결되었다.

mb의 집권과 함께 학교 현장에서의 과거회귀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일방적인 단협파기, 보수정권을 등에 업은 교육관료들의 반동화 현상, 학교 간 경쟁 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학교장 권력 강화(이른바 학교자율화 조치를 명목으로 하는 교장의 인사권, 교육과정 결정권 등을 강화하는 조치)등 학교 민주화의 성과에 역행하는 조치가 강화되고 있다. 강제보충이나 자율학습 등이 대대적으로 부활하고 중학교와 초등학교로까지 확산되면서 학생 인권과 올바른 교육권을 침해하는 사례도 더욱 확대되고 있다. 따라서 교사의 민주적인 권리를 강화하고 학생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학민투가 다시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학교장의 권력 강화가 합법적인 형식을 취하고 입시경쟁 교육의 강화를 원하는 학부모의 요구라는 명분을 등에 업을 때 학민투의 진전이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새로 부활하는 학민투가 학교장 권력 강화만을 반대 하는 과거의 학민투 패턴에 머물러 있어서는 수세적인 입장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과거회귀적인 반동화 현상을 막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는 동시에 학교교육은 전면적으로 재편해 나가는데 가운데 학교 현장의 권력 구조를 어떻게 재편해 나갈 것인가에 문제가 제출될 때 제2의 학민투 투쟁이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전교조의 오류는 새로운 교육체제의 구상과 학민투를 적극적으로 결합하지 못한 채 교선보 등 학교민주화의 높은 과제들을 당위적인 차원에서 주장하는 데 머물렀다는 점이다. 전교조는 학민투의 새로운 단계로의 전화에 실패하였다. 학교 민주주의의 과제를 새로운 교육체제의 구상과 결합시키지 못함으로써 학민투는 수세적인 투쟁으로 후퇴하게 되었으며 전교조 침체의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참교육의 실천의 기수로서 전교조  

   전교조교사에게 자긍심과 정체성을 부여하는 또 하나의 커다란 축은 참교육 실천 활동이다. 교육활동 과정은 학생들의 변화를 초래하는 동시에 교사의 자기-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교육활동은 인간과 인간의 전면적인 접촉과 교류의 과정이며 따라서 가치의 문제가 필연적으로 개입될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 노동 과정은 육체적-지적 능력의 기계적인 방출과정일 수 없으며 교사는 매 순간 가치의 문제와 항상 대면하게 된다.
   이전에 교사는 국가(지배계급)-교육부-교육청-교장-교사로 이어지는 위계적 구조에서 학생들에게 지배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말단 집행자의 역할을 떠맡아 왔다. 교사에게 주어진 말단 집행자로서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학생들에게 명령에 대한  절대적 복종, 규율에 대한 무조건적 준수 등을 요구하면서 학생들을 복종적이고 수동적인 주체로 양성하는 것이었다. 교사와 학생 관계는 교육 관료와 교사 관계와 마찬가지로 수평적인 소통이나 상호 존중과는 거리가 먼 명령-복종 관계였다. 맨 꼭대기의 국가권력에서부터 맨 아래의 학생들까지 명령-복종 관계의 연쇄 고리가 형성되어 있었다. 학교는 규율을 최우선시 하는 억압적 공간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었다. 학교장이 교사들의 인격을 쉽게 깔아뭉갤 수 있는 것처럼, 교사가 학생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이 쉽게 용인되었다.
  또 하나는 국가가 정한 지식이나 가치관을 일방적 관철시키거나 주입하는 역할을 부여 받았다. 교사에게는 사실상 교육과정이나 교육내용을 자율적으로 결정한 권한이 전혀 없었다. 교육목표, 교육내용, 교과서 편찬 등에 대한 결정권은 모두 국가권력이 장악하였다. 여기에  한국사회에 독특한 과열 입시 경쟁의 구조가 교사의 교육활동의 자율성을 더욱 억제하였다.
   이는 교사들에게 교사와 학생 관계의 왜곡에 의한 고통(인간관계의 소외)과 가르치는 자로의 양심과 즐거움의 박탈(교육노동의 소외)이라는 이중의 소외를 초래하였다. 이런 측면에서 참교육 운동은 말단 집행자로서의 역할 거부하고 교사와 학생의 관계 회복(인간적이고 교육적인 관계의 회복-교육은 강압이 아니라 상호소통·상호존중·상호감응의 과정이다-)을 선언하는 것이었으며, 교사들이 자기의 양심과 양식에 기초하여 교육내용을 구성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요구였다.
   참교육 운동이 전개되면서 교사와 학생 사이에 형성되었던 일방적인 명령-복종 관계는 급속히 해체되었으며, 학생 인권의 문제가 교육 활동의 주요한 준거점이 되었다. 교사와 학생의 민주적 소통을 확대할 수 있는 많은 프로그램들이 학교 현장에서 실천되었다. 또한 제한적이지만 수업 내용과 수업 방식에 대한 새로운 변화가 추진되었다.
  하지만 이런 참교육 실천은 곧바로 한계에 봉착하게 되었다. 학생과의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관계 형성과 공통체적 문화의 확산은 학교 환경의 병영적 구조(거대학교, 과밀학급)와 입시경쟁 구조 때문에 심각하게 왜곡되거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학교 환경의 병영적 구조는 강압적인 규율에 끈질긴 생명력을 부여하였다. 입시경쟁이 교육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공동체 문화가 학생들에게 쉽게 스며들 수 없었다. 사활을 건 입시경쟁에 빠져 있는 학부모나 학생에게 민주적이고 공동체적인 가치는 입시효율성이라는 가치에 비해 너무나 한가하고 당위적인 것에 불과하였다. 이런 상황에 개인주의적이고 소비주의적인 청소년 문화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학교는 낡은 규율중심의 권위주의 문화와 학생들의 개인주의와 경쟁주의 문화 사이에 끼여 있는 어정쩡한 모습이 지속되고 있다. 교사와 학생간의 상호 존중과 교육주체들의 수평적인 연대에 기초한 민주적인 공동체 건설의 꿈은 미완인 채로 남아있다.
수업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교사들이 자율적으로 구성한 교육 내용들이 확대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수업을 규정하는 가장 커다란 힘은 입시경쟁교육이었다. 특히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입시경쟁이 과열화되면서 입시 중심의 교육에 대한 압력은 교사-학생 모두에게 더욱 강화되었다. 급별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교사는 입시 교육을 위한 기술적인 향상에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되고 학생-학부모들의 욕구도 효과적인 입시 교육에 집중되었다. 과열입시경쟁과 이에서 비롯된 입시중심 교육은 국가가 교사들의 교육을 통제하는데 매우 효과적인 수단으로 작동하였다. 입시제도와 시험에 대한 통제권만 장악하고 있으면 직접적인 권력 행사 없이도 교사들의 교수 활동을 쉽게 통제할 수 있었다.
  교사의 수업은 교육 이념, 교육 내용, 수업 방법 등의 유기적인 결합을 통해 이루진다. 참교육 활동도 이념, 내용, 방법의 총체적 혁신을 통해서만 제대로 실현가능하다. 하지만 전교조의 참교육 운동은 입시교육현실의 벽에 부딪히면서 새로운 참교육의 지향성과 낡은 입시교육의 잔재가 뒤섞이고 혼재하면서 왜곡되고 뒤틀리게 되었다. 참교육을 위한 새로운 교육활동을 제대로 구현하지도 못하면서 입시교육에 전념하지도 못하는 곤혹스런 딜레마에 처해 있는 것이 현재 대부분의 조합원들의 모습이다. 학교 현장은 여전히 참교육이 아니라 입시교육이 대세인 상황이며 이런 조건에서 교사 개개인이 참교육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참교육 운동이 한계에 봉착하면서 참교육을 표면적이거나 일면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확산되었다. 교사와 학생과의 관계 맺음의 문제를 교사의 가치 지향성- 예를 들어 민주적이고 공동체적인 가치를 중시하는-보다는 단순히 학생을 대하는 태도나 기술의 문제로 협소하게 바라보는 태도가 일반화되었다. 좀 더 엄격하고 권위적인 태도로 학생을 대하는가 아니면 부드럽고 열려 있는 태도로 학생을 대하는가의 문제로 좁아진 것이다. 수업에 있어서도 넓은 지평에서 교육이념이나 교육내용을 고민하는 것보다 수업의 기술적인 측면의 개선을 중시하는 풍토가 확산되었다. 이제 교사의 성향을 나누는 기준은 교사의 가치 지향성-진보적인가 보수적인가-보다는 세대적·문화적 취향에 더 큰 영향력을 받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의 변화와 전교조의 대중화와 맞물리면서 전교조 교사는 참교사라는 등식의 성립이 점차 어려워졌으며 전교조 교사 누려왔던 참교사로서의 독점적 위상도 약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참교육 운동의 왜곡-지체는 입시경쟁구조라는 외적 상황에만 기인하는 것일까? 전교조의 참실 운동이 한계에 봉착한 또 다른 원인은 전교조가 참교육 이념을 전화하는데 실패하였기 때문이다. 전교조 결성초기에 제시되었던 참교육 이념은 다들 알다시피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이었다.
    이는 민족-민주 혁명의 성격 띤 87 혁명에 조응하는 것이었으며 당시의 교육 과제의 핵심이었던 교육민주화-즉 교육관료의 권한 독점이나 권위주의적 교육문화를 타파-와도 호응 관계에 있었다. 1990년대는 87혁명에서 제시되었던 과제 즉 민족-민주 혁명을 자유주의자들의 정치적 헤게모니 아래 진행해나가던 시기였다. 억압적 국가에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 민주화가 최우선의 과제로 제시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었다. 87혁명은 여러 가지 우회를 거쳐 자유주의 세력의 집권으로 현실화되었다. 자유주의 세력의 집권에 의해 억압적이고 냉전적인 국가 권력이 해체되면서 민주-민족 혁명의 과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었다.
    한편 97년 IMF 사태 이후 남한 자본주의는 급격하게 신자유주의적 축적 전략으로 이행하여 갔다. 가혹한 구조 조정, 실업자와 비정규직 양산, 사유화 확대 등을 통해 사회양극화는 심화되어 갔다.
    자유주의 세력의 집권과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이 동시에 전개되면서 즉 자유주의 집권 세력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한국사회의 모순 지형은 급격하게 변화하였다. 국가권력의 형식적 민주화(민주)나 남북 화해의 진전(민족)만으로 대다수의 민중이 처한 가장 중요한 현실의 문제-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에 의해 발생하는 삶의 문제들을-를 해결할 수 없음이 드러났다. 마찬가지로 민주-민족의 이념은 교육의 핵심적 병폐인 입시경쟁중심 교육을 해체하고 새로운 교육체제를 수립할 수 있는 지렛대의 역할을 하기에도 한계가 있음이 드러났다. 여기에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생태문제, 인종적·성적 소수자 문제 등 민주·민족의 프레임으로 포착할 수 없는 문제들이 핵심적인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었다.        
    현실 설명력도 떨어지고 새로운 대안적인 전망을 세우는데 나침반 구실을 하기에도 부족한 민족·민주의 프레임의 전화가 절실히 필요하였으나 전교조는 그런 과제를 충실히 해내지 못했다. 기존의 참교육 이념은 현실적인 생명력을 상실한 관습적인 구호로 전락하였다.  일반 국민들은 전교조가 지향하는 참교육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으며 그들이 내세우는 민주·민족 교육에 대하여 공감하기 힘들었다.
    조합원들도 전교조의 참교육 이념이 더 이상 교육활동을 위한 나침반 구실을 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하였다. 전교조의 참교육 실천 활동이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사랑으로 대하고’ 등등의 당위적인 것을 넘어서 구체적인 교육활동의 방향을 제시하고 새로운 교육활동의 전망을 세우는데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함을 인식하게 되었다. 집단적 실천으로 참교육은 쇠퇴하고 개별적인 차원에서 변화된 상황에 적절한 대응 방안을 찾아야 하는 것이 조합원들의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참교육 실천을 통해 조합원들이 집단적인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조합원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참교육 실천을 통한 교육활동의 보람을 느낄 기회가 점차 감소되었으며 참교육의 기수로서 전교조에 대한 자긍심도 약화되어 갔다. 이것이 전교조 침체와 위기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다.


교육개혁 투쟁의 중심 세력으로서의 전교조

참교육만큼이나 교육개혁은 전교조의 핵심적인 아이콘이었다. 전교조 결성 초기에 전교조의 교육개혁 운동은 주로 비리 척결운동, 학교자치 확대 운동, 교육 여건 개선 운동으로 집중되었다. 이 중에서 비리 척결운동(촌지 안받기, 사학비리 척결운동 등)은 전교조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대중화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학교 자치 운동은 교사의 민주적 참여를 확대하려는 교무회의 의결기구화와 교선보 투쟁은 좌절된 반면 학부모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투쟁은 학교운영위원회라는 매우 절충적인 결과로 귀결되었다.- 학교운영위는 학부모회의 합법화를 동반하지 못함으로써 소수의 상층학부모들의 발언권만 확대하는 결과를 초래하였으며 심의기구라는 애매한 위상 때문에 교장권력을 견제하는데 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  최근에 학교 운영위가 학부모들의 입시 교육요구의 창구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교육주체 간의 연대와 소통을 확대하는 역할보다는 입시중심 교육을 강화하거나 이를 위한 반인권적인 조치들을 확대하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교육여건 개선 운동은 누구도 부정하기 힘든 정당성을 지니고 있다. 교육여건개선은 누구다 최소한 겉으로는 찬성하고 공감하는 사안, 하지만 재원의 한계를 내세우면서 쉽게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사안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교육여건개선투쟁은 폭넓은 공감대에 불구하고 전선의 대중적인 형성이 쉽지 않으며 종종 투쟁의 사안보다는 협상의 사안으로, 점진적의 개선의 문제로 인식되는 경향성이 강하다.  

   전교조 결성 초기에는 비리척결-참여확대-교육여건 개선 투쟁에 대한 상대적으로 높은 대중적 관심과 지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전교조의 촌지 거부 운동이나 사립학교 비리 척결 운동은 일반대중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 하지만 이런 운동들이 확산되어 나감에도 불구하고 교육으로 인한 학부모와 학생들의 고통이 해결되거나 완화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오히려 입시 경쟁이 강화되면서 학부모의 부담은 나날이 증가하였으며 학생들의 삶은 더욱 비참하였다. 경쟁의 심화는 교육을 통한 불평등의 재생산 경향성을 더욱 심화시켰고, 이에 따라 소수의 상류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부모나 학생들은 희망과 대가도 없는 무모한 희생만을 강요당하였다. 자식의 미래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소모적인 출혈인 줄 알면서도 한 줄기 실낱같은 가능성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교육현실이 학부모들의 고통과 불만을 더욱 가중시켰다.  
    전교조는 이런 교육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였다. 여전히 낡은 프레임인 (비리척결-참여확대-여건개선)에 묶여 있으면서 한국 교육의 모순의 중심 고리인 과도한 입시경쟁 체제(학생들의 고통 증가) - 입시중심의 교육과정(교육의 본질 상실) - 사교육비 과대 지출(학부모의 고통) - 대학서열화·학벌사회(사회적 불평등 심화와 대학교육의 왜곡) - 교육으로 인한 계급재생산(교육의 사회적 기능의 왜곡)에 대한 치열한 비판과 대안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였으며 당연히 이런 의제를  대중화하는데도 실패하였다. 새로운 프레임으로 전화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에서 전교조는 멈추어 서버린 것이다.(합법화 국면이 대대적인 전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고 판단된다.)
    전화의 시기를 상실한 전교조는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서는 투쟁에서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교육시장화 정책을 추진하는 지배세력들은 교육으로 인한 대중들의 고통을 적절히 활용하였다. 마치 교육시장화 정책이 교육문제 해결을 위한 개혁인 것처럼 포장하였으며, 교육문제의 책임을 학교나 교사에게 돌리면서 시장적이고 경쟁적인 학교정책이나 교원정책을 정당화시켜 나갔다. 실제로 일부 교육운동 주체들조차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을 낡은 교육체제의 해체로 오인하였으며, 많은 일반 대중들이 대안 부재 속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소극적으로 수용하는 모습을 모였다. 반면에 전교조의 반신자유주의 투쟁은 대안 없는 반대로 보였으며 변화를 거부하는 낡은 세력으로, 교사들의 이익만 옹호하는 집단 이기주의 세력으로 이미지화하려는 지배세력들의 선전공세가 쉽게 먹혀들어갔다.
    이수일-정진화 집행부(참실연)는 자유주의 집권세력과 연대하여 여전히 낡은 프레임의 과제를 실현하는 것을 우선시하려 하였으나 신자유주의 정책에 경도되어 있던 집권세력으로부터 유의미한 성과를 얻어내지 못하였으며 결과적으로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해서 방기하는 모습만을 노정하였다. 반면에 원영만-장혜옥 집행부(교찾사)는 자유주의 집권 세력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신자유주의 공세 저지 투쟁에 총력으로 나섰지만 신자유주의 세력이 힘과 이데올로기 지형에서의 압도적 우위(보수세력+자유주의세력이 결합한 신자유주의 동맹의 정치적 강성함과 이에 대항할 수 있는 진보 진영의 허약함)를 차지하는 정치·사회적 조건에서 일부 시장화 정책을 지연시키고나 완화시키는데 부분적인 성과를 거두었지만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승리로 이끌만한 힘이 부족함을 드러냈다.
  
     대외적으로 전교조의 교육개혁 세력으로서의 이미지는 점차 퇴색하여 간 반면, 반대 세력으로서의 이미지는 강화 되어갔다.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힘과 전망은 부족한, 하지만 뭔가 문제가 있어 보이는 교육시장화 정책에 대해서는 강력히 반발하는 집단 정도가 현재의 전교조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 일 것이다. 조합원들에게는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전교조가 교육개혁 운동의 방향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던 정파들이 집행부를 번갈아 담당하였지만 어느 쪽도 성공적으로 사업을 수행하지 못함으로써 전교조 운동에 대한 전망과 자신감을 잃어나가기 시작하였다. 전교조에 대해 거리를 두는 조합원이 늘어갔으며(일부는 탈퇴하였고), 적극적인 활동가를 충원하는 일도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쉽게 나타나는 심리적 현상이 바로 ‘퇴행’이다. ‘아 좋았던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라는 퇴행적 심리의 반영물이 일부 조합원들이 주장하는 ‘초심론’의 실체이다. 옛날에 누렸던 영화를(사실은 전교조가 영화를 누린 적은 없다. 전교조의 역사는 시련의 역사이지 영화의 역사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과거는 영화의 시기로 회상되기 쉽다.) 되찾기 위해 옛날로 돌아가자는 초심론은 갈등과 혼돈에 처해 있는 청년이 유아기 때의 환상적인 자기 동일성의 세계를 그리워하는 것과 비슷하다. 초심론은 대립과 갈등을 초래할 일은 그만하고 아이들을 무조건 열심히 가르치고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고, 기금 만들어 장학금도 주고 제2의 촌지거부 운동도 하여 전교조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자라고 주장한다. 순수한 전교조(유아기의 전교조)와 타락한 전교조(청년기의 전교조)의 이분법에 갇혀있는 초심론은 쉽게 탈정치적, 비투쟁적 전교조에 대한 주장으로 귀결된다.
    거의 동일한 맥락에서 현장에서 학생과 학부모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작은 변화부터 시작하자라는 주장들이 존재한다. 그 자체로는 문제가 없지만 그것이 전교조의 주요 노선이 될 경우에는 문제는 달라진다. 교육체제의 전반적인 변화를 꾀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교육이나 학교 모델을 개발하기 위한 시험적인 시도로서의 학교 개혁운동은 의미 있겠지만, 일부 학교에서의 실험을 점차 확산하여 교육체제 전체를 바꾸겠다는 발상은 한국 교육의 고도의 중앙집중성, 과도한 경쟁시스템 등을 고려해 보았을 때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학교 개혁의 실험은 매우 제한적이고 특수한 실험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mb 집권 이후 역주행이 가속화되면서 민주-민족 혁명의 과제가 다시 부활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민주주의의 퇴행에 대한 대중적 우려와 분노가 확산되고 있으며, 북한에 대한 냉전적인 대결 정책이 심화되면서 전쟁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표면적인 상황에 조응하여 반mb 민주대연합론이 퍼져나가고 있으며, 전교조에서는 교육감 선거를 위한 연대의 확장에 전교조의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논리로 나타나고 있다. 반mb 투쟁이 현재의 주요 과제인 것은 분명히 맞지만 반mb 투쟁이 단순히 자유주의 세력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강화시켜주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반mb 투쟁에서 우리가 견지해야 하는 전략적인 방향은 반신자유주의와 반자본주의(자본권력의 통제나 자본주의 지양 모두를 포괄하는 입장으로서) 노선이다. 반mb 교육감 후보의 당선도 중요한 일이지만 교육운동을 전화시키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전략적 방향의 견지와 교육운동의 전화를 위한 노력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지난 10년 자유주의 정권에서 되풀이되었던 기대와 실망(배신)의 반복 운동과 선거에서의 수구세력과 자유주의 세력 사이에서의 진자운동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다시 정치적 헤게모니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자유주의 세력의 타락과 배신을 막기 위해서도 그들을 밀어주는 무조건적인 연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진보 (교육)운동의 독자성을 강화하고 진보적인 의제들과 대안들을 적극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겉으로 드러나는 현실의 핵심 문제는 mb의 독재에 반대하여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문제인 것 같지만, 더 커다란 지형의 변화는 이미 생력을 다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이후의 시대를 어떻게 재편해 나갈 것인가의 문제이다.(세계적인 신자유주의의 쇠퇴가-이것도 현재로서는 불명확하다.- 한국에서의 신자유주의 쇠퇴를 자동적으로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주체적 대응이 없는 이상 아무리 커다란 위기나 문제가 발생해도 계속 밀고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진보세력들은 반mb 연대 전선 구축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포스트 신자유주의 시대를 어떻게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전망과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더 많은 힘을 기울여야 한다. 교육 부문에서도 탈시장주의-탈입시경쟁교육의 전망과 대안 마련에 역량을 쏟아야 하며 자유주의 세력과의 연대 전술보다도 그들과 차별화 전략에 집중해야 한다. 자유주의 세력과의 전술적 연대는 그들과 전략적 차별화 즉 독자성의 확립이라는 전제 속에서만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글을 마치며

   전교조의 지난 20년을 되돌아보면 전교조가 유아기-소년기-청년기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 어딘가에서 성장이 멈춰버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이는 전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진보적 정치 운동도 프레임 전환에 실패하였다. 자유주의 세력의 집권 기간 동안 민주당 2중대의 이미지를 벗어날 수 있는 독자적인 포지션의 확보에 실패하고, 민족-민주의 낡은 프레임에 머물러 있는 정당의 이미지를 혁신하지 못함으로써 결국 자유주의 정권과 동반 몰락하였다. 진보적 노동운동도 노동계급으로서 정치적-사회적 헤게모니를 확대하기는커녕 계급내의 단결도 제대로 이루어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교조만이 새로운 국면으로 전화를 이루어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교조는 전체 운동 중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주체 역량이 튼튼한 집단 중에 하나다. 전교조가 학민투와 참교육실천과 교육개혁 운동 모두를 관통할 수 있는 프레임의 전화를 모범적으로 이루어 내고 이를 다른 운동으로 확산시켜 내야 한다.

   프레임의 전화를 너무 좁게 해석하는 것을 경계해야할 필요가 있다. 프레임의 전화를 마치 몇몇 지식이나 이론가들이 새로운 담론과 정책을 생산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우선 현장에서 새로운 논의의 흐름들을 광범위하게 조직해 나가야 한다. 새로운 프레임은 다수의 사람들이 세상을 새롭게 읽을 수 있는 새로운 관점 즉 대중적 이데올로기가 되었을 때 의미가 있다. 최근에 여러 분회에서 책읽기 모임이 활성화되고 있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조합원과 교사 대중이 지금의 답답한 현실을 뚫고 나갈 새로운 전망과 담론에 목말라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는 아닐까? 지난 10년간 취미생활이나 운동 등 개인적인 관심사로 흩어져 갔던 교사들을 다시 묶어세울 수 있는 가능성이 다시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다양한 대중적 논의와 실천의 흐름들이 형성되고 활성화되는 가운데 새로운 프레임을 형성할 수 있는 공통분모들이 만들어져야 한다. 새로운 프레임은 담론과 이데올로기를 목적의식적으로 생산하고 확산하려는 위로부터의 노력과 대중의 자발적인 논의와 실천의 흐름이 부단히 뒤섞이고 서로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형성된다.

  지난 10년은 학부모·학생과 실천적인 연대가 결여된 교사만의 교육운동이 얼마나 한계가 많은지를 뼈저리게 느낀 시기였다. 학부모·학생과 광범위한 실천적 연대가 필요하며, 연대가 이루어지는 핵심적인 공간은 지역이다. 지역에서 구체적인 사안을 중심으로 공동실천을 조직해 나가는 동시에 교사, 학생, 학부모가 교육과 사회 문제들에 대한 상호 소통과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할 수 있는 공동의 담론 공간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교사뿐만 아니라 학부모와 학생과 함께 교육운동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세워나갈 때 교육운동의 실제적인 전화가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교육운동의 전화-프레임의 전환-를 뒷받침할 수 있는 새로운 담론과 이데올로기, 정책과 대안을 생산할 수 역량을 강화시켜야 한다. 진보 정치운동과 정당 운동이 허약하기 때문에 각 부문 운동이 이런 과제를 고스란히 떠맡아야 하는 상황이다. 현장성에 기반을 두고 성장해 온 교사 연구 역량을 묶어 내고 전문적인 연구 역량이 풍부한 교수들과  협력을 이루어낼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전교조의 연구 활동은 주로 현안 대응 논리 개발을 위한 단속적이고 부분적인 연구에 집중되었다. 앞으로는 교육운동의 전략적 방향과 총체적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지속적이고 전면적인 연구활동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연구 역량의 유기적인 협력 관계의 구축도 당연히 필요하다.
     사실 교육 부문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전략적 방향에 대한 합의 가능성이 높은 분야이다. 교육이 가지고 있는 공공적 성격 때문에 사민주의든 사회주의든 심지어는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공화주의자든 그들의 정치적 지향성과 큰 관계없이 교육을 공공성의 원리에 기초하여 개편해 나가자는 데 합의를 이루어 낼 수 있다. 문제는 진보적 정치운동과 사회운동의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담론투쟁과 대안투쟁을 활동가들조차 낯설어 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를 대중화할 수 있는 수단과 전술들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전교조 침체의 원인을 ‘새로운 프레임으로 전화의 실패’라는 관점을 통해서 분석하여 보았다. 물론 ‘전화의 실패’로 전교조 침체의 모든 원인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교육운동의, 전교조의 전화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점이며, 이런 전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전교조의 침체는 계속될 것이며(정세의 흐름에 따라 잠시 반짝일 수는 있겠지만) 끝내는 위기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 전화가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갈 수 있을 것이다. 전교조 운동과 교육운동의 새로운 단계로의 도약하면서 노동운동과 진보 정치 운동의 새로운 전진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전교조는 기로에 서 있다. 교육운동의 전면적인 전화를 통해 새로운 도약의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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