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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 [현장에서] 남부모임에 대한 잡상

2009.07.13 18:32

진보교육 조회 수:1419

남부모임에 대한 잡상

위대한 따이루 / 청소년활동가



  청소년인권운동이라는 걸 시작한 지 3년이나 됐다.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재미도 있었고, 있었지만, 많은 고민들이 생겨서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특히 지난 촛불시위 이후 ‘대중’이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대중이 누구냐는 복잡한 질문부터 ‘촛불의 힘과 원인은 어떤 걸까?’‘왜 기존에 운동에서는 이만큼 대중의 힘이 표현되지 못한 거지?’라는 고민까지....  1년 넘게 계속 품고 있는 쉽지 않은 고민들이라 아직 고민들이 깔쌈하게 정리되지 않았지만 그 고민 속에서 잡은 하나의 실마리가 있었다.

‘어려울수록 돌아가라’‘어려울 때일수록 원칙이 필요하다’ 뭐 이런 이야기를 누가 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들었던 기억이 있다. 쉽지 않은 복잡한 운동에 대한 고민들 속에서 이 운동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사회를 바꾸는 운동이라는 게 사람들이 함께 힘을 모아 무언가를 막아내고, 바꿔내고, 만들어가는 과정인 것인데 그럼 지금 필요한 건 사람을 만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어떻게 되든 일단 사람을 만나보기로 작정했다.

  어떻게 청소년들을 만날까를 고민했는데, 원칙적으로 따져보면 학교라는 공간이 자주 만나고, 만날 수 있는 장소/시간도 많고, 공통된 이슈가 훨씬 많으니깐 만나기는 더 좋을 거 같았다. 그래서 첫 번째 시도로 학교에 인권동아리를 만들고 학생들을 모았다. 모이기는 10명이 넘게 모여서 대박이었지만 학교라는 틀 안에서 인권동아리가 불편한 진실을 알리고, 바꿔내고, 만들어내는 발칙한 존재가 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교사/학생 - 선배/후배간의 없애고 싶어도 없어지지 않는 이 어색한 위계, 권위부터 시작해서 활동이 공개되고 검열되어야만 유지되는 학교 상황에서 학교/교사들로부터의 은근한 또는 대놓고 하는 감시와 비난 또한 동아리를 움츠러들게 만드는 한 원인이었다. 원칙은 아름다웠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었달까나?

  그래서 학교에서는 작전상 후퇴하고 쫌더 가벼우면서도 서로 가까운 ‘지역’을 파고들기로 작심했다. 그치만 가까워도 은근 넓은 이 지역에서 청소년들에게 존재를 알리고, 찾아오게 만들고, 찾아가는 게 막막했다. 그래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지역에 어느 정도 기반을 둔 기존의 조직과 함께하면 그나마 길이 보이겠다 싶어서 전교조서울남부지회에서 따이루와 코드가 맞을만한 왕따들과 작당을 시작했다.

  작당도 간단하지 않았다. 전교조님하들이 좋아하면서도, 이 기존사회에 삐딱한 그 느낌을 살리면서 청소년들과 상콤발랄하게 만날 수 있는 게 뭘까를 고민하다가 같이 활동하는 교육공동체‘나다’가 진행하는 인문학토론수업을 가지고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부모들한테는 대입논술준비한다고 하면 어찌 될 거 같고, 교사들은 교사들이 가지고 있는 인문학과 토론에 대한 환상과 기대라면 충분히 도와줄 거 같았고, 할 말 많지만 착한 어린이로 살아가느라 말 못하는 쩔어가는 청소년들도 좋아할 거 같았고, 교육주체들의 코드가 딱 들어맞는 꽤나 완벽하다 싶은 계획이었다. 그래서 시작된 게 ‘남부지역청소년인문학아카데미 <거짓말>’이었다.

  이 청소년아카데미를 처음 준비할 때는 일단 지르자는 심정으로 대책 없이 지른 사업이었다. 부모/교사들에게 대입논술준비라는 이름으로 강제(or반강제)로 끌려오는 청소년들과 이야기를 해야 얼마나 할 수 있을까, 그나마 오기는 올까 하는 회의가 가득했지만 뭔가는 해야 그 다음 답을 찾을 수 있을 거 같아서 살짝 던진 미끼였달까나? 만약 된다면 되겠지 싶은 심정으로 사업을 질렀는데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생각보다 사람들이 덥석덥석 잘 물었다. 진짜로 될 대로 되고 있었다. 그 덕에 한 아카데미에서 15명 내외의 청소년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 청소년들 구성도 생각했던 것처럼 모범생으로 가득하지 않은 발칙한 모임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확실히 다들 ‘청소년’이라는 억압받아온 계층이라 그런지 차이는 조금씩 있었지만 기본적인 공감대가 있어서 이야기도 술술 잘 진행됐다.

  이 아카데미는 현재 시즌2까지 진행됐는데, 시즌1에서는 약 30여명 정도의 청소년들을 만났고, 시즌2에서는 시즌1에서 만난 청소년들 5명쯤과 새로운 페이스 10여명이 함께했다. 아카데미에서 약40여명의 청소년들과 만나 이런저런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진행한 거다. 그리고 그 40여명의 청소년 중 10여명의 청소년들과 남부지역청소년인권모임을 구성하기까지 했다.

  처음 욕심으로는 청소년인권모임을 바로 만들고 싶었지만 아카데미를 준비하면서 생각보다 쉽지 않겠구나 싶어서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청소년들의 발칙한 모임이 있으면 좋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려면 최소한 1년은 넘게 기다리면서 이야기해봐야 어찌어찌 되겠군 하고 체념하고 있었다. 근데 행운인지 불운인지 ‘사건’이 터졌다. (사실 남부지역청소년인권모임이 만들어진 데는, 이명박에게 좀 빚을 지고 있다.)

  시즌1이 끝난 후 학생의날 행사로 입시에 미친 교육/사회에서 미친 듯이 놀아보자면서 '끌리면 오라!2008남부지역청소년파티!<미친파티>'를 진행하게 되었는데, 이때 위대한 이명박 각하를 바보라고 놀린 행사포스터로 인해 행사 하루 전에 파티장소였던 하자센터의 장소계약이 일방적으로 깨지고, 오기로 했던 준비팀과 공연팀을 협박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때 개인적으로는 '아 이제 X 됐다....ㅁㄴㅇㄹ‘하면서 청소년들이 쫄아서 공중분해될 거라고 절망에 빠졌었는데, 그런데 오히려 함께 준비했던 청소년들이 이명박 개새끼를 외치며 하자센터에 쳐들어가자고 흥분된 상황이 되었다. 누군가 'TV에서만 보던 일이 진짜로 일어나는구나.'라고 말했다. 386들의 형식적인 민주주의마저 무너트리는 이명박 각하에 대한 분노가 잘못된 현실을 바꾸기 위해 행동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만들어주셨다. 공포는 분노가 되었고 분노는 저항의 불씨가 되었다. 운동을 발전시키는 건 운동을 하는 사람보다 운동을 가로막으려는 그분들인 것일까?

  그 결과 약10명쯤 되는 남부지역청소년들이 아카데미를 통해 모여 지금까지 지역청소년인권모임을 만들기까지 했다. 아직까지 토론을 진행하는 정도 밖에는 활동이 없는 상황이지만 나이 어리다고 자기 생각 하나 말하지 못하는 이 암울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새파랗게 어린 청소년들이 10명씩이나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다 지금같이 진보적인 운동한다는 사람들이 갈 길 못 찾으면서, 끼리끼리 죽어가고 있는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 누구 하나 나서지 못하고 있는 암울한 운동사회 안에서 하나의 대안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거기도 하니깐 말이다.

  위에서 말했지만 대책 없이 지른 사업이었고, 될 대로 되는 사업이라 아직 막막한 상황이다. 아카데미의 방식이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학교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 운동을 지금까지 해오던 사람들과 착하게 학교생활 열심히 하던 청소년들 사이에서 경험과 감수성의 차이를 꼰대가 되지 않고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고여서 썩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면서 힘을 길러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등등등. 운동의 방식에도 많은 고민이 있고, 어떠한 주장들을 펼쳐나갈지에 대한 고민들도 아직 많다. 그치만 지금까지 대책없이도 아카데미와 모임이 되어왔다는 건 같이 이야기하면서 고민해나가면 풀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 아닐까? 한 마디로, 지금 필요한 건 닥치고 고민이 아니라 일 저질러 버리기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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