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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셈나]  ‘자본주의와 한국사회 세미나’팀 열공기~

1. <자본론>1권 읽기

래디컬/자본주의와 한국사회 세미나팀원


“부르주아 경제학에 대한 비판이 하나의 계급을 대변하고 있는 한, 그것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타도와 모든 계급의 최종적 철폐를 자기의 역사적 사명으로 하고 있는 계급, 즉 프롤레타리아를 대변할 수 있을 뿐이다.”
-칼 마르크스, <자본론> 제1권 제2판 후기에서-

  연구소 내에 ‘자본주의와 한국사회’ 세미나 모임이 만들어진지 2년의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 세미나 초창기 구성원으로서 지난 2년을 잠시 되돌아 본다면 다음과 같은 점이 좋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첫째는 대다수 구성원들이 각자의 활동 분야에서 바쁘게 생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빠지지 않고 정해진 세미나 계획에 맞추어 오랜 시간에 걸쳐 진지하게 학습에 임했다는 점이다. 세미나를 학기 단위로 실시했는데, 소수의 구성원 변화가 있었을 뿐 7-8명 정도의 고정된 구성원들이 꾸준하게 참여함으로써 세미나가 안정적으로 굴러가게 되었다. 둘째는 세미나 이후에 이어지는 뒤풀이에서의 교육운동, 노동운동, 자본주의 현실에 대한 진지한 의견 교환을 통해 사회를 바라보는 안목이 성숙해지고, 또한 교직 생활과 교육노동운동을 해 가면서 느끼는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대화함으로써 구성원 상호간의 친목과 유대가 더욱 강해졌다는 점이다. 단순히 학습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학습과 생활이 이어짐으로써 동지적 애정을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세미나 모임이 되었다고나 할까?

  지난 3학기에 걸쳐서 우리 세미나 팀은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다양한 대안과 관련된 국내외 학자들의 논문과 저서를 중심으로 학습을 해 왔다. 그리고 나서 2008년 하반기에 우리는 “교육노동운동을 함에 있어서 그 목표와 방향을 정확히 알기 위해 현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이해에 중심을 둔다. 따라서 제국주의로서의 자본주의가 세계를 어떻게 지배하고 있으며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며 인간의 삶을 포기하게 하는 신자유주의적 21세기 자본주의의 극복과 대안을 찾기 위해 교육노동운동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본다.”라는 목표 하에, 자본주의 체제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한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제1권을 차근차근 읽으며 그 안에 숨어있는 경제 철학과 노동에 대한 생각을 이해하고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모순점을 발견해 나가며 토론하는 시간을 갖자는 결정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세미나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미국발 금융 위기가 심화되었고, 여러 전문가들이 신자유주의 체제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전망을 내놓는 가운데 독일에서는 <자본론>의 판매가 급증하고 일본에서는 공산당에 가입하는 20대~30대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우리는 세미나 교재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잘 선택했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고 더욱 열심히 학습해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게 되었다.

  사실, 세미나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들에게 <자본론>은 제목은 많이 들어 보았지만 읽지 않았거나, 예전에 읽었을 때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한 채 지나가서 기억에 어렴풋이 남아있거나 체계적으로 내용이 정리되지 못한 상태였다고나 할까? 그래서 이번 세미나를 하면서 나는 개인적으로 발제자들의 발제문 준비와는 별도로 <자본론>을 정독하면서 나름대로 발췌를 해 가며 정성껏 읽으려고 노력을 했다. 그리고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은 발제자들의 발제문을 참조하고 우리 세미나 모임의 탁월한 팀장 김산님과 다방면에 걸쳐 교양이 풍부한 은하철도님의 친절한 해설을 들으면서 내용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있었다. 사실, 모든 책들이 마찬가지겠지만, <자본론>도 그 책을 읽는 독자들의 관심사 내지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수용될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가 당시의 대단한 교양인이었기 때문에, <자본론>에는 경제학 뿐만 아니라, 철학, 문학, 역사 등 다방면의 지식이 총체적으로 결합되어 있어서 독자들의 다양한 흥미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내가 이번에 <자본론> 1권을 흥미롭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새롭게 읽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이 글에서 <자본론> 1권의 모든 내용을 다룬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여기서는 먼저 <자본론> 1권의 핵심적 내용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를 해 보고, 내가 특히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에 대해서 소개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오늘날 <자본론>을 읽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자연 법칙들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적대 관계의 발전 정도가 높은가 낮은가는 여기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 법칙들 자체에 있으며, 움직일 수 없는 필연성을 가지고 작용해 관철되는 이 경향들 자체에 있다.”
-칼 마르크스, <자본론> 제1권 제1판 서문에서-

  먼저 ‘자본의 생산과정’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자본론> 1권의 핵심적 내용은 이윤의 원천에 관한 것인데,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정리될 수 있다. 자본가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화폐를 가지고 공장을 세워 상품을 생산하고 이 상품을 팔아 이윤을 얻는다면, 그 이윤은 도대체 어디로부터 발생하는 것인가? 이 때 상품은 자기 값대로 매매된다고 가정해야 한다. 따라서 이윤은 상품의 판매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상품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건물이나 기계나 원료는 자신들의 가치를 상품 생산물에 그대로 이전시키지만,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임금을 받고 노동함으로써(노동력을 판매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 그런데 이 새로운 가치가 임금보다 크기 때문에 이윤(잉여가치)이 발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노동자가 창조한 가치가 임금과 이윤으로 분할되는 것이다. 노동자의 잉여노동이 이윤의 원천이라는 것, 그리고 자본가는 잉여노동을 증가시키기 위해 노동시간 연장, 기술 혁신, 노동강도 강화를 도모한다. 그런데 자본가는 한번 이윤을 얻었다고 생산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큰 이윤을 얻으려고 자신이 획득한 이윤을 재투자한다. 이것이 자본의 축적이다. 자본의 축적과정은 주로 기술혁신을 수반하는데, 이것으로 말미암아 노동자에 대한 수요는 감소하고 따라서 실업자가 증대하게 된다.


“사람들은 그들의 상이한 생산물을 교환에서 서로 가치로 등치함으로써 그들의 상이한 노동을 인간 노동으로서 동등시하는 것이다. 특수한 생산형태(상품생산)에서만 타당한 것(즉, 서로 독립된 사적 노동들의 독특한 사회적 성격은 사적 노동들이 인간노동으로서 동등하다는 데 있으며, 그 사회적 성격이 노동생산물에서 가치라는 존재 형태를 취한다는 사실)을 상품생산의 관계에 파묻힌 사람들은 절대적 타당성을 가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노동시간에 의한 가치량의 결정은 상품의 상대적 가치의 현상적인 운동의 배후에 숨어 있는 하나의 비밀이다. 상품생산자 사회의 일반적인 사회적 생산관계는, 생산자들이 자기들의 노동생산물을 상품으로, 따라서 가치로 취급한다는 점, 그리고 이 물적 형태에서 자기들의 개별적 사적 노동을 동질적인 인간노동으로 서로 관련지운다는 점에 있다.”
-칼 마르크스, <자본론> 제1권 1장 4절 상품의 물신적 성격과 그 비밀에서-

다른 물건의 가치량을 표현하는 물건은 교환 관계와는 독립적으로 자기의 성질 속에 내재하는 사회적 속성으로 등가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상품체, 금 또는 은은 지하로부터 나오자마자 모든 인간노동의 직접적 화신으로 된다. 여기에 화폐의 신비성이 있다. 화폐물신의 수수께끼는 상품물신의 수수께끼가 사람들의 눈을 현혹시키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칼 마르크스, <자본론> 제1권 2장 교환과정에서-

  <자본론>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비판에 많은 내용을 할애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학적 성격이 강한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론> 1권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읽었던 곳은 사회철학적 성격이 두드러진 ‘상품 물신성’과 ‘화폐 물신성’을 다룬 부분이었다. 이 물신성과 관련된 내용은 ‘인간이 자신들의 만들어내 관념의 산물인 신을 인간 스스로가 숭배하고 있다’고 주장한 마르크스의 선배 철학자 포이어바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서, 나중에 게오르그 루카치나 에리히 프롬 같은 철학자들의 경우에도 ‘물신성’에 관심을 갖고 자신들의 이론을 전개한 바 있다. 그렇다면 ‘상품 물신성(物神性)’과 ‘화폐 물신성’이란 무엇인가?(상품 물신성과 화폐 물신성에 대한 설명은 철학사상 별책 제3권 제18호인 손철성의 “마르크스 <자본론>”에서 인용함)

◎ 상품 물신성
마르크스는 노동생산물이 상품의 형태를 취하게 되면 그것이 신비한 물신적(物神的) 성격을 갖게 된다고 본다. ‘상품의 물신적 성격’이란 상품이 인간 노동의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하나의 독자적인 힘을 가진 것처럼 나타나는 것인데, 상품 자체가 갖고 있는 자연적인 속성으로 인해서 상품이 다른 상품과 교환될 수 있는 독자적인 가치를 지닌 것으로 보이게 한다. 이로 인해 상품 교환을 둘러싼 생산자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는 은폐되고, 그 대신 상품들의 힘에 의해 상품들 사이의 독자적인 관계가 형성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마르크스는 교환관계에서 상품들 사이에 일정한 가치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그 상품들 속에 인간의 노동, 특히 추상적 인간노동이 공통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인데, 사람들이 이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상품들이 서로 가치 관계를 맺기 때문에 인간 노동의 동질성이 확보된다고 보기 때문에 상품 물신성이 발생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동질의 인간 노동이 상품 사이의 가치관계를 형성시키는 바탕이 아니라 상품들 사이의 가치관계가 동질의 인간노동을 형성시키는 것이라고 잘못 파악하기 때문에 상품의 물신적 성격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 화폐 물신성
마르크스는 화폐의 물신적 성격도 이러한 상품의 물신적 성격과 동일하다고 말한다. 상품의 물신적 성격은 화폐 형태에서 그 정도가 더욱 심화된다. 상품의 특수한 형태인 화폐는 그 자체의 독특한 자연적 속성으로 인해 다른 모든 상품과 교환될 수 있는 독자적인 힘을 가진 물건으로 보이게 된다. 그래서 화폐의 물신적 성격은 상품의 경우보다 더욱 심화된다. 그러나 이러한 화폐의 물신적 성격은 상품의 물신적 성격처럼 사람들의 눈을 현혹시키는 착각에 불과하다. 화폐의 물신적 성격은 다른 모든 상품들이 자신의 가치를 금과 같은 특정한 상품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그 상품이 화폐가 되었다는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오해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나타나는 ‘상품 물신성’과 ‘화폐 물신성’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상품 가치의 실체가 노동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상품 그 자체가 스스로 가치를 가지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나타나기 때문에, 사람들은 노동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 그 자체를 숭배하게 된다. 그리고 교환 과정에서 가치의 담지자가 된 화폐는 상품의 가치를 대표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역시 가치의 실체가 노동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화폐가 스스로 가치를 가지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된다. 이제 화폐가 하나의 권력으로 사람들을 지배하게 되며, 자본주의 사회의 구성원들은 노동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화폐를 숭배하게 된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인간의 노동이 존중받는 것이 아니라, 인간 노동의 산물인 상품과 화폐가 인간 자체보다도 더 존중되는 왜곡된 상황, 즉 인간이 소외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분석 방법은 지금까지 경제 문제에 적용된 적이 없기 때문에 첫 몇 장은 읽기가 대단히 힘듭니다. 학문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오직 피로를 두려워하지 않고 학문의 가파른 오솔길을 기어 올라가는 사람만이 학문의 빛나는 정상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칼 마르크스, <자본론> 제1권 프랑스어판 서문에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사실, <자본론>에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 관한 묘사가 가끔씩 등장하지만, <자본론>을 제대로 읽어 보지 않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결코 사회주의 혁명의 정당성과 사회주의 체제 건설의 필요성을 직접적으로 선동하고 있는 책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자본론>을 읽으면서 마르크스가 분석하고 비판하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가 결코 완벽한 체제가 아니라 많은 모순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가 반드시 영원히 지속되는 절대적인 체제가 아니라 단지 특수한 사회 단계에 불과하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의 실천 활동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얻게 되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아직도 현실 비판적인 이론으로서 자본주의 사회의 심층을 해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부족하나마 이번 세미나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가 움직이는 그 본질적 매커니즘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마르크스가 살았던 19세기의 자본주의와는 달리, 글로벌 자본주의의 형성, 국제 금융자본의 지배,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만연과 같은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그 속에서 다양한 위기가 발생하면서 우리의 인간다운 삶이 계속해서 위협받고 있는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이루어진 분석과 비판을 바탕으로 하여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 대한 전망과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좀더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그러한 전망과 대안을 마련하여 현실을 바꾸어 나가는데 조그마한 기여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자본주의와 한국사회’ 세미나 모임에서 <자본론>을 읽었던 것은 아마도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 2.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 리오 휴버먼 지음/장상환 옮김, 책벌레 펴냄

  80년대와 90년대 초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 중에는 특별히 운동권 학생이 아니더라도 학과에 학회라는 것이 있어서 사회과학 서적들을 읽고 토론을 하면서 암울한 사회 현실을 고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 서적들 중에는 자본주의 사회를 변혁하고자 하는 운동권 대학생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던 ‘경제사’와 ‘정치경제학’ 관련 교과서류 서적들이 많이 있었다. 물론, 나도 그 당시에 그런 책을 읽었지만 딱딱한 형식에 쉽지 않은 내용을 다루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책을 읽어야 하는 필요성에 대한 고민을 별로 하지 않아서 그랬는지 기억에 오래 남지 않았다. 그 이후로 ‘경제학’은 나와는 상관없는 학문이라는 생각을 가진 채로 살아왔다. 그런데 이번 자본주의 세미나팀에서는 자본주의의 역사, 즉 역사적 자본주의에 대해서 알아보자는 취지에서 리오 휴버먼의 저서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나는 세미나를 하면서 이 책을 운동을 하거나 아니거나 모든 사람들이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경제 체제를 ‘자본주의’라고 부르는데, 이 자본주의 체제가 어떻게 발생하여 어떤 방식으로 돌아가는가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경제사 서적을 읽는 것이 필요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 경험을 이야기 하면 90년대 말 이후부터 주변에서 한국 경제와 세계 경제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났고, 그들의 모습을 보면 예전과 다르게 생활 태도나 가치관 면에서 돈의 중요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생활 방식을 자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나는 자본주의 체제의 매커니즘을 제대로 알지 않고서는 한국 사회와 세계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고 사람들이 왜 그런 방식으로 행동하고 사고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솔직히 지금도 신문을 보면 경제면을 잘 보지 않게 된다. 그것은 내 자신이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만큼 자본주의 경제 흐름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무지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자본주의 경제의 흐름을 알고 나서 일확천금을 얻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가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그 본질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처음에 자본주의 역사를 다룬 이 책으로 세미나를 한다고 했을 때 속으로 상당히 기뻐했다.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 원리를 주로 다룬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지난 번 세미나에서 함께 읽었기 때문에,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자본주의 사회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알게 되었고, 아직도 부족하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생각을 나름대로 정리할 수가 있었다.

  둘째는, 이론과 실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은 특히 반드시 ‘경제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관념의 세계에만 파묻혀 살아갔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 예전의 많은 사상가들도 기본적으로 현실 세계에 바탕을 둔 학적 탐구의 태도를 갖추고 있었다. 고대 그리스 사상가 아리스토텔레스는 경제학에 해당하는 오이코노미아(Oikonomia)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어 냈고, 독일 관념론의 대사상가인 헤겔 역시 그의 대표작인 「법철학」을 저술하기 이전인 청년 시절에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이 경제학자 제임스 스튜어트의 「정치경제학 원리의 연구」였는데, 아담 스미스의 스승이자 동시대인인 스튜어트가 묘사한 시장 매커니즘의 분석을 통하여, 비로소 헤겔은 인간사에 있어서 노동과 산업 및 생산이 차지하는 위치를 의식하게 되었던 것이며, 동시대 독일 사상가들 가운데 유일하게 그는 정치, 종교, 문화 생활 영역에 우선하는 경제의 일차적인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으며, 사회주의 사상가 마르크스도 1859년에 “라인신문의 편집자로 있던 1842~1843년에 물질적 이해에 관한 논의에 참여함으로써 나는 처음으로 크게 당황했었다. 목재도벌(木材盜伐)과 토지 재산의 분배에 관한 라인 주의회의 논의는......나로 하여금 경제적 문제에 전념케 하는 최초의 기회를 제공했었다.”라고 회고했는데, 1843년 이후에는 그의 학문 태도에서 관념론적 경향을 벗어나게 되었다. 우리는 유명한 고전 텍스트들을 순전히 저자 자신의 관념의 산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텍스트는 그 저자가 살았던 당대 현실이라는 콘텍스트와 무관하게 저자의 머리 속에서 저절로 생산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을 쓴 리오 휴버먼도 자본주의 경제와 관련된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 종교, 사상에 관한 이야기들을 역사적인 경제 현실과 연관시켜 다양한 사례를 들어가며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자본주의에 관한 경제사 서적이라면 홉스봄의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나 페르낭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월러스틴의 「근대세계체제」, 지오반지 아리기의 「장기 20세기」와 같은 책들을 읽으면 좋겠지만, 나를 포함한 초보자 같은 경우에는 방금 이야기한 전문가들의 난해한 책을 읽고 나서 좌절하는 것 보다는 이런 친절한 개론서에 가까운 책을 읽는 것이 오히려 경제사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도 제공받을 수 있고, 아울러 이 책의 독서를 바탕으로 좀더 전문적인 경제사 서적으로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장점이 있겠다. 이 책을 읽고 세미나를 하면서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선생님들 몇 분과 학생들에게 이 책을 개인적으로 추천하거나 선물을 한 경험이 있는데, 그 정도로 이 책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예전 대학시절에 읽었던 딱딱한 교과서류 경제사 서적과 비교가 되면서, 왜 이런 책을 예전에는 접할 수 없었는가에 대한 강한 아쉬움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앞에서 이야기한 전문 서적도 반드시 읽어 봐야겠다는 자극을 주었다는 점에서 세미나에서 이 책을 읽었던 것은 나에게 소중한 경험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사회가 모든 사람이 물질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완벽한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무슨 일을 하든지 문제의 원인을 발견하고 대안을 강구하여 사회를 개선하는데 기여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사회의 구조와 작동 원리가 어떻게 정착되었는지를 반드시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본인이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든 본인의 이론과 실천이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여, 사회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실천을 담보하기 위한 이론적 무기로 경제사 지식을 갖추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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