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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 [초점] 일제고사, 누가 막을 것인가

2009.03.25 15:23

진보교육 조회 수:1022


[초점] 일제고사, 누가 막을 것인가
                                                     최주연/봉원중


• 2008년 10월 13일 2교시. 서울 관악구의 한 중학교 3학년 교실.
시험 시작 후 얼마 되지 않아 아이들은 모두 엎드려 OMR 카드와 컴퓨터용 싸인펜을 가지고 다양한 디자인의 세계에 빠져 있다. 가끔 디자인이 카드 범위를 넘어서면 “답안지를 바꿔 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심심하기는 마찬가지인 감독 교사 역시 간만에 할 일이 생겨 반가운 마음으로 바꿔준다. 그것도 잠깐. 90분의 시간은 그렇게 때우기에는 너무 길다. 아이들은 몸을 꼬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그들 삶에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 같던 그 말을 하고야 만다.
“선생님, 차라리 ‘수업’을 해요!”
“자라”
“아까 1교시에 다 잤어요”
“지금 수업을 한다고 생각해. 그럼 졸릴 거야”
“시험 봤다고 치고, 그냥 수업하면 안되요?”
할 말이 없어진 감독 교사는 창밖을 본다. 아름답다고 소문난 한국의 가을 하늘이 눈부신 햇살과 함께 펼쳐져 있다. 이 좋은 날, 이 좋은 나이의 아이들이, 이 무슨 무의미한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교사는 아이들에게 미안해진다. 아이들은 그들의 성장기를 충실하게 보낼 권리를 가진다. 사회는 그들이 안전하고 행복하며 충실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만들어줄 의무가 있다. 학교에서 그 의무는 교사가 진다. 오늘 이렇게 아이들이 말도 안 되는 시간들로 자신의 청소년기의 눈부신 하루를 창밖에 버리도록 한 데에는 이 어처구니없는 시험을 막지 못한 교사 자신의 책임이 크다고 감독교사는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담임 반 학생들에게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주는 것으로 미안한 마음을 대신했다. 그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었다. 청소년기의 빛나는 하루가 750원짜리 아이스크림으로 때워졌다.
사진48-일제고사보는학생들
다시 일제고사다. 아니, 이제 진단평가인가? 이번 것은 “진단”평가이니, 기존의 일제고사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할 셈인가?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정말 “진단”을 하기 위한 것이라면, 평가 이후 학생들의 수업을 교육부에서 다 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진단한 사람이 수업을 하는 것이 정석이니까. 진단 결과를 줄 테니, 그걸로 판단해서 수업하라고? 나는 그런 진단 결과 필요없는데?
말장난은 그만하자. 학생과 학부모에게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는 지극히 자유주의적인 행동으로 파면과 해임이라는 중징계를 받은 것은 부당하다는 말도 그만하자. 그럼, 감봉이나 정직을 받았다면 타당했을 것이라는 말인가? 또는, 교사 스스로 거부했다면 징계를 받을 만도 하다는 말인가? 한나라당 내에서도 문제 제기가 나올 만큼 무리한 징계가 여론을 선도하는 데에 유용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스스로도 그 형식적인 논리에 안주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물론, 이렇게 무리한 징계는 MB정권이니까 가능한 것이고, 그 사실은 2009년 한국 사회의 특성을 규정하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무리한 징계가 아니라면, 일제고사는 봐도 괜찮은 것인가?

지난 2월, 분회에서 일제고사 투쟁에 관한 논의를 했다. 사실 현 상황은 행동 하나하나가 교직 전체를 걸고 하는 것인 만큼 개별 조합원의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논의 중 이런 말이 있었다. “사실 나는 일제고사가 내 인생과 교직 전체를 걸 만한 사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 일로 파면당한 조합원들이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서 고민을 하고 있다” 나는 이 말이 현재 조합원들의 보편적인 생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일제고사가 교직 전체를 걸 만한 사안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알다시피, 교육청에서는 일제고사 결과를 교장 평가에 반영하겠다고 했다. 성적조작 파문으로 잠깐 들어갔지만, 결국 그렇게 하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렇게 되면 학교 현장이 어떻게 될 지 한국의 교사라면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작년에는 시험을 갑자기 봤으니 미처 준비를 못하고 사후에 성적조작으로 때우려 했지만, 이제는 달라질 것이다. 학교는 일제고사를 중심으로 움직일 것이고, 결과를 교장 평가에 반영하는데 평교사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학생의 성적은 곧 교사의 성적이 되어, 아무리 문제 풀이식 수업을 하고, 성적이 낮게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학생들이 결석을 하도록 유도하고, 최후에 성적조작까지 해도, 이 모든 것들을 전국의 모든 교사들이 똑같이 할 것이므로 당연히 누군가는 하위 그룹이 될 것이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에서 그 하위그룹이 어떤 일을 당하게 될 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사진49-일제고사철회촉구집회
위와 같은 일은 소수에게나 벌어지는 것이고, 굳이 1등을 안 해도 되는 정상적인 수업을 하는 대다수의 교사에게는 상관없는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있다. 과연 그럴까.
우선 나부터, 일제고사가 정례화되면 더 이상 교사로써의 나의 역할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다. 수학교사인 나는 문제풀이식 수업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학생들에게 수학적 개념을 친구들과 함께 찾아나가는 즐거움을 주는 수업을 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짠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직까지는 서울의 중학교에는 공식적인 입시가 없으며, 내 학생들은 1차적으로 나로부터만 평가받기 때문이다. 이런 나에게 다른 사람이 출제한 전국이 똑같이 보는 시험 문제에 맞추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수업을 하라는 것은 수업을 하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상황은 나에게 하위 평가를 받아 쫓겨나기 전에 스스로 교직 생활을 계속 할지 말지를 고민하게 만들만큼 심각하다.
무슨 한가한 소리냐, 고등학교 수업을 생각해 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바로 그 점이 문제다. 한국 사회는 지금과 같은 이상한 교육 시스템에 완전히 익숙해져 있다. 국민 중 누구도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 없고, 문제 풀이, 전국적인 상대평가, 서열화된 학교 구조에 찌들어 웬만한 것은 문제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그것이 교육의 본질에 어긋난다는 생각은 어쩌다 할 뿐이고, 이미 시스템과 일상이 되어버린 상황을 바꾸는 것은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일제고사와 관련한 논의에서도 그렇다. 가르친 교사가 평가하지 못하고 수능이라는 외부체계에 의해 평가가 이뤄지며, 정례적으로 전국단위 모의고사를 보는 고등학교에서는 일제고사와 관련한 문제의식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또한, 중학교라 할지라도 도 단위 학력평가를 해마다 보던 경기도와 그렇지 않던 서울은 시험을 대하는 교사와 학생들의 태도가 달랐다. 경기도 일산의 한 중학교 학생들은 교내 정기고사를 보듯이 성실하게 일제고사를 치뤘다고 한다. 이렇듯 정례화되어 시스템 속으로 들어오면 사람들은 금방 익숙해지고, 그것을 기준으로 사고하게 된다. 돌이키기 힘들게 되는 것이다.
고등학교처럼 수업하고 생활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수업을 해 본 교사들은 안다. 고3이 견딜 수 있는 수업과 중1일 견딜 수 있는 수업이 다르다는 것을. 성장기의 아이들은 때로는 어른들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것보다 더 어리고, 신체적/정신적인 보호를 필요로 한다. 똑같이 1시간을 앉혀놓거나, 밤 12시까지 공부를 시켜도 어린 학생들은 더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학생이나 교사나 할 짓이 아닌 것이다.
일제고사가 정례화되면 교실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한국의 교육은 지금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하다. 이 상황에 일제고사를 더한다면 죽어가는 환자에게 핵폭탄을 터뜨려 확인 사살을 하는 꼴이다. 조금씩 나아지지는 못할망정 회생 불가능한 상황으로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적어도 나에게는, 아니 전교조 조합원을 비롯하여 자신의 삶의 의미를 교사로써의 역할에 두는 교사들에게 일제고사는 교직 전체가 걸린 사안이다. 감봉쯤이면 될텐데 파면까지 당한 동료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일제고사” 이기 때문에 막아야만 하는 것이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안 볼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역할의 끝이 아니라, 학생들이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전국적으로 줄 세워지는 수모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까지가 교사의 의무이기 때문에 막아야 하는 것이다.

작년 일제고사 보던 날, 담임을 맡았던 학생의 학부모와 이런 통화를 했다.
“이 시험이 뭔지 압니다. 제 아이에게 ‘이런 시험’ 보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선생님만 괜찮으시다면’ 집에 있게 하고 싶습니다 ”
또, 한 중3 학생이 자기 담임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선생님 때문에 이 시험 보는 거잖아요. 선생님이 잘못한 거에요”
“무슨 소리니?”
“선생님 전교조잖아요. 전교조가 막았어야지요”

다들 알고 있었다.
교사가 학생들을 부당한 제도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걸. 그리고 교육에 대해서는 전교조가 책임지고 나서야 한다는 걸.  
지금은 생각을 너무 많이 할 때가 아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그 방법대로 행동을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