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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 [특집] 4. 청소년 운동의 의의와 전망

2009.03.25 16:05

진보교육 조회 수:1753

[특집]    4. 청소년 운동의 의의와 전망
                                                                        손지희/진보교육연구소 연구원  

한국사회의 청소년

한국사회에서 청소년은 어떤 존재인가? 부드럽게 표현하면 보호와 보살핌의 대상, 본질적으로 드러내면 통제와 순치의 대상이 아닐까. 학원과 학교와 집을 전전하며 컴퓨터 게임과 사이버 공간에 쉽게 탐닉하고 왕따를 쉽게 시키는 이기적인 존재이며 대학생이 되어서도 부모의 과잉보호를 받고 대학을 졸업해도 기다리는 건 비정규직이나 실업의 희망 없는 삶 속에서 언제든 막나갈 수 있는 위태로운 존재로 이미지화되어 있다. 상위권 대학에 들어가지 못할 경우 예정된 삶은 더 거칠다. 이 사회는 청소년들에게 ‘미숙’하다는 이유로 권리를 쉽게 무시하고 불투명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고 입시에 매진하고 경쟁력을 키우라는 주문을 끊임없이 한다.


10대들은 사회적으로 늘 ‘미숙한 존재’이기만 했는가? 그렇지 않다. 4.19의 주역도 고등학생이었으며 더 멀리는 식민지 시기 중고등학생들은 이미 하나의 주체였다. 자본주의사회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10대들은 날이 갈수록 더 사회적 존재로서의 성장을 유예당한 채 아주 긴 시간동안 어린애 취급을 받게 된 셈이다.
2008년, 이 사회는 청소년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촛불국면의 광장을 가장 먼저 열어 제친 것은 다름 아닌 청소년들이다. 어른들의 반응은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똑똑할 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사회와 정치 참여는 고사하고 인식조차 유예당하는 장기 수험생이 미친소 미친교육을 자기문제로 인식하고 바로 정치적 행동을 펼쳤으니 어른들이 놀랄 만도 했다.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은 것을 왜곡된 사회에서 스스로 깨우쳤고 인터넷을 통해 스스로 정보를 찾고 소통하던 청소년들은 급기야 광장의 주인이 되었다. 놀랄 일은 아니다. 한국사회 역사에서 청소년은 역사적 행위의 주체였던 것은 촛불국면에서 만은 아니었다.

80년대 고등학생운동

80년대에는 상상 이상으로 고등학생 운동(약칭 '고운') 또한 활기를 띠었었다. 민주화 운동의 흐름 속에서 억압적인 학교체제에 대한 저항을 분출하였다. 절대다수의 청소년들은 억압적인 학교에서 입시의 노예로 자유라곤 없는 삶을 이어갔지만 당시 고등학생운동은 대학생운동과 연계를 가지면서 조직화된 방식을 취하였고 의제에 있어서는 학교의 변화를 넘어 정치적 색채를 띠고 전개되었다. 억압적이고 살인적인 입시체제는 중고등학생을 강력히 옭아맨 통제기제인 동시에 운동의 동인이라는 양면성을 가졌다. 80년대 말에는 대통령직선제라는 정치적 변화에 자극받아 학생회 직선제 쟁취 투쟁을 힘차게 전개하기도 하였다. 지금 기준으로는 감히 가능했을까 싶지만 당시의 운동 주체들은 수업거부, 등교거부, 시험거부, 농성, 단식 등 높은 수위의 전술을 구사하기도 하였다.


고등학생운동은 당시 사회모순과 교육모순에 대한 자각과 사회전반적 반독재민주화 운동의 영향을 받아 이미 발생해 있었다. 전교조 운동으로 인해 단순히 촉발되었다기보다는 자체의 동인이 존재하는 역동적 성격을 지녔으며 억압적 교육체제 하에서 서로 대립적 관계에 놓이기도 했던 두 주체가 운동 속에서 공명하며 상승의 흐름을 탄 시기가 있었다고 볼 수 있겠다. 주되게 기억되는 사실은 전교조 결성에 대한 탄압에 맞서 전교조 사수투쟁에 나선 것이겠지만 이미 형성된 운동의 주체들이 전교조 탄압에 맞서 연대한 것이었다. 전교조 해직 사태에 47만 여명의 학생들이 ‘선생님을 지키자’는 슬로건을 갖고 참여하였다. 조직화의 기반이 없었다면 가능치 않은 일이다. 89년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고등학생들은 시위와 농성 등 행동을 표출했다. 당시 고운의 활동이 학교 내외에서 이루어졌음은 주목할 만하다. 그 기반이 된 것은 각종 소모임들이었다. 하지만 90년대 초 노태우 정권이 공안정국을 조성하면서 고등학생 운동 활동가들은 강제퇴학 등 엄청난 탄압에 직면하여 더 이상 확대 재생산되지도 못한 채 크게 위축되고 만다.

1994년 9월 9일자 동아일보.


공안탄압이 직접적 영향을 끼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90년대 고운이 쇠퇴하게 된 것은 보다 넓은 맥락 속에서이다. 먼저, 90년대 들어서자 상업적 대중문화가 급격히 성장했고 이에 따라 소비문화 역시 급속도로 확대된다. 10대 청소년들은 주요한 마케팅의 대상이 되었고 정치적 행동으로 표출되어야 할 억압적인 입시구조에 대한 저항의 자리를 대중문화를 통한 욕구표출이 대신했다. 억압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자본의 깨달음과 이윤창출의 욕망이 대중의 욕구를 구조화하는 적극적인 기획으로 전환되면서 나타난 일이다. 때마침 나타난 서태지는 청소년들의 욕구를 수렴하였다. 다음으로, 형식적 민주주의가 도입되면서 오히려 정치무관심은 확대되었는데 정치적 권리의 문제는 일단락된 것으로 여겨지면서 ‘문화적 권리 신장’이 주된 관심사가 된 영향도 있다. 학생회 직선제는 가볍게 수용되었지만 두발과 체벌은 여전히 청소년들을 분노케 하는 문제였다. 셋째, 80년대 고운이 대학생운동과 연계 속에서 정치적 의제에 대한 민감성을 유지했던 반면 90년대 초 동구권 몰락 등에 따라 대학생운동의 주체와 조직들은 거의 절멸하다시피 했다. 이 영향이 고스란히 고운에도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90년대 중반, 청소년 인권운동의 시작

90년대에도 청소년들이 처한 학교 현실에는 변화가 없었다. 95년 최우주 군은 고등학생의 비인간적 삶의 현실을 고발하고 바꾸어보고자 헌법소원을 낸다. 이 사건은 한 용기있는 청소년 개인의 행동으로 끝나지 않았다. 공감을 이끌어내었고 온라인(피씨통신)을 통해 학생인권에 대한 문제의식들이 퍼져나갔고 탄압으로 침체에 빠져있던 고운에 자극제가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고운은 청소년 운동으로 전화되기 시작한다. 대학생운동의 잠재적 주체로서의 성격보다는 ‘청소년’이라는 세대 주체로서 미미하지만 자기 목소리를 내게 된다.

최우주군이 헌법소원을 내면서 첨부한 춘천고 일과표


한편, ‘청소년’으로서의 자각은 중대한 의미가 있지만 고운이 청소년인권운동으로 전화되면서 운동의 공간이 학교 밖이 중심이 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90년대 청소년 운동은 학교현장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보다는 ‘단체’들에 의한 운동의 형태를 띤다. 80년대 고운 활동가들은 대학생2로서 성격이 거론되는데 이에 비해 90년대의 청소년운동단체들은 80년대의 정파구도가 연장되면서도 의제에 있어서는 변화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런 탓에 청소년 운동 단체들은 청소년 대중의 욕구와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가 고민거리가 되기도 한다.

학생운동이라는 명칭 대신 청소년운동으로 새로운 국면을 열게 된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한계 또한 있다.
첫째, 운동공간의 문제이다. 청소년이라는 범주가 보다 넓은 것이며 따라서 학교라는 기제에 의해 억압받는 학생으로 주체의 성격이 제한될 경우보다 폭넓고 다양한 주체를 아우를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운동에 있어서 학교 안과 밖의 경계가 분명해졌다는 뜻이고 사실상 청소년 운동의 공간은 학교 밖에서 안으로 잘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청소년 운동 자체에서 비롯된 한계는 아니다. 처한 조건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고(재생산 구조가 마련되기 어렵다는 것, 졸업하면 그만...등) 사회에서는 정치적 권리를 제한당하는 미성년이자 가족제도 하에서는 양육의 대상인 자식이고 학교에서는 통제와 가르침의 대상인 학생이라는 세대적 위치상의 문제로 활동에 많은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학교라는 핵심 공간을 운동의 기반으로 삼지 못하고 ‘밖’에서 외침을 거듭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두 번째로, ‘인권’이라는 의제의 성격문제이다. 청소년 인권 문제는 청소년 대중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비상식과 비인권이 판을 치는 한국사회에서 청소년 스스로가 당연히 제기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 자체로서의 중요성과 더불어 ‘대중화’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의제임에 분명하나 제도권에 의해 ‘포섭’될 여지가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또 하나는 ‘인권’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특정 주체들의 것으로 개념화하여 운동의 의제로 삼을 때에는 다른 주체들의 의제 및 그 관계 설정에 있어서 난점이 존재하게 된다. 학생인권 혹은 청소년인권의 경우 그 대립물이 교사 혹은 성인으로 설정되기 쉽고 이는 한국사회의 견고한 정서이기도 하다. 자칫하면 운동이 협애화되고 연대를 가로막을 위험성이 있다. 세대 간 대립의제(예컨대 두발, 체벌)로 부각될 경우 당연한 권리임에도 교육운동의 타 주체들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도전’이라거나 ‘교권의 위협’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성인교육운동주체들이 청소년인권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요컨대, 청소년 인권운동은 80년대 운동의 한계를 넘어서는 주체화된 운동이라는 긍정성이 있음에 분명하지만 ‘개인주체로서의 청소년에 대한 인정’을 넘어서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있다. 80년대 고운의 주체들을 ‘변혁의 주체’로 바라보았다는 점을 현재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문화적 권리의 쟁취와 함께 교육문제 등 정치적 의제를 청소년운동의 주요 의제로 삼는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

X세대, N세대를 거쳐 촛불세대로

고운에서 현재의 청소년인권운동에 이르기까지 관통하는 주제는 입시경쟁구조가 만들어내는 문제의 폐기이다. 2008년 청소년들은 이명박 정권의 교육정책을 ‘미친교육’으로 규정하고 ‘어른’들보다 먼저 광장으로 나왔다. 일제고사에 가장 열심히 맞선 주체도 청소년들이다. 개념찬 초중고딩들의 등장은 청소년운동이 세대운동으로서의 발전해 나갈 전망을 밝혀준다. (반2MB 정서는 지금 초중고학생들에게 상당히 보편화되어 있다.)


일제고사에 대한 청소년인권운동가들의 조직적 대응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으나 교실 안, 노동시장의 청소년들에게는 먼 이야기다. 설사 시험거부, 등교거부를 하고 싶다 해도 감당해야 할 일이 많다. 현실의 벽이 여전히 많은 청소년이 정치적 행위를 할 수 없도록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학생회를 직선으로 구성하는 학교들이 대다수가 되었지만 이름뿐인 학생회는 학교 내에서도 별다른 권한이 없다. 학교 밖의 운동과 학교 안의 꿈틀거림이 만나도록 하려면 교사들이 가교 역할을 해야 하지만 이 역시 쉽지 않다. 대학을 가야 하는데 괜히 선동해서 망쳐놓는 건 아닌가라는 자기검열은 당연하다. 그러면서도 ‘애들이 거리로 나오면 될텐데’라는 생각을 한편에 품는다. 그렇다면 그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청소년의 힘을 기대하기 이전에 이들이 힘있게 집단적 행위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그들의 권리를 신장시키는 실천을 시작해야 한다. 그 토대는 바로 ‘입시폐지 대학평준화’라는 과제의 중요성을 교육운동진영이 인식하고 힘을 모음으로서 만들어진다. ‘12년간의 수험생’이라는 왜곡된 세대규정을 파괴하는 것이야말로 교육운동의 핵심과제이자 청소년이 변혁의 주체로서 세대운동을 펼칠 공간을 여는 방법이다. “내가 해줄께”에서 “우리함께 하자”가 되어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교사의 해고에 맞서 3주체가 함께 시위를 한다. 고민과 망설임의 과정을 거쳐 그렇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프랑스에는 회원 6000명을 가진 전국고등학생연합을 비롯해 많은 고등학생 정치 조직이 있다. 위는 교원감축안 시행에 반대하는 고등학생 시위 모습.

90년대에는 유난히도 세대론이 많이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신세대를 칭하는 X세대, N세대 등은 대중문화와 인터넷문화의 핵심 소비자가 된 10대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이러한 세대론은 청소년을 소비자로 규정하는 자본입장의 세대규정이다. 자신들의 기획에 포섭된 청소년을 지칭한 말일 뿐이다. 그리고 계속 그 틀에 가둬놓고 싶었을 것이다. 30대가 되든, 40대가 되든, 청소년 시기의 ‘비정치적 문화소비자’로 평생을 보내길 원했을 터이다. 여기서 생각해볼 일은 비정치적이고 자본에 포섭된 경험을 겪은 세대집단과 정치적 저항의 경험을 가진 세대집단이 성인이 된 이후 정치의식과 사회변화에 대한 태도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섣불리 일반화해서는 안 되겠지만, 30대가 된 한 때 X세대로 불리웠던 서태지 광팬들은 (다는 아니겠지만) 서태지가 등장하는 광고상품을 소비하는 데서 굉장한 만족과 기쁨을 느낀다. 그 세대의 의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입시경쟁 속에서도 무한한 기쁨을 주었던 ‘태지오빠’에 대한 향수이다. 현재의 불안하고 힘겨운 날들을 (이제 직딩이 된 그들은) 서태지를 소비하는 것으로 위안하며 산다.

지금의 청소년들은 어떤 30대가 될까? 88만원세대라는 다소 우울한 세대규정도 있으나 필자는 정치적인 측면에서 2MB정권의 청소년들을 ‘촛불세대’라고 부르고 싶다. 386세대들의 일부가 정치권으로 기어들어가 권력의 일부분이 되면서 그 ‘명성’이 퇴색했지만 촛불세대들은 좀 다르지 않을까 싶다. 촛불세대의 다른 이름인 88만원세대는 생존의 문제에 치여서 고된 삶을 살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내포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이 세대들이 경제적, 정치적으로 급진화될 가능성도 크다는 예감을 갖게 한다. 일제고사에 맞서 시험거부와 등교거부로 사회적 목소리를 낸 것도 의미가 크다. ‘공정한 경쟁의 룰을 만들라’는 온건한 요구가 아닌 ‘경쟁 자체를 거부’한다는 급진적 메시지를 던지는 지금의 청소년 세대는 386세대, X세대의 한계를 넘는 사회주체의 등장을 의미한다고 희망차게 전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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