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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호 [초점] 진보란 무엇인가?

2008.10.06 21:15

진보교육 조회 수:1653

진보란 무엇인가?


                                                      이경호∥진보교육연구소 연구원
1. 2% 부족한 진보

뜨거운 촛불이 조금은 식어가던 7월 30일 교육운동진영에서는 의미 있는 한판 승부가 벌어졌다. 그것은 서울시 교육감을 둘러싼 진보진영과 수구 우파세력들과의 승부였다. 결과는 패배였다. 그 가능성은 충분했으나 정말 2% 가 부족하여 패배의 잔을 들어야만 했다.

서울시 25개 구 중에서 17개 구를 이기고도 강남 3개 구의 단결된 힘에 의해 지고 만 것이다. 분명 강남은 집중적 계급투표를 하여 그들의 단결된 모습을 보여 주었으나 강북은 평일 투표를 하기에는 삶이 고단한지라 집중되지 못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패배는 패배인지라 선거 후 말이 많다. 그 핵심중의 하나가 전교조가 교원평가를 받아들이지 않아 선거에서 졌다는 이야기가 소위 진보진영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 전교조가 이기주의에 의해 교원평가를 거부하고 있는데 이는 국민여론을 거스르는 것이며 수구적 태도라는 것이 주 요지이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이며 진보운동의 선두에 섰던 전교조가 어느새 수구세력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전교조 내부에서 조차 논란이 발생하고 있으며 교원평가를 거부하는 것은 수구적·이기적 태도라고 몰아 부치는 세력도 등장하고 있다.  

교원평가를 거부하는 것은  반개혁적인 일이 되었다. 전교조는 시대 흐름에 따라 평가를 받아들여 부적격교사를 퇴출해야한다는 여론이 진보 진영 내에서 비등하고 있다. 심지어 한 사회당 당원은 한겨레신문에 교원평가를 해야 하며 그것이 교육미래를 위한길이라 말하고 있다.(9월 12일자) 물론 수구세력들이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제 진보진영에서 전교조에 대해 혁신을 말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위와 같은 일련의 사태가 진정 혁신을 하는 일이며 진보의 가치에 맞는 것인지 한 번 돌아볼 필요성과 진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다.


2. 무엇이 진보인가?

무엇이 진보이고 무엇이 보수인가? 쉽지 않은 질문이다.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얼버무릴 수도 없는 일이다. 분명 진보와 보수는 분명한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두 세계관은 철저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요한 몇 가지 가치를 가지고 살펴보겠다.

1) 자유    
자유는 분명 진보의 핵심적 가치이다. 자유를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가?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자유’라는 핵심적 언어를 보수주의자 아니 신자유주의자에게 빼앗겼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유’가 상징하는 언어적 의미를 맘껏 활용하여 그들의 목적을 이루고 있으며 이데올로기 싸움에서도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 신자유주자들의 공세는 대체로 자유를 앞세우고 있다. 학생에게는 고교를 선택할 자유를, 대학에게 학생 선발의 자유를, 학부모에게는 교사를 평가할 자유 등 그들이 내세우는 대부분은 자유의 깃발로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그들의 공세에 진보진영은 난감해진다. 우리의 핵심적 가치는 자유인데 저들이 자유를 앞세워 공격을 해오니 방어하는 것  조차 어려워지며 저들의 프레임에 갇혀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폴라니는 일찍이 이러한 난점을 해결하기 위해 자유에는 나쁜 자유와 좋은 자유 두 종류가 있다고 하였다. 즉 “ 동료를 착취하는 자유, 공동체에 급부로 제공하는 서비스 없이 비정상적 이득을 취하는 자유, 기술적 고안들을 공공이익을 위해 사용치 않는 자유, 사적 이익을 위해 은밀하게 획책된 공적 재난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자유” 등을 나쁜 자유로 들고 있으며
좋은 자유로는 “양심의 자유, 언론의 자유, 집회 및 결사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등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자유를 들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지켜야할 자유는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그러나 신자유주자들은 ‘자유’의 개념을 빼앗아가 재 개념화 시켰다. 그들은 자유를 “자유기업의 단순한 옹호로 퇴보” 시켰으며 ‘자연스러운 체계’로서의 시장을 신봉하여 시장에 대한 규제는 자유를 침해한다고 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이익이 근본적이라는 생각에서 사고를 시작하고 있기 때문에 도덕성 또한 결여되어있다. 그렇기에 사회복지를 위한 세금을 쓰는 것을 납세자의 돈을 빼앗는다고 생각하며 납세자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인간존엄성의 원칙’에 근거하여 궁핍으로부터의 자유를 근본적인 자유라고 인정하며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자유 신장을 주장한다.

이처럼 ‘자유’를 보는 시각은 그가 누구냐에 따라 정반대로 작용한다. 올 6월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집회를 보아도 진보주의자들은 집회 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 정치적 자유 등을 말하나 보수주의자들은 도로교통 방해로 인한 통행의 자유 침해, 영업의 자유 침해 등을 말함으로써 ‘자유’의 충돌이 생기나 어떤 자유가 우선하여야 할지는 명백하다.

교육 분야에서 보수주의자들이 말하는 자유는 한국사회의 상위계급들의 자기이익을 위한 자유에 불과하지 소외된 민중이나 소위 말하는 서민들의 자유는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들의 ‘자유’ 프레임에 갇혀서 동일한 주장을 한다거나 양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할 ‘자유’를 버리는 것이다.

폴라니는 또한 신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자유주의적 이상이 유지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힘, 폭력, 권위주의에 의한 것이며, 신자유주의적 유토피아는 권위주의 또는 파시즘에 의해 좌절될 운명이라 말하면서 좋은 자유는 사라지고, 나쁜 자유가 빈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결국 보수주의자들이 말하는 자유는 소득, 여가, 안전이 더 이상 향상될 필요가 없는 사람들에게 권리와 자유를 마음껏 최대한으로 주는 것이며, 나머지 우리들에게는 최소한의 소량의 자유만을 남겨두는 것이다. 우리는 나쁜 자유를 몰아내고 좋은 자유를 찾아와야 한다. 그럼에도 아직도 보수주의자들의 프레임에 갇혀서 그들의 논리에 호응을 한대서야 되겠는가.

2) 평등
자유와 더불어 평등도 진보의 핵심적 가치이다. 평등에 대해서도 진보와 보수는 확연히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다. 평등은 분배의 평등함을 말한다.  그러나 무엇을 분배할 것인지, 누구에게 분배하는지, 과정은 어떤지, 누가 분배를 하는지, 어떤 근거에서 분배를 하는지에 대해서 말할 때는 복잡해진다.
평등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관해 끝없는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기회의 평등 대 결과의 평등에 대한 논쟁이다.

보수주의자들은 기회의 평등을 말한다. 기회의 평등은 완전히 개인적인 책임, 성취의 문제이다. 즉 개인적 능력에 의해 성공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회만 동등하게 주어진다면 개인의 능력 차이에 의한 성공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교육당국은 이러한 평등을 강조한다.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졌다기에 능력에 따른 차이는 어쩔 수없다는 것이다.  

진보주의자들은 결과의 평등을 추구한다. 동등한 기회가 필수적이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결과로서의 평등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능력은 출생의 산물이 아니고 환경에 의해서 신장되기도 하고 저해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부모의 경제력이 학력이라는 말은 이미 일반적인 말이 되 가고 있으며 투자한 사교육비가 얼마냐에 따라 아이들의 학교가 결정되는 지금 이 상황에서 기회의 평등만을 말할 수는 없다.  개인적 능력이 부족하여 어려움에 처한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진보주의자들의 당연한 시각이며 이는 개인적 능력을 단순히 자연인에게 돌릴 수 없다는 사회현상을 반영하는 것이다.        

3) 민주주의
민주주의에 대한 가치 또한 진보와 보수는 서로 다른 가치를 지니고 있다. 보수주의자들의 민주주의는 제도적 민주주의다. 특히 정치에 있어서 절차적 민주주의를 민주주의의 중심으로 본다. 따라서 그들은 자유 선거제도가 갖춰졌음을 삼권이 분립되어 있음을 내세우며 민주주의가 공고화 되었다고 말하며 한국이 높은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87년 6월 항쟁의 결과가 대통령 직선제를 비롯한 형식적·절차적 민주주의에 치중했기에 결국 지금까지 이러한 결과를 낳았다. 물론 민주주의 기본으로 자유로운 선거를 비롯한 형식적 민주주의가 이루어 져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따라서 진보주의자들은 실질적 민주주의·급진적 민주주의를 실천해 나가야 한다. 형식에다 내용을 입혀야 하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에 바탕 하여 사회의 소외된 계층도 최소한의 그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지원을 하여 궁핍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여야 하며, 정치·기업·언론의 힘이 집중되는 것을 최소화 하시키고 민주적 통제가 가능하게 하여야 한다. 또한 공교육에 투자를 하여 누구나 무상으로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하며, 기업은 주주뿐만 아니라 노동자, 지역 사회, 소비자등 이해관계자의 통제아래 두어 자본이 이익극대화만을 추구하는 것을 방지하고 그 사회적 책임을 다하게 하여야 한다. 즉 자본가의 이익, 기업의 이익이 아닌 사회적 이익을 추구하게 하여야 한다.

선거에  있어서는 누구나 공직에 출마할 동등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 동등한 기회는 지금 같은 돈 선거를 제거함으로써 선거가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그 비용은 전액 공공재원으로 지원해야 한다. 지금처럼 국가뿐 만 아니라 지방정부에 이르기 까지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자신의 이권에 눈먼 그런 자들이 공직에 진출하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이처럼 우리의 민주주의는 갈 길이 멀다. 우리는 이제 민주주의의 걸음마를 띤 것에 불과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큰 진전을 이루는데 큰 힘이 된 촛불항쟁을 마치 비민주주주의 인 것처럼 말하는 보수주의자들을 보면 그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란 오직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민주주주의 이며 형식적 정당성에 기반 한 민주주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3. 교육에서 진보란?

진보와 보수를 가를 수 있는 몇 가지 가치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럼 교육에 있어서는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가? 교육 분야는 진보와 보수가 치열한 투쟁이 이루어지는 영역이다. 알튀세르는 교육기관을 이데올로기 국가기관 이라하지 않았는가? 보수주의자들에게 있어 학교는 보수적 가치를 가르쳐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 학교에 대한 통제권을 획득해야 한다. 교사들은 엄격하여야 하며 학생들에게 규율을 가르쳐야 한다. 수준을 가르기 위해 균일한 시험을 치러야 하며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획득하면 상을 받고 수준에 못 미치면 벌을 받아야 한다.

비도덕적이고 훈육이 덜 된 아이들은 도덕적이며 훈육이 잘 된 아이들을 잘못되게 할 수 있으므로 이들은 분리 교육시켜야 한다. 부모들은 어떤 학교에 보낼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공립학교에 지원되는 정부지원금을 박탈하여 부유한 아이들이 다니는 자사고, 특목고에 지원해 주어야한다. 좋은 학교를 졸업하여 좋은 학벌을 획득하고 이들은 사회엘리트로써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이 한국교육에 있어 보수주의자들의 기본 가치이다.

위와 같은 보수적 가치를 확산시키고 공고화 하는데 걸림돌은 전교조이다. 학교에 대한 통제를 하려고 하나 전교조가 있어 그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생각해낸 묘안이 교원평가, 다면평가, 성과급제이다. 학생과 학부모에 의한 교원평가를 제안함으로써 사회적 지지를 획득하였다. 교육에 대한 국민적 불만을 교사에게 전가시키는 좋은 정책인 셈이다. 보수 지배층은 손 안대고 코푸는 일석이조인 셈이다. 국민에게는 지지를 받고, 교사와 학부모간에 싸움을 붙여 교사들을 코너에 밀어붙일 수 있다. 성과급제는 교사 간 경쟁을 촉진시켜 협동과 협력에 위한 교육의 실현보다는 서로간의 감시와 경쟁, 이기심의 충만으로 교사들의 단결을 저지하면서 효과적인 통제가 가능하게 된다. 이와 같은 교사 통제 시스템이 완비된다면  교육에서 진보적 가치의 실현은 불가능 해질 것이다. 이미 보수적 가치에 물든 한국에서 진보적 교사가 좋은 평가, 좋은 성과급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또한 학부모의 선택의 자유를 앞세운 고교 선택 제나 고교 다양화 프로젝트는 현재의 고교 평준화를 해체시키고 서열화된 학교시스템을 만들 것이다. 이는 지배계급들의 구별짓기 전략을 자유의 이름으로 포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누구나 자신의 자녀를 더 좋은 학교에 보내고 싶어 하나 빈곤한 비자격자들은 더 나은 자사고·특목고 등에 들어갈 수가 없다. 고교의 서열화는 현존하는 대학의 서열화와 함께 하나의 시스템으로 정착, 엘리트 생산체제로 확고해 질 것이다. 이와 같은 보수주의자들의 끊임없는 학교와 교사에 대한 통제 욕구와 구별 짓기에  자신도 모르게 동조하는 것이 한국의 민중이며 진보주의자이다.

학교에서 진보적 가치가 교육되기 위해서는 국가의 통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 져야 하며, 성적에 의한 서열화 교육이 아닌 내용의 다양화, 사상의 다양화가 교육되어야 하며 인간의 존엄성에  기초한 전인적 교육이 이루어 져야한다. 그러한 교육의 자율성 획득을 위해서 교원평가, 성과급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또한 구별짓기 전략으로서 고교 선택제, 일제고사, 특목고 확대 등을 막아야 하는 것이다.
교사에 대한 통제와 구별 짓기 교육은 보수적 가치를 공고하게 할 것이며 이는 한국사회 지배 계급의 재생산기지로서 학교의 임무를 충실히 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4. 혼돈- 길을 찾아야 한다.

혼돈의 시대다. 무엇이 진보고 무엇이 보수인지 조차 혼란스러운 시대다. 진보적 가치의 추구자로 자임해 왔던 전교조가 어느새 이기집단으로 비춰지거나 수구적이라고 까지 말해지고 있다. 정말 그런가? 전교조가 그동안의 가치에서 물러났다면 그럴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건 뭐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한국사회는 빠르게 보수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자유주의 세력들은 급진화 되는 길보다는 보수화의 길을 선택하였다. 이에 진보진영의 영역은 더욱 좁아지고 있다. 반이명박을 내세운다고 진보적인 것이 아니다. 노무현과 민주당 또한 보수적 틀 안에 있는 지배집단에 불과하다. 소위 중도자유주의자들이 어느 정도 진보적 측면을 가지고는 있으나 그들 역시 보수집단에 불과하다. 그러니 그들이 갖고 있는 논리적 틀 안에서 전교조가 반개혁적이니 하는 말을 한다는 것은 보수의 틀 안에 갇혀 있는 것이다.  

진보라 자임하는 자들조차 자신도 모르게 보수의 틀 안에 갇혀있음을 알아야 한다. 누구를 위한 자유, 누구를 위한 개혁인지 파악해야 한다. 그 개혁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우리는 보수주의자들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 된다. 그동안의 전교조는 진보적 가치를 더욱 발전시키지 못한 것이 잘못이지 교원평가를 반대한다는 것이 잘못된 점이 아니다. 학생의 인권적 차원에서 또한 학부모와 교사간의 소통을 위한 방법은 달리 모색되어야지 교원평가로 될 것은 아니다. 눈앞의 벼룩을 잡는 것에 목적을 두다 보면 집을 다 태우는 우를 범한다. 벼룩를 잡는 방법은 그에 맞게 따로 모색을 할 일이지 집을 태워 내가 살아가야할 기반을 모두 없애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학생인권 신장을 위해, 부적격 교사의 퇴출을 위해서는 그에 맞게 방법을 찾으면 된다. 교원평가로 이루어질 일은 아닌 것이다.

전교조 교사들이 평가를 두려워해서 반대를 한다는 근시안적 미시적 해석을 하지 말라. 진정한 보수조차 드문 한국사회에서 교원평가는 한국사회의 지배계급을 더욱 공고히 해주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이며 한국 민주주의의 숨통을 조이는 역할을 할 것이다. 주위를 보라. 누가 이 수구세력들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가?  수많은 노조들이 자본에 투항하고 포섭되는 현실에서 전교조가 그러길 바라는가?

전교조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인간 존엄성’에 기초하여 이 땅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책무가 있으며, 우리가 대하는 학생 하나하나가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나가게끔 사명을 다해야 한다. 이것이 진보적 가치이다.

한 동지가 들려준 독일 영화 이야기를 해야겠다. 2차 대전이 끝나갈 시점에 연합군이 독일 베를린을 점령하여 공세를 취할 즈음에 히틀러의 참모가 히틀러에게 항복할 것을 건의 하였다. 그러나 히틀러는 그 자리를 사수 할 것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러자 참모는 히틀러에게 그렇게 되면 ‘죄 없는’ 수백만의 베를린  시민들이 희생을 당할 수 있다고 말하자 히틀러는 왜 그들이 죄가 없냐고 반문하였다. 그들에게는 자신을 선택한 죄가 있다면서 말이다. 히틀러를 선택한 대가는 죽음과 고통으로 돌아왔다.

민주주의는 피로써 지켜진다. 97년 한국은 외환위기로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죄 없는’ 수많은 민중들이 그 고통을 견뎌내야 했다. 정말 죄 없는 민중인가? 그들은 죄가 있다. 김영삼을 선택한 죄, 수구들을 선택한 죄. 민주주의를 지키지 못한 죄, 따라서 민중들의 고통은 자신들이 지은 죄에 대한 대가이다. 너무 가혹한 말인가? 그렇지 않다. 민주주의는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선택하지 않는 자들도 똑같이 고통을 받는 다는 것이다.

또다시 민중들이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할 지 모르겠다. 철저한 신자유주의 신보수주의자들을 선택했으니 말이다. 이번에는 97년보다 더 큰 고통을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 지배계급들의 이데올로기에 현혹되어 그들을 선택한 고통은 오직 가난한 민중들만이 짊어질 뿐이다. 촛불을 비웃었던 자, 전교조에 대한 공격에 동참한자, 자신만은 살아남을 거라 자만한 자,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냐면서 경제만 살리면 되지 하던 자, 이 모두들에게 견디기 힘든 시련이 올지도 모르겠다.

민주주의는 투쟁이며 진보의 역사는 피의 역사, 투쟁의 역사이다. 피 흘려 이룩한 민주주의이지만 한 순간에  잃을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조금 더 오른쪽으로 간다고 해서, 개량 화 된다고 해서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라. 진보가 살길은 더욱 더 진보의 가치를 드높이는 일이다. 그리고 정면으로 진보의 가치를 알리고 수구들과 싸워야 한다. 지금 진보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진보의 가치를 드높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보수의 가치를 옹호 한다는 점이다. 전교조의 나아갈 길도 바로 이 길이다. 더욱 진보의 가치를 드높이며 전진하는 것이 위기를 탈출하는 결국에는 지지도 획득하는 길이다.

**후기-신자유주의의 종언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을 통해 자유주의의 승리를 자축했다. 더 이상의 역사는 없다는 것이다.  후쿠야마의 이야기는 사실인 듯 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신자유주의는 맹렬한 기세로 전 세계를 휩쓸었고 어찌할 수 없는 ‘역사’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신자유주의가 이제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역사의 종말]이 아닌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이 새로운 시기에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진보가 고민할 것은 이러한 새로운 역사시기에 대한 고민을 하여야지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려는 보수주의자들의 프레임에 갇혀 그들의 논리에 따라서는 새로운 시기를 준비할 수 없다. 더구나 한국처럼 진정한 보수 세력이 없는 곳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진정한 보수세력은 인격적으로 존경할 만한 품성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그들과는 건강한 토론을 할 수 있으며 미래를 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오직 친미 사대주의자와 반공이데올로기에 젖어 있는 냉전 수구세력들만이 판 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논쟁이나 토론할 가치조차 못 느끼는 작자들인 것이다. 한국에도 진정한 보수세력이 등장하길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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