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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호 [기고] 빈곤을 선택하는 사람들

2008.10.06 19:59

진보교육 조회 수:1263

빈곤을 선택하는 사람들
: 은둔형 외톨이와 학력저하에 대한 진보적 분석

최고봉 | 진보교육연구소 회원

얼마 전, 마포에 <민중의집>이 둥지를 텄다. 이전에도 연대의 원리에 기반을 둔 지역운동이 있기는 했지만, 지지부진했던 터라 <민중의집>은 큰 기대를 받고 있다. 생협에서부터 어린이-청소년 프로그램, 노조 교육까지 지역에 밀착된 운동이 시도되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그러나 아직은 걸음마 수준인 <민중의집>으로서는 험난한 길이 많다. 일단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은 것 같다. 이런 고민이 있어서인지, 9월 19일(금) 민중의집에서 섬머스쿨(summer school)을 진행했던 사람들이 평가모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필자는 봉화지역 어린이-청소년 프로그램인 동그라미의 사례를 발표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사진출처 : 민중의집 누리집(http://jinbohouse.net)

동그라미는 봉화지역 책읽기모임인 <봉화대안교육>에서 만든 프로그램이다. 봉화지역 책읽기모임은 격주로 모여 미리 정한 책에 대해 토론한다. 9월에 함께 읽고 토론한 책은 우치다 타츠루의 『하류지향』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책이 KBS 1TV 교양프로그램인 <TV 책을 말하다>에 소개되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사실 나는 TV 책 소개 프로그램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문구를 그저 책 팔아먹기 위한 선전으로 여기는 편이다.(베스트셀러가 워스트셀러가 되기 쉬운 시대이니, 이 정도의 의심은 애교로 봐주시라.) 게다가 제목도 영화 임권택 감독의 영화 <하류인생>과 비슷해서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래도 꾹 참고 차례를 살펴보니 꽤 관심이 간다. 이 책의 핵심어인 ‘공부로부터의 도피’, ‘리스크 사회의 약자들’, 그리고 ‘노동으로부터의 도피’는 우리 사회에서도 한창 문제로 떠오르고 있으니 말이다.

『하류지향』의 저자 우치다 타츠루는 일본의 코베여학원대학 교수다. 사회과학을 전공한 학자도 아니고 문학이 전공이다. 저자의 이력을 살펴보니 프랑스 현대사상, 영화론, 무도론 등 장르를 넘어 연구를 한 것 같았다. 책을 좀 더 살펴보면 대학에서는 5년간 교무 책임자로 근무했고, 어린시절에는 무술(가라데)을 배웠으며, 현재는 컨설팅 회사의 주주이기도 하단다. 일본에서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그가 바로 그 현대적인 시스템 때문에 일본교육이 위기에 처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학력저하로 드러나고 있는 공부로부터의 도피, 그리고 곧이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노동으로부터의 도피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분석한다. 저자는 문제의 핵심이 미국식 자본주의라고 규정한다. 특히 인간의 능력, 교육을 수치화하는 미국모델이 사회를 얼마나 극단적으로 만들었는지 분석한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우리도 일본에서 드러나는 ‘하류지향의 삶’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공부로부터 도피하고, 일하기를 거부하며, 사회와 단절된 삶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S본부의 <SOS 솔루션>만 봐도 이전까지 상상 못했던 일이 너무 자주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삶의 양식이 바뀌면서 스스로 하류가 되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런데 우리보다 한 십 년 전 쯤, 이미 일본에서는 이와 같은 현상이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그래서 일본과 꼭 닮은, 그리고 일본식 사회시스템이 자리 잡은 우리로서는 일본의 경험을 살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일본이 미리 겪은, 그리고 지금 우리가 겪을 사회현상에 대한 해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공부로부터의 도피', '리스크 헤지하기'를 화두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저자는 학생들이 불쾌함과 수업을 등가교환한다고 분석한다. 학생들은 수업을 들으면 자신이 어떤 이익을 얻게 되는지 묻는다. 교사의 설명이 충분치 않거나 납득이 되지 않으면 의도적으로 수업을 듣지 않는다. 저자는 자신의 자녀가 다니는 공립 중학교 공개수업을 참관한 후의 충격을 고백한다. 절반 이상의 학생이 수업을 듣지 않고, 친구와 잡담을 하거나 엎드려 있다. 그런데 그날은 그래도 학부모가 참관을 하기 때문에 ‘비교적 덜 한 상황’이라는 것이 자녀의 설명이다. 이런 정도면 당연히 학력저하가 발생한다. 저자는 이와 같은 공부로부터의 도피가 교사가 열심히 가르치지 않아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병리현상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사실 학교에서는 '내가 왜 당신 수업을 열심히 들어야 하는지 내게 설명해봐'라는 눈빛을 수없이 많이 볼 수 있다. 교사는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학생에게 이 수업이 여러분의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을 한다. 그런데 이럴 경우 취업에 얼마나 유리하고, 그 결과로 얼마나 많은 임금을 받게 되는지 알려주는 시장주의적인 설명으로 흐르기 쉽다. 역설적이게도 일부 학생은 수업의 불쾌함을 참고 공부하기보다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다. 그리고 공부를 하지 않을 경우 자신이 앞으로 궁핍(여유 없음)하게 살 수밖에 없다는 것도 감내한다. 바로 이점 때문에 저자는 ‘공부로부터의 도피’가 단지 학교의 위기가 아니라, 마침내 인간고립화로 이어지는 첫단추라고 인식한다.
TV 솔루션 프로그램에 소개되는 ‘은둔형 외톨이’는 부분은 낯선 사람에게 입을 다문다. 겨우 꺼내는 몇 마디도 대부분 짜증이 섞여 있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은둔형 외톨이인 사람은 자신이 세상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고, 다른 사람이 뭐라고 말할지 뻔히 알고 있다고 여긴다고 한다. 어쩌면 그들은 ‘네가 무슨 말을 할 지 다 알거든. 그러니 제발 입 좀 다물어. 귀찮아 죽겠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바로 이 점에서 사회가 '낙오자'로 낙인 찍은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미숙하지만 조숙한 이율배반적 존재이다.

각각의 현상같이 보이는 '공부로부터의 도피'와 '노동으로의 도피'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일본에 50만 명 이상, 한국에 10만 명 이상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는 모두 자본주의적 원리와 극단적 개인주의가 빚어낸 희생자이다. 그러나 정확한 통계를 낼 수 없을 정도로 개인적인 문제로 취급되어 있다. 저자는 일본의 은둔형 외톨이는 교육이나 노동을 포기하고 궁핍한 삶을 선택한 이들로 본다. 우리는 보통 은둔형 외톨이의 부모는 평균보다 수입이 많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사회적으로 은둔형 외톨이에 대해 ‘부모가 돈이 많으니까 니들이 돈 안 벌고 집안에만 박혀 있겠지’라는 냉소적인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는 사실은 은둔형 왕따를 자녀로 둔 부모의 수입은 가계 평균수입보다 적다는 통계를 소개한다. 그에 따르면 부모가 열심히 일하는데도 불구하고 수입이 적을 때, 자녀는 노동에 대해 부정을 하게 된다. 아무리 벌어도 평균 이하의 삶을 살고, 노동시간이 길다보니 부모는 고통에 찌들어 있다. 이것을 보고 자란 아이 중 일부는 노동에 대해 불쾌감을 갖게 되고, 결국 노동을 포기하고 궁핍한 삶을 선택한다고 말한다.

* 개봉 예정인 영화 '외톨이' 중에서

일본이나 한국에만 은둔형 외톨이가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런데 저자는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의 은둔형 외톨이와 일본, 한국의 그것은 발생 원인이 다르다고 분석한다. 그는 일본의 은둔형 외톨이가 균질한(일괴암적인) 사회로 인해 질식해서 발생한 것이라면, 영국이나 프랑스의 은둔형 외톨이는 계층화로 인해 발생한고 설명한다. 한국 역시 자니치게 균질한데, 일본과 같은 원인으로 은둔형 외톨이가 발생할 수 있지 않을까.
저자는 가진 자, 강자의 경우가 사회적 약자보다 튼튼한 사회적 안전망을 갖추고 있음을 소개한다. 일본과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공식적으로 신분제가 철폐되었고, 사회적으로도 드러나게 계층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 경쟁지향의 길을 걸었던 것도 유사하다. 그런데 신자유주의로의 전환 이후 '개인이 리스크를 방지하고, 헤지해야 한다'는 말이 유행했다. 말 그대로 ‘사회적 책임’은 사라지고 개인의 책임이 극대화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 말이 논리적으로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리스크 헤지는 애초부터 집단이 살아남는 원리인데, 리스크를 개인이 지라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리스크 헤지의 예로 화교를 든다. 화교가 다른 지역으로 널리 퍼져 사는 이유는 특정 지역이 재난으로 살기 어렵거나 인종차별 등으로 추방될 경우 친족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회적 강자, 즉 지배계급은 이런 리스크 헤지의 원리를 굉장히 잘 실현하고 있다. S그룹, L그룹, S그룹 등의 대기업 후계자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줄이고, 계층의 입장을 대변하여 리스크를 헤지한다. 얼마 전 논란이 된 삼성의 황태자 이재용은 개인 이재용이 아니라, 삼성과 재벌 집단의 이익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존재한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에 비해 빈곤계층은 리스크를 피할 방편이 없고, 모든 리스크를 본인이 지게 된다. 사회학적으로 말하자면 유산계급은 계급/계층 내의 연대를 실현하는데 비해, 무산계급은 계급연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저자가 책 전체에서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은 '공부로부터의 도피는 자본주의적 평가시스템과 사회제도 때문이다'는 사실이다. 그는 교육의 결과는 수치로 나타내기 어렵기 때문에, 무리하게 평가를 도입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학습은 시작될 때가 아니라, 훗날 의미를 파악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 저자도 같은 의미에서 교육의 산출물은 측정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교수로서 오랫동안 근무했고, 교무 책임자로 5년간 활동한 후 내린 그의 결론은 ‘교육 성과로서 측정 가능한 것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지금 당장 결과를 측정할 수 있고, 또 눈에 드러나는 결과를 보여주기를 바란다. 이것은 교육의 본질적 의미를 훼손하고, 결과적으로 교육을 상품화 하게 된다.
저자는 더 나아가 자본주의적 원리가 우리의 삶을 파괴하고, 마침내 학교조차 망쳐버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사람들은 자본주의적 원리에 따라 주고 받는(give and take) 행동에 익숙해졌다. 이 과정에서 등가교환을 배우고, 공부나 노동에서도 이와 같은 방법을 적용한다. 이것이 극단화될 때, ‘공부로부터의 도피’와 ‘노동으로부터의 도피’가 발생한다. 그래서 그는 공부나 노동으로부터의 도피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등가교환이 아니라, 노동을 통해 사회 속에서 인정받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요즘 전교조가 동네북이다. 교원평가제 도입을 수용하라는 압력이 정부 뿐 아니라 각 정치세력과 이른 바 사회단체에서도 계속 들어온다. 교원평가제를 수용하지 않는 것은 ‘집단 이기주의’라는 것이 이들의 시각이다. 하지만, 교원평가제의 합리적 귀결점은 자녀의 성적과 교사평가를 연동하는 것이다. 물론 학력 이외의 요소로 학생생활지도나 교사근무태도가 있겠지만, 이것은 평가자의 자의가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영미식 평가모델이 도입된 서양에서는 학생 성적에 따라 교사를 평가하는 것이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하류지향』의 저자 우치다 타츠루가 우려하는 바다. 측정불가능한 것을 수치로 만드는 것은 학교를 공장으로, 학생을 상품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한 행동이라는 주장이다. 어쩌면 ‘공부로부터의 도피’, ‘노동으로부터의 도피’, 학교시장화는 ‘인간고립화’라는 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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