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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호 [현장에서] 생전 처음 해 본 삭발단식투쟁

2008.06.26 17:32

진보교육 조회 수:1654

생전 처음 해 본 삭발단식투쟁

김상열 ‖ 전교조 충북지부장

2MB 정부가 출범하기 전 인수위 시절부터 영어몰입교육, 고교다양화 300프로젝트 등 입시경쟁교육 정책을 쏟아내더니만 급기야는 시도교육감들까지 3월초 전국단위 일제식 진단평가를 실시하였다. 비교적 진보적(?)이라고 평가했던 김대중/노무현 정권도 전교조로서는 만만한 정권이 아니었다. 그런데 앞으로 2MB와 한나라당, 조중동까지 합세하여 이 땅의 교육을 시장판으로 몰아갈 것이 뻔한데, 전교조는 향후 5년을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본부/지부를 막론하고 전교조 활동가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고민하였을 것이다.

예상했던대로 4․9총선은 2MB의 시장주의 교육정책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여기저기서 한숨소리가 들려온다. 국회의원을 마다하고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으로 들어간 이주호를 중심으로 시장주의자들은 철저한 입시경쟁 교육으로 아이들을 입시지옥으로 몰아갈 것이 뻔하다. 가난한 부모를 둔 아이들이나, 지방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에게는 그나마도 기회를 박탈당할 것이 뻔하다. 서울 중심, 가진 자 중심으로 입시제도를 개편하고 고액의 과외를 받지 않고서는 소위 명문대학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마침 충북지부는 지난 연말에 체결된 단체협약 설명회를 도교육청의 협조로 진행할 수 있었다. 4월 내내 학교 방문과 권역별 설명회를 진행하였다. 현장의 조합원은 막연한 불안감으로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교원평가, 공무원연금법 등 교원정책에 대한 관심은 높았으나, 이 시기에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는 아무도 선뜻 이야기하지 못한다. “전교조가 앞장서서 투쟁하겠다”고 큰소리는 쳤지만 나 역시도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난감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총선에서 승리한 2MB 정부는 드디어 ‘415 학교자율화 조치’를 시작으로 교육시장화 정책의 포문을 열었다. 그날 마침 제342차 중집이 열렸지만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본부의 사업계획에는 대응방안이 제시되지 못했다. 이후 상집을 통해 대응방안을 보내준다고 했지만 이후 본부의 투쟁은 각 지부가 해당 시도교육청에 항의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서울지부가 선봉에 섰다. 4월 21일 교육부 앞 노숙투쟁에 돌입한 것이다. 몇몇 지부가 투쟁을 결의하였다. 뒤늦게 위원장은 청와대 앞 1인시위로 체면치레를 하려다가 상황이 긴박하게 진행되자 단식농성으로 전환한다. 4월 25일 중앙위원회에서 총력투쟁 계획이 논의될 줄 알았으나, 역시 각 지부별로 시도교육청을 압박하라는 정도로 논의되었다고 한다. 최소한 지부장단이 상경하여 단식농성을 전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몇몇 지부장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는 당시 제천에서 학교 방문과 단협설명회를 진행하던 중 본부의 상황을 보고받고 긴급하게 지부 상집을 소집하였다. 4월 27일 일요일에 소집된 지부 상집에서는 4월 29일로 예정된 충북교육청의 후속조치 발표에 앞서 4월 28일부터 도교육청 앞 천막농성을 시작하고, 충북교육청의 후속조치가 발표되면 4월 30일에 충북교사 결의대회를 통해 지부장 삭발투쟁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러나 4월 28일 아침 전임․상근자회의에서는 천막농성에 대한 걱정이 나왔다. 최근 경찰에서 천막을 허용하지 않는다.(이미 작년 천막농성 때 몇 차례 철거당한 적이 있음) 그렇다고 교육청 건물 안에서 농성하는 것도 교육청이 용납하지 않는다.(이미 교육청 농성으로 지부장이 두 차례 기소유예를 받은 적이 있음) 그렇다면 거점 확보를 위해서는 좀 더 높은 수위의 투쟁전술이 배치되어야 한다. 상집에서는 결의되지 않았지만 주말 내내 고민하였던 ‘단식’ 카드를 뽑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긴급하게 지부 집행위원에게 문자를 보내고 의견을 구했다. 다들 부담스러운 분위기였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으므로 할 수없이 동의해주는 분위기였다.

4월 28일 오후 2시에 투쟁선포 기자회견과 함께 ‘지부장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하였다. 농성장은 도교육청 현관이다. 예상대로 도교육청에서는 농성장을 침탈하지는 못했다.(단식까지 하는데 들어내기는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너무 갑작스럽게 결정된 단식투쟁인지라 가장 중요한 절차를 거치지 못했다. 저녁이면 지역 방송에서 난리가 날텐데...(청주에는 4개의 TV방송이 있는데 전교조 충북지부 활동은 매우 잘 보도가 됨) 아내와 가족들에게 미리 알리지 못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으나 설득하기가 어려웠다. 다음 날 밤에 집에 잠깐 들러서 어렵게 아내를 설득했다. 그런데 내일이면 또 삭발을 하는데... 아내에게 도저히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비합시절 전교조 활동을 반대하던 아내를 합법화 이후에 겨우 설득하여 이제는 자유롭게 조합활동을 하고 있는데, 새삼스럽게 가투(?)를 다시 하려니 막막해진다.

예상보다 하루 늦게 충북교육청은 4월 30일에 415 후속조치를 발표하였다. 교과부의 29개 폐지 지침 중 26개는 그대로 폐지하고 3개는 수정한다는 내용이다. 예상했던 바였으나 교과부의 지침을 가장 충실하게 반영한 결과였다. 중앙정부의 지침이라고 아무 생각없이 쫒아가는 충북교육청의 행태를 보면서 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앞으로 전개될 충북 교육의 미래가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아이들이 불쌍하다. 저녁에는 150여명의 조합원과 민주노총 동지들이 모여서 도교육청 규탄 결의대회를 갖고, 지부장 삭발식을 진행하였다. 충북지부 19년 역사에서 지부장 삭발․단식농성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합원들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그들의 떨리는 투쟁가가 귓가에 들려온다. 애써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눈을 감았다. 아내에게 어떻게 이 상황을 설명해야 할지 걱정도 앞선다. 오늘은 아내에게 전화도 못했다.

3일째 단식에 접어들었지만 배가 고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 국면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대책없는 남편의 행동에 속상한 아내를 어떻게 달랠 것인가?가 오히려 내 머리 속을 가득 채웠다. TV 뉴스를 본 아내는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소리치며 전화를 끊었다. 다시 전화를 걸 용기도 나지 않았다.

기자들은 언제까지 농성을 할 것인가? 도교육청과 협상은 진행되는가? 도교육청의 후속조치가 당장 학교를 뒤집을 정도의 상황은 아니지 않느냐?는 질문이 쇄도했다. “무기한 농성이다.” “도교육청과 협상할 것이 없다.” “당장 학교에서 난리가 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면서도 충북지부 19년 역사에서 가장 강도 높은 투쟁전술을 전개한 이유가 무엇인가? 여러 가지 고민 속에서 선택한 투쟁전술이지만, 이 시기에 삭발단식을 결행한 가장 큰 이유는 2MB 정권 하에서 움츠리고 있는 현장 동력을 끌어내는 것이 이번 투쟁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다. 합법화 초기 300여명이 모이던 교사결의대회가 최근에는 100명을 채우기가 힘들다. 2MB의 교육정책이 이 나라를 황폐화시킬 것이 눈앞에 보이는데도 현장에서는 머리로 걱정만 할 뿐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4․9 총선 이후 이런 모습은 더욱 더 심화되었다.


농성 8일째 어린이날 행사로 각 지회가 정신없이 바쁘다. 이미 단식 1주일이 넘어 몰골이 상하기는 했지만 현장을 둘러보는 것이 조합원들에게 힘이 될 것 같아 몇몇 지역을 방문하였다. 2MB는 이 나라 교육을 망치고, 전교조 조합원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무너져 가는 공교육을 바로 세우기 위해 몸부림치는 현장을 실감하는 느낌이었다. 단식 17일 동안 수많은 조합원들이 농성장을 방문하였고, 몇 차례 집회에서도 예전보다 더 많은 조합원들이 교육청 앞으로 달려왔다. 모처럼 지역에서 2MB 교육정책에 대항하는 43개 시민사회노동단체 공대위가 구성되었다. 524 교사대회에는 충북지부 역사상 가장 많은 250여명의 조합원과 가족들이 여의도로 달려갔다.

때마침 광우병 쇠고기 촛불집회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시기와 맞물려 충북지역에서 415 학교황폐화 조치를 이슈화시키고, 침체된 현장 동력을 조금이라도 복원시키는데 일조했다면 삭발단식 투쟁은 그 역할을 다했다고 자위하고 싶다. 평생 처음하는 단식농성이라 다소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2008년 2MB 정권에서 이 땅의 공교육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몸부림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나 때문에 마음 고생한 아내에게는 큰 고마움을 느낀다. 늙으면 두고 보자고 악담을 하지만 아마도 아내는 그렇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TV 화면에서 삭발․단식하는 남편의 모습이 속상하고, 안타까운 마음에서 악담은 했지만 속마음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아직도 2MB의 공교육황폐화 정책은 유효하다. 우리가 가야할 길은 아직도 멀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어린 청소년들의 촛불에 의존하는 투쟁을 넘어서 전교조가 앞장서서 우리 아이들을 지켜주어야 한다. 2008년, 전교조의 역사를 새로 쓰는 한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오늘밤 촛불집회를 향해 또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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