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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호 [담론과문화] 오늘의 베토벤

2008.04.07 16:29

진보교육 조회 수:2255

오늘의 베토벤

                                                                                                  송재혁 ‖ 미성중학교

  아닌 것을 붙잡고 애만 쓴다

  아이슬러에서 쇼스타코비치를 거쳐 이제 베토벤으로 왔다. 진보운동의 대척점에 선 보수 귀족 문화로 인식되는 소위 ‘클래식’ 분야에서 진보를 읽어내는 글을 기고하는 것이 이게 마지막이 될 듯싶다. 세계는 넓고 음악은 많으니 굳이 클래식에서 소재를 찾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우연찮게 주로 클래식 음악을 들어 온 나로서는 진보운동과 클래식을 내용적으로 결부해보려는 시도를 계속 해나가겠지만, 보다 넓은 음악의 세계로 소재의 범위를 넓힐 필요성을 생각한다면 클래식은 이제 지면을 양보할 때가 되었다. ‘아닌 것을 붙잡고 애만 쓴다’는 주변의 일부 비판 역시 나 스스로 가지고 있는 인식이기도 하다.  

  갈등의 삶, 초월의 예술

  클래식이나 음악가의 대명사로 읽혀지는 ‘베토벤’을 두고 여러 가지 견해들이 있다. 귀족사회에 봉사한 음악가에 불과하다는 견해와 당대의 급진 이념 중 하나였던 계몽주의와 프랑스혁명 사상, 만민평등사상에 공감한 혁명적 인물이었다는 견해가 있다. 혁명과 반혁명으로 혼란한 유럽, 보수와 진보가 공존하는 모순의 독일 사회에서 음악가의 사회적 지위가 변동하는 이행기를 살았던 그는 귀족 사회와 부르주와 사회를 둘 다 음악 생산의 기반으로 삼아야 했다. 이런 현실적인 조건은 그로 하여금 확고한 정치적 입장의 결정을 어렵게 했을 것이다. 그가 취한 어정쩡한 입장을 보여주는 많은 일화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이 드러난다. 1770년부터 1827년까지 살아간 독일인 베토벤은 머리로는 새로운 사회를 꿈꾸었을지언정 일상의 삶에서는 기존 사회와 적절히 타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영화 ‘불멸의 연인’이나 ‘카핑 베토벤’에서 살짝 드러나듯이 정치 지향의 기본은 공화주의였던 듯 하다. 이는 당시 독일에서 정치적으로 매우 진보적인 입장이었을 것이다. 옆 나라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났으나 독일은 여전히 보수적인 귀족 정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전쟁의 혼란마저 있었다. 이 변혁기에 그의 사상적 지향은 작품 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기존의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와는 다른 격렬함과 심각함, 영웅적 분위기를 드러낸다. 베토벤은 누구인가? 어느 베토벤 평전의 부제, ‘갈등의 삶, 초월의 예술’이라는 표현이 딱 절적할 듯 하다.  

  새로운 소리, 새로운 음악

  그의 음악은 어떠할까? 소련의 베토벤이라 하는 쇼스타코비치와 마찬가지로, 교향곡들은  사상성의 광활한 표현을 보여주지만, 실내악 등 많은 작품에서는 소시민적이고 사적인 감정에 충만해 있기도 하다. 그의 대표적인 장르인 교향곡에서는 분명 이전과 확실히 다르게 들리는 면모가 있다. 가사가 없어 구체성이 있을 수 없는 장르임에도 뭔가 강하게 말하려고 한다. 새로운 진보적 힘을 담지하고 있다.

  3번 교향곡은 두 개의 천둥소리로 시작한다. 이 강력한 1도 화음은 새로운 시대가 열림을 단호히 선언하는 듯 하다. 2악장 영웅의 죽음과 점진적 활력을 구축해가는 3악장에 이어 웅대한 긍정의 결말로 치닫는다. 4번 역시 때때로 진지하고 심각하며 정신적인 활력이 격렬한 쾌속 질주로 표현된다. 그 유명한 5번은 1악장 첫머리에서 생성된 4연음의 단순한 동기가 전편에서 변형 발전되어간다. ‘(읏)따따따따’가 전곡을 관통하는 추진력으로 작동하는 완벽한 조형미를 갖추었을 뿐 아니라, 투쟁과 승리의 도식을 강렬하게 표출함으로써 듣는 이의 영혼을 뒤흔든다. 식사 중이나 잠자리 들기 전에 듣기에는 많이 불편하다. 들을 사람의 즐거움을 의식하며 만드는 쾌락적 오락물을 넘어, 저자가 자신의 주장과 의견을 토해내는 하나의 사상서가 되어 간다.  
  
  교향곡이라는 추상적이고 순음악적 도구로는 자신의 사상을 형상화하는데 한계를 느꼈는지, 결국 마지막 교향곡에서는 인간의 목소리와 텍스트를 동원하게 된다. 교향곡의 형식과 내용을 최고의 경지로 끌어올려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은 그가 스스로 그것을 허무는 순간이다. 음악적으로 매우 아쉬운 장면으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내용과 형식의 변증법이란 측면에서 당연한 일일 것이다. 포화된 내용은 그 것을 내포하지 못하는 형식의 외피를 깨어버린 것이다.

  누구의 베토벤인가

  21세의 베토벤은 이미 “나의 예술은 가난한 사람들의 행복에 이바지하여야한다”고 했단다. 쉴러의 시를 읽고 음악화하리라 마음먹은 지 30여년이 지난 1823년에 완성한 9번 교향곡은 그의 사상을 집약한 역작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나 긴 과정에서 처음의 구상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형되어 갔다. 4악장에 사용된 쉴러의 송가 ‘환희에 부쳐’는 1803년판을 사용했으나 원래는 1785년에 창작된 것이었다. 젊은 공화주의자 베토벤은 이 혁명적인 시의 한 구절도 빠뜨리지 않고 작곡할 생각을 품었겠지만 결국 원 텍스트에 많이 개입하게 된다. 예컨대 “전제군주의 권력으로부터 안전을! 반역자들의 요새에 자비를!”이 삭제되었으며, “거지는 제후의 형제가 되리라”는 “모든 인간이 형제가 되리라”로 대체된다. 당시 공화주의의 사상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간이 형제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계급과 국적(민족)을 넘는 ‘연대’의 정신을 표현하는 것으로, 오늘날에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오 벗이여, 이 음이 아닐세. 더 기분 좋은 더 기쁜 노래를 부르세”는 베토벤에 의해 삽입된 가사인데, 바리톤에 의한 이 갑작스러운 부정의 멘트는 비참한 현실에 대한 강한 거부와 저항의 이미지를 가져온다. “별들이 지는 곳에 하느님이 계신다”는 구절은 ‘제후의 권력이 사라지는 곳에 새로운 민중의 세상의 열린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4악장은 음악 못지않게 가사 전체의 의미가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그것은 단순한 종교적 의미를 넘어선 혁명적 텍스트인 것이다.  
  4악장의 가사 뿐 아니라 코랄의 주선율 또한 대단히 민중적이다. ‘미미파솔 솔파미레 도도레미 미레레, 미미파솔 솔파미레 도도레미 레도도…….’ 음치도 부르기 쉬운, 위대한 교향곡의 주제 치고는 너무도 단순 명쾌한 선율이다. ‘코랄’이란 원래 라틴 미사곡과 달리 민중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부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쉬운 찬송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9번 교향곡의 표제는 ‘합창’ 보다는 ‘코랄’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 민중적인 함의를 더 살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베토벤 9번이 이렇다 보니 좌파, 우파, 기독교인, 비종교인 가리지 않고 이 곡을 나름대로 해석하여 소유하려 하였다. 대표적인 예가 나치즘인데 이 곡이 히틀러의 문화적 장식품을 넘어 나치즘 이념의 상징물로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새로운 진보적 예술에 적대적이었던 나치는 진보적 기법이나 사회주의적 실험을 모조리 퇴폐 예술로 몰아 탄압하고 축출하는 한편, 베토벤, 바그너 등 구시대의 음악을 크게 장려한다. 보수적 정치는 문화도 보수적이었던 것이다. (베토벤 음악의 정치적 이용에 대한 상세한 분석은 이경분의 글 ‘베토벤 수용을 통해 본 나치의 음악정책’에 잘 정리되어 있다.) 푸르트뱅글러와 베를린 필하모니가 1942년 4월 히틀러 앞에서 그의 탄생 축하 공연으로 이 곡을 연주한 영상물(4악장 말미 4분 30초 분량)은 지금 봐도 섬뜩하다. 사회주의권에서는 나름대로의 의미를 담아 이 곡을 연주하였고, 독일 통일이나 동구 몰락 시에는 하나의 정치적 이벤트로서 자주 연주되었다.  

  2MB 필하모니
  
  지난 2월 25일, 인터넷 다시 보기로 접한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서의 9번 교향곡 연주는 나치의 그것과 너무나 닮았다. 연주된 부분은 히틀러 탄생 축하 연주의 영상 기록처럼 공연으로서 완전한 형태도 아닐 뿐더러, 4악장의 앞부분과 독창이 등장하는 부분을 중간에서 떼어먹어 짜깁기 한 이상한 것이었다. 지휘자는 오케스트라 앞이 아니라 중앙 연단 앞에 서 있었고 합창단은 저 뒤에 서있어서 화면으로 봐도 의미 있는 지휘가 불가능한 배치였다. 예술 공연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선전 쇼였는데도 이걸 보고 감동을 먹은 사람들도 있나 보다. 음악 중간에 미리 준비된 영상들이 삽입되어 밝은 미래를 예고한다. 마지막에 대통령은 즐거워하며 박수를 치고 지휘자 정명훈은 자신이 직접 깎아 만들어 쓴다는 지휘봉을 대통령에게 선물한다. 대본에도 없다던 이 장면을 보수 언론이 가만 둘 리 없다. 민주주의와 지도자의 관계를 오케스트라와 지휘자의 관계로 환치하는 그 지겹고 식상한 논리를 몇몇 학자와 저서까지 들 먹이면서, 대한민국을 잘 지휘하라는 의미로 지휘봉을 준 것이라고 선전한다. 단원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시만 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서구 고전음악의 특수성에서 잉태된 독특한 역할일 뿐 누가 봐도 민주적이지 않다. 지휘자 같은 대통령은 독재자일 뿐이다.

  애초에 정명훈과 이명박의 관계가 이렇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2005년 서울시장 이명박은 세계적으로 명망 있는 지휘자 정명훈을 영입하면서, 서울시립교향악단 노조를 무시하고 악단을 사실상 해체하여 오디션을 통해 단원을 다시 뽑으면서 재단법인화 했다. 음악 분야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가히 신자유주의 시대의 가장 야만적인 구조조정의 표본으로 기록될 만 하다. 노동자를 일단 전원 해고한 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오디션에서 실력 위주로 다시 뽑았다. <소금꽃나무>의 저자 민주노총 부산지부 지도위원 김진숙 씨가 2005년 마산시향의 사레를 들어 쓴 글 ‘교향악단 오디션과 교원평가’에 나오는 대로, 예술노동자들의 목숨이 지휘자의 야릇한 취향에 거의 전적으로 내 맡겨졌다. 그래놓고는 서울시향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했으니 계속 그렇게 불러달란다. 이후로 서울시 산하 예술단들이 줄줄이 구조 조정되어갔다. 당시 서울시향은 이전에 비해 졸연을 좀 자주 내어놓고 있긴 했다. 이 때 나는 우리 학교 조합원 선생님들을 설득해 서울시향 해체 반대 서명을 수십 명으로부터 받아 서울시 예술노조에 제출한 적이 있다. 당시 서울시향 노조 위원장의 따님이란 분은 음악동호회 싸이트의 쪽지 기능을 통해 감사의 편지를 보내왔다. 아름다운 음악을 위해서는 예술노동자의 해고는 아무 문제 아니라는 이명박의 논리에 당시 클래식 애호가를 자칭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조했다. 나의 의견은 극소수 의견으로 간주되었다. 아무리 좋은 연주라 해도 남의 눈물을 짜낸 결과라면 마음이 불편해서 외면하고 싶다고 했다. 시향이 까다로운 귀를 가진 소수 매니아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결국 시향은 이명박 필하모니로 다시 태어났고, 이제 이 정권 하에서 무수히 많은 공무원과 노동자들이 옛 서울시향 단원들과 같은 처지가 될 것이다.

   푸르트뱅글러가 히틀러의 민족사회주의 파시즘의 정치적 장식품이었다면 정명훈은 이명박의 신자유주의 파시즘의 정치적 장식품이 되어 가는가. 푸르트뱅글러의 전기에 의하면 그는 나치에 대해 반발과 협력을 번갈아 하면서 히틀러 탄생 기념 연주는 어떻게든 빠져 보려고 꼼수를 부렸다. 그에 비하면 정명훈은 푸르트뱅글러보다 거부하기 좋은 조건에 놓여 있다. 이런 점에서, 정명훈을 음악적으로는 대체로 좋아하는 편이지만 인간적으로는 매우 실망스럽게 생각한다. 음악가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긴 힘들겠지만, 음악에는 죄가 없어도 음악가에겐 죄가 있을 수 있다는 점, 음악가에게도 사회적 책무가 존재함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그의 정치적 소신이 신자유주의 파시즘이라면 더 할 말은 없겠다. 그러나 유럽 변혁기의 베토벤 코드를 의미 있게 복기한다면, 취임식의 베토벤은 크게 탈선한 셈이다. 2MB 필하모니와 정명훈의 9번은 내가 본 최악의 공연이자 한심한 정치 이벤트였다. 베토벤을 줄기차게 사랑하고 9번 교향곡을 수백, 수천 번 들었지만, 취임식의 음악은 ‘환희의 송가’가 아니라 ‘비극의 전주곡’임이 분명했다.

  평양의 미국인

  더렵혀진 귀를 씻어보고자, 역사적인 평양 공연을 마치고 남쪽에서 연주하는 뉴욕필하모니 공연을 찾았다. 취임식 3일 후인 28일 낮, 예술의전당이었다. 프롤레타리아 전용석(?)인 무대 뒤 합창석에 쭈그리고 앉아 베토벤의 5번 교향곡을 들었다. 3악장 말미에서 구름이 서서히 걷히고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는 4악장 초입으로 넘어가는 부분은 언제 들어도 짜릿하다. 북미관계가 새롭게 설정되고 반도의 분단 모순이 해소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명박의 신자유주의 파시즘이 파탄 나고 민중의 새 세상이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소리의 폭포를 한껏 들이켰다. 앵콜로 연주된 북녘 작곡가 최성환의 ‘아리랑 환상곡’을 듣고는 크게 감동 먹어 기립박수까지 하고 연주회장을 나오는데, 하마터면 여자 분하고 박치기를 할 뻔하여, “죄송합니다” 하고 돌아보니, 인수위의 그 분이셨다. 하마터면 “오우, 미즈 아륀쥐!” 할 뻔 했다. 음악과 연주자와 감상자의 입장 사이에 엄청난 괴리가 있는 현실이다.  쇼스타코비치의 혁명적 교향곡을 자본가가 와서 듣고 감동 먹고, 반공 냉전주의자가 북녘 음악을 들으며 눈물 질질 짜고, 모든 인류는 하나가 되라고 외치는 베토벤을 이라크 파병 찬성론자가 듣고 부라보 외친다. 그야말로 클래식은 만인에게 평등하다. (?)

  음반과 읽을거리

  베토벤을 버릴 것이 아니라 베토벤을 ‘제대로’ 들을 일이다.

  변혁적 활력과 보수 반동의 억압이 병존하던 당대와 호흡하며 자신의 이상을 새로운 음악으로 당당하게 펼쳐나간 베토벤의 진보성을 인정한다면, 연주를 선택할 때 나치 당원이었던 카라얀의 고급 양주 맛은 불편하다. 소주 맛은 없는가? 존 엘리엇 가디너가 지휘한 ‘혁명과 낭만의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5번 교향곡에 새롭게 다가가 보자. 새로운 진보의 기운이 지친 가슴에 ‘따다다닥’ 노크할지 모른다.

  3번의 경우 가디너의 연주와 더불어 조르디 사발이 지휘한 ‘르 콩세르 드 나시옹(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의 음악을 담당)의 연주가 당대의 시대 정신을 상큼하게 표현한다. 가혹한 현실을 극복하고 이상을 끝내 실현한다는 희망의 도식을 보여주는 승리의 5(Ⅴ)번의 경우, 연주의 질은 떨어져도 의미심장한 연주가 있다.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한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의 2005년 8월 22일 라말라 실황이다. 지휘자가 그의 친구인 팔레스타인 출신 지식인 에드워드 사이드와 함께 1998년 창단한 이 악단은 이스라엘과 아랍의 어린 연주자들로 구성되었다. 전쟁과 갈등의 중동에서 그 곳의 평화를 위해 연주한 베토벤의 Ⅴ는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7번은 20대의 신예,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한 베네수엘라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관현악단의 연주가 있다. 단원들 대부분은 서민 출신일 뿐 아니라 한 때 마약이나 폭력에 노출되었던 경력의 소유자들이라 한다. 혁명의 나라 베네수엘라에서  1989년 신자유주의에 반기를 들고 일어났던 봉기와 진압, 일명 ‘카라카소’의 주무대였던 ‘카라카스’에 소재한 한 대학에서 2006년 녹음된 연주이다. (국산 음반에는 이 악단에 대한 감동적인 설명이 한글로 되어 있다.)  9번은 동독 몰락 후 자살한 지휘자 헤르베르트 케겔과 라이프치히 방송 교향악단의 1987년 7월 31일 동독 실황 녹음을 추천하고 싶다. 9번 교향곡이 보통 연말의 축제 분위기 속에 연주되는 것에 반해 케겔은 보통 노동절 이브에 이 곡을 연주했다. 이 곡을 올바른 맥락에 올려놓으려는 시도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미하엘 길렌은 3악장과 4악장 사이에 쇤베르크의 ‘바르샤바의 생존자’를 삽입해 연주하기도 했다는데, 녹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박홍규가 쓴 <베토벤 평전 : 갈등의 삶, 초월의 예술>은 베토벤과 당대 사회의 관계를 상세히 다루면서 그의 진보적 면모를 부각하였다. 이경분의 <망명음악 나치음악>에서는 클래식 음악과 정치의 밀접한 관계가 상징적으로 드러난 나치독일의 사례를 파헤친다. 한스 아이슬러를 포함한 망명음악가들과 나치 이후 서독 음악계의 어두운 면까지 다루고 있어 좋은 정보가 가득하다. 올해 초 번역되어 나온 에드워드 사이드의 강연록 제목은 도발적이다. <음악은 사회적이다>. 예상과 달리 서양 클래식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16년 째 담당하고 있는 <시사음악반> 계발활동이나, 우리 전교조 관악동작지회에서 3년째 연수로 추진하고 있는 <사회적 맥락으로 음악읽기>에서의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음악의 정치성과 계급성을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 드문 상황에서,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진보운동가에게는 그나마 반가운 책일 것이다. 베토벤이 여성이 아니고 작곡가와 지휘자가 대부분 남성이어서 클래식이 미운 분에게는 민은기 저, <음악과 페미니즘>이 반가울 것이다. 클래식 음악계의 남성 중심성을 낱낱이 해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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