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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 [담론과문화] 욕망의 통제? 욕망의 생산?

2008.01.07 00:17

진보교육 조회 수:1949

[담론과문화2]
욕망의 통제? 욕망의 생산?
은하철도 (진보교육연구소 연구원)

고등학교 시절 즐겨 듣던 심야의 라디오 방송이 있었다. 그리 좋은 목소리는 아니었고, 일관성 있는 주장은 아니었지만 ‘대명사’와 난해한 전문용어를 섞어서 영화를 설명하는 정성일씨가 담당하던 영화음악 프로였다. 금단의 땅이었던 소비에트러시아의 ‘에이젠슈타인’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영화부터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종교적 엑스타스즘, 그리고 주윤발이가 성냥물고 마구 총을 쏘던 ‘홍콩 느와르’에서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까지. 종횡무진 서구와 아시아를 아우르는 그의 영화 설명에 지금처럼 자료를 구하기 어려운 시절에는 상상만으로도  즐거워하면서 방송 시간을 기다렸던 것 같다.
그보다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깜장뿔테’ 안경을 쓰고 일요일에 방영할 영화를 설명해주던 정영일 선생이  있었다. 주말 9시에서 10시 사이 각 방송국에서는 ‘주말의 명화’니 ‘명화극장’이니 등의 이름을 걸고 고전영화들을 상영했었다. 방송 편성 기준에 따라 장면이 많이 삭제 된 체로 그리고 흑백 방송이었던 관계로 총천연색 영화도 당시의 우리의 정치 상황인양 양분법적 흑백의 기준으로 방송을 타서 브라운관을 통해 각 가정의 시청자들에게 전해졌던 것 같다. ‘잉그리드 버그만’의 초점 없는 눈빛, ‘비비안 리’의 뾰쪽한 입술, 율 브린너의 민머리를 극동의 한 꼭지에 살던 소년에게 새로운 땅과 미지의 역사를 알려주었었다.
그 당시 기억나는 배우 중에 미남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던 프랑스의 남자 배우 ‘알랭들롱’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초기작 ‘태양은 가득히’. 바다와 이국적인 이탈리아 시칠리 섬 연안의 도시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강렬했던 젊은 알랭들롱의 눈빛이 기억에 남는다.


주인공 ‘톰’은  ‘필립’을 이탈리아에서 미국의 집으로 데려오면 거금의 돈을 받기로 하고 부호인 필립의 아버지의 부탁을 받고 필립에게로 간다. 그러나 필립은 요지부동! 급기야 톰의 존재에 부담을 느낀 나머지 필립은 오히려 톰을 미국으로 되돌려 보내려고 한다. 결국 최후의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다. 빈털터리로 고향으로 돌아가는냐 아니면 멋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느냐! 사건은 햇살 작렬하는 지중해의 바다 한가운데 호화 요트에서  발생한다. ‘이방인’의 뫼르소의 햇살 가득한 지중해 연안의 북아프리카 어느 도시에서의 정오의 살인은 자기 실존의 확인을 위한 절규적 살인이었다면 단도로 필립을 살해하고 시체를 돛으로 감싸 바다에 버리는 톰의 살인의 자기 파괴적인 멸존적 살인이다. 앞의 살인이 정신적 자기 실존 확인을 위한 정신적 살인이라면 톰의 살인은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완전 연소시키고 새로운 육체와 정신을 위한 자본주의적 물질적 살인이다. 살인 후  부호의 아들인 또 다른 필립으로 가난뱅이 톰은 로마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그러나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르고 마지막에 필립의 연인이었던 ‘마르쥐’의 사랑도 얻고 완벽하게 인생역전이 성공하나 싶더니 어처구니없이 버렸던 필립의 시체가 요트의 줄에 걸려 바다로 사라지지 않고 인양되는 순간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

통속적인 줄거리에 복잡하지 않는 인물들의 성격 설정 그리고 ‘권선징악’의 단순한 주제. 그러나 이 영화가 기억에 남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알랭들롱의 마지막의 강렬한 눈빛이다. 1960년에 제작한 영화이기에 당시 그는 20대 초반의 신인이었다. 70년대 들어 ‘프렌치 느와르’ 류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한껏 주가를 올렸던 알랭들롱의 전성기와 10여년의 차이가 있다. 70년의 그의 눈빛은 세상에 대한 달관 내지는 절망에서 오는 피곤한 사람의 단발마적 인 것이라면 ‘태양은 가득히’에서의 그의 눈빛은 청년의 주체할 수 없는 희망과 세계에 대한 맹목적인 욕망에서 우러나오는 절규하는 ‘주어’ 없는 눈빛이다.
생산력의 무한한 확대를 꿈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연적인 소비의 무한한 확대는 필요충분조건이 된다. 확대된 생산력에 의한 상품의 무더기를 보면서 자본주의는 상품의 생산 말고도 ‘소비의 무한한 확대 생산’을 새로이 기획하고 고민해야만 했다. 상품의 생산이 한 공장차원과 국가 차원의 결정이라면 ‘소비의 생산’은 공장 밖의 그리고 국제적 차원의 결정과 기획이어야 한다. 필연적으로 자본주의의의 탄생과 더불어 스페인, 포르투칼의 ‘신대륙’ 정복과 식민지 시대의 개막은 동전의 양면이다. 콜롬부스가 카리브 해 연안에 상륙하면서 당시의 선주민과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서양의 상품과 그 지역의 산물과의 교역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가? 처음에는 선물 수준의 체면치례였지만 점점 규모는 커지고 배 한척의 화물에서 거대한 선단 규모의 화물로 확대되며 공정한(?)교환에서 폭력적 수단을 통한 선주민의 노예화와 선주민의 토지로부터의 구축을 통한 플랜테이션적 생산과 채찍과 고문으로 상징되는  강제 노역 등을 통한 수탈로 발전한다. 19세기 극단의 식민지 확대는 극단으로 치달아 ‘제국주의’시대를 맡게 된다. 한계의 노출이 바로 20세기 초반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다. 전쟁의 양상이 국지전에서 세계전으로 바뀌고 군인간의 전쟁에서 민족 대 민족, 국민 대 국민의 총력전의 양상으로 바뀌는 자기파괴적 자본주의의 광기는 결국 파탄과 한계 그리고 자기 붕괴라는 자아 불안적 불안을 낳게 되었다. 21세기 전지구적 세계화 시대에서 상품의 생산과 소비의 생산은 전지구적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다. 미국의 ‘나이키’ 운동화가 중국 남부 연안의 중국 노동자들에 의해 생산됨과 더불어 피부와 눈동자 색깔의 차이와 체형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리바이스’청바지를 입어야 하며, ‘베네통’의 티셔츠를 걸쳐야 한다.  
여기서 21세기의 자본주의가 그친다면 이전의 자본주의와 큰 차이점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전 지구적 세계화 시대의 자본주의는 공간적 외연의 확대는 필연적인 한계를 보일 수 있다는 제국주의 시대의 ‘교훈’과 로자 룩셈부르크의 경고를 잊지 않고 한계가 없는 영역으로의 확대와 침투를 꿈꾼다. 공간적 외연을 가지고 있지 않는 인간의 의식과 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어차피 공간을 차지 않는 것이라면 한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24시간 쏟아지는 정보와 데이터의 흐름 속에 인간 주체의 인식과 판단은 극단적인 혼란과 착란 속에 무엇이 자신의 생각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에 의한 판단인지를 구분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내가 살기 위해서 인지 아니면 유명 연예인이 살기 위해서 인지 착란 속에서  아파트를 구하고 배가 고파서 인지 아니면 쿠폰과 마일리지를 쌓기 위해서인지 혼란 속에서 피자를 시켜 먹는다. 겨울철에 설원에서 신나게 눈을 가르면서 내가 스키를 타기 위해선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스키 타기에 배경이 되기 위해서인지 햇갈리면서 강원도의 스키장을 향해 간다.
톰의 욕망은 친구인 필립의 아버지에 의해 촉발되었고 미국에 갈 듯 말 듯하면서 톰을 우롱한 필립의 태도와 필립과 생활하면서 경험하지 못했던 화폐의 놀라운 권능과 소비의 흥청 망청에 서서히 확대된다. 자본주의 현란한 소비와 욕망 속에 자신의 몸과 정신을 맡기게 된다. 원래 욕망이란 사회적인 것은 아닐까? ‘지방시’의 양복과 ‘샤넬’구두의 착용감과 산뜻함을 톰은 원래부터 욕망했던가?  
포장마차라도 하려고 3천만원을 어떻게든 모으려던 택시 강도단이 등장하고, 10억이 생긴다면 어느 정도의 범죄도 가능하다라는 물음에 50% 정도의 고등학생이 긍정하는 사회의 광기 속에, 주가 조작과 각종 탈세와 부동산 투기 등을 통해 수백억의 재산을 모은 대통령 후보에 대한 국민들의 무절제한 지지가 2007년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누가 과연 ‘톰’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그리고 누가 던질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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