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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 [담론과문화] 다시 듣는 쇼스타코비치

2008.01.07 00:16

진보교육 조회 수:2321

[담론과문화3]
다시 듣는 쇼스타코비치

송재혁(문창중)


작년은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이자 쇼스타코비치 탄생 100주년이었다. 모차르트로 떠들썩한 한 해였지만 쇼스타코비치는 여전히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는 것 같았다. 80, 90년대에 쇼스타코비치는 적의 음악이었고, 그것을 듣는 것은 이적행위였다. 냉전적 문화의 그늘은 엷어졌을지언정 여전히 우리의 무의식에 드리워져 있는 듯하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는 소비에트 연방을 대표한 작곡가였다. 냉전 시대에는 그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이고도 간단했다. 공산주의 체제 선전에 충실한 도구적인 음악으로서 위험한 것으로 단정되었거나, 뭔가 진보적인 이상을 듬뿍 담은 진실의 음악으로서 반드시 몰래 들어봐야 할 의무가 있는 것으로 은밀하게 회자되었다. 반면, 소련에서 망명한 음악학자 솔로몬 볼코프의 <증언>이 출판되자 그 내용의 진실성에 의문이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주의에 억눌려 예술가로서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 늘 강요에 의해 체제가 요구하는 음악을 억지로 써내곤 했던 불운한 음악가라는 시각이 존재했다. 그의 사회주의 음악은 진정성이 없는 가짜라는 것이다.

이제 현실 사회주의권이 몰락하고 냉전의 베일에 싸였던 소련의 면모가 드러났다. 더불어 그의 음악가로서의 삶이 다른 맥락에서 읽혀지게 되었고, 그가 생산한 음악적 실물 또한  여과 없이 다양하게 공개되고 향유된다. 적성음악으로 간주되어 감상이 불가능했던 곡들도 이제는 모두 들어볼 수 있다. 그가 사회주의 리얼리즘 음악만 쓴 것은 아니었다. 내면적인 고백을 담은 많은 음악들까지 두루 접하게 됨에 따라, 그의 음악은 간단히 몇 마디로 평가해버리기 힘든 복잡한 면모를 지니고 있음이 드러난다. 더불어 그는 과연 어떤 작곡가였는가, 그리고 음악과 사회, 음악과 정치는 어떠한 관계에 있어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 질문이 다시 던져진다.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개인적인 판단을 여기 밝히는 것은 피하고, 사회성을 담보한 그의 작품 몇 편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국가보안법의 나라에서 쇼스타코비치를 듣는다는 것은 음악 감상의 범위를 넓히는 것을 넘어, 문화에서 냉전의 그늘을 적극적으로 걷어내는 실천의 의미도 지니게 될 것이다.

쇼스타코비치 하면 <재즈모음곡>의 왈츠가 우선 떠오른다. 3박자의 뽕짝풍인 이 곡은 실제로 막걸리 잔을 젓가락으로 두드리면서 흥얼거려도 자연스럽다. 영화의 삽입곡으로도 사용되어 우리에게 친근하다.  더불어 <로망스>가 인기 있다. 이 곡의 출처는 1955년 발표한 영화 ‘The gadfly(등에, 쇠파리)’에 붙인 영화음악으로, 원 제목은 ‘청춘’이다. 그런데 사랑의 추억을 회상하는 듯 감상적인 곡이어서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 아름다운 곡조차 혁명과 관련이 있다. 19세기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한 혁명가가 지배 계급에 대해 맹렬한 공격을 퍼 붓자 가축에 들붙어 괴롭히는 ‘쇠파리(등에)’라는 별명을 얻었단다. 그의 고뇌를 담은 곡이 바로 이 ‘로망스’이다.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것은 교향곡 5번이다. 에이젠슈타인의 영화 <전함 포템킨>에 8번 교향곡의 3악장 등과 더불어 중요하게 사용되었고, <혁명>이란 제목으로도 알려져 암울한 시대에 많은 젊은이들의 영혼을 뒤흔들었다. 소비에트 혁명 이후 러시아 예술계에서는 진보적인 기법이 광범위하게 실험되었는데, 쇼스타코비치 역시 아방가르드적이고 혁신적인 음악 기법을 즐겨 시도하였다. 그러나 1930년대 스탈린 시대의 등장과 더불어 예술 정책이 급격히 보수화되자 그는 당으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는다. 이에 부응하여 소위 형식주의, 엘리트주의, 아방가르드 경향을 청산하고 대중적으로 이해하기 쉽고 간결한 사회주의 리얼리즘 경향으로 돌아섰음을 선언하기 위해 화답으로 내어놓은 작품이 교향곡 5번이다.  1937년, 소비에트 혁명 20주년 기념일에 지휘자 므라빈스키에 의해 초연되었는데, 당시 소련 사회에서의 긍정적 평가를 그대로 수긍하기에는 음악이 뭔가 좀 억지스럽고 어둡게 들린다. 그래서 암울한 공산 체제하에서의 개인의 고통과 해방을 묘사했다는 견해가 곧 잘 등장한다. 특히 3악장의 스산한 어두움과 4악장의 작위적인 마무리가 근거로 인용된다. 진실은 무덤 속의 작곡자 본인만이 알 것이다.

한편, <축전 서곡>은 모순 없는 천진한 기쁨이 넘친다. 소비에트 혁명 37주년 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곡으로, 소비에트의 위업을 찬양하는 매우 밝은 분위기로 일관된다. 1954년 초연되었는데,  요즈음 우리 공연장에서도 이제 심심치 않게 연주되는 아이러니가 즐거운 당혹감을 불러일으킨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곡에 대해 “힘겨운 전쟁을 체험하고, 적에게 짓밟힌 조국을 부흥시키려는 한 남자의 감정을 그리고 싶었다,” “신 5개년 계획 재건 사업에 대한 열광적인 표현”이라고 말했다. 전형적인 관변 음악 같지만, 민중이 이해하기 쉬운 음악을 써야 한다는 기본 원칙에 매우 충실하면서도 예술적으로 잘 정돈된 곡이다. 기본적으로 온음계를 사용하여 귀에 쉽게 들어온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의 공식 주제가로도 사용되었다.

작곡가 본인이 5번보다 더 아낀 교향곡은 7번 <레닌그라드>였다고 한다. 그 자신이 소방수로서 참전한 바 있는 2차 대전(대조국전쟁) 중에 작곡되었다. 집요한 북소리와 반복되는 음형으로 나치의 침략을  장시간 묘사하는 1악장과, 러시아 민중의 결사 항전의 의지와 승리에의 예감, 또는 전쟁에서 생존하려는 민중들의 절박한 의지가 적나라하게 표현되는 4악장이 훌륭하다. 그 말미는 공교롭게도 베토벤의 ‘운명’의 동기와 유사한 4연음으로 처절하게 마무리된다. 음악 생성의 조건과 음악의 내용성 양면에서 리얼리즘 음악의 전형이다. 엄청난 희생 끝에 나치를 물리친 사회주의 소련의 의지가 표출되는 듯 하다. 그러나 동시에, 히틀러와 스탈린 사이에서 그야말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했던 민중들의 처절한 몸부림도 읽혀진다. 국가 간의 전쟁이란 결국 지배계급의 욕망을 위해 민중들의 소중한 생명이 헐값에 동원되는 내부의 전쟁에 다름 아니며, 전쟁은 국가가 수행하는 규모가 큰 테러이자 범죄행위라는 인식에 도달하지 않는 한, 이 작품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전쟁과 승리의 다이내믹한 음악적 도식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러시아혁명 90주년인 2007년이 저물어가고 보수의 파고는 높아간다.  빛바랜 역사책으로부터 ‘러시아혁명’을 다시 꺼내어 고찰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봄은 사회 개혁 내지 변혁을 열망하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지적 과정이다. 에이젠슈타인의 영화 <10월 혁명>에는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이 끊임없이 흐른다. 러시아혁명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교향곡 11번 <1905년>과 12번 <1917년>은 그가 반공주의자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큰 당혹감과 곤혹스러움을 안겨준다. 리얼리즘의 걸작인 이 두 작품은 그야말로 음으로 쓴 역사 다큐멘터리다.
  
11번 1악장, ‘동궁 앞 광장’에 이은, 2악장 ‘1월 9일 (피의 일요일)’! 동궁전을 향해 청원행진을 계속하는 무방비 상태의 민중에게 황제의 군대가 일제 사격을 가한다. 악의 근원이 황제의 시스템인데 그 시스템 내에서 황제의 자비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민중은 이 살육으로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교훈을 주는 역사적 장면이다. 이 잔혹한 살육의 현장이 무자비한 음의 폭력으로 묘사되다가 북소리가 일순 정지하고 괴기스러운 정적이 흐른다. 이 2악장을 반복해 듣는 것은, 피의 일요일을 여흥으로 즐기려는 것이 아니라 음을 통해 역사의 교훈으로 새기려는 것이기에 도덕적이다. 이어지는 3악장 ‘영원한 기억’은 불의에 저항하다 희생된 수많은 민중들에게 바쳐지는 진혼곡. 후반에서 몹시 고양되는 부분과 이어지는 팀파니의 연타 부분은 아마도 저항의 민중사와 진보의 의지에 공감하는 사람에게 가슴을 치는 충격을 줄 것이다. 4악장은 씩씩한 혁명가요들이 등장한다. 우리의 군가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와 유사한 선율도 반복된다. 1차 러시아 혁명의 실패에 대한 슬픈 추억을 담은 잉글리쉬 호른의 노래를 거쳐, 장래의 투쟁을 향한 의지를 불태우는 힘찬 경종의 울림으로 끝난다. 이 마지막 부분은 미완의 혁명이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라는, 미래에 대한 여지를 강하게 남기는 부분으로, 참으로 무서운 경종 소리와 그 잔향의 여운으로 마무리된다. 윤이상의 교향시 <광주여 영원히>의 마지막 부분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다. 4악장의 제목은 ‘경종’이다. 4악장의 끝 부분은 나태한 우리의 이성에 ‘경종’을 울린다.

11번 교향곡은 러시아혁명이라는 시·공간적 제한을 넘어 올해 27주년을 맞은 광주항쟁, 20주년을 맞은 6월항쟁 등, 지배자들의 폭력에 의한 희생과 이에 맞선 값진 저항의 역사에 대해 뭔가 말해 준다. 소련에서 망명하였고 올해 사망한 첼리스트 겸 지휘자 로스트로포비치는 9·11 테러를 추모하며 이 곡을 연주했다는데, 미국의 욕망에 의해 희생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수많은 생명들을 추모하거나 전쟁과 폭정에 의해 희생된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이 곡이 연주된다면 곡의 의미가 진정한 맥락 속에 놓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교향곡에서 쇼스타코비치는 혁명가요들을 많이 사용했다. ‘죄수의 노래, 들어주오!’, ‘동지는 쓰러지지 않는다’, ‘압제자들이여! 격노하라!’, ‘바르샤바 노동가’, ‘밤은 어두워’, ‘오오! 황제, 우리들의 아버지여’, ‘모자를 벗자’, ‘희생당한 당신은 영웅이었다’, ‘안녕, 자유여’ 등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를테면, ‘임을 위한 행진곡’, ‘파업전야’,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와 같은 곡들이 교향곡의 주요 모티브로 사용된 셈이다.

그는 11번을 1957년 10월 모스크바에서 초연하였고, 58년에 이 작품으로 레닌 훈장을 받았다. 60년 9월에는 공산당에 가입하고 이어서 러시아 2차 혁명을 다룬 교향곡 12번 <1917년>을 쓴다. 이 작품은 11번에 비해 직접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악상이 조금 부족한 듯 하지만 역시 좋은 작품이다. 2003년 가을에 소련 출신의 드미트리 키타엔코와 KBS교향악단이 이 곡을 초연했다. 2003년에서야 이 곡이 예술의전당에서 처음 연주된다는 사실 자체가 희극이지만, 마지막에 조심스럽고 어색하게 나오는 청중의 박소 소리는 또 하나의 희극이었다.

11번 역시 2005년 11월 말에 위 연주자에 의해 초연되었다. 2년 사이에 세상이 변했던가, 청중의 반응도 보다 자연스러워졌다. 당시 KBS 교향악단은 무자비한 구조조정이 완수된 서울시향에 이어 독립법인화 논의가 진행되던 시점이었기에 단원들이 화가 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단원 모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단결되고 긴장된 모습으로 이 곡의 폭발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어 주었는데, 자신들의 분노를 음악으로 표출하는 것 같았다. 그 무렵 어느 음악회가 끝나고 귀가하는 청중들에게 ‘KBS 독립 법인화 반대’ 선전지를 로비에서 열심히 나누어주는 몇몇 단원들을 보고는 악수를 청하면서 “끝까지 단결 투쟁하시라. 서울시향 같이 되지 마시라”고 말하여 같은 노동자로서의 예를 갖추었다. 그 때 가장 고마워하는 반응을 보인 단원은 늘 무대 오른 쪽 구석에서 낑낑대며 연주하는 콘트라베이스 주자였다. 그 이후로 KBS 교향악단의 연주를 볼 때마다 그 연주자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쇼스타코비치의 현악사중주 몇 곡은 루돌프 바르샤이에 의해 편곡되어 ‘실내교향곡’으로 만들어졌다. 현악사중주 8번(1960년 작)은, 부제가 ‘전쟁과 파시즘의 희생자들을 상기하여’인데, ‘실내교향곡’에서는 소리가 더 확대되어 있다. 이 부제가 쇼스타코비치의 본심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완성도가 매우 뛰어나 인기 있는 작품이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클래식음악이 몇 곡 사용되었는데, 프로코피에프의 작품들이나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 2악장과 더불어, 문어대가리 출현 시마다 섬뜩하게 흘러나온 부분이 이 곡의 4악장이다. 날카로운 현에 의한 ‘챠챠챠 챠챠챠’에 이어 비올라가 비 오듯이 절절이 눈물을 흘린다. 5악장은 쇼스타코비치 이름의 이니셜 ‘D-S-C-H’에서 따 온  ‘레-미플랫-도-시, D-Es(E♭)-C-B(=H)’ 4개의 음으로 조용히 마무리된다. 그의 걸작 중 하나인 교향곡 10번 또한 이 4개의 음을 사용하여 내면의 은밀한 독백과도 같은 분위기를 부여한다.

교향곡 2번 <10월>, 3번 <5월 1일>, 13번 <바비 야르>, 그 외 <스테판 라친의 처형>, <숲의 노래>와 수많은 영화 음악들 또한 완성도 높은 사회주의 리얼리즘 작품이다. 그 밖에 더 많은 작품들은 이데올로기와 무관해 보인다.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유머와 신랄함, 독특한 어두움을 담은 여러 장르의 작품들이 있다.  

그의 음악을 들어보지 않고 그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과거의 은밀한 연인이었던 쇼스타코비치를 올 겨울 다시 만나 보고픈 사람은 더 이상 이불 속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볼륨을 최고로 올리고 쏟아지는 소리의 폭포 속으로 들어가 그가 말하고자 한 진실이 무엇인지 귀 기울이다 보면, 긍정과 부정을 넘어서는 어떤 지평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추천 음반>

󰁖 교향곡 11번 <1905년> : 앙드레 끌뤼땅스 지휘, Orchestre National de la Radiodiffusion Française - 1958년 5월 19일, 스테레오 녹음, 쇼스타코비치 입회하에 파리에서 녹음(Testament)
󰁖 교향곡 12번 <1917년> : 에프게니 므라빈스키 지휘, 레닌그라드 필하모니 관현악단 - 1984년 레닌그라드 실황 녹음(Erato, Victor 등)
󰁖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  : 에프게니 스베틀라노프 지휘, USSR 국립교향악단, 1968년 녹음 또는 1978년 2월 14일 모스크바 실황 녹음(멜로지야-스크리벤덤). 또는 네메 예르비 지휘, 스코티쉬 국립 관현악단의 1988년 녹음(Chandos)
󰁖 바르샤이가 현악사중주 8번을 편곡한 ‘실내교향곡’ : 주하 캉가스 지휘, 오스트로보스니안 체임버 오케스트라 (BIS)  
󰁖 ‘피아노와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작품 35 (통상, 피아노협주곡 1번, 1933년 작) : 마르타 아르게리히(피아노), 가이 투브론(트럼펫), 파에르버(지휘), 하일브론 뷔르템베르크 실내 관현악단(Deutsche Grammoph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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