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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호 [담론과문화] 학벌 사회, 또 하나의 MATRIX?

2007.09.22 17:19

진보교육 조회 수:1391

[담론과문화]  학벌 사회, 또 하나의 MATRIX?

은하철도 (진보교육연구소 연구원)


수년전 개봉한 영화를 새삼스레 다시 찾아서 보게 된다. 전편 말고도 후속편으로 두 편이 더 나왔으며 애니메이션 영화도 개봉된 ‘매트릭스’가 바로 그것이다. 첨단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컴퓨터 그래픽과 홍콩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현란한 액션, 그리고 귀청을 때리는 테크노 음악이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어 개봉 당시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관객들의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뉘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야?”와 “정말 재미있군!”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읽고자’하는 관객들과 영화를 ‘보고자’하는 관객 모두를 충족시켰다는 점이  세계적 흥행의 원인이었다.


꿈인가 현실인가?

주인공은 소프트웨어회사의 평범한 사원이다. 대개의 사람들처럼 정보화 사회 속에서 생활하고 잠도 자고 내일을 준비한다. 그러던 중 홀연히 컴퓨터 창에서 메시지가 뜨고 그 메시지가 원인이 되어 완전히 인생이 뒤바뀐다.

“지금 우리는 꿈을 꾸고 있다고 하자. 그리고 저 개별적인 것들, 즉 우리가 눈을 뜨는 것, 머리를 움직이는 것, 손을 펴는 것 및 이와 비슷한 것들은 참된 것이 아니라고 하자. 또 아마 우리는 손도 몸 전체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자. ......”
        - 데까르트의 성찰 1편에서 -

17세기의 프랑스의 데까르트(1596-1650)는 이성(理性)의 의심을 통한 실험을 통해 결국 이성의 자기 회복과 확신을 한다.
그러나 영화 속 주인공(네오)의 경우는 다르다. 결국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는 실재가 아니고 가상의 세계이며, 자신이 먹고 자고 생활하는 상황은 컴퓨터에 입력되어 있는 프로그램상의 가상이며,  자신은 거대한 인큐베이터 안에서 단순히 기계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밧데리’ 역할을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데까르트는 ‘방법적 회의’를 통해 자신의 사유의 기초를 의심한다.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모든 현상들 심지어 손, 몸, 눈도 공상적인 것일 수 있다고 의심한다. 마치 네오가 거대한 기계에 케이블로 연된 된 채 끝없는 꿈을 꾸면서 이 꿈을 실재라고 여기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데까르트는 이러한 의심 상태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근거로서 의심하는 ‘자신’을 산출한다. 즉,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의심하고 회의하는 ‘자신’의 존재는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Cogito,ergo sum.) 결국 중세 사회 안에서 신의 예지에 부속된 기능으로서 한정된 기능만을 인정받은 인간의 이성이 오히려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주도적인 위치로 올라서게 되면서 근대사회는 시작이 되고 과학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놀랄만한 생산력의 증대는 자본주의 생산형태의 출현과 발전은  물론이요 오늘날의 인류의 생활 환경을 가져다주었다.
데까르트와 달리 우리의 주인공은 현실의 삶을 긍정하지 못하고 또 다른 삶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현대식의 깔끔한 아파트와 맛있는 스테이크를 버리고 먹기가 역겨운 음식과 기름때로 얼룩진 함선(艦船)을 받아들이고 목숨을 담보로 한 기계와의 한 판을 통한 매트릭스 파괴에 나선다.


대학 서열이라는 매트릭스

우리는 태어나서 자라면서 무수한 경쟁을 경험한다. 아니 경쟁을 하기 위해 길러진다.  특히 학교에 들어오면서 수많은 자기또래들과의 공식, 비공식의 경쟁을 통해 자기 발전의 기회로 삼거나 자기혐오의 원인으로.
수업시간과 시험은 물론이고 운동회와 학예회에서의 경쟁을 통해 자기를 형성한다. 누구는 경쟁의 대오에서 앞줄에 서서 나아가고 누구는 낙오되어 뒷줄에 서서 방관하거나 자기모멸과 멸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경쟁의 최대 관문은 입시 바로 그것이다. 날아다니는 비행기도 서야 하고  출근시간도 늦추어야 하는 모든 국민들이 알아야 하는 수능 시험날! 수험표를 가지고 온 수험생에게는 머리파마도 할인해 주어야 하고 당일의 술주정과 일탈도 너그러이 봐 줘야 하는 모든 국민들의 이벤트!
하루에 그간의 실력(?)을 평가한다. 등급제이던 점수제이던 전국의 모든 수험생을 단일한 기준으로 줄을 세우고 대학으로 하여금 선발하도록 한다. 수험장에서는 모든 통신기계와 전자 제품의 반입이 금지가 되고 대 테러 검색용 금속탐지기가 동원된다. 출제 교사와 검토 교사는 한 달간 세속으로부터 격리되고 수험장에는 앞과  뒤로 교사들이 매시간 감독을 한다. 완벽한 차단과 객관성을 통한 공정한 경쟁의 압권이다. 시험을 마친 후 공중파 방송에서는 시험의 분석이 이루어지고 뉴스에서는 상위권 대학의 합격권의 점수가 공표된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 수험생들은 심한 자기 우월감에 또는 자기 혐오감에 학교에 입학을 하고 많은 수험생은 다음번의 국민적 이벤트(?)에 동참하기 위해 학원에 등록을 한다.  
완벽한 시나리오와 과정을 통해 학벌과 입시 제도는 공정성을 최대한 내세우면서 학부모와 학생은 물론 전 국민들에게 당당하게 받아들이기를 강요한다. 그리고 국민들은 제도와 구조 안에서 순응하면서 고통임에도 감수한다. 완벽한 또 하나의 매트릭스!


매트릭스 안에서 살기 아니면 벗어나기

허상을 만드는 것도 인간이고, 자신이 만든 허상에서 허우적거리는 것도 인간이다. 아울러 허상의 세계에서 벗어나 실재의 세상을 찾고 만드는 것도 인간이다. 21세기 포스트 모던과 노마디즘이 휩쓰는 한국사회에서도 데까르트의 가상실험이 유의미 한 것은 아닐런지!
결론을 대신하여 들뢰즈의 말을 옮겨 본다.

“혁명의 장래에 관한 물음은 나쁜 물음이다. 왜냐하면 이 물음을 묻는 한은 혁명적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며, 이 물음은 어느 층위에서건 어느 곳에서건 사람들의 혁명적으로-되기라는 문제를 훼방한다는 그런 목적으로만 정확히 제기되기 때문이다.”    
- 질 들뢰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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